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1. 주일낮예배<신5:7. 제 1계명과 조상제사>
이번 목요 15일은 민족 명절인 추석입니다. 구정 설과 추석은 오랜만에 친지들이 모여 얼굴을 보며 덕담과 정을 나누는 귀한 날이지만 꽉 막힌 도로에 일부 그릇된 명절문화는 화투와 음주와 앉을 틈 없는 가사노동에 피로가 쌓인 설거지그릇만큼이나 한심한 광경이 여기저기 추태만상이기도 합니다. 본문의 16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며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주리라.”엡6:1-3절 함께 찾아 읽겠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명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사와, 성도가 결단코 지켜야 할 제 1계명사이에 바른 성경적 해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본문의 7절과 엡6:16절을 잘 새겨듣고 바로 적용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복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제사와 부모공경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성경에서 그 바른 견해를 구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사의 대상은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제사란 본래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경배의 예식으로 출발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그 자리에 온갖 잡신우상들을 끌어들여 잘못된 풍습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보통 말하는 미풍양속가운데 엄밀히 살펴보면 인간의 영혼을 어둠의 권세 앞에 인도하는 악한 영의 계략이 얼마나 교묘한지 모릅니다. 여섯 번째 계명인 부모공경은 다분히 유교의 가르침인 충효사상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제사풍습까지 도입한 유교적 민속전통에는 매우 심각한 영적 함정과 계략이 숨어 있습니다.
제 6계명을 아무리 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지 네 조상의 넋을 기리라고 되어있진 않습니다. 제사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보면 “귀신 또는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쳐 정성을 나타내거나 그 의식을 말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제사는 죽은 조상이나 친지의 넋 앞에 그 혼을 추모하고 업적을 기리며 남은 자손들이 혈연의 귀속으로 하나되는 결속감과 유대감을 느끼려는 바램이 일 년 중 매우 귀한 날로 여겨 기다리게 됩니다. 거기에 고향의 향수가 곁들여 7시간 12시간이 걸려도 견디게 합니다. 해마다 명절연휴에는 고속도로가 마비되고 혹 눈이라도 와서 꽉 막히면 사면이 하얀 벌판에서 숨을 곳도 없이 체면불구하고 볼일을 보는 남녀노소들로 진풍경을 이룹니다.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도착한 고향에서 기껏 한다는 일이 조상의 넋을 기리고 형제친지들과 정담을 나눈 뒤 결국 둘러앉아 화투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두어 시간 대화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기 때문에 소재의 빈곤을 느낀 혈육끼리 술이나 화투로 시간을 보내며 친밀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화투에선 위아래가 없어 대충 말을 놔 가면서 서로 친해지는 기분을 갖게 됩니다. 자주 못봐 서먹하던 사이도 화투장을 던지면서 “야. 이거 왜 이렇게 까불지? 놀고 있네.” “에라. 똥이나 먹고 떨어져라이.”화투판에서는 아무도 나무라는 이가 없습니다. 혼잣말기기 때문입니다. 이때 여인들은 술 안주상 계속 대령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에 파묻혀서 명절이 아니라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오게 됩니다. 참으로 속히 버려야 할 명절문화입니다. 예수가 안 계셔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디든지 복음이 없으면 빛과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복음도 없고 조상제사 마저 없다면 사람들은 뭘 할까 궁금해집니다. 간혹 그런 가정들이 있습니다. 꽤 건전하고 귀해 보입니다. 그러나 조상제사가 없을 뿐 복음이 없다면 무의미하긴 매한가지입니다. 윷놀이 좀하고 아이들 재롱보고 TV 보다가 정치얘기 좀하고 특별한 게 없으면 서둘러 귀가하면서 말합니다. “집이 최고야.”
사랑하는 예수동지 여러분. 모든 것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행복의 뿌리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근본뿌리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던 제사가 타락해 엉뚱한 것 앞에 절하는 어리석은 민속이 인생들의 참된 행복을 가로막았습니다. 부모나 조상은 살아서 자주 뵙고 잘 공경해야 합니다. 돌아간 뒤에 그 혼령 앞에 절하라고 성경 어디에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깔끔하게 잊는 게 옳습니다. 우리는 영의 세계를 다 알 수 없어도 죽은 자는 살았을 때의 존재가치와는 전혀 다르다는 건 압니다.
신(神)이란 불가사의한 정신체계를 소유한 그래서 명쾌하게 분석되자 않는 다양한 영혼 혼령의 대표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제 1계명은 하나님 외에 어떠한 신도 우리 앞에 두지 말아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죽은 조상의 혼백이 어차피 인간의 범주 안에서 벗어난 존재라면 이는 마귀, 도깨비, 귀신, 요정, 등 다양한 신의 범주 안에 들게 됩니다. 그렇다면 결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우리 앞에 두지 않아야 하는 제 1계명에 조상제사는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입니다.
조상제사대신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제사가 변해 예배가 됐습니다. 우상숭배에 속하는 조상제사는 우상숭배와 술과 화투가 어김없이 이어지지만 하나님 앞의 제사는 술 대신 성령의 충만함으로 기뻐하며 화투대신 노래하고 설거지 대신 말씀으로 내면을 닦는 예배로 영적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불신앙가족들은 대화의 소재에 언제나 자기자랑 가족자랑이 은연중 드러납니다. 그러나 성도의 가정들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자랑과 은혜를 말합니다. 소재가 인간이면 반드시 열등감이나 우월감으로 갈등하지만 하나님이 주제가 되면 밤이 새도 끝없는 화제와 소망의 복음이 대화를 끌어갑니다.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은 것은 상대방의 자화자찬으로 기분을 상할 염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친지들도 자기자녀와 자기가족 외에 그렇게 큰 관심과 감동이 없습니다. 관심이 너와 내가 아닌 우리들의 하나님으로 집중할 때 갈등의 요소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주제가 된 가문, 이렇게 믿음으로 승리한 가정은 명절이 결코 두렵거나 피곤한 날이 아닙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친지들을 만나 예수 안에서 다시 하나 된 기쁨을 나누며 복음의 기쁜 소식과 감사의 간증을 나누며 좋으신 하나님만 증거되는 참으로 고상하고도 복된 시간, 후회 없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고향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것은 다만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대대로 내려온 폐습과 전통이라는 미명아래 잘못된 관습들을 과감히 떨쳐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상제사 대신 감사의 가정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가정에서 명절에 드리는 감사예배를 잠시 살펴보기로 합니다. 이름이 감사예배입니다. 그래서
1) 감사해야 합니다. 그동안 조상대대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불교나 유교의 전통과 민속 우상 속에서 살던 가정을 예수 믿게 하셔서 구원하신 것에 대해 감사의 제목을 나누며 기뻐합니다.
2) 돌이켜야 합니다. 온 가족이 모인 가운데 알고도 지키지 못하거나 결단하고도 이루지 못한 일들을 공개적으로 돌이키면서 주님 앞에 고백한다면 다른 가족들이 신선한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직한 그 영을 주님이 먼저 기뻐하십니다. 간단한 기도회나 누군가 대표기도를 하도록 합니다.
3) 찬양을 합니다. 자주보지 못하는 친지형제들과 함께 입술을 모아 부르는 찬송은 의미가 깊고 즐겁습니다. 함께 하거나 돌아가면서 한곡씩 좋아하는 찬송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도 좋습니다.
4) 성경말씀을 함께 읽고 묵상하며 교제를 나눕니다. 가족 중 믿음의 경륜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이나 위치에 상관없이 설교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딱히 설교할 사람이 없으면 누가 사회를 보고 읽은 성경말씀으로 대화를 하면 됩니다. 이때도 믿음이 앞서가는 가족부터 내놓아야 합니다. 한편 조상들의 삶을 추적하여 성공과 실패가운데 교훈을 구해 나눕니다. 성공한 훌륭한 부분에서는 잘 전수하려는 노력을 말하고 실패에선 반면교사를 삼아 보다 질 높은 신앙인이 되도록 교훈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설교시간을 활용해서 많은 교제를 나누면 서로간의 사정도 알게 되어 기도제목을 공유함에 따라 더욱 가까운 영적교제가 이뤄집니다. 갖가지 간증도 나누면 유익합니다. 무엇보다 진실해야 하고 되도록 겸손한 말로 자신의 부족을 스스로 먼저 드러내는 성숙한 자세가 좋습니다. 먼저 낮아져서 실패를 고백하고 연약을 내놓으면 다른 가족에게는 많은 위로와 힘을 주게 됩니다. 자랑하는 이는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할 것이고 책망하려는 자는 자신을 먼저 책망하면 모두에게 은혜와 평강을 제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곧 추석에는 일 년에 한번 보는 친지 형제도 있습니다. 저들은 오늘 하루 우리들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고자 이모저모 말없이 살피게 됩니다. 우리가 실수하면 교회가 실수하는 것이고 나아가 예수믿는 모든 신자들이 실수하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덕을 베풀고 양보하고 친절하여 용서하고 너그러우면 불신 친지이웃들은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아름다운 덕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젠가 누군가의 전도를 받을 때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명절을 간접전도의 호기로 삼아야 합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느냐 아니면 교회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부담을 가득안고 가족들을 만나게 되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출발하는 것 상식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또 식사할 때 잊지 마시고 기도함으로서 당당하게 교인된 것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거듭 당부하거니와 주님은 부족을 나무라시지 않습니다. 믿음이 부족하여 비겁한 것은 책망하십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용기 없음과 부족을 인정하면서 성령의 동행을 순간마다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명절에 주님의 동행을 경험하여 기쁜 간증을 품고 교회로 돌아오는 멋지고 아름답고 복된 여러분이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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