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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6.08.28. 주일낮설교<갈3:29/4:22-24. 육체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

by 설렘심목 2016. 8. 28.

2016.08.28. 주일낮설교<3:29/4:22-24. 육체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

[prologue 소곤소곤은 생산적, 모음이 땅을 향한 수군수군은 파괴의 시작, 자음은 모음을 따라 전혀 다르게 사용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75세에 친지들이 있는 하란 땅을 떠날 때 갈 곳을 알지 못했다고 히11:8절은 증거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가족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담대히 낯선 길을 떠났던 사람,

 

이스마엘을 86세에 낳고(16:16). 할례는 99(17:24)에 합니다. 그리고 이삭을 100세에 낳았습니다.(21:5). 즉 이스마엘은 할례없이 낳은 육체의 아들이고 이삭은 할례 후 1년 후에 낳은 약속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4:23절입니다.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성경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분명히 영의 줄기와 육의 줄기로 갈라놓고 있습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이자 자유자의 기업이라면 이스마엘은 불신으로 인한 육체의 자녀요, 종의 자녀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75세에 고향땅을 떠나면서 받은 큰 민족의 약속은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에게는 최상의 희망입니다. 그러나 십년 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거기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긴지 오래된 할머니입니다. 기능이 마비된 지가 오래되자 하나님의 약속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내 나이에 임신요? 그게 말이 됩니까? 말 되는 일은 사람이 하게 두시고 말 안 되는 일을 주님이 하십니다. 기어이 아브라함부부는 사라의 몸종인 애굽여인 하갈의 몸에서 이스마엘을 얻게 됩니다. 이래서 이스마엘은 기다리지 못한 불신앙, 불순종, 사람의 생각대로 계획한 육체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낳은 뒤 다시 15년이 지난 아브라함나이 100, 할례한지 1년 만에 약속의 자녀, 율법을 행한 할례의 자녀, 종이 아닌 자유자의 기업이 된 자녀, 이삭이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이삭과 이스마엘은 몇 가지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오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본문가운데는 우리에게 주는 소망과 확신과 능력이 있습니다. 4:23절을 다시 읽습니다.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우리는 어느 줄기를 따라 났습니까? 본문 4:28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1. 약속을 따라 난 자들입니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짙은 사람들은 민속적인 것을 매우 선호합니다. 구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석의 보름달을 추억하고 명절 때마다 한복을 갈아입고 까맣게 잊었던 배달민족의 얼을 상기합니다. 백의민족의 기백을 살려 금수강산에 대한 자존심과 더불어 모든 민속적인 미풍양속에 대한 긍지가 대단합니다. 심지어는 무속에 관한 한 관대하기도 합니다. 회심곡이나 배뱅이굿에 대해 조예가 깊고 한학과 풍수지리, 음양오행설, 토정비결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분들은 단군에 대해서도 상당히 우호적입니다. 이른 바 신토불이형 식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당연히 이질감을 가질 뿐 아니라 외래종교로 부르는 기독교 등에 대한 거부감을 주저 없이 말합니다. 실제 우리 땅에서 난 우리채소, 곡식, 우리가 기른 가축과 사계절이 아름다운 우리강산은 실로 세계적인 풍광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민족주의는 우리조상들의 얼이 담긴 우리민족의 시조라고 일컫는 단군까지도 당연히 우리가 섬겨야 할 아름다운 민족유산으로 받아들입니다.

단군신화는 이렇습니다. 천제(天帝)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와 신시(神市)를 세워 나라를 다스릴 때,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백일 간 햇빛을 보지 말고 동굴 속에서 생활하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참지 못하여 나가고 곰은 곰처럼 참아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고, 그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민족의 기원을 초등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쳐 이 나라의 미래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의 교육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잘라서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 어리석고 미련해도 우리는 굴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백일을 곰처럼 참아낸 곰의 후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선포하고 있습니까? 3:26절입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됐습니다. 이번에는 갈4:6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성경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본문은 우리가 자녀이되 그 자녀의 근원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이 땅에 태어난 믿음의 천국백성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이 태어난 생명은 사람의 생각과 육신의 요구에 의해서 태어난 육신의 생명, 곧 땅의 생명이고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태어난 하늘의 생명입니다. 땅은 짐승이나 불신자들도 다 받았지만 하늘의 생명, 우리들은 하늘을 유업으로 받은 자녀들입니다. 30절 중반부터 함께 읽습니다.“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2. 유업을 받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우리들의 기업이고 우리들이 하나님이 기업이라는 성경의 말씀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기업은 평생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이요, 보람이요, 가치가 되며 삶의 모든 의미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강대상을 통해 들은 기업의 의미는 영적 육적자녀와 생존활동의 공간입니다.

본문은 적통(嫡統)이 아닌 자는 유업을 받지 못하며 유업을 받지 못했다 함은 장자권이 없다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업이란 기업을 물려받는다는 것이며 기업은 단순히 일거리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업은 내가 살아 움직이는 모든 의미를 말합니다. 왜 살고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기업에서 찾게 되고 성경이 말씀하는 기업이란 그러므로 한 생명의 모든 의미와 가치를 말합니다. 농토를 기업으로 받으면 농부로 사는 것이고 국토를 받으면 모여서 국가가 됩니다. 특별히 성경은 자녀를 기업 중 기업(127:3)으로 말합니다. 자녀는 그래서 부모의 모든 삶의 가치와 의미와 자존심이며 가문의 흥망성쇠를 넘어 부모의 행불행과 한 가정의 미래를 말하게 됩니다. 본문 갈3:29절 다시 읽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할렐루야. 여기서 말하는 유업은 모세오경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하나님백성으로서의 신분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받은 유업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입니다. 이는 일생일대 최고의 복된 사건이며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전무후무한 최대의 사건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를 바라리라.(3:24)”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시고 택함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믿는 자, 성도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업주 되시는 하나님이 친히 경영하시고 책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몽돌비전동지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언약가운데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본문처럼 하나님의 유업을 받아 그 권세와 의무를 지니며 기업주이신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업주이신 그분께 온 삶을 맡겨드리면 그분이 주시는 것을 넉넉하게 받아 누리고 나눠 복되게 찬양자로 사는 게 기업주의 기업목표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겐 주께서 주시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기업, 성도와 교회는 그러므로 하나님 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온전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세상과 죄와 자신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한절 더 읽기 원합니다. 5:1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3. 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자의 자녀입니다.

 

4:25-26절입니다.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믿음의 자녀는 율법의 시내 산으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라 복음의 모태인 새 언약의 땅 예루살렘을 통하여 태어난 것을 선포한 말씀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복음으로 인하여 자유를 얻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자유인들입니다. 우리 영혼의 어머니는 어디라고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그렇습니다. 예루살렘입니다. 주님 안에서 자유를 선포하되, 죄와 사망권세에서 자유를 선포한 예루살렘이 우리영혼의 어머니, 곧 생명수 말씀이 가득한 복음의 태에서 영원한 생명을 구한 자들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애굽여인 하갈의 자녀가 아니라 정실 사라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의 후손이 아닙니다. 종을 부리는 자유자, 적통이요, 장자권의 자격으로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제사장 곧 예배하는 택한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도 자유자 사라의 자손인 것입니다. 장자권의 승계는 하나님의 약속가운데 빚어진 영원한 생명의 권리, 영생권과 제사권 즉 예배권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못해 기다리지 못하고 행한 일 가운데는 하나님의 기쁨이 없습니다. 여기엔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보다 더 큰 오류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는 불신앙과 그로 인한 불순종의 죄입니다. 즉 허락여하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기다리지 못한 불신앙, 이에 대한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끝내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사람의 생각으로 불신앙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에게는 장자권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제사장권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사장권은 요즘말로 한다면 예배자의 자격입니다. 즉 주님께 부름받아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구원받아 천국시민이 되는 매우 중요한 자격입니다. 이 자격을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받을 유업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유업은 이미 밝혔듯이 오늘 우리가 받아 소망으로 삼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스마엘은 우리가 잘 알듯이 세계의 테러국으로 알라신의 이름아래 무고한 많은 사람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니 바른 예배자가 되지 못합니다.

복음아래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는 이스마엘의 후예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끊임없는 비극의 한 가운데에 놓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땅 끝까지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정리합니다.

 

본문에서 밝히는 우리들의 신분을,

첫 째,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으로 증거합니다. 장자권, 다른 말로 제사장권인 오늘날 예배자의 자격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약속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있음을 기뻐하기 바랍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예수그리스도로 인한 바른 예배입니다. 바른 예배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로 만나야 가능합니다.

2016.08.28. 주일낮설교<3:29/4:22-24. 육체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

[prologue 소곤소곤은 생산적, 수군수군은 파괴의 시작, 자음은 모음을 따라 전혀 다르게 사용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75세에 친지들이 있는 하란 땅을 떠날 때 갈 곳을 알지 못했다고 히11:8절은 증거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가족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담대히 낯선 길을 떠났던 사람,

이스마엘을 86세에 낳고(16:16). 할례는 99(17:24)에 합니다. 그리고 이삭을 100세에 낳았습니다.(21:5). 즉 이스마엘은 할례없이 낳은 육체의 아들이고 이삭은 할례 후 1년 후에 낳은 약속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4:23절입니다.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성경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분명히 영의 줄기와 육의 줄기로 갈라놓고 있습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이자 자유자의 기업이라면 이스마엘은 불신으로 인한 육체의 자녀요, 종의 자녀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75세에 고향땅을 떠나면서 받은 큰 민족의 약속은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에게는 최상의 희망입니다. 그러나 십년 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거기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긴지 오래된 할머니입니다. 기능이 마비된 지가 오래되자 하나님의 약속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내 나이에 임신요? 그게 말이 됩니까? 말 되는 일은 사람이 하게 두시고 말 안 되는 일을 주님이 하십니다. 기어이 아브라함부부는 사라의 몸종인 애굽여인 하갈의 몸에서 이스마엘을 얻게 됩니다. 이래서 이스마엘은 기다리지 못한 불신앙, 불순종, 사람의 생각대로 계획한 육체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낳은 뒤 다시 15년이 지난 아브라함나이 100, 할례한지 1년 만에 약속의 자녀, 율법을 행한 할례의 자녀, 종이 아닌 자유자의 기업이 된 자녀, 이삭이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이삭과 이스마엘은 몇 가지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오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본문가운데는 우리에게 주는 소망과 확신과 능력이 있습니다. 4:23절을 다시 읽습니다.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우리는 어느 줄기를 따라 났습니까? 본문 4:28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1. 약속을 따라 난 자들입니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짙은 사람들은 민속적인 것을 매우 선호합니다. 구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석의 보름달을 추억하고 명절 때마다 한복을 갈아입고 까맣게 잊었던 배달민족의 얼을 상기합니다. 백의민족의 기백을 살려 금수강산에 대한 자존심과 더불어 모든 민속적인 미풍양속에 대한 긍지가 대단합니다. 심지어는 무속에 관한 한 관대하기도 합니다. 회심곡이나 배뱅이굿에 대해 조예가 깊고 한학과 풍수지리, 음양오행설, 토정비결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분들은 단군에 대해서도 상당히 우호적입니다. 이른 바 신토불이형 식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당연히 이질감을 가질 뿐 아니라 외래종교로 부르는 기독교 등에 대한 거부감을 주저 없이 말합니다. 실제 우리 땅에서 난 우리채소, 곡식, 우리가 기른 가축과 사계절이 아름다운 우리강산은 실로 세계적인 풍광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민족주의는 우리조상들의 얼이 담긴 우리민족의 시조라고 일컫는 단군까지도 당연히 우리가 섬겨야 할 아름다운 민족유산으로 받아들입니다.

단군신화는 이렇습니다. 천제(天帝)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와 신시(神市)를 세워 나라를 다스릴 때,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백일 간 햇빛을 보지 말고 동굴 속에서 생활하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참지 못하여 나가고 곰은 곰처럼 참아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고, 그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민족의 기원을 초등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쳐 이 나라의 미래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의 교육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잘라서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 어리석고 미련해도 우리는 굴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백일을 곰처럼 참아낸 곰의 후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선포하고 있습니까? 3:26절입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됐습니다. 이번에는 갈4:6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성경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본문은 우리가 자녀이되 그 자녀의 근원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이 땅에 태어난 믿음의 천국백성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이 태어난 생명은 사람의 생각과 육신의 요구에 의해서 태어난 육신의 생명, 곧 땅의 생명이고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태어난 하늘의 생명입니다. 땅은 짐승이나 불신자들도 다 받았지만 하늘의 생명, 우리들은 하늘을 유업으로 받은 자녀들입니다. 30절 중반부터 함께 읽습니다.“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2. 유업을 받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우리들의 기업이고 우리들이 하나님이 기업이라는 성경의 말씀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기업은 평생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이요, 보람이요, 가치가 되며 삶의 모든 의미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강대상을 통해 들은 기업의 의미는 영적 육적자녀와 생존활동의 공간입니다.

본문은 적통(嫡統)이 아닌 자는 유업을 받지 못하며 유업을 받지 못했다 함은 장자권이 없다는 걸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업이란 기업을 물려받는다는 것이며 기업은 단순히 일거리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업은 내가 살아 움직이는 모든 의미를 말합니다. 왜 살고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기업에서 찾게 되고 성경이 말씀하는 기업이란 그러므로 한 생명의 모든 의미와 가치를 말합니다. 농토를 기업으로 받으면 농부로 사는 것이고 국토를 받으면 모여서 국가가 됩니다. 특별히 성경은 자녀를 기업 중 기업(127:3)으로 말합니다. 자녀는 그래서 부모의 모든 삶의 가치와 의미와 자존심이며 가문의 흥망성쇠를 넘어 부모의 행불행과 한 가정의 미래를 말하게 됩니다. 본문 갈3:29절 다시 읽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할렐루야. 여기서 말하는 유업은 모세오경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하나님백성으로서의 신분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받은 유업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입니다. 이는 일생일대 최고의 복된 사건이며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전무후무한 최대의 사건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를 바라리라.(3:24)”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시고 택함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믿는 자, 성도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업주 되시는 하나님이 친히 경영하시고 책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몽돌비전동지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언약가운데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본문처럼 하나님의 유업을 받아 그 권세와 의무를 지니며 기업주이신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업주이신 그분께 온 삶을 맡겨드리면 그분이 주시는 것을 넉넉하게 받아 누리고 나눠 복되게 찬양자로 사는 게 기업주의 기업목표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겐 주께서 주시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기업, 성도와 교회는 그러므로 하나님 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온전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세상과 죄와 자신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한절 더 읽기 원합니다. 5:1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3. 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자의 자녀입니다.

 

4:25-26절입니다.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믿음의 자녀는 율법의 시내 산으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라 복음의 모태인 새 언약의 땅 예루살렘을 통하여 태어난 것을 선포한 말씀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복음으로 인하여 자유를 얻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자유인들입니다. 우리 영혼의 어머니는 어디라고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그렇습니다. 예루살렘입니다. 주님 안에서 자유를 선포하되, 죄와 사망권세에서 자유를 선포한 예루살렘이 우리영혼의 어머니, 곧 생명수 말씀이 가득한 복음의 태에서 영원한 생명을 구한 자들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애굽여인 하갈의 자녀가 아니라 정실 사라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의 후손이 아닙니다. 종을 부리는 자유자, 적통이요, 장자권의 자격으로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제사장 곧 예배하는 택한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도 자유자 사라의 자손인 것입니다. 장자권의 승계는 하나님의 약속가운데 빚어진 영원한 생명의 권리, 영생권과 제사권 즉 예배권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못해 기다리지 못하고 행한 일 가운데는 하나님의 기쁨이 없습니다. 여기엔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보다 더 큰 오류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는 불신앙과 그로 인한 불순종의 죄입니다. 즉 허락여하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기다리지 못한 불신앙, 이에 대한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끝내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사람의 생각으로 불신앙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에게는 장자권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제사장권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사장권은 요즘말로 한다면 예배자의 자격입니다. 즉 주님께 부름받아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구원받아 천국시민이 되는 매우 중요한 자격입니다. 이 자격을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받을 유업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유업은 이미 밝혔듯이 오늘 우리가 받아 소망으로 삼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스마엘은 우리가 잘 알듯이 세계의 테러국으로 알라신의 이름아래 무고한 많은 사람들과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니 바른 예배자가 되지 못합니다.

복음아래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는 이스마엘의 후예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끊임없는 비극의 한 가운데에 놓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땅 끝까지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정리합니다.

 

본문에서 밝히는 우리들의 신분을,

첫 째,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으로 증거합니다. 장자권, 다른 말로 제사장권인 오늘날 예배자의 자격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약속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있음을 기뻐하기 바랍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예수그리스도로 인한 바른 예배입니다. 바른 예배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로 만나야 가능합니다.

 

두 번째, 성도는 장자권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업을 받기로 된 유업자 즉 유산상속자입니다. 유업은 예수그리스도요, 예수그리스도는 복음이요, 천국소식입니다. 능력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되어 우리가운데 영광으로 늘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유업, 자자손손 이 유업이 이어질지어다.

 

세 번째로는 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자의 자녀로서 모든 인생들 가운데 성도는 하나님의 적통 자녀라는 것을 이제 믿습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종의 멍에가 아니라 자녀의 기쁨과 풍성이 우리에게 허락된 것도 믿습니다. 믿음은 믿은 대로 이뤄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 우리 곁에 언제나 풍성한 줄 또한 믿기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이스마엘의 후손이 되지 않고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인 것으로 무한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곰이 마늘먹고 낳은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바른 예배자로 평강을 나누며 살게 된 것으로 인하여 끝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이스마엘의 후손 무슬림들이 산유국에 태어나 아무리 부유한 생활을 해도 거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해 끊임없는 분쟁으로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있습니다. 저들의 삶은 하루 앞을 모릅니다. 알라신을 위한 10대초의 자살특공대는 알라와 민족 앞에 큰 영광의 전사라고 추켜 죽입니다. 폭탄테러가 시내 곳곳에 일어나 무고한 생명이 수시로 죽어나가도 예수하고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들에게 기독교로의 개종은 거의 죽음과도 같은 무서운 형벌입니다. 모든 가문과 가족과 영원히 헤어지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율법과 종교형식에 매어 인권이 없고 다만 알라의 혹독한 법만 모든 것을 주장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갑니다. 약속과 유업을 받지 못한 자들, 예배와 자유가 없습니다.

자유자의 자녀로 태어나 약속 안에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가며 바른 예배자로 자손대대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 갈 우리들,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들도 우리를 속박할 수 없는 진정 최고의 자유자가 되어 주님주시는 참 평강과 참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감사, 또 감사. 예수님을 선전하고 복음과 삶을 나누는 모두가 되시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두 번째, 성도는 장자권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업을 받기로 된 유업자 즉 유산상속자입니다. 유업은 예수그리스도요, 예수그리스도는 복음이요, 천국소식입니다. 능력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되어 우리가운데 영광으로 늘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유업, 자자손손 이 유업이 이어질지어다.

 

세 번째로는 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자의 자녀로서 모든 인생들 가운데 성도는 하나님의 적통 자녀라는 것을 이제 믿습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종의 멍에가 아니라 자녀의 기쁨과 풍성이 우리에게 허락된 것도 믿습니다. 믿음은 믿은 대로 이뤄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 우리 곁에 언제나 풍성한 줄 또한 믿기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이스마엘의 후손이 되지 않고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인 것으로 무한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곰이 마늘먹고 낳은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바른 예배자로 평강을 나누며 살게 된 것으로 인하여 끝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이스마엘의 후손 무슬림들이 산유국에 태어나 아무리 부유한 생활을 해도 거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해 끊임없는 분쟁으로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있습니다. 저들의 삶은 하루 앞을 모릅니다. 알라신을 위한 10대초의 자살특공대는 알라와 민족 앞에 큰 영광의 전사라고 추켜 죽입니다. 폭탄테러가 시내 곳곳에 일어나 무고한 생명이 수시로 죽어나가도 예수하고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들에게 기독교로의 개종은 거의 죽음과도 같은 무서운 형벌입니다. 모든 가문과 가족과 영원히 헤어지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율법과 종교형식에 매어 인권이 없고 다만 알라의 혹독한 법만 모든 것을 주장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갑니다. 약속과 유업을 받지 못한 자들, 예배와 자유가 없습니다.

자유자의 자녀로 태어나 약속 안에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가며 바른 예배자로 자손대대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 갈 우리들,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들도 우리를 속박할 수 없는 진정 최고의 자유자가 되어 주님주시는 참 평강과 참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감사, 또 감사. 예수님을 선전하고 복음과 삶을 나누는 모두가 되시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