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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6.08.21. 주일예배<골3:5-10. 옛사람을 벗으라.>

by 설렘심목 2016. 8. 21.

 

08.21. 주일예배<3:5-10. 옛사람을 벗으라.>

 

P/L[예수 믿는다는 걸 삶의 한 부분으로 알고 있는 것과 삶 전체를 떠받치는 밑그림으로 하는 것은 인생을 근본부터 다르게 하고 신앙승리는 그 밑그림에 확실하게 헌신해 영적으로 한 인물나는 사건의 시작. 인생 최고, 최선, 최상의 작품은 예배]

 

초대교회 당시에는 할례와 천사숭배를 강조하는 유대 율법주의나 육체의 악함을 주장하여 금욕을 강조하는 헬라의 영지주의 또는 혼합주의가 횡행하였습니다. 심지어 영지주의는 육체를 천하게 보아 육체적 방종은 별게 아니라는 도덕폐기론까지 낳아 많은 사람들에게 육체를 함부로 굴려 방탕하고 문란하게 했습니다. 영혼만 잘 유지하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을 하게 한 것입니다.

초대교회당시에 최초요, 대표적인 이단사상 영지주의는 당시의 헬라철학과 이방종교사상과 기독교가 혼합되면서 생긴 일종의 문화였습니다. 영지주의자를 뜻하는 그노스티코스란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특별한 영적지식을 소유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 소위, 접신론 운동이 영지주의사상의 주장인 것입니다. 이 문화가 이단종교로까지 발전하는 데에는 존재론적 이원론과 동방종교에서 비롯된 신화의 근본개념이 일조하게 됩니다.

* 존재론적 이원론 : 악한 신과 선한 신의 대등한 공존 또는 하나님과 물질계의 대립을 주장.

* 동방종교적 신화의 근본개념 : 악은 신성의 내적 분열에서 생김.

이러한 영지주의사상은 성경보다 그들의 지도자들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신비체험과 그 깨달음을 계시로 보아 그 계시에 대한 영적지식이 구원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 구원을 제시한 성경의 말씀과는 전혀 무관한 이단사상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 구원 앞에 루터는 가슴이 뛰었고 기어코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사도는 헬레니즘 철학과 유대교의 혼합사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중 본문은 그리스도의 생활원칙을 성경적 관점에서 가르칩니다. 그릇된 골로새교회의 일부 거짓진리인 혼합사상과는 전혀 구별되는 바른 가르침에 오늘 우리가 조명을 받아 마음의 옷깃을 여미는 은혜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 안에는 어떤 생활원칙들이 있습니까? 5절을 함께 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1.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땅은 육신의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참으로 귀한 생명의 밭입니다. 땅을 이루는 흙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누울 곳과 입을 것을 공급합니다. 땅이 없다면 인간은 생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태어나 태어난 땅에 다시 묻혀 사라집니다. 땅의 본질은 흙이고 우리 몸도 흙의 본질로 구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영의 본향이 하나님나라라면 땅은 우리 몸의 고향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지적하는 죽여야 할 땅의 지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본문 5절을 다시 읽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1) 음난(淫亂)입니다. 이는 간음보다 넓은 의미를 갖는데 혼전순결의 파괴, 변태와 도착증, 매춘, 혼음, 동성애, 수간(獸姦) 등 바람직하고 인정되는 남녀관계 외의 성문제를 다룹니다. 다시 일러드리지만 제자리를 떠나면 평화가 깨집니다. 음란으로 규정되는 모든 성문제는 한 사람의 자리 이탈로 여러 사람과 가정과 단체가 비극에 싸이기 때문에 성경은 음란을 비중있는 죄의 문제로 다룹니다. 특히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주님의 신부된 교회가 주님을 떠나 엉뚱한 곳에 경배하거나 의탁하는 것을 강력히 지적할 때 주로 음란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곧 영적음란은 철저한 배신행위요, 이 배신은 하나님의 질투를 불러일으켜 맹렬한 진노가운데 들게 함으로 그때마다 비참하게 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호세아서는 음란한 여인 고멜을 들어 영적으로 음란한 이스라엘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멀쩡한 총각이 음란한 고멜을 아내로 맞아 가출을 밥 먹듯 해 유곽 촌에서 아내를 데려와야 하는 선지자 호세아의 고통, 그 아픔과 분노는 하나님의 고통을 몸으로 절감하면서 예언하라는 하나님의 절박하고 비상한 이스라엘 회복의 명령이었습니다. 음녀의 대표적 여인 고멜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무서운 질투를 보게 됩니다.

음란의 반대말은 정결(貞潔)입니다. 굳은 정조와 결백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나고 예쁘고 멋져서 사랑하신 게 아닙니다. 복이신 하나님 당신 한분만 바라보라고 사랑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부정(不淨)입니다. 19장에서 밝히는 율법은 부정을 시체를 만진 것(불신자와 깊이 맺은 관계, 애정의 포로가 돼(페로몬결과 78%실패) 불신자를 배필로 맞으면서 전도한다는 명분에 갇혀 평생 헛된 씨름을 하는 것 등)문둥병(영혼이 무디어져 감각이 죽어가는 증세. 영혼이 불감증에 들어가면 겉보기엔 멀쩡해도 가장 중요한 것을 잃고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모름, 장기는 잘 두는데...장기 다 갖고 두나?)유출 중인 생식기관이나 거기 접촉한 경우,(건강하고 비정상적인 성생활, 소돔과 고모라로 변하는 동성애, 수간, 근친상간, 등 곧 하나님의 나라와 무관한 성 활동) 그리고 부정한 동물을 먹는 경우(마약거래, 고리대금업, 도박, 환락가운영, 장기밀매, 인신매매, 청부살인, 네다바이 보이스피싱 등 바람직하지 못한 경제활동)를 말합니다. 이것들은 알고보면 모두 정상을 떠난 증세이며 질환으로 분류되는 병적현상들입니다. 어떻게 생긴 병들입니까? 영혼이 병들면 따라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들입니다.

 

3) 사욕(邪慾)과 악한 정욕(情慾)입니다.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그 나라를 파괴하려하는 개인의 욕심입니다. 하늘의 영광보다는 육체의 쾌락을 원하고 교회의 덕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우선합니다. 나 하나만 괜찮고 우리 집만 무사하다면 교회나 나라가 어찌되든 무관하다는 생각입니다. 나라는 잃어보기 전까지는 그 위대한 울타리의 힘을 알기 어렵습니다. 보트피플이나 난민수용소의 비참한 이야기는 나라를 잃은 백성들의 참담한 사정을 여실히 말해주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어야 교회가 무사하고 교회가 잘 운영될 때 가정이 보호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라와 교회는 안정된 가정과 신앙생활을 보호하는 주요공동체이고 이게 흔들리면 신앙과 생명이 위험합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을 떠날 때 일어나는 일들의 결과라는 것 외 달리 말할 수가 없습니다.

 

4) 탐심(貪心)입니다. 탐심이란 마땅히 소유한 것 외에 더 가지려는 마음입니다. 갖지 않아도 될 것을 가지려하는 정욕의 마음인데 이는 물질이나 육체에 소용없는 애착을 가져서 기어코 죄를 잉태합니다. 즉 탐내지 않아도 될 것을 탐내는 마음, 탐내선 안 될 욕심입니다. 본문에서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욕심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뭔가 욕구할 때 발전하며 성장해 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마땅한 분깃, 선 안에서 바라는 것들이어야 합니다. 분수를 지나쳐서 욕구를 품는 것이 탐심입니다. 모든 불행의 대부분이 이 탐심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래서 본문은 탐심을 우상숭배의 범죄와 같이 취급해 말합니다. 우상숭배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즉시 돌이켜 회개하고 그간의 범죄에 대한 대가를 기쁨으로 치러야 합니다.

 

8-10절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2. 이제 우리들은 새사람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8절 말씀처럼 새사람을 입으려면 옛사람을 벗어야 합니다. 여기 입는다, 벗는다는 말씀은 무엇인가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옛사람을 벗는다함은 옛 습관과 가치관과 정서문화에 의지해서 살아가던 것을 훌훌 벗어던지는 걸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을 자기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서 자신의 옛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어 벗어던지는 일을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새 옷을 입으려고 헌옷을 벗는 일, 과감하게 서두를수록 좋습니다.

 

본문은 구원받은 자가 이미 새사람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새사람을 입은 것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새사람을 입혀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를 알아가는 지식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즉 새사람에겐 새로운 하늘의 지식까지를 덧 입히셨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늘의 영적 지식은 세상학문의 지식과는 근원적으로 다릅니다. 세상의 지식은 세상에서 육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원리들이지만 하늘의 지식은 영적인 지식이기 때문에 인간의 근본 생명과 영혼과 영원히 사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지식은 모두 성경으로 집약되었고 성경은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있습니다. 힘겨운 싸움에 악한 영과 옛 사람을 향하여 칼을 드는 것보다는 도리어 생명의 샘, 그리스도께 총력질주 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옛 자신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달려 나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예배입니다.

 

우리교회 출입문과 화장실에 걸어 놨습니다. “나하나 바뀌면, 나하나 바뀌면 상대방도 가정도 나라도 다 바뀔 줄 압니다. 그래서 휴거나 아니라 우리교회 할례에 집중합니다. 휴거는 하나님 몫이고 할례는 휴거를 위한 우리의 몫입니다. 다만 내 변화가 예배의 현장에서 일어나길 원합니다. 예배 중 말씀 들을 때 옛사람 죽기를 간절히 소원하나이다. 아멘.

 

온갖 세상의 유혹과 옛 자아의 악한 근성들이 구원의 새 옷을 잡아 찢으려할 때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 외에 대안이 없음을 꼭 기억하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남은 날을 아껴서 오직 주님께 집중하여 모두 하나님의 귀한 일꾼들 다 되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