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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7.05.07. 주일예배설교<눅23:27-30.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by 설렘심목 2017. 5. 7.

2017.05.07. 주일예배설교<23:27-30.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육체는 먹고 눕고 낳고 기르며 즐겁고 영혼은 존재의 근원을 찾아 찬양하고 엎드릴 때 행복하다.]

눈을 들어 주변을 보면 우리 몸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시는 공기에 이르기까지 거저 아닌 게 없습니다. 삶이 고통이라고들 하지만 100% 고통뿐이라면 세상에는 지금 인류 자체가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다 살아 갈만한 가치가 있고 사람마다 다양한 길과 행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이 목적이 됩니다. 108:1절입니다.“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마음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이 시편전체에 흐르는 인생들을 향한 권면이요, 고백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은 세상에 빛으로 오셨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해 환영하지 않고 오히려 돌을 던지고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불신자나 구원받은 성도나 꼭 같이 애착하며 소망하는 게 있는데 그것이 자녀문제입니다.

본문은 가정의 달 우리들에게 주님은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십니다. 우리와 우리자녀에게는 늘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뭘 위해 어떻게 울어야 할까? 자녀들은 개척하지 않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말씀을 살피며 보다나은 미래를 설계합니다. 28절입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 하나님께는 찬양과 감사의 눈물을, 인생을 위해선 통회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골고다 언덕을 향하는 예수님은 피흘려 맞은 채찍과 조롱으로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 십자가조차 지고 가기가 어렵게 됩니다. 쓰러져 못 일어나자 무거운 십자가는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메라고 군병은 명령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간신히 일어나 언덕을 오르는데 많은 여인의 무리가 통곡하며 따라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돌아보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그렇습니다. 주님은 불쌍한 분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평생 자신을 위해 슬퍼하거나 울지 않았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인생과 병들고 죽은 자를 위하여 우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아파하실 일이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울어야 할 일은 없습니다. 주님은 완전하십니다. 골고다는 죄인용서를 위해 가야 할 구원의 길이었고 부활을 향한 사망정복의 첫 열매가 되는 놀라운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눈물은 주님말씀처럼 우리와 우리의 자녀를 위해 흘려야 합니다. 본문 29절에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치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되다고 합니다. 세상의 일반적인 견해와 전혀 거꾸로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생명이 저주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살아있다는 게 저주가 되고 죽는 게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30절에는 산을 향하여 당부하기를 우리위에 무너져 우리를 덮어 죽게 하라고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사람들이 죽기를 간청한다고 예언하셨을까? 24:16-20절까지 찾아 함께 봅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 인생의 환난 날을 눈물의 기도로 대비해야 합니다.

 

8:7절입니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더냐.”우리와 우리자녀, 곧 우리 모두는 험한 세상, 타락한 세상, 지뢰밭을 대책없이 살아가는 불확실성 시대에 불안한 존재들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떠난 뒤 주후 70년에 있을 로마의 침공으로 비참하게 될 타락한 예루살렘을 보셨습니다. 머잖아 지금 울고 있는 여인들과 후손들이 당할 재앙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성도 여러분. 가정의 달에 고전4:15절이 생각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않으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예나 지금이나 서투른 엄마아빠에게 아비는 물론 좋은 스승조차 만나기 힘든 핵가족시대입니다. 늦던 빠르던 아버지 중에 아버지, 스승 중에 스승인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은 최고의 복입니다. 예수님만나 온 가족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거듭나게 된 것, 우리들 생애 최고의 복된 사건인줄 믿습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평소 기도의 잔을 채워서 자신과 후손의 미래를 준비하십시다.

 

1.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이 보배입니다.

 

아시다시피 아이들은 손가락 끝을 보며 크질 않고 부모의 뒤통수를 보면서 자랍니다. 어딜 가는가 뭘 하는가를 보면서 그대로 따라합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미래를 염려하는 부모는 자녀 앞에 자신의 모습을 잘 챙깁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신 주님말씀대로 자녀를 위해 울며 기도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비싼 명품을 사주는 일은 기도만큼 좋은 선물이 아닙니다. 어떤 엄마는 애기가 토할 때까지 먹입니다. 기도를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어지간한 건 돈으로 할 수 있지만 기도만은 돈으로 안 됩니다. 주 앞에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자녀사랑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술에 취해 동네를 휘젓고 다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면치 못하는 어느 권사님의 아들, 어머니의 기도를 새벽녘에 들은 그는 철저히 회개하고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에 출석하여 열심히 듣고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어린이교사가 되고 주일학교에서 봉사하는 자매와 결혼했습니다. 그로부터 11년 후에 그는 훌륭한 목사님이 되어 강대상에 섰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강대상에 서기 두 시간 전에 강대상아래 엎드려 과거에 아들을 위해 하던 기도를 멈추지 않고 합니다. 기도로 살린 아들이고 기도로 주님이 받으신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계획했던 일들을 속히 서둘러 하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잔소리 100 개가 기도하나를 못 당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

1) 자녀의 배필감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잘 키워놔도 엉뚱한 사람만나면 한 평생 심각합니다. 무엇보다 잘 믿는 배필만나기 바랍니다. 그런 배필 만나려면 내 자녀가 먼저 잘 믿어야 합니다. 자녀의 배필기도는 말씀을 들은 오늘부터 새로 시작합니다.

2) 자녀의 관계 속에 악한 영이 틈타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철석같이 믿었던 자녀가 어느 날 한순간에 무너지는 건 관계를 통한 악한 영의 침투 때문입니다. 관계의 복이 최고의 복인 줄 사단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관계가 원만하도록 전인격적으로 교육하면서 기도합시다.

3) 자녀에 관한 한 대부분의 부모가 무능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녀교육전문가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많은 사례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자녀의 문제해결에 전문가조차 자녀에게 맥을 못 추는 건 무슨 이유인가?

인간은 본능 앞에 무력합니다. 부모의 본능은 자녀의 행복입니다. 문제는 그 자녀의 행복을 위해 바른 교훈과 양육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행복을 원하면서 자녀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가로막는 것은 자녀교육에 대하여 그리고 자녀들의 심리와 상태를 모르기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2:12절은 엘리제사장의 자녀교육실패를 지적합니다. 이어 그의 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부도덕한 행위와 그로 인한 일가족의 멸망이 소개됩니다. 책망하는 하나님말씀에서 우린 엘리제사장의 어리석음을 봅니다. 29절입니다.“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찌게 하느냐.” 가장 중요한 말씀은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기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가 이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범죄자란 사실을 인정하시면 아멘입니다. 엘리 앞에서 배운 사무엘도 자녀교육은 실패했습니다. 삼상8:4절에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다른 이웃민족들처럼 왕을 요구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를 밝힙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성군 다윗은 또 어땠습니까? 다윗은 성군입니다. 지장이요, 덕장이요, 문무를 겸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자녀교육에 실패했습니다. 왕상1:6절에는 솔로몬을 배신하여 요압과 함께 반란을 도모했다가 용서받고 다시 수넴여인 아비삭을 달라했다가 브니야의 칼날에 죽은 아도니야를 이렇게 소개합니다.“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아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얼마나 영리하고 잘 생겼는지 아버지 다윗은 그를 한번도 야단치지 않고 키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제아무리 똑똑해도 간혹은 책망받을 짓을 합니다.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녀가 실수한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부모가 책망치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녀교육에 관하여 매우 단호합니다. 13:24=매를 때리지 않는 것은 자녀를 미워하는 것이다. 내가 안때리면 세상이 때리기 때문입니다. 23:13=채찍으로 때려도 죽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 잘 키운 자녀는 어른들의 면류관이라고 같은 잠17:6절에서 말씀하고 또 시127:3절에서는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노래합니다.

 

3. 기도한 것들은 기도한 부모가 먼저 몸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지만 기도한 내용을 부모가 먼저 본을 보이는 것은 칭찬받을 만합니다. 자녀의 좋은 배필감을 두고 기도했다면 먼저 내 자녀가 누군가의 좋은 배필감이 되도록 성경대로 잘 가르쳐서 훌륭히 키워야 합니다. 벌을 아끼지 않게 되기 바랍니다. 제아무리 똑똑한 자녀도 아이는 아이일 뿐입니다. 꾀가 멀쩡해도 자신을 통제 못해 실수하고 그것이 반복되면 죄와 결례에 익숙하게 됩니다. 가차없이 내리치는 부모의 나무람이 탁월한 인격을 만들어 갑니다. 자신을 통제 못하는 자는 아무도 섬기거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자녀 중 TVPC에 매달려 공부를 멀리하는 아이가 있습니까? 자녀가 TV에 빠지지 않고 숙제부터 하는 책임감있는 아이로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면 먼저 부모가 TV곁에 자주 가지 않아야 합니다. 쇼파에 앉기가 무섭게 TV리모콘을 집어드는 습관성 TV중독증부모라면 일단 자신부터 고쳐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TV를 끄고 책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본을 보이려 해도 이미 자신 안에 굳어진 흉한 생활습관으로 인해 항상 자녀들에게 부끄러운 부모들의 모습니다. 대안은 뭐라고 했습니까?

 

4. 무엇보다 정직해야 합니다.

 

누구나 해도 잘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대면 보기 흉합니다. 훌륭하신 어른도, 선생님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시인해야 합니다. 잘 안되고 실패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진정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실패한 현장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듯 진정 부끄러운 것은 그것을 숨기려는 것입니다. “얘야, 그건 말야. 아빠도 여전히 실패했던 부분이거든, 너에겐 더욱 힘들겠지만 한번 힘을 다해 해보렴. 너라면 잘 할 수 있을 거야.”어느 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를 하는 아빠가 어느 날 담배를 피우다 걸린 자신의 아들에게 한 말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아버지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부모의 정직은 아이들에게 신뢰감을 주어 그 인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님의 정직을 생활 속에서 늘 느끼면서 자란 아이들은 그들도 정직하고 자라갑니다. 주변에 감동을 줍니다. 그건 그대로 인격자산이 되어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구원한 당신의 자녀들에게 부모를 통해 많은 것을 주시기 원하는 것을 믿으면 아멘입니다.

성도 여러분. 축복의 통로로 주신 자녀들을 행여 우리들의 영적무지와 게으름으로 인해 그 풍성하고 귀한 복들을 가로막지 않게 되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자녀교육의 능력과 지혜역시 주님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신 미래, 우리들의 자녀와 우리들의 장래가 오늘 말씀으로 더욱 복되고 알차게 채워지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기서 잠시 오래 전 기억을 상기합니다. 자녀를 속히 망치는 방법.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준다. 용돈을 요구하는 대로 준다. 불편해하거나 고통스럽지 않도록 해주어 늘 아쉬움이 없는 아이로 키운다. 어떤 경우에도 기죽이지 않기 위해 책망대신 위로한다. 오로지 칭찬하고 스트레스를 일체 받지 않도록 양질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부모가 굶는 한이 있어도 아이를 풍족하게 먹인다. 그리고 우리 집은 부자라고 항상 용기를 북돋아 없는 티를 내지 않는다. 내 아이를 야단치거나 괴롭히면 평생 원수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