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6.주일예배<고전7:29-31. 다 사라질 세상의 외형들.>
바울사도가 목회하는 동안에는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가 떠나면서 느슨해지고 믿음이 떨어져 이단과 율법주의, 각종 범죄가 교회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부패를 전해들은 바울사도는 타락한 자녀의 아버지 마음으로 편지를 합니다. 신약성경 27권중 13권에, 분량으로는 절반이 훨씬 넘는 바울서신은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갈라서고 퇴락하고 부패하는 교회에게 절실한 생명의 말씀으로 모든 성도와 교회가 따라야 할 신앙의 규범이 됩니다. 고린도전서중 본 7장은 주로 결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바른 도리와 지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 29-31절은 설교제목처럼 다 사라질 세상의 허탄한 것들을 통해 영원한 하나님의 것을 사모함으로 결혼에 관한 생각을 좀더 거룩하고 초연하게 바라보기를 교훈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의 본문 세 구절에는 각각 아내있는 자와 우는 자와 기쁜 자와 매매하는 자와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을 향해 권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때가 단축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단축된 그 때란 그리스도의 날을 말합니다. “때가 악하니 세월을 아끼라”는 엡5:16절의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워 올수록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다섯가지 부류의 형편을 본문은 소개합니다. 먼저 아내 있는 자와 우는 자와 기쁜 자입니다. 그 날이 가까워 올수록,
1. 삶의 모든 정황가운데 마음을 비우고 주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32절에서 주의 일을 염려해 어찌해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는 것은 결혼 안한 사람이 결혼한 사람보다 더 충실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아내있는 자와 우는 자와 기쁜 자들도 이와 같이 어떻게 해야 더욱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임을 각 구절들은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주를 더 기쁘시게 할까? 성도의 생활관입니다.
1) 아내있는 자는 없는 자처럼 하라고 합니다. 아내가 있는 자는 홀로 된 자처럼 하나님 앞에 봉사하라는 것이며 이 말씀은 비록 가정과 아내가 있는 남자는 아무래도 혼자 사는 독신과 같지 않아 여기저기 매여 전적인 헌신이 어렵다는 관점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아내가 있는 사람들은 아내가 없을 때처럼, 마치 아내가 없어서 아내를 간절히 그리는 마음으로 관심있게 대하라는 것인데 쉽진 않아도 주님이 함께하는 성도라면 성도는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겸손의 왕이시며 평강의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본문말씀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라도 아내가 없는 독신자처럼 정욕에 매이지 않고 전적인 헌신을 이루라는 교훈과 또 하나는 아내가 있어도 아내를 잃은 자처럼 아내를 극진히 살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이 가까울수록 두 번째,..
2)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처럼,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라고 합니다. 슬픔과 고통에 싸여 남모르게 울 때 주님도 거기 함께 아파하고 있습니다. 힘든 가운데도 주님과 교회를 위해 봉사할 때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고 환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힘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희노애락의 감정을 숨기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다면 이 감정의 곡선을 늘 시소를 타듯이 오르락내리락하며 험한 나그네 길을 가게 됩니다. 본문은 우는 자들이 울지 않는 자처럼, 기쁜 자들이 기쁘지 않은 자처럼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라는 것인데 이는 표정관리의 문제나 감정의 차원을 넘어선 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울고 싶을 때 환하게 웃고 기쁜 일이 있을 때엔 환난 당한 자들을 생각하여 함부로 웃지 말라는 것인데 이러한 인격을 만나면 우린 평안함을 느낍니다. 늘 표정이 잔잔하여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 이 말씀도 우리는 또 다른 면에서 받기 원합니다. 우는 자와 기쁜 자는 울지 않는 자와 기쁘지 않는 자처럼 봉사하라는 말씀을 우리의 감정처리문제로 살펴봐야 합니다. 다가올 영원한 우리의 미래, 주님나라는 곧 사라져 버릴 오늘의 감정세계와 다릅니다. 우리들의 부패한 죄성은 다분히 이기적인 성향으로 감정세계가 채워져 있습니다. 자신에게 유익하면 기쁘고 감동하고 불리하면 불쾌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체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곧 우리가 가서 영원히 살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가짐으로 상당부분 수월해 집니다. 우리가 곧 가게 될 주님의 나라는 지금 보이는 교회를 통하여 섬기고 희생할 수 있습니다. 봉사하면서 감정을 이기라는 본문의 말씀을 우리는 영원한 세계의 사라지지 않는 가치를 위하여 감정을 억제하고 희생하기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으로 듣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믿음이 진정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 주님나라, 천국에 붙잡혀 있다면 어느 정도 감정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들을 우리에게 믿음으로 제시하며 요구합니다. 성도는 삶의 지표를 설정하되 믿음으로 가야하고 믿음으로 가되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수적이며 성령충만은 우리들의 의지와 열심 또한 요구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30b~31절을 함께 읽습니다.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고 세상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러라.” 그 날이 가까워 올수록,
2. 물질의 모든 정황가운데 마음을 비우고 주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읽은 본문은 성도의 물질관을 말합니다. 물질을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관한 교훈입니다.
첫 번째,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헌신하고 또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상업을 하거나 영업을 하는 자들은 그러한 일에 최선을 다하되 얽매이지 않음으로, 일을 하되 일에 노예가 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인생 대부분은 일과 돈에 노예가 되어서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또 영업과 상행위에서 혹 손해가 있을지라도 온 맘이 아프고 낙심하기보다는 본래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난 자신의 적신정체성을 깨달아 무소유의 텅빈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주시는 말씀처럼 손에 아무 것도 쥐지 않은 마음만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평온할 수 있습니다. 인생만사가 관계와 소유의 문제인데 관계가 소유보다 더 중요해도 물질이 인생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물질이 관계를 흔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이 신앙을 흔들지 못하도록 물질과 소유에 관한 성경적 입장과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대신 바르게 살지 않으면 안 되겠단 결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바르게 살지 않아도 부자가 된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한 자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물질과 함께 멸망해 가는 자들입니다. 양손에 물질을 쥐고 거래하고 영업하되 거래할 아무 것도 없는 자처럼 물질이나 영업에 노예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헌신하는 일이 우리가운데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상업이나 거래행위의 모든 영업이 성경적 양심을 따라 죄의 흔적이 되지 않기 바랍니다.
성도의 물질관 두 번째, 세상물건을 쓰는 자는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소비행태가 오늘 말씀으로 거듭나기 기대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한 물질은 성도답게 쓰라고 주신 귀한 것들입니다. 본문은 세상물질을 사용해서 봉사하는 자는 다 쓰지 못하는 사람처럼 하라는 말씀인데 여기서 “다 쓰지 못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아까워서 다 못 쓰는 절약의 정신입니다. 있는 것을 다 써버리는 것은 당시에 좋을지 모르나 텅빈 창고나 통장을 보면서 허전한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쓸 돈이 통장에 있고 아직도 남은 것이 있는 창고는 마음을 든든하게 합니다. 바닥이 나도록 써버리는 버릇은 오늘 본문과 맞지 않는 소비패턴이며 이는 결국 인생전체를 부도로 몰고 가게 됩니다. 이렇게 절약하는 마음으로 주의 일에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물질에 자유한 사람은 물질에 노예가 되지 않아서 꼭 소비를 시원하게 하고 많이 사들이고 멋진 것을 사서 걸치고 펑펑 써대야 마음이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에 자유한 사람들은 말씀에 묶인 자들입니다. 물건을 사재고 쇼핑을 하면서 살맛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힘을 얻고 진리를 따라 행할 때 영혼의 평강과 삶의 기쁨을 누립니다. 말씀으로 사는 사람은 물질을 사용하되 요긴하게 절실한 곳에서만 사용합니다. 같은 물질도 귀하게 사용하지만 그 물질에 묶이지 않고 초연합니다. 아껴쓰되 떠난 것에 대하여는 더 이상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31절 뒤쪽입니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러라.”
3. 진정한 삶의 가치를 하나님나라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약4:14절에서는 생명을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했고 전도서와 시편, 히브리서에서도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적인 존재임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세상에 와서 세상을 딛고 서서 세상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몰입해서 하나님을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소홀히 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들의 삶은 서서히 피폐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사랑의 주님이시고 죄악 세상은 잠시요,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우리들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면 사라져버릴 희노애락, 잠시 후면 사라져버릴 물질세계에서 그 감정세계와 물질을 영원한 하나님을 위하여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마6:19-21절에서도 우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보물 가는 곳에 마음이 있으니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초대교회는 유무상통했습니다. 가진 자나 없는 자가 함께 살았습니다. 있거나 없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팔거나 사거나 모든 행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모두 귀하게 사용돼야 합니다. 잠시 맡겨진 것들이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아낌없이 사용되고 참 놀라운 것들로 채우시는 주님을 경험하시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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