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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7.07.09. 주일설교<히6:13-20.영원불변의 하나님 약속>

by 설렘심목 2017. 7. 9.

2017.07.09. 주일설교<6:13-20.영원불변의 하나님 약속>


세상만물은 하나님의 증거품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으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피조계를 통하여 끊임없이 기뻐하시며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피조물 중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것은 오직 하나, 인간뿐입니다. 1:26절의 형상과 모양, 그것은 외형이 아니라 외형 안에 담긴 뜻과 의미입니다. 모양은 성향과 image를 말하고 형상은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담아내 그렇게 자신을 그대로 닮은 인간을 당신의 교제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복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영원불변의 하나님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은 창22:17절에서 근거하고 그 약속은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후손이 크게 번성하여라는 말씀이 주제입니다. 오늘 확인되는 하나님 약속이 우리에게 주는 소망과 확신으로 힘겨운 세상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디서 시작합니까?

본문 13-14절 앞까지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1. 하나님의 약속은 지존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자신의 맹세에서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약속과 하나님의 약속은 다릅니다. 인간의 약속은 규정과 단서조항을 두는데 이것들은 약속이 안 지켜질 경우를 대비합니다. 세상약속은 지켜지기 보다는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계약을 살펴보면 이유와 조건이 피차 유익을 보장받기 위하여 각각 여러 법적인 보장책과 조치를 하고 있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사랑하기에 책망하시고 사랑하기에 기다려 주시고 사랑하기에 용서에 용서를 거듭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을 목표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이뤄가며 결정하십니다. 끝없는 하나님의 활동은 사랑에서 출발하고 사랑으로 일하시고 사랑이란 종착지에 오셔서 다시 사랑으로 출발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 역시 사랑을 이루시기 위한 단호함인 걸 알면 우리는 언제라도 하나님만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성향과 내면은 오직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과 과정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책망했습니까?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인생을 사랑하시는 하나님만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은 이미 태고 전 말씀으로 출발하여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하신 선악과에 대한 명령과 약속하신 통치와 번성이 마지막 해법을 골고다에서 그리스도로 완성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러므로 약속의 완성이고 율법의 마침표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복음은 약속의 성취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 중 가장 복된 소리 가장 복된 소식입니다. 여기 주지할 일은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완성된 약속이 하나님의 맹세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복에 복을 더하고 번성에 번성을 더하실 분은 오직 복음으로 우리 곁에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맹세는 복과 번성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그리스도,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 참혹한 죽음에 내어주시기까지 극진한 사랑으로 지켜내셨습니다. 극진하신 사랑, 맹세하신 사랑입니다.

15절입니다.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2. 우리가 오래 참아야 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영원불변이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아브라함이 하늘의 뭇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중다한 자손의 복을 약속 받은 지 얼마 만에 이삭을 낳았습니까? 장장 25년이 지난 100세에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그 이삭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족속과 백성과 나라들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한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반드시 지켜지는 하나님의 약속은 때때로 오래참아 인내함으로 그 결실을 보게 된다는 것인데 오래 기다리기에 자신없는 인생들에게는 힘든 일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믿기 때문에 응답받은 일이 속히 눈에 보일 줄 알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는 마치 씨를 땅에 심고 이튿날 열매가 달리길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무슨 일이나 시간이 필요합니다. 특히 귀하고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일수록 시간이 더 걸립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만큼 가치를 지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약속의 목적은 생명으로 시작, 그 생명이 번성, 확장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가득 차는 하나님나라완성에 있습니다. 그 언약이 목표를 향하여 나갈 때 누구의 손을 잡고 갑니까? 택한 하나님의 백성가운데 순종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손을 잡는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지적하는 가장 귀한 자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고 가장 천한 사람은 기다릴 줄 모르는 성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신 것은 믿음이었고 이 믿음은 기다리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타락한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기다리다 못해 실패하고 그릇 행하되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멸망의 구덩이로 달려가는 모습이 인간 본연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구원이 아니었다면 모두들 그렇게 죽음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을 겁니다. 아브라함도 기다리다 못해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육체의 자녀, 불신앙의 열매 이스마엘을 낳아 오늘 날 I.S무슬림은 그리스도 옆구리의 가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오래참아 25년 만에 이삭을 낳아 다시 이삭을 모리아산 번제물로 드린 것은 오직 믿음과 인내의 귀한 열매였습니다. 그 줄기에서 다윗이 나오고 다윗의 자손에서 인류를 구원한 메시야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한편 인간의 생각으로 오판하여 낳은 이스마엘은 더 기다리지 못한 실수의 결과로 끝내 비극의 실마리가 되고 맙니다. 사랑의 장이라고 불리는 고전13장에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으로 규정, 15가지를 짚어내는데 7절에서 모든 것을 참으며를 거쳐 마지막에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오래참고 잘 기다려 받을 복을 다 받아야 하는 이유를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영원불변이라는 특성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선 반드시 지켜진다는 보장책으로 두 가지 불변하는 사실 즉 약속과 맹세, 다시 말해 맹세로 선언한 약속을 그 이유로 제시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는 자가 약속아래에서 복위에 복. 번성가운데 다시 번성으로, 하나님을 세상에서 현실로 증거하며 기뻐하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맹세하신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이뤄지기까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참아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참는 힘은 단순한 인간의 의지가 아닌 것을 알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간절히 구하는 가운데 위로부터 힘을 주셔야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길 힘을 주셔야 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다만 그것을 분명하게 믿고 믿은만큼 우리는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19절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3. 약속이 기업된 자들은 오직 맹세하신 약속을 믿어 소망으로 삽니다.

 

성도여러분. 성도의 기업은 본문에서 약속이라고 증거합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존귀하신 이름을 걸고 맹세한 영원불변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육체의 호흡과 경제활동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고 그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소망이 있어서 살 의미를 느끼고 그 소망 때문에 지친 육신을 다시 일으켜 위로하고 그 소망으로 인하여 실패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 영혼의 활동이라는 사실에 그렇게 큰 관심을 갖지 못합니다. 그리고 알지도 합니다. 영혼이 에덴이후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제대로 반듯하게 건축되려면 영혼이 살아나야 합니다. 고전11:30절에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우리가운데 잠자는 자, 곧 영혼이 잠자고 있어 하나님과 멀어지는 자가 없는 줄 압니다. 우리들의 기업은 하나님이 맹세까지 하신 약속임을 한시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이 약속을 붙잡은 사람들은 늘 소망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은 영혼의 앵커, 닻과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간다고 19절은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소망 즉 하나님의 맹세와 약속을 붙잡은 신앙이 영혼의 닻, 즉 튼튼하고 견고한 영혼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닻을 잘 내린 배는 물결에 밀려가지 않습니다.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그는 18~19절 말씀처럼 험악한 세상과 암담한 죽음이라는 문제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난처 되시는 주님이 우리의 큰 평강과 위로가 되심을 기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19절을 한번더 읽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4. 휘장 안에서 주님을 직접 만나는 믿음위에 복에 복을 번성에 번성을 더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휘장은 성막의 커튼으로 그 안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으며 휘장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지속적으로 유지돼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보통 일반 백성들은 성막에 머물러 있고 성소에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제사를 위해 들어갑니다. 지성소에는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백성들의 죄용서를 위해 제물의 피를 양푼에 들고 들어갑니다. 휘장 안에서 이러한 제사가 진행되는 동안 백성들은 마음을 조이며 성막에서 기다립니다. 휘장 안에 들어간 믿음이란 제사장된 마음과 신앙으로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 만남의 믿음을 가졌다는 것인데 이는 사람이 태어나 갖는 영광중 최고 최대의 영광입니다.

 

진정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운데 살기만 한다면 그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인생들이 아직도 힘들게 사는 이유는 하나님과 확실하게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이뤄지면 인생은 전혀 달라집니다. 인격적인 만남은 인격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고 인격이 믿음을 따라 신앙인격으로 변하면 그 주변이 모두 바뀝니다. 주변의 관계가 바뀌면 환경이 바뀌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달라져 인생자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나면 그 심령이 그대로 지성소가 됩니다. 거기는 희생의 피, 어린양의 보혈이 선명한 색깔로 죄와 악을 덮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죄가 덮인 곳에 하나님과 화목의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그렇게 휘장 안에 들어가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임마누엘의 삶이 시작됩니다. 몸이 죽은 뒤에 영생뿐 아니라 살아서 동행의 삶을 통해 천국을 제시하고 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과 하나님의 천지만유의 주재되신 것을 증거하게 되는 성도의 삶, 휘장 안에서 보장받습니다. 20절입니다.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아비도 없고 족보도 없는 멜기세덱은 성경에서 단 한번 나오는 신비의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특별한 사람으로서 육체의 족보가 전혀 없이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를 축복합니다. 십일조를 받아 축복하는 자의 축복권이 휘장 안에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휘장 안에 있는 축복과 화목과 풍성과 각양 아름다운 증거들이 넘치는 믿음은 첫째 하나님이 맹세하시며 약속하신 그 약속 안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둘째 오래참음으로 그 약속이 기업이 된 사람들에겐 맹세하고 약속하신 모든 복에 복을 더할 것이고 번성가운데 다시 번창하는 일들이 자손만대에 계속됩니다. 이제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 주님을 따라 우리들의 믿음도 휘장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성전 뜰에 머무는 나약하고 게으르고 우유부단한 믿음이 아니라 양푼에 가득 희생의 피를 담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믿음을 쟁취합시다. 거기서 주님의 창 자욱 난 허리, 물과 피를 다 쏟아 텅빈 심장과 우리들의 심장이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하나 돼야 합니다.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화목케 하심으로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풍성케 하심으로 축복합니다. 약속 붙잡고 복에 복을 더하신 풍성과 번성에 번성을 더한 나라확장에 기뻐하고 또 기뻐하는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