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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6.11.06. 주일낮예배<창32:27-29. 주 앞에 나는 누구인가?>

by 설렘심목 2016. 11. 6.

2016.11.06. 주일낮예배<32:27-29. 주 앞에 나는 누구인가?>

 

<우리교회는 무갑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모두가 을이 돼 돌을 든 백성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엎드린 모세는 철저하게 을이 돼 갑질하는 철부지 백성을 끝내 버리지 않고 주 앞에 저들을 버리려면 나부터 먼저 버리시라고 항변했습니다. 이런 모세를 하나님이 어찌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갑이 없는 교회, 무갑교회를 이루어 모두 천국에서 갑이 되는 큰 상급을 확신하고 기뻐하는 남은 생애가 되기 바랍니다.>

 

모든 존재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식별하여 찾고 부를 수 있는 간판처럼 그 존재의 표지가 됩니다. 만일 우리들에게 이름이 없다면 매우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장모집사님 알지요.” 그런데 이름이 없으면 복잡하게 질 것입니다. “왜 있쟎아. 얼마 전 부산에서 온 분, 웃으면 우는 것 같은 노총각집사님 아시겠죠.” 이름은 어떤 존재를 표현해서 부르고 지칭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입니다. 사람의 이름에는 보통 축복의 의미나 출생의 배경이 담겨있습니다. 시원하게 낳아서 쾌출이, 딸부자집에 아들하나 바랬는데 또 딸이라 이젠 꼭 아들 낳으라고 이름이 후남이, 본문은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오늘 본 설교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의 이름도 새롭게 하시기 기대합니다. 먼저 질문과 답변으로 된 27절 앞의 질문을 읽습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1. 주 앞에 나는 누구인가?

 

네 이름이 뭐냐고 물은 것은 이름이 갖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질문자는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넌 누구냐고 야곱에게 묻는 것입니다.

이 물음은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넌 내 앞에 누구인가?”

세상에 자신을 정확하게 보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다 알고 있는 것 같아도 그렇지 못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은 모든 전쟁에서 적과 자신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합니다. 자신이 주 앞에서 누구인가를 알려면 자존의 뿌리를 오직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근본 출발을 어디에서 시작합니까? 11:36절에서는 만물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는데 창1:27절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분명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요, 관리자로 세우셔서 28절에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 중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기 원하는그것이 우리의 중요한 소원 중 하나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너나없이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정체성이 자기이름에 대한 올바른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이 최초로 창1:26절에 사람이란 단어로 나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사람을 원어로는 아담이고 아담은 흙이라는 히브리어 아다마에서 유래합니다. 다시 창2: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하심으로 사람창조의 구체적인 과정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던지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우리들의 대답은 지금 받은 말씀에서 간추려 나와야 할 것입니다. 첫째 주제, 하나님 앞에서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주님 앞에 누구인가? 질문 중에 최고의 질문입니다.

 

1) 우린 하나님이 특별한 계획과 목적으로 만드셔서 이 땅에 보내신 존귀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제거하는 순간 우리는 한낱 흙이지만 하나님 동행하시면 모두 놀랍고 귀한 사명자입니다.

2) 이 땅의 생명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사랑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높이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거룩한 형상을 세상에 드러내 증거하지 못하면서 어떤 때는 죽음을 동경하며 마지못해 살아갑니다. 본래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이 죄로 인해 가려지고 무색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주 앞에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바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특별하게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 앞에 난 누구란 말인가?

벧전2: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아 이 땅에 파송받은 귀한 자들입니다. 제사장은 제사, 곧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배를 총체적으로 주장하고 책임지는 거룩한 직분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제사장의 동일한 임무로 지금 예배가운데 설교듣는 줄 믿기 바랍니다. 야곱이 받은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오늘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주께서 귀히 여기시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거룩한 나라입니다. 주님 소유의 백성입니다.”자신의 실존을 바로 고백, 선포하고 그 선포대로 살아간다면 그는 아마도 이 지구상에 최고의 인격체일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우린 오히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등진 죄인입니다. 아무 능력도 선도 의도 없으면서 내 중심으로 살며 감사함 없이 원망만 하며 살아온 천한 죄인일 뿐입니다.” 본문 창32:28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 하나님이 믿음의 승리자로 불러주셨습니다.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 되었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의 속어로서 발 뒷굼치를 잡은 자 또는 딴지를 거는 자 등의 비겁한 의미가 있는 이름입니다. 승리자로 부르시기 전 먼저 하나님은 야곱을 홀로 두셨습니다. 예물을 앞서 보내고 어어 아내들과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보내고 24절에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복과 씨름하다가철저하게 외롭게 놔두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기 위한 첫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가 의지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신 후 결코 명예스럽지 못한 이름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환도뼈는 몸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골격입니다. 속이고 속던 야곱, 결국 남의 뒷덜미를 붙잡고 약삭빠르게 살아온 그가 라반에게 붙잡히는 모진 세월을 거쳐서 이제 하나님께 붙잡히는 사람이 되어 얍복강 나루터에서 드디어 하나님과 겨루어 응답받은 의인이 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된 것, 여러분이 여러분 된 것,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인도하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야곱과 이스라엘 사이에 아직도 훈련 중인 저와 여러분, 야곱이 이스라엘 되는 방법은 언제나 두 가지입니다. 말씀에 의한 과 경험의 의한 방법입니다. 저와 여러분 말씀 듣고 생명을 거는 결단, 얍복강의 씨름이 있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야곱이 대답합니다.“야곱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속이며 살았습니다. 머리쓰며 꾀를 의지해 여기까지 왔습니다.(이기심과 혈기뿐인 인생, 그 혈기로 많은 영혼 아프게 했습니다. 제가 가시나무새였습니다.”

이제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말라. 이제 다시는 속이거나 속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밤새워 날 향해 몸부림쳤으니 더 이상 속고 속는 일은 없으리라. 이제 너를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라. 이제는 네가 일마다 때마다 내게 부르짖어 기도로 날마다 순간마다 나와 교회와 세상 앞에 승리하리라.”

우리는 죄인임을 고백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믿음의 승리를 이룬 의인으로 불러주신다는 본문의 증거가 우리 모두에게 새 힘과 소망이 되길 바랍니다. 본문 28절의 끝부분을 함께 읽습니다.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3. 기도로 승리한 야곱입니다.

 

야곱은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얍복강의 기도를 밤새워했고 환도뼈를 다쳐 다리를 절면서 아침 해를 맞게 됩니다. 31절을 봅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다른 말로 해봅니다. “험한 세월, 속이고 속던 자가 하나님을 만나 생명을 건 기도로 그 영혼과 인생에 해가 돋아 그 동안 의지하던 모든 것이 무너지매 절름대며 걷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로 응답받고 승리하여 기뻐도 표면상으로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서 절망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야곱처럼 밤새운 기도의 씨름으로 허리가 망가져서 절룩대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의 환도뼈는 직립하는 인간이 허리 위를 버티는 가장 요긴한 대퇴부 뼈이며 생식기관을 주장하는 아래 쪽 엉치뼈를 말합니다. 20년간 외삼촌 라반의 머슴으로 일하고 아내들 사이에 절묘한 줄타기를 조절해야 했던 그 근원, 허리가 기도 끝에 주저앉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전으로 의지할 때 하나님은 당신만을 의지하도록 그동안 하나님처럼 믿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하나님 손에 그보다 뛰어난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안 놓으려 해도 더 나은 미래를 주시기 위해 주님은 어리석은 우리들 손에서 애착하던 그것들을 매몰차게 낚아채 가십니다. 야곱의 허리는 그래서 다리를 절며 해돋는 브니엘 땅을 지나게 됩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나를 잃어 망연자실할 그 때 내 안에 주님이 넘치는 줄 알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죄가운데 죽어있던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가운데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야곱같은 자들이었는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주님은 그런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높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다시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라. 이제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이제 우리가 거듭난 후 거듭난 자로서 합당한 모든 자격을 덧입는 것은 오직 믿음하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본문은 거듭 난 자가 한번은 꼭 넘어야 할 얍복강의 씨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환도뼈가 위골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남의 발목을 잡고 속이는 삶에서 라반의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오히려 라반에게 붙잡히고 속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얍복강의 씨름을 한 후 변하여 이스라엘로 살 때에도 하나님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요셉을 잃고 많은 험악한 세월 후 하나님께 붙들린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할 때 손을 바꿔댄 것은 하나님에게 붙잡힌 늙은 야곱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손을 바꿔 올리고 축복할 때 야곱은 진정 새이름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말씀을 통하여 새 이름을 주시는 주님을 오늘 찬송하기 원합니다. 그 새 이름에 합당한 기도의 씨름이 이름보다 앞서서 행해졌다는 사실을 또한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 이름의 목적은 벧전2:9절 말씀처럼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집사는 집사의 이름에, 회장과 팀장은 그 새 이름에 합당한 자신의 가치를 주님 앞에서 최대한 높이기를 주님이 지금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이스라엘로 부르시기 위해 야곱을 얍복강가에 꿇어 앉히셨습니다. 얍복강나루터는 야곱에게 주님이 청구한 마지막 변화의 씨름터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홀로 남아 생사를 결정하는 야곱의 절박한 기도, 그 영적 씨름은 주님이 원하신 것이었습니다. 인격과 믿음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새 생명의 강가였습니다. 생명을 걸고 올려드리는 기도에서, 물러서면 자신과 식솔들의 떼죽음을 당한다는 처절한 영적전투의 마지막 현장이 얍복강나루였습니다.

 

힘든 능선이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사방 둘러봐 의지할 이 아무도 없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고통과 고독의 함정이 아니라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셔서 새 이름을 주시려고 설치하신 얍복강입니다. 거기 밤을 새는 기도의 씨름으로 여러분에게 새 이름을 주시려는 하나님을 향하여 돌진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라는 샅바를 허리에 동이고 돌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네 이름을 수치라고 부르지 말라. 외로움이라고 부르지 말라. 풍성과 영광이라고 부를지어다. 영광된 하나님의 왕같은 제사장의 기쁨이 넘칠지어다. 이길지어다. 하나님과 사귀어 이길지어다. 기도합니다. 끝내 우릴 사랑하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여호와시여. 우리를 믿음의 귀한 승리자로 불러주신 주님 앞에 이제 새 이름에 합당한 새하늘과 새땅을 열어주시려고 먼저 얍복강 앞에 무릎 꿇게 하시는 좋으신 주님을 찬송하나이다. 밤새워 주앞에 생명을 건 싸움을 이기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시려고 하신 새 이름 앞에 능력으로 결단으로 주의 거룩하시고 주도면밀한 계획을 이뤄질 줄 믿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