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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6.10.16. 주일낮예배<시136:25. 추수감사절의 전모>

by 설렘심목 2016. 10. 16.

2016.10.16. 주일낮예배<136:25. 추수감사절의 전모>

 

모든 육체에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은 1년간의 수확과 삶을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청교도로부터 시작합니다. 미국은 청교도의 신앙을 바탕으로 시작된 나라입니다. 한 때 영적으로 타락의 기미를 보이던 미국이 그 결과 정치경제에 있어서도 불안한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요즘 영적인 회복세가 보이자 모든 분야에서도 좋아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계 모든 교회들은 한해의 삶과 그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기쁨으로 결산하는 감사와 추수감사예배로 드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주제는 감사가 됩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由來)와 그 의미를 살피는 가운데 주의 은혜가 넘치기 바랍니다.

 

1. 추수감사절의 유래

1600년대 초 영국에선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올곧은 청교도들이 이미 형식만 경건한 채 타락한 영국교회들과 갈등을 빚어 새로운 곳을 향하여 떠난 곳이 네덜란드였습니다. 그러나 그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열심히 11년간 벌어 180, 27m짜리 작은 배를 마련해 1620년 찾아간 곳이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딴)아메리카대륙이었습니다. 65일간의 어려운 항해 끝에 초겨울 미 대륙에 도착한 그들은 심한 굶주림과 질병으로 102명 가운데 1년 사이 절반 가까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들 중에 여자가 24명이었는데 이듬해 추수감사절에 음식을 준비하려고 해도 남은 여자가 부인 4명 십대 딸 두 명, 모두 여섯 명뿐이어서 남자들과 인디언 원주민들이 와서 도와야 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맨 먼저 한 일은 예배를 드린 뒤 나무를 베어 예배당을 짓고 학교건물을 세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지은 학교건물 강당에서 합숙을 하며 힘을 모아 개인 주택을 한 채 한 채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영혼의 안식처부터 세웠다는 겁니다. 혹독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들이 정든 고향을 떠난 것은 단지 신앙의 자유 외에 어떠한 이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하는 것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이 환경에 먼저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인 줄 압니다.

 

다행히 원주민 인디언들이 친절하게 농사를 도와주고 씨앗을 주어서 이듬해인 1621년엔 풍성한 수확을 했습니다. 청교도들은 씨를 빌려주고 농사법을 알려준 고마운 이웃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거둔 곡식과 칠면조고기 등을 준비하여 첫 추수감사예배와 잔치를 벌였던 것이 그 유래가 됩니다. 그 후 1623년 당시 행정관인 윌리엄브포드가 감사절을 지킬 것을 선언, 1789년에 조지 워싱턴이 정식으로 1126일을 감사절로 정해 지켜오다 1864년부터 아브람 링컨 대통령에 의하여 매년 11월 제4주 목요일을 추수 감사절로 지킬 것을 선포하여 그 후 오늘까지 전 미국의 경축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미국의 국경을 넘어 성탄절과 함께 전 인류의 즐거운 감사의 축제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추수 감사절이 오면 미국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그 용감하고 경건했던 순례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예배를 드리며, 또 칠면조를 잡고 감자와 옥수수를 삶고 빵을 구워 추수잔치를 베풀고 인근의 불쌍한 사람이나 외로운 나그네들을 청하여 자기 민족의 전통적인 자랑을 나누고 조국의 장래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실로 아름다운 청교도들의 전통이요, 유산이며, 오늘 미국의 자랑일 뿐 아니라, 아브라함 자손의 복스러운 전통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추석명절, 중추절이 추수감사절로 바뀔 날을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정녕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리라고 확신합니다.

 

2. 추수감사절의 의미

 

1) 만물을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의 잔치입니다.

정든 땅을 뒤로 하고 신대륙을 향한 청교도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올곧게 믿되 자유롭게 믿고 만인에게 본이 되는 정결한 삶을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신앙과 예배의 자유와 안락한 삶을 맞바꾼 그들은 진실로 하나님께 바로 헌신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달이 넘는 험한 항해와 황무지의 겨울, 낯선 땅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들은 오직 마음놓고 예배를, 그것도 영국국교처럼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성령충만과 오직 진리로 드릴 수 있는 예배로 인해 모든 괴롬과 눈물을 보상받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해가 지나 추수를 하고 그 열매와 곡식 단을 제단 앞에 쌓았을 때 저들의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시136편은 여호와께(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노래끝말이 26개절에 26회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이유에는 모든 자연 피조계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역사의 현장들을 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실로 시편이 아니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신앙의 기본적인 양심은 자연의 흐름과 현상들을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현상은 죄에 빠진 인간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아름답습니다. 아늑한 호수, 무진장한 바다의 신비, 아름다운 언약의 무지개, 빛나는 별들, 철따라 피고지는 꽃, 지저귀는 새, 부는 바람, 흐르는 물결, 모양과 맛이 다 다른 열매와 과실들은 얼마나 정직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까? 저마다 다투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능력과 존귀와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꾀가 날로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 가지만 그러한 인간기계산업과 과학문명이 자연을 꾸준히 파괴하고 훼손하여 갑니다. 인간의 탐욕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가는 것입니다.

이젠 한발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고유권한에 속한 생명을 조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유전자공학과 생명공학은 인간의 질 높은 삶이라는 이유로 위장된 미래의 무서운 핵폭탄이 될 것입니다.

 

2) 이웃과 화목하며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추수감사절이 교회의 감사제전이 된 것은 주신 감사의 제목들을 눈에 뵈는 이웃들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길 때 보이는 교회를 통해 실현합니다. 교회는 이 날 서로 선물을 하며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한 가족된 것을 기뻐하며 결속과 친목을 다지게 됩니다. 우리가 아직 축제문화가 서툴러서 선물주고받기가 자칫 부작용을 우려하여 지금은 보통 절제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고 격려하며 교회 안에서도 수고한 손길과 고통당하는 지체를 살피는 일은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교회의 전통이며 또한 우리들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350여 년 전에 순례의 선조, 원조 청교도 pilgrim farther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생명을 걸고 뱃길에 오른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대형기독교국가인 미국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작정과 실현이었습니다. 이때 부패한 영국국교에 반기를 들고 투쟁하던 정직하고 구별된 청교도들을 들어서 사용하신 겁니다. 그리고 과연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훗날 많은 민족에게 복음의 씨를 퍼뜨려 나갔습니다. 그중 선교사의 피로 세워진 한국교회를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하고 확장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 한 가지 선한 부담에 부딪치게 됩니다. 우릴 위해 값없이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청교도들은 여지없이 뒤따랐습니다. 우리는 미국선교사들을 비롯한 몇몇 유럽선교사들이 흘린 순교의 피에 빚을 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사랑의 빚을 갚으러 일어섰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문화수준과 영적수준은 상당한 데에 이르러 주님보시기에 다 큰 자녀입니다. 장성했으면 자녀를 생산해야 합니다. 우리도 영적자녀를 낳아서 양육하고 여기저기 파송하여 200년 전 우리와 같은 어둠의 영혼들을 구해야 합니다. 추수와 결실과 소득을 감사하는 일은 이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선한 병기로 드림으로 고백돼야 하고 만방에 드러나야 합니다. 이는 꽃이 때가 되면 꽃잎을 접고 열매를 맺어 씨를 거두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고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한낱 미물만도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을 정리합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에는 순례자의 선조, 청교도 조상pilgrim farther들이 있었고 그들은 모진 고난 속에서도 오직 신앙과 예배의 자유를 위해 생명을 건 항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맨 먼저 한 일을 교회건물을 세우고 거기서 예배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사정은 달라도 나름대로 가문의 pilgrim farther로 부름받은 사실에 아멘입니다. 우리도 나름 험한 고통의 시절을 건너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보내셨습니다. 우리도 교회를 세워 거기 예배로 하나되고 이웃을 살핌으로 서로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 교회에서 우리들의 자손들이 복된 예배를 드리며 우리들이 올리던 감사예배를 대이어 자자손손 올릴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다만 주님향한 간절한 심령하나 들고 진실한 눈물을 올릴 뿐입니다. 눈물단이 곡식단을 대신해서 몽돌비전의 필그림화더(pilgrim farther)들이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값진 예물이 될 줄 믿습니다. 청교도선조들의 희생이 오늘의 pax americana를 이뤘듯 여러분은 몽돌비전의 pilgrim farther들이 되어 장래 우리 후손들의 pax koreana를 이룰 것입니다. 할렐루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