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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7.08.13.주일예배<삼상24:9-12)엔게디 굴속, 다윗과 사울>

by 설렘심목 2017. 8. 13.

2017.08.13.주일예배<삼상24:9-12)엔게디 굴속, 다윗과 사울>


왕으로 택함 받기 전, 사울은 매우 준수하고 건장하고 겸손한 30대 후반의 젊은이였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자 선지자처럼 예언도 하고 맹렬한 용기도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허락은 하셨지만 그 불편한 심기를 사무엘을 통해 전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는 이렇게 시작됐고 그 역사는 하나님의 경고처럼 인간을 하나님이 다스리지 않고 인간이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행한 것인지를 알게 하는 피눈물의 역사, 분단의 역사였습니다. 오늘은 초대왕 사울과 사울에 이어 두 번째 왕이 된 다윗의 초기에 일어난 사건을 다룹니다.


사울왕은 겸손하고 위풍당당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골리앗을 거꾸러뜨린 다윗을 칭송하는 소리와 여인들의 노래를 듣고는 그만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충성스런 구국공신 다윗청년을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있는데 하나는 사울왕의 세 가지 불순종으로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왕위를 옮기기로 작정(13:14/15:26)하셨다는 것과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신이 그를 번뇌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본서16:14절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그렇게 악령에 잡힌 사울왕은 번뇌하기 시작했고 결국 계속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들과 추적합니다. 사울은 하나님 명령을 듣지 않고 불순종함으로 사무엘선지자에게 심한 책망과 왕권박탈을 예고 받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쫓고 쫓기는 현장에서 우리가 극명하게 볼 수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영이 지도하는 자와 악령이 들어간 자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이미 욥기에서도 들어 알듯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여러 영들이 섰는데 그 중 하나인 사단처럼 사울에게 들어간 악한 영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입니다. 이 증거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어떠한 고난도 부조리도 결국 하나님의 뜻과 섭리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아멘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결국 소원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의입니다. 선입니다. 오늘 본문 다윗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11절입니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1. 죄와 악의 심판을 멀리한 다윗의 손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다윗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고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지 않는 일이라고 말한 뒤 사람들과 굴 밖으로 나갑니다. 하나님이 기름부은 자는 하나님께서 직접 관리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진정 경외, 즉 두려워할 줄 아는 깊은 신앙인입니다. 다윗은 터무니없는 일로 억울하게 고생하면서 여기저기 도피생활에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사울왕은 자신을 죽이려고 군사들과 따라 다니는 생명의 사낭꾼입니다. 굴 안에 들어와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진 상태니 죽이면 간단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coramdeo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행동 앞에 하나님의 눈을 기억해냅니다. 지금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제거하여 생명의 안전을 구하는 일은 상황에 미루어 보아 결코 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엔게디 동굴에서 사울을 해치웠다면 다윗은 고생하지 않고 일찍 왕이 됐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미 사무엘선지자에게 왕권의 기름부음을 받은 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된다는 것은 정해진 일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신 자의 생명을 친다는 것은 함께 계신 하나님 앞에서 할일이 아님을 알았던 겁니다. 그는 이어 하길라 산 길가에 진을 치고 누워 잠든 사울을 한번 더 살려주게 됩니다. 그 땐 요압의 아우 아비새가 다윗을 따라 사울의 누운 곳까지 들어갑니다. 깊이 잠든 사울을 한 번에 없애버릴 수 있었으나 단칼에 없애자는 아비새에게 누구든지 기름부은 자를 치면 죄가 될 것이며 죄가 있다면 하나님이 치시든지 전쟁에서 망하게 하시든지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잠든 사울머리맡에서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온 다윗이 건너편에 서서 사울의 경호관 아브넬에게 소리치자 사울이 놀랍니다. “내가 범죄 했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치려 하지 않으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26:22-24절 요약입니다. 1) 여기 왕의 창과 물병을 누구 보내 가져가셔요. 2)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한 그대로 갚으실 줄 알고 오늘 하나님이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실 줄 믿습니다.” 다윗은 주 앞에서 베푼 것도 원수도 반드시 주님께서 갚으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24: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2. 공평과 의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공의를 행할 만한 아무 것도 인간에게는 없으며 공의를 견딜만한 인간도 또한 없습니다. 믿기 바랍니다. 공의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임명한 생명은 사람이 어찌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내생명이든 남의 생명이든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끝낼 수 없는 것이 생명경외요, 곧 하나님경외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조심히 다루며 생명 앞에 두려운 마음을 갖는다는 것인데 생명은 단순히 숨을 쉬고 피가 몸을 돌아 말하고 걷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생명이란 것은 살아있기에 행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특별히 사랑하고 사랑으로 인해 맺어가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기쁨과 열매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고 계산만 하고 행하는 모든 일들은 알고 보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이라 하나님의 기쁨과 무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살면서 갖가지 어려운 일들은 많이 만나게 됩니다. 불편한 관계로, 생업의 현장에서, 그 외 많은 육신의 요청 앞에 많은 문제와 씨름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현장에서 지켜보시는 불꽃같은 그 눈을 잊지 않고 정직하게 알뜰하게 모두의 유익을 위하여 진실로 노력하는 자는 하나님이 존귀히 높여주십니다. 공평의 주요, 의의 왕이요, 평강의 하나님은 공평과 의를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왕권이 옮겨지기로 결정된 사울의 심판권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손에 심판의 피를 묻히지 않기로 한 것은 사울왕이 아무리 자신의 목숨을 노려도 그 생명은 하나님이 소유권자였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간혹은 공의의 주먹으로 사용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대방의 발령권자가 하나님이신 경우 우리는 잘 참아 심판의 칼이 되지 않도록 함으로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큰 상급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을 죽이려 따라다니는 사울을 죽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다윗은 15절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살펴 풀어주실 분은 재판장 되신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셔서 내가 왕을 얼마든지 해할 수 있었으나 기름부음받은 자를 내 손으로 심판하지 않았으니 내 손에 죄악이 없습니다. 난 당신을 살렸는데 왜 당신은 나를 해치려 합니까?” 사울이 놀라 감동하여 말합니다. 16-21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사울왕이 진심으로 하는 두 번째의 사과입니다.

 

3. 선행을 잊지 않고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울왕은 자신이 죽이려 했던 다윗이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일에 대하여 크게 감동하고 축복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함께 하는 이 귀한 아들이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선언한 뒤 자신의 자손들을 부탁합니다.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우리의 원수까지도 끝내 참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예수님이 현장에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잊지 않으시고 우리가 행한 선을 몇 갑절로 우리에게 갚아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미국 아마고사 사막길 중간에 피터펌프라는 것이 하나 있는데 목마른 나그네가 펌프로 가면 거긴 이런 글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오른쪽 바위 밑을 파면 큰 물병이 나옵니다. 그 물병의 물을 펌프에 부으면서 펌핑을 하면 물이 넉넉히 나옵니다. 펌프아래는 물이 많습니다. 충분히 마시면 다시 빈병에 물을 넣어 마개를 잘 닫아 다시 그곳에 묻어 넣기 바랍니다. 펌프에 붓기 전에 물을 미리 마시면 이후로는 누구도 물을 못 마십니다.” 마중물은 펌프우물의 종자물입니다. 본문의 다윗은 생명의 마중물을 사울에게 부었습니다. 사울의 생명을 해치지 않음으로 훗날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보장받고 왕의 자리에 올라 성군의 영광을 얻습니다. 우리모두 하나님 앞에 희생과 사랑의 씨를 심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씨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씨를 수천수만의 열매로 돌려주실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아무도 모르게 본 손해는 더 귀하고 복된 일을 가져다 줄 것이고 주님을 위해 말없이 당한 억울한 일 뒤에는 낱낱이 밝혀져 상받는 일이 다가올 것입니다. 내가 분노하고 내가 소리치고 내가 만족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자기중심 사고와 행동에는 언제나 아픈 대가가 따릅니다. 하나님의 절대하신 권위 앞에 원수 갚기조차 두려워 손을 대지 않은 다윗은 결국 그가 경외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얻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권세와 위엄과 끝없는 사랑 앞에 엎드리십시다. 하나님이 시작한 거룩한 일과 하나님이 인정하신 권위와 하나님이 발령하신 직임은 하나님이 선처하십니다. 하나님이 승인하신 모든 것은 하나님이 처리하신다는 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사람들의 손과 입에서 논단되고 재단돼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어떤 반응에도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고 당신의 귀한 뜻을 이뤄 가십니다. 사울의 왕복을 벗기시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은 다윗의 손이 아니어도 그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자신의 감정이나 입장보다 하나님의 권위와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평생을 맡김으로 하나님의 동행이 열어가는 놀라운 풍성과 의와 평강으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