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3. 주일예배<마6:19-21. 하늘에 쌓이는 보화>
prologue <바다는 비에 젖지 않고 바위는 바람을 탓하지 않으며 나무는 어디 있어도 잎을 낸다.>
본문 21절을 먼저 읽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오늘 우리가 듣는 하나님말씀 본문 세 구절은 문자에 나타난 물질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물질에 담긴 중심의 문제입니다. 즉 물질은 드러난 표현일 뿐 우리네 삶과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마음 한 가운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살아있는 영혼의 소유자라면 먼저 위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서 사랑하고 옆으로는 인간을 사랑함으로서 사랑하는 관계가운데 비로소 사람은 살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 뭔가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보이는 것이란 결국 말과 몸짓과 눈빛과 선물 등 행동과 물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엔 최고의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고 좋은 선물에 큰돈을 들여도 결코 아깝지 않고 행복합니다. 투자한 것보다 행복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줘도 전혀 아깝질 않은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상대방에게 아깝다면 그것은 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복과 보이지 않는 복을 어떻게 받는가의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이 있는 동안과 육신을 떠나 저 세상에 갔을 때 받을 복에 대해 본문은 어떻게 명령합니까? 19절 앞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누구를? 너희를 위하여,
1.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합니다.
본문에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않아야 할 이유가 거기는 좀과 동록과 도적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이유 즉,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않아야 할 이유가,
1)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는 잠시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증거를 드러내고 하나님을 전하며 살게 됩니다. 그 과정 중에 우릴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평화롭고 풍족한 삶을 통해 증거되길 원합니다. 애3:33절입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인생들을 끝없이 사랑하고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인생들마다 당신을 의뢰하고 예배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인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 곧 인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 것은 애3:33절 말씀처럼 인생들의 행복이 하나님 원하시는 본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진정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보화를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자칫 오해하면 마치 신앙인들은 저축도 하지 말고 돈도 열심히 벌지 말라는 것으로 들립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계속해 부지런하라고 충고합니다. 땅에 쌓지 말라는 것은 하늘에 쌓으라는 것입니다. 즉 그 재물의 목적이 땅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된 것들이길 권면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육체에 목적이 있는 인생은 다분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한다.”고 지적합니다.
2) 이 땅에서는 재물이 나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재물은 우리들의 육신이 있는 동안에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소유로부터 오질 않습니다. 소유는 다소 편리를 보장하지만 결코 영원한 행복과 무관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소득에 우리의 모든 것을 걸어선 안 됩니다. 우리들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목표는 예수그리스도십니다.
눅16:9절에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불의한 재물은 불의한 세상에서 취한 소득을 말하고 그 소득으로 사귀어야 할 친구는 우리를 위해 죽어주기까지 하신 주님을 말합니다. 진정 환난 때 피난처가 되시고 심판 때에 천국의 열쇠를 쥐고 계신 주님을 친구로 사귀어야 합니다. 지갑 여는 걸 보면 인격과 삶이 보인다고 합니다. 책방에서 지갑을 잘 열면 그는 지식과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먹는데서 지갑을 많이 열면 먹보입니다. 어떤 이는 음향기기를 사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디오 광입니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면 전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포기 못합니다. 그는 옳던 그르던 정치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머지않은 시간 안에 우리의 몸과 함께 다 사라질 것들입니다. 20절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렇게 사라질 것에 투자하기보다 영원한 것에 보화를 투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좀이나 동록이나 도적이 틈타지 못하는 거기, 영원한 나라에 보화를 쌓으라고 합니다. 더 확실하고 더 나은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우리가 다시 상기할 것은 재물은 중심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즉 잠시 후면 사라질 땅에 중심을 빼앗기지 말고 하늘의 영원한 소망에 모든 마음과 정성을 드리라는 겁니다. 세상 살면서 필요한 물질들은 수고한 만큼 우리 손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세금 떼고 공과금에 이것저것 제하고 이리저리 부서지면 손에 들어오는 알곡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본문은 그런 것 외에도 사람의 능력으로 보존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상황과 억울하게 나가는 지출까지를 말하며 남아있는 그것들도 결코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진정 안전하고 영원한 창고는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 본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모두인 양 욕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흙으로 빚어진 육신 때문이기도 합니다. 흙은 땅을 이루고 있고 흙으로 지어진 육체라는 우리들의 장막은 모든 보물을 거기 흙의 본향 땅에 쌓아두고 싶어 합니다. 땅에 속한 자는 하늘의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과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다르다고 고전15장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21절을 함께 읽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이번엔 20절 앞을 읽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이젠 21절과 20절 말씀을 연결해 전하겠습니다. “네 마음이 가득 담긴 네 보물을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 저축하라.”아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것은 다른 말로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왜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합니까? “오직 너희를 위하여.”할렐루야
잠3:9-10절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재물과 소산물 중에 처음 익은 열매라 함은 가장 소중하고 가장 순결한 것이어서 자신의 마음이 많이 담겨 있는 소득입니다. 하나님은 그 첫 소득을 당신에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합니까? 예, “오직 너희를 위하여.”여기서 오직이란 말은 다만, 오로지라는 의미로서 다른 어떤 것도 없고 단 한 가지 그 이유만으로란 뜻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너희자신을 위해서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합니다. 눅12:33절에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즉 눈에 보이는 소유로 하늘에 상급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성실히 일하고 알뜰하게 모아놓은 소중한 재물이 육신을 위해서만 사용된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진정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이라면 육신을 보존하기 위한 것들의 마지막 목적은 하늘에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육신을 왜 잘 보존합니까? 왜 열심히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수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한 영적 왕성한 활동이 결국 자신을 위해서임을 본문은 “오직 너희를 위하여”라는 말로 정리합니다. 그렇게 재물을 하늘에 관련하여 사용하라는 적극적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일전에도 들은 고후8:1-5절에서는 고린도교인들의 심한 가난이 오히려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는데 그렇게 힘에 겹도록 자원하여 드림으로서 칭찬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3. 현실이 힘들수록 우리는, 하늘에 보화를 쌓아 영원한 씨를 심어야 합니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한없는 자비와 위로의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세속적인 물질관에 잡혀서 생사화복의 완전한 주장자이신 하나님을 등한시하는 어리석음이 우리 모두에게 없는 줄 압니다. 진정한 행복이 물질과 소유에 있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물질에 밀려다니며 땅의 것에 집착하고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외면하고 살았습니까? 고린도교인들은 심한 가난으로 인해 도리어 힘에 벅찬 봉헌과 헌신을 했습니다. 그 심한 가난을 물리치고 풍성한 삶을 산다는 것이 물질의 풍성뿐 아니라 온전한 봉헌으로 주님과의 관계회복을 따라 모든 것이 열린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힘든 상황과 여건 한가운데에서도 넘치는 기쁨이 있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고후8:2절입니다.“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저들은 하늘의 영광과 기쁨을 아는 귀한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하늘의 보화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그 기쁨을 어떤 말로 전하겠습니까?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주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지키는 자들은 고린도교인들처럼 극한 가난이 오히려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합니다. 풍성한 연보뿐 아니라 하늘에 쌓아두는 보물로 늘 기쁜 믿음생활가운데 주님과 교통하면서 형통한 길을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본문 말씀처럼 하늘에 쌓는 보물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1) 땅에서 행하되 영원한 유효성과 가치를 지닌 것들입니다. 즉 주님이 명하신 선과 의를 몸으로 행하는 것과 자신을 절제하여 이웃에게 평강을 주는 일 또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 고난받는 일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앙갚음하지 않고 그를 위해 엎드려 기도하는 일 그 외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혈기 넘치고 조급한 사람이 진땀내며 잘 참아 점점 친절하고 온유하고 인자한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 자기 소유를 의로운 곳에 사용하고자 자신은 근검절약하는 것 등 귀한 하늘의 보화가 너무 많습니다.
2)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 돼 봉헌하는 일입니다. 개인이 잘 참아 승리하는 일 외에도 교회를 통하여, 교회를 위하여, 교회와 함께 봉헌의 삶을 살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일입니다. 교회중심적인 봉헌의 삶은 이미 들으신 바와 같이 시간과 중심과 물질이 다 주님의 소유인 것을 고백하고 또 고백처럼 온전히 드리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고후9:6절은 또 봉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3) 봉헌은 하나님 앞에서 보화의 씨를 심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보화는 눈에 안 보이는 중요한 것들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습니다. 먼저 기도의 단을 쌓아야 합니다. 기도의 씨를 하늘에 심는 사람은 정작 기도가 필요한 급한 일에서 의연합니다. 다음, 꾸준하게 깊은 묵상을 즐겨 해야 합니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생활 가운데 주님을 가슴에 모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건강한 믿음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평상시에 생활화된 믿음, 습관이 된 믿음이 가장 바람직하고 든든한 믿음입니다. 기도할 땐 하늘을 끌어다가 땅에 패대기라도 칠 것 같은데 교회 문을 나서면 즉시 까맣게 잊는 얇은 냄비믿음이 아니라 두툼한 뚝배기 믿음이 우리가운데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예배의 씨, 구제의 씨, 희생의 씨, 기도와 묵상의 씨를 꾸준히 주 앞에 드려 하늘에 쌓을 때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다 사랑의 씨를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아끼지 않게 되기 바랍니다. 사랑은 뭔가 자꾸 주고 싶은 것입니다. 주님 앞에 교회 앞에 뭔가 더 드리지 못해 안타까운 사랑의 씨를 풍성히 심기를 바랍니다. 씨를 심으면 머지않은 세월 안에 그것이 오늘 본문처럼 “너희를 위하여 심은 하늘의 보화”가 돼 우리와 우리 후손들 앞에 놀라운 것들로 드러날 줄 믿습니다. 기도합니다.
흐르는 물에 씨를 던지라고 하신 주님, 오늘 말씀으로 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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