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0.주일예배<에4:10-16. 죽을 각오로 일어선 에스더>
[삶은 싸움이다. 세상이나 환경과의 싸움이 아니라 어리석고 이기적이며 악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거듭난 내가 육체에 뿌리박은 옛 자아, 옛적의 나를 이기면 세상이 내게 무릎을 꿇는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먼저 내가 나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무릎 꿇어야 한다. 성경은 이런 나를 살리되 영원히 살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경전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이 내 안에서 활동을 시작하면 그 활동이 곧 하나님의 활동이고 그 활동은 오직 사랑이시다.]
본서는 강국 페르샤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민족에게 일어난 매우 특별한 일을 증거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에스더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사촌오빠 모르드개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유대인의 교육은 잘 알려졌듯이 엄마 젖을 물면서부터 모세율법을 듣게 됩니다. 그들에겐 신앙의 이유를 질문할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면 자신들은 본래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삶이라고 말합니다. 왜 당신이 남자냐고 묻거나 왜 인간으로 태어났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이방인들은 거의 인간 측에 들지 못한다고 보는 시각이 선민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민족정서였습니다. 에스더는 인물이 빼어나 노예 중에 뽑혀 왕궁에 들어왔고 그 양육자인 모르드개도 따라 들어와 궁궐 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됐는데 신앙이 투철하고 민족자존감이 대단해 아말렉족속인 총리 하만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대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전권을 잡은 하만은 끝 모르는 권세로 모든 사람이 그 앞에 꿇어 절을 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만은 꿇지도 않고 절도 안하고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계속 신하들이 권했지만 변함없이 하만에게 꼿꼿했습니다. 하만은 이 오만방자한 수문장이 유대인이란 사실을 알고 그 치솟는 분노와 모욕감을 모든 유대인과 모르드개에게 갚기로 결심하고 일을 꾸몄습니다. 그는 막대한 거금을 왕에게 유대인처리비용으로 내놓고 유대인 말살계획을 구체화해서 결국 전국 127도에 옥새를 찍어 각처 게시판에 조서를 붙이게 했습니다. 3월쯤인 아달월 13일 하루 동안 유다인은 남녀노소 모두 죽여 없애고 그 재산은 빼앗아 가지라는 것이 조서의 내용입니다. 이제 유다인의 비참한 멸망은 시간문제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르드개는 민족의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고 그 도구로는 왕후로 올라간 에스더라고 믿었는데 믿은 대로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사용하셔서 유다민족을 구하십니다. 한절씩 보며 유다민족이 잔혹한 떼죽음에서 구원받고 감격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신앙을 살피며 도전 받기 원합니다. 10-11절입니다.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일이라 하라 하니라.”
1. 두려움으로 소심해진 에스더입니다.
모르드개는 굵은 베옷을 입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대궐문 앞에까지 왔지만 베옷차림으로는 대궐 안을 들어가지 못하는 법이라 거기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근심이 돼 베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으라고 전했으나 듣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된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강력한 권고 앞에 놀라 어떤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을 따라 매우 소심한 말을 합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의 앞 안뜰 곧 어전 안뜰에 나가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게 규정인데 에스더에겐 너무 곤혹스런 일입니다. 동족들의 위기가 코앞에 닥쳐왔고 부모같은 모르드개의 간곡하고도 엄한 청구가 있으나 자칫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짓누릅니다. 그래서 자신의 곤란한 입장을 말하는데 그 말을 들은 모르드개는 비장한 한마디로 충고합니다. 13-14절입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국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2. 에스더에게 생명공동체의식을 도전하는 모르드개입니다.
모르드개는 딸같이 키운 에스더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유다의 생존은 너와 함께 하고 있음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다 죽으면 너도 죽을 것이고 네가 만일 입을 열지 않고 비굴하게 살고자 한다면 이 유다민족은 너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겠지만 너는 너와 네 가문이 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란 모르드개의 엄한 경고와 명령, 에스더는 생명을 거는 결단의 촉구 앞에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어졌습니다. 모르드개의 결연한 한마디는 무엇을 뜻합니까?
1) 하나님의 구원은 반드시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두려워서 피한다면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유다를 구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구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젊고 유약한 에스더에게 죽든 살든 너도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 민족의 긴박한 구원을 위하여 결단하지 못하는 나약한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는 선지자였습니다.
2) 왕비의 자리를 주신 하나님 앞에서 때를 놓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마다 때가 있고 그 때마다 자신의 역할이 있습니다. 이것을 잘 알면 기회에 능한 사람이 되어 매우 뛰어난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 자기가 나설 때가 아닐 때 나서면 낭패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역할을 주신 하나님의 때를 알았습니다. 두려워하여 나서지 않으려는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는 함께 묶인 생명의 고리를 강조합니다. “모든 유다인이 죽을 때 네가 왕궁에 있다고 예외일 수가 있다고 생각마라. 네가 왕후가 된 것은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하나님이 널 왕후로 만드신 것은 이러한 민족의 위기에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어디서 어떠한 도구로 사용되기 원합니까? 여러분이라는 그릇 안에 무엇을 담기 원합니까? 여러분 등에 누구를 태우고 어디를 가기 원합니까? 같은 악기이지만 술 취한 사람의 주흥을 돋우기 위해 천박한 유행가를 연주하는 악기가 있는가 하면 격조있는 분위기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여 사람들의 내면을 순화하고 감동을 선사하는 악기도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존재목적을 일깨웠습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15-16절을 함께 읽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막다른 골목입니다.
3. 죽기를 각오한 믿음으로 일어선 에스더입니다.
1) 금식을 결단하고 모든 유다인들에게 당부했습니다. 금식기도는 특별히 결연한 의지를 올려 드리는 서원의 성격이 있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통제함으로 주님께 충성과 간절함을 올리는 특단의 기도가 금식기도입니다. 금식기도는 금식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금식에는 먹지 않음으로 육체를 괴롭혀 정욕을 억제하고 경건을 통해 간절한 소망을 이루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금식이 명령은 아니지만 허용된 것이고 주님도 공생애의 시작을 금식으로 하셨습니다. 금식에는 피해야 할 함정이 있는데 금식은 반드시 기도와 함께 행해져야 하며 금식이 행여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기공덕을 쌓는 것처럼 오해되지 않아야 하고 그 목적이 끝까지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확장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58장에선 형식적인 금식에 대해 진정한 금식은 자기 몸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흉악의 결박을 풀어 압제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주린 자를 먹이며 헐벗은 자를 입히는 사랑이라고 지적합니다. 즉 굶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굶고 기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식기도는 하나님을 진정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근본이 되지 않고, 굶어 죽겠다는 의지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에스더는 사흘간 유다민족들과 자신과 시녀들에게까지 코앞에 닥친 민족의 파멸 앞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금식을 당부합니다. 16절 뒷부분을 제가 읽겠습니다.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라.”
2) 생명을 담보한 금식기도였습니다. 궁정의 규례를 어긴 자는 반드시 죽입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의 도전을 받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에스더가 만일 비겁하게 피하면 다른 일로 유다민족이 구원을 얻고 에스더는 결국 가속과 함께 멸망하리라는 말은 더 물러설 수 없는 지경임을 에스더로 하여금 알게 하여 결국 생명을 담보한 기도를 하게 한 것입니다. 하만의 계략에 민족과 함께 비통하게 죽느니 차라리 기도하고 왕 앞에 죽음을 각오하고 나가 보겠다는 것입니다. 어전 뜰에 나가 금지팡이를 잡던 못 잡던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야곱이 20년간 이를 갈며 기다려온 분노한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얍복강에서 하던 기도의 사투와도 같은 사흘간의 상황입니다. “삶이란 어떠한 결론을 위해 모험을 감행하든지 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가만히 앉아 있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3중장애를 딛고 하버드대학을 나와 가난한 자와 흑인들과 노동자들을 위해서 살았던 위대한 헬렌켈러의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극한 위기를 느끼면 맨 먼저 무엇이 떠오릅니까? 그렇습니다. 대부분 죽음이 떠오릅니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아 결국 이렇게 죽어가는 것인가? 그러다가 살아나면 아, 그래. 그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로 바뀝니다. 죽는 게 별게 아니구나. 그렇게 가는 거지. 죽음의 능선을 지나오면 갑자기 성숙한 자신을 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도는 그렇게 가는 게 아닙니다. 생명의 위기가 다가올 때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주님이어야 합니다. 주여. 종을 받으소서. 때가 되었다면 받으시고 때가 아니라면 길을 열어 주옵소서. 주의 뜻이 이뤄지기만을 간구하나이다. 위기든 편안할 때든 끝내 기도의 사람으로 주 앞에 서기 바랍니다.
1800년 남양군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교사 패턴은 식인종 원주민에게 포위되었고 그들은 그의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순식간에 불길에 싸인 패턴은 죽음이 눈앞에 와 있는 것을 느꼈고 그는 즉시 엎드렸습니다. 기도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점점 뜨거운 불길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주여 종을 받으소서. 혹 필요하시다면 좀 더 이 땅에 남겨두소서.”갑자기 돌풍이 불어 불길이 방향을 바꿔 살아났습니다. 포위하고 있던 원주민들이 소리치며 달아납니다. “ 패턴의 신은 우리들의 신보다 크다.” 패턴은 천수를 다하면서 안전하게 선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은 위기 앞에 진정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위기 앞에 주님과 깊은 교제가 있기 원합니다. 죽을 각오로 어전 뜰에 나간 에스더처럼 주 앞에 믿음으로 서시기 바랍니다. 에스더의 결단은 결국 주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돼 온 유다민족을 구하고 그 적들을 질그릇처럼 부서 버렸습니다. 하만은 그가 모르드개를 처형하려고 세웠던 20m높은 장대기둥에 그 열 아들과 함께 죽어 매달렸습니다. 가장 힘들 때에 가장 위대한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곁에 계셔서 저와 여러분의 결단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이란 말씀을 기억하는 남은 평생이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일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09.03.주일예배<삿8:23-35(33-35). 기드온의 평강과 이스라엘의 부패.> (0) | 2017.09.03 |
---|---|
2017.08.27.주일예배<눅9:28-36. 승리하는 영적 삶의 증거들> (0) | 2017.08.27 |
2017.08.13.주일예배<삼상24:9-12)엔게디 굴속, 다윗과 사울> (0) | 2017.08.13 |
2017.08.06.주일예배<고전7:29-31. 다 사라질 세상의 외형들.> (0) | 2017.08.13 |
2017.07.30.주일예배<고전9:25-27. 절제의 선물, 풍요.> (0) | 2017.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