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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6.12.11. 주일설교<마6:31-34. 행복의 시작, “너희는 먼저”>

by 설렘심목 2016. 12. 11.

2016.12.11. 주일설교<6:31-34. 행복의 시작, “너희는 먼저”>

(1980년 봄, 광나루 장신대에 나타난 27세의 기독교교육과 입학지원생, 얼마간 다니다가 신대원생들의 안티와 저항에 도중하차했는데 졸지에 부모를 잃은 어린 마음의 고통을 최태민이란 흉악한 마귀앞잡이가 나타나 부모처럼 다정히 어루만졌다. 독재자의 딸이라고 수군대던 자들이 지금은 회개했겠으나 이게 현 대한민국 비극이 원인이 됐다. 시대를 바로 보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잡지 미래한국. 바른 역사관. 바른 분별력. 불행스런 일과 좋은 일의 원인을 찾는 일로 귀천이 갈림)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금식한 후 하나님께 십계명을 두 개의 돌판에 받았습니다. 자신과 백성의 생명을 걸고 택함받은 성민의 삶에 필요한 계명을 10개로 축약해 주신 겁니다. 십계명은 백성들에게 희생제물과 제사가 왜 필요한가를 알게 합니다. 인간은 끝내 죄인이라 하나님의 의와 법을 따를 수가 없기에 하나님과의 교제는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제사가 필요했고 제사에는 제사자들의 죄를 씻는 속죄의 희생제물과 그 피가 요구됩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서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9:22에서 증거합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얻는 중요한 구원의 원리는 율법으로서는 의로워질 인생이 한 사람도 없다는 절망입니다. 즉 구약시대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구원이 아직 이르질 않아 의로움으로 받아야 하는 구원인데 율법아래 의롭다 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의도 결국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에 의로웠던 것이며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한 칭의였지 스스로는 의롭지 못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동행으로 말미암아 의로웠던 것입니다. 율법아래에 어느 누구도 스스로 의롭지 못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이렇게 인생이 결코 스스로 의로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러므로 인간에겐 누군가 대신 죄를 갚아줘야 할 존재, 즉 대속제물이 될 희생자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신약으로 넘어와 은혜의 시대는 거저주시는 선물로 죄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그 대속제물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해서 죽고 다시 사신 어린양, 예수그리스도 아닙니까? 오늘 본문은 유명한 산상수훈 중 매우 중요한 교훈으로 성도가 실질적으로 복을 받는 최고의 첩경, 황금률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축복의 황금률, 복된 삶의 지름길을 열어주는 가장 확실한 주님의 말씀, “너희는 먼저라는 말에 집중하여 우리들의 가슴과 삶이 새롭게 열리기 바랍니다. 본문 31절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1. 염려대신 기도하고 믿음가운데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사람들은 종종 오해합니다. 먹고 마실 것과 입을 것, 즉 기초적인 삶의 필요에 대하여 속수무책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성도는 자기가 택하는 자신의 선택적 삶에 전적으로 책임지는 사람들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들은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먹고 입을 것, 즉 의식주에 관한 모든 필요를 규모있게 살피고 꾸려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한 주님의 말씀은 항상 뒤에 이르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선제될 경우에 능력이 되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우리가 의식주에 염려하지 않으려면 염려에 앞서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염려대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1) 삶의 최우선순위를 말합니다.

서두에 먼저 그 나라와 의라는 말씀에 우리의 모든 중심을 집중시켜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급한 것이 꼭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듯이 중요한 것이 모두 급한 것은 아닙니다. 만일 생명이 초를 다툰다면 그것은 중요하면서도 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제하던 젊은 남녀가 결혼을 논한다면 그것은 중요하지만 급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합니다. 모든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나라의 3대요건은 국민, 영토, 주권입니다. 본문말씀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영토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나라는 특별히 통치에 관한 것이며 그 다스림의 권세가 터전을 확장해가는 일에 귀히 쓰임받는 백성들까지 연계하여 적용하게 됩니다.

당장 먹을 게 없는데 하나님의 법과 뜻과 약속이 무슨 소용이 있나? 우리는 아무리 존귀한 인격체라도 먹어야만 살 수 있고 눕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한없이 연약한 육신입니다.

배고팠던 6.25전쟁 후 폐허더미 위에서 또 몇 숫갈 우겨넣어야 버티지찬법덩이로 한끼니 때우던 웃음잃은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죽지 못해 먹는 한그릇 밥에 생명을 부지했던 시절, 그래도 줄줄이 태어나는 아이들, 사람이 먹고 눕는 일에 누가 자유로운가? 그러나 그 시절에도 대한민국 신앙부흥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멍석깔고 큰 북을 치면서 박수치고 찬송불렀습니다. 그 가난한 가운데 오히려 부흥회는 간절했습니다. 그 때 들은 말씀은 지극히 단순했습니다. “예수믿어야 천당가고 예수믿어야 부자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생각하니 본문의 말씀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판에 믿음의 선조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도록 강렬하게 선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란 세상에 살면서 동시에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두 개의 중요한 자격요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삶에 충실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른 예배자로서 하나님 마음을 유쾌히 해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너희는 먼저라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있어서 최우선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어떤 삶의 부분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작고 크던 무슨 일에나 생각에나 항상 잊지 않고 하나님을 앞에 세우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알고 보면 지극히 단순한 마음의 자세입니다. 이 한 가지가 안돼 우리의 삶은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 일과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훈련이 필요한 때입니다. 비록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생각보다 많은 권한을 주셔서 우리의 선택을 존중하고 도와주십니다. 실수는 실수대로 바른 선택은 바른대로 지켜보시고 도우시는 줄 믿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주님을 먼저 그 마음에 모셨냐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연 간절했고 진실했냐는 겁니다. 그게 정직했고 간절했다면 하나님은 즉시 당신의 권세와 능력과 한없는 사랑과 불쌍히 여기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통치할 것입니다. 믿기를 바랍니다.

 

2) 드러난 현실위에 하나님의 통치를 세워가는 일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진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난 현실이 만족하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 부조리해 보이는 상황위에 하나님을 모시고 이때야말로 하나님이 친히 다스려주실 때임을 알고 선포하고 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증거를 보기 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맡겨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그 일을 붙잡고 밤잠을 못 이루며 고민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을 보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닥쳐온 현실 앞에 당황합니다. 하나님은 안 뵈고 캄캄한 터널 한가운데서 한숨만 쉬게 됩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실존과 그분의 말씀을 붙잡고 얍복강의 씨름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바뀔 줄 믿습니다. 상황이 극도로 곤란해지면 기도도 막힙니다. 그러나 신음도 듣고 계신 주님이 모든 것 기도로 받으십니다. 중요한 건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곁에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고 하십니다. 드러난 일 위에 하나님의 통치를 세워가는 일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낮고 천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추측하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가 다시 왔는가? 주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베드로의 그 고백위에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주님의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신앙고백위에 세워집니다. 이렇게 성도의 믿음위에 세운 주님의 몸된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절대주권을 세상향하여 선포하게 됩니다. 즉 교회는 믿음의 고백위에 세워져서 주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영적기관이고 세상의 모든 복의 근원이신 주님이 주인 된 곳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모든 안팎의 충족이 말씀처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으로 출발하려면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드러난 현실위에 하나님의 통치를 세워간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나타난 모든 현실 앞에 사실상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변함없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며 이 다스림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초적인 활동으로 시작이 됩니다.

 

성도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 원합니다. 그러나 원하는 행복은 자꾸 멀리 갑니다. 이유는 하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11:3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고 증거합니다. 즉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지어졌고 지금도 운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지어졌고 말씀으로 주장되는 보이는 세상만유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하고 따를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나를 주장하도록 할 때 내 소원보다 더 앞선 하나님의 소원이 나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믿고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33절을 다시 읽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2.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모든 것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 우선순위와 통치를 주님 손에 드린다면 풍성하게 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와 교회는 경건할 수만 있다면 풍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풍요가 거룩을 방해한다면 차라리 가난함으로 주님을 간절히 바라는 믿음보다 못합니다. 다시말해 왜 잘살아야 하는가를 모르면 그 풍성은 천박한 재물입니다. 아류부자는 자신의 소유를 종종 부끄럽게 사용합니다. 우리는 왜 잘살아야 하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왜 열심히 공부해서 성실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왜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가를 압니다. 그 목적은 우리내면과 이 땅에서 이루는 예수그리스도의 완성입니다. 그는 우리들의 노래이시며 그는 우리의 기쁨이십니다. 우리의 영생이십니다. 그리고 그것들의 완성이십니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은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방법이 성경이 말한 구원의 실현이고 증거여야 합니다. 모든 면에 성실하게 살면서 그 목적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삶의 최우선순위와 통치를 예수그리스도께 온전히 내어드렸을 때 우리가 원하는 삶의 필요는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양질의 것으로 풍성하게 하실 주님을 함께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개척동지여러분. 우린 자손들과 함께 행복을 원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정은 행복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선포하십시오. 자녀가 공부 잘해서 좋은 직장과 좋은 사람을 만나기 원합니까? 예수의 이름과 하나님의 명예와 교회의 덕을 선전하기 위해서 꼭 그렇게 되길 원한다고 굳게 믿고 또 집념, 노력해야 합니다.

그 밖에 우린 간절히 소원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병든 몸이 속히 나아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와 쓴 뿌리가 삭고 치유돼야 합니다. 평화를 구해야 합니다. 직장도 구하고 좋은 사람만나 복된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그 일을 위해서 육신의 삶이 앞을 바라보고 알곡같이 영글어가도록 주도면밀한 계획과 결단력있는 실천을 하며 늘 고뇌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어떠한 난관이 닥쳐와도 목표를 잃는 어리석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3:13-14절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에게 존귀한 목표를 주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그 목표로 인해 우리가 행복합니다. 예수님과 그 나라는 우리인생의 최종목표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에 있어서도 최우선순위요, 최고의 통치자시오, 최고의 기쁨이요 행복이 되십니다. 불러야 할 노래가 있고 치켜들어야 할 깃발이 있다는 건 최고의 행복이요, 가치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저와 여러분이 그렇게도 간절하게 구하는 현실적인 모든 문제가 정녕 말씀 안에서 완전한 답을 구하신 줄 믿습니다. 꼭 이뤄야 할 소원이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먼저 구하고 모셔드려서 우릴 다스리게 하시고 우리의 기쁨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으로 풍성하게 하시는 주님을 분명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믿음대로 될 줄 확신하는 자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지어다. 이후로 넉넉하게 채우심을 경험할지어다. 말씀을 들은 자마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