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02. 주일설교.히12:1-3.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이름이 붙었던 영국의 전성시대는 19세기중반 이후 빅토리아여왕이 재임하던 이른 바, 빅토리아시대입니다. 이땐 영국 모든 국민이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두 복음을 증거하는데 그 삶의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왕성할 때 영국은 가장 부강하고 번성했으며 평온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훗날에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로 찬란했던 시절을 돌아본다면 필경 복음을 가장 사랑하고 성령의 충만을 느끼며 전도와 헌신을 통해서 교회운동을 왕성히 했던 시절을 꼽게 될 것입니다. 물론 거침없는 그 복음의 전성기에 사단의 방해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 역시 우리를 영글게 하시는 좋은 날들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본문은 피곤한 인생들이(3절)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봄으로서(2절) 모든 어긋난 인생들을 바로 세우고 고쳐지도록 하라는(13절)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합니다. 남보다 탁월하고 싶습니다. 자신과 자녀와 소유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 정도면 잘 산다고 뽐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바르게 살아 의로워지려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하늘의 지식과 반대로 잡혀있습니다. 즉 바로 살아 의로워지면 잘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사람들이 의로움엔 관심없고 편하고 풍족한 환경에만 집중합니다. 어느 새 평화는 깨어지고 불행이 내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한 평생 어찌해야 가장 복된 인생을 살 것인가를 들으면서 은혜를 나눕니다. 1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이 말씀을 한 문장으로 본다면 “선한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죄를 벗는 것과 잘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선한 경주를 해야 합니다.
1)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의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죄를 벗어 그 자리에 잠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벗어서 멀리 던져버려야 합니다. 다시 오지 못하게 멀리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워, 삶이 고달픈 죄는 생명을 주신 하나님조차 원망하게 합니다. 한 치의 기쁨마다 한 자의 고통이 숨겨져 있다는 말처럼 인생은 그 자체가 고통입니다. 죄에서 태어나 죄를 먹고 뱉어내는 육체는 어쩔 수없이 고통의 연속입니다. 우리에게 매일처럼 다가오는 무거운 죄의 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나온 세월은 후회요, 남은 날들은 염려뿐인 인생들, 세상염려, 재물과 이권에 대한 집착은 어찌하든 잘 살겠단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무거운 죄의 짐들입니다. 본문은 이런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들로 결코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잘 살아보려고 제 아무리 안간 힘을 써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본문은 또 하나님의 보장과 약속에 관한 한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이 있다고 증거하면서 그러므로 약속안의 백성들이 마땅히 무거운 죄의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많은 증인들을 내세운 것은 죄의 무거움과 얽매임을 벗어버리는 일에 어떤 핑계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무거운 것이 누르고 있으면 마음껏 달리지 못하고 성장하지도 못합니다.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건 죄의 무거운 짐들이 우릴 누르고 있기 때문이요, 그것들을 벗는 방법을 몰라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떻게 죄의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나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세속적인 욕구들, 이기심과 명예심, 방법이야 어찌하든 차지하고 보겠다는 성취욕, 깎아도 또 자라는 손톱처럼 죄는 뿌리를 우리 몸 깊이 박고 있어서 쉽사리 제거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죄의 근원을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증표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기에 시작된 모든 것을 죄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우리에겐 죄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존재자체가 의요, 평강이요, 거룩함과 사랑이듯이 인간은 존재자체가 죄요, 악이요, 무능입니다. 사람 스스로는 다시 살아날 힘이 없다는 것 잊지 마세요. 방전된 배터리가 외부연결 없이는 충전할 수 없듯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면 죄인은 무능 자체입니다.
자력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구원, 이 구원은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로만 가능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행4:12절에서 밝힙니다. 엡2:14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죄의 무거운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에게 길이요, 생명이요, 길 되신 주님 외엔 없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아직도 옛 습관과 옛 죄악의 짐을 지고 있다면 그 눌림이 커서 선한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걷고 달리기는커녕 서 있기도 힘이 듭니다.
달리기선수의 신발엔 끈이 보이질 않습니다. 싸이클선수는 온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습니다. 순간에 순위가 달라지는데 실오라기 하나도 속도에 지장을 준다면 제거합니다. 본문의 모든 무거운 것은 방해하다. 또는 장애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의 행군 앞에 장애가 되면 무엇이든 제거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 할례의 결단이 휴거에 좋은 조건을 제공하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분이 우리주님이 아닙니까? 예수께 맡겨드려 벗어진 죄의 짐을, 이제 다시 스스로 어깨에 메지 않길 바랍니다. 찬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
그렇습니다. 고통의 멍에와, 낭패와 실망과, 교만한 맘과 죽음의 저주를 벗겨주신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그 손을 잡고 놓치지 맙시다. 다음은 인내로서 선한 경주를 한다는 건 무엇인가를 살핍니다.
2) 인내로서 선한 경주를 합니다. 본문은 믿음생활을 경주에 비해 말씀합니다. 경주는 반드시 규칙을 따라야 하고 경주는 누구나 이겨서 1등을 목표로 합니다. 신앙의 승리를 바라는 자에게 필수인 인내는 참으로 어려운 입입니다. 인내는 인내할만한 분명한 이유를 갖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왜 참아야하는지를 알고 있으면 인내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 힘든 인고의 능선을 넘으면 분명 뭔가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경주를 인내로 버티는 힘은 어디서 옵니까? 천국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십니다. 우리주님은 눈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형상이요, 실존이십니다. 그 분 안에 천국이 있고 그 분이 계신 그 어디든지 거기가 천국입니다. 동행하며 천국을 살지어다.
우리 많이 들어 알고 있는 말씀, 하나님은 현실이라는 한마디를 잊지 않기 바랍니다. 육체가 있는 동안 우리는 주님과 실제로 만나는 것이고 이 땅에서 현실적인 약속을 실현해 가십니다. 현실을 떠난 믿음은 허상입니다. 히11:1절에서는 믿음을 어떻게 정의합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먼저 신뢰한 것들이 언약대로 하나씩 둘씩 현실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 언약의 하나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손길을 날마다 경험함으로 우리들은 믿음의 경주를 인내로서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도 넉넉히 참아낼 수 있는 건 현실에서 늘 찾아주시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녕 숨길 수 없는 성도의 기쁨이란 그 현실적 예수님이 영원한 우리들의 미래, 천국이 되시며 노래가 되시며 기쁨의 원천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님은 현재와 미래 모두 우리들의 영원한 안식처요, 평강의 숲입니다. 풍성한 나눔과 감동하는 기쁨입니다. 2절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1)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가 되십니다. 여기서 믿음의 주란 믿음의 본, 또는 믿음의 창설자, 선구자란 뜻입니다. 즉 믿음의 본을 보이셨고 믿음을 주시며 믿음을 완성케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믿음은 위로부터 내려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과 교회를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주신 믿음을 혼자만 기뻐하고 누리는 게 아니라 남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기다려주며 주님의 기쁨이 되는 일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영원한 저주와 형벌의 지옥행을 면하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시민이 된 구원의 은총은 오직 믿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 믿음의 선두주자시면서 핵심이 되는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주십니다. 그분을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곧 육체가운데 잠시 나타나신 하나님으로 믿어 믿음의 주로 받아들일 때 구원은 완성되고 성화가 시작되며 천국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는 온전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주님은 골고다에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율법은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율법을 지켜서 죄를 이길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친히 죄를 청산하는 희생제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문제를 위해 친히 십자가게 달리셨습니다.
그렇게 죄인들의 온전치 못한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신 것 가운데 가장 귀하고 위대한 것은 영원한 생명, 영생입니다. 육체 100년 안팎에 묶여있던 죄인의 짧은 생명, 허망한 사슬을 끊고 본래 에덴의 생명으로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다음은 주를 떠나 망가져있던 영혼을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에덴에서 타락해 온전하지 못한 죄인들에게 그리스도는 그 원천적 원인인 죄를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영혼의 회복을 통해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영혼과 영생뿐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평강과 풍성을 약속하고 보장하십니다. 익숙한 잠22;4는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르게 잘 믿으면 가난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고 죽어도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죄 속에서 사는 인생들, 모두 예수를 만나지 못해 힘겨운 삶을 살면서 온갖 병폐와 모순 속에서 시름시름 죽어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현재와 미래를 본문은 예수를 바라봄으로 믿음의 승리를 권면합니다. 본문 2절 앞부분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아멘.
3)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여기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예수님께 관심을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다른데 안보고 한눈팔지 않고 예수만 바라보면서 달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경마장에서 경주마 눈 옆에 검은색 가림막을 붙여놓은 것처럼 옆이나 뒤를 전혀 보지 않고 오직 예수를 푯대삼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직 주님한분만 바라보며 믿음의 절개를 지켜 나아갈 때 우리 믿음의 본은 역시 우리가 바라보는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기꺼이 참아내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본문 2절은 증거합니다.
3절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예수 믿으면서도 우린 여전히 죄를 피하지 못하고 종종 좌절하고 지치고 죽음을 사모합니다. 우리가 고통스런 일을 당할 때 본문은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함으로 낙심치 않기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리스도의 인내를 말합니다. 어떤 인내입니까? 자기에게 거역한 자들을 참으신 인내입니다.
요1:9-12절입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사람들은 자신을 구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조롱하고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섬기고 경배해야 할 구원의 주를 도리어 죽였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그들을 잘 참고 용서하셨습니다. 인류역사가운데 이러한 용서와 이러한 특혜는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는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죄를 용서하고 덮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접하는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개척동지 여러분. 믿음은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달려가는 경주입니다.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의 고통과 구원의 은총을 생각하면서 참고 달려갈 길 달려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본문 6:12절에서는“게으르지 않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으라.”는 말씀으로 선한 경주에서 인내로 승리한 자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내할 힘도,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의 짐을 벗어 버리는 결단과 능력도 주님이 공급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은혜의 주님, 고치시고 채우셔서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께만 집중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이 돕고 이뤄 가심을 믿는 믿음이 우리들의 능력입니다. 무거운 죄 짐에 눌린 자들마다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바라고 전하는 일로 저와 여러분의 생애가 최고의 생애가 되길 바랍니다. 최고의 생애는 최고의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날 때 시작됩니다. 주님과 늘 동행하여 매사에 오직 한 마음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남은 인생에 주님의 풍성하고도 아름다운 일들이 그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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