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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01.14.주일설교<말4:1-6. 돌이킨 자, 송아지처럼 뛰리라.>

by 설렘심목 2018. 1. 16.

2018.01.14.주일설교<4:1-6. 돌이킨 자, 송아지처럼 뛰리라.>


[신앙과 철학, 봉사와 생업, 경건과 물질, 거룩함과 누림은 한 마리를 포기해야 할 두 마리의 토끼가 아니라 배주머니에 귀여운 새끼를 담고 있는 캥거루이다. 어미캥거루인 신앙과 경건과 거룩함이 말씀을 내 집에 들여 한 식구가 돼 동거하면 그 주머니 안에 필요한 모든 것은 예쁘게 자라난다. 거듭난 영은 아직 아기이다. 보고 듣고 실패하며 성장한다. 기다려줘야 한다. 서두르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이다.]

 

오늘 주시는 말라기서는 주님 오시기 전 약 430년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 듯이 성경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입니다. 세상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시고 그 말씀을 성경으로 오늘 우리 안에 오실 때 새 영으로 새사람 덧입기를 바랍니다.

 

페르샤 고레스왕의 칙령에 따라 포로귀환과 성전재건이 이뤄지면서 이스라엘은 서서히 옛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그들은 다시 방종한 가운데 게으른 죄인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다 한가지입니다. 만족한 세월이 계속되면 긴장을 풀고 곧 부패하여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역시 해방의 감격은 잠시, 민족이 총체적으로 타락해 가는데 제사가 제사답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과 물질이 아깝고 가진 자는 더 채우려고 가난한 자의 것을 가로챘습니다. 영적지도자들은 하나님을 겁내지 않았고 세상이 달콤했습니다. 왕들은 위태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웃과 손을 잡고 난국을 타개하려는 과거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영적인 상태는 개인이나 국가나, 모든 수레바퀴를 돌리는 원동력입니다. 즉 교회가 무너지면 가정과 사회가 그리고 국가가 힘을 잃고 서서히 무너져 갑니다. 반면 말씀이 힘 있게 선포돼 그 앞에 순종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개입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 순서에는 대부분 책망과 경고와 징계라는 일정한 틀이 발견됩니다. 오늘 본문은 말라키선지자의 입을 통해 경고와 소망을 동시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어느 민족 어디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적용하면 생명의 시작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인줄 우리가 믿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오늘 주시는 경고와 소망 그 첫째,

 

1. 돌이키도록 선지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돌이킨다는 것은 회개를 말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땅을 치시겠다는 그 땅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뿐 아니라 모든 환경과 조건을 말합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핵전쟁으로 주변이 다 무너져 내려서 황량하게 되면 결국 살아남지 못하고 자신의 건강을 원망하면서 서서히 죽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주변이며 그것이 땅이라는 이름으로 본문에 기록됐습니다.

본문은 땅을 저주로 치시기 전에 먼저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셔서 돌이키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백성 택한 자를 돌이키게 하실 때 항상 먼저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경고와 책망을 선지자의 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선지자를 여러 경로로 통해 알아보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 듣는 가운데 각종 어긋난 것들이 말씀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4:17절입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우리에게 늘 계신 선지자 그 첫 번째,

 

1) 복음으로 우리에게 늘 계신 예수그리스도십니다.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실존은 영원한 세계뿐 아니라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통치권을 행사하시는 현실의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서 이르는 하나님의 분노는 땅을 저주한다고 하셨는데 이미 십자가에서 그 저주가 풀렸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모든 소망은 십자가로부터 출발합니다. 죄와 사망이 다시는 인간을 저주하지 못하는 곳, 골고다에서 주님은 온 인류의 구원주가 되셨습니다. 1:20절에 따르면 하나님과 막힌 모든 만물과의 관계는 십자가에서 생명을 드려 죄를 씻으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돌이키게 하셔서 화목하게 됩니다. 딤후 3:16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감당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 늘 계신 선지자 그 두 번째 ,

 

2)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지자란 오늘날 택하신 주의 종을 말합니다. 이들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현대 문명의 혜택으로 편리하게 길 잃은 양떼들에게 전달됩니다. 성경말씀은 지금 읽은 말씀처럼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지는 길과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혼자 읽거나 강대상을 통해 설교로 듣거나 그 말씀은 들려지는 선지자의 음성입니다. 그 음성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 즉시 순종하고 행하면 돌이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돌이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당신의 선지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죄인들을 향해 말씀으로 속히 돌이켜 돌아오기를 촉구하십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올 자와 그렇지 않고 회개를 멀리하는 교만한 자의 당할 일들을 각각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회개치 않는 교만한 자에게 이를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1절을 함께 읽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오늘 주시는 결과 소망 그 둘째,

 

2. 돌이키지 않는 자를 징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용광로와 같은 무서운 불의 날이 온다고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상인류역사가 성경을 따라 일순간도 착오없이 진행되는 줄 믿습니다. 본문이 밝힌 용광로의 날은 주로 여호와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5절에서도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을 예수재림, 종말의 날로 표현합니다. 크고 두려운 날, 인류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최대의 재앙이 예고되고 있는데 그 대상인 회개를 모르는 불신의 무리들이 다 지푸라기처럼 불살라지고 뿌리와 가지도 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평생에 교만하여 주님을 믿지 않고 악을 태연히 행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겁내지 않던 자들은 여호와의 날에 모두 심판대에서 성도들과 분리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3절 말씀처럼 성도의 발에 짓밟혀 발바닥아래 재처럼 됩니다. 예수 믿는 자가 그것밖에 안되냐고 조롱하면서 끝까지 불신자로 남아 큰소리치던 교만한 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오차 없이 이뤄지는 것 믿는 믿음이 성도들의 권세요, 능력입니다. 이번에는 믿는 이들에게 임할 소망의 기쁜 소식입니다. 2절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3. 주를 경외하는 이들에게 치료의 광선을 비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은 단순히 믿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고 경외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단어는 신약에 들어와 사용하기 시작한 신약적 은혜의 말입니다. 믿음보다는 다분히 율법적이고 엄격한 경외라는 말은 두려움이란 내용이 포함됩니다.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드릴만한 존경심과 너무나 높으신 분 앞에 두려움 마져 느끼는 신앙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십니다. 그렇게 존귀한 자들에게는 치료의 하나님으로 임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먼저, 여호와 라파, 공의로운 해의 떠오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평등과 억울한 분노가 소리도 내지 못하고 가슴이 멍드는 곳입니다. 그런데 주님나라는 공의의 해가 떠오릅니다. 공평해서 불평등과 불만이 있을 수없는 곳,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공의로운 해, 그리스도 우리주님이 이미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과 그 백성들이 받기를 거부했지만 택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돼 가는 것, 이는 만세전에 감춰졌던 비밀이라고 골1:26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공의로운 빛 우리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한, 우리들에게는 감사와 찬송만 허락된 새 생명인 줄 믿기 바랍니다. 다음, 치료의 광선입니다. 방금 전한 말씀처럼 세상은 불평등과 억울한 분노로 소리없는 신음이 가득하지만 주님 베푸시는 치료의 광선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몸이 아프고 기계가 고장난 것 모두가 제자리를 벗어나 제기능이 마비된 현상입니다. 제자리에서 제기능을 발휘하면 평강이요, 기쁨이요, 찬송입니다. 주님이 공생애동안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전파하신 3대 사역은 알고 보면 에덴에서 어긋난 영혼과 그 삶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샬롬운동입니다. , 에덴복귀운동입니다. 이 에덴의 회복은 결국 자신의 생명인 보혈로 우리의 죄악을 덮어주시면서 완성됩니다. 즉 치료의 광선을 비추시는 공의로운 빛 우리주님은 자신의 몸을 드려 하나님과 죄인사이에 저주를 풀어버리셨고 화목의 도구가 되셨습니다. 1:20절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치료하는 광선은 그러므로 먼저 영혼을 치료하게 됩니다. 주님의 광선에 비춰진 사람, 구원받은 이는 무엇보다 영혼이 치료받은 자입니다. 영혼이 치료받아 살아나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알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이 자신의 기쁨이 돼갑니다. 세상의 추하고 허탄한 것에 더 이상 묶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공의로운 해 치료의 광선을 받은 자들은 어떤 모습이라고 성경이 밝힙니까?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뛸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살펴보면 너희가 나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디서 나갑니까? 공의롭지 못한 세상의 법과 육신에 얽매여 비참했던 모든 죄악의 사슬에서 풀림을 받아 거기서 나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 우리를 제압하고 억누르던 세속의 관습과 자기습관, 가문을 따라 흐르던 불행의 사슬, 그리고 부조리한 관계의 노예에서 또 잘못된 관행과 전통의 고리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구원하심으로 인하여 자유하게 됐습니다. 거기서 나와 주님의 양 무리,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예수의 품안은 치료의 광선이 비추는 곳입니다. 6절에 보면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그리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좋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여호와, 창조주 거룩하신 우리 주님은 언제라도 용서하실 준비가 완전하신 의요, 자비로우신 평강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돌이키시길 손꼽아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돌이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형성된 모든 것들 다 죄악입니다. 하나님을 빼놓은 채 이룬 모든 일은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인격적으로 그리고 계산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모두 죄라는 사실에 아멘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송아지처럼 신나게 뛰는 자유와 홀가분한 기쁨과 노래는 반드시 돌이켜 주를 경외하는 자의 몫입니다. 돌이키지 않는 교만한 불신세상의 족속들은 용광로 앞에 놓인 검불처럼 지푸라기 타오르듯 불살라질 날이 여호와의 정하신 크고 두려운 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고, 돌이켜 거기서 나와 당신을 경외하는 자기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소망까지 싣고 달려옵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치료의 광선, 아름다운 빛, 찬란한 영광입니다.

예수그리스도, 나의 빛이요, 생명이시요, 진리요, 길되신 것을 날마다 고백하고 고백이 노래와 삶과 신앙인격 되어 주님 앞에 자유를 얻은 자,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힘 있게 뛰어 시온의 대로를 달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