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7.부활주일설교<요5:25~29. 영생부활과 심판부활>
부활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이고 가장 큰 강점은 부활과 영생입니다. 고전15:장16절에선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의 믿음도 헛되다”면서 19절에선 “성도의 소망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부활을 믿는 절실함의 여하에 따라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과 믿음의 깊이와 신앙인격이 달라집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기도가 달라지고 노래가 달라집니다. 모든 게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은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라는 증거가 많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라마다 역사를 자랑하고 민족마다 단체마다 전통을 자랑하면서 많은 보이는 유물 유적과 보이지 않는 정신문화까지 어찌하든 후손에게 물려주어서 잘 발전계승하려 합니다. 그 결과 인류는 눈부신 발전을 했고 각종 풍요와 편의를 마음껏 누리게 돼 편리해졌지만 악은 도리어 교묘히 위장하고 여전히 세상은 선과 악이 싸우는 전쟁터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눈에 뵈는 휘황찬란한 세상문명 때문에 실제 가장 중요한 인류구속사의 핵심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역사에 비해 아주 작은 부분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절에 듣는 오늘 말씀은 역사적실체로서의 예수님부활을 살피며 예수부활이 인류에게 남긴 유산의 위대함을 상고하며 부활의 소망을 함께 나눌까 합니다. 본문 28~29절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1. 심판의 부활과 생명의 부활, 두 가지의 부활입니다.
먼저, 무덤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28절)
땅에 묻혀보는 무덤체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깜깜한 관속에 들어가 소리와 빛이 전혀 없는 관속에 들어가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인데 대단한 경험이라고 합니다. 무덤이 참 많습니다. 땅속에 묻혀야만 무덤이 아닙니다. 착각와 혼돈과 오류라는 무덤 속에 들어가면 거기가 무덤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한 평생 불행이라는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가 되어 끝까지 달려갑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자기함정에 빠졌다고 합니다. 함정 중에 가장 무서운 함정이 자기함정이고 우상 중 가장 힘든 우상이 자기우상인 것 인정하시면 아멘입니다. 믿는 우리 성도의 길은 착각과 불행의 레일 위가 아니라 길되신 예수님을 따라 가는 나그네이고 자기라는 어리석고 불행한 함정이 아니라 예수, 그 구원과 은총과 생명의 강에 잠기는 복음의 증인이요, 길가는 나그네들입니다. 길손에게 필요한 것은 격조있는 벽난로가 아닙니다. 걷기 편한 신발 두어 켤레와 목을 추기기에 적당한 물 한 병입니다. 잠시 지나는 여관집에서 마치 천년 살 사람처럼 이것저것 다 들여놓고 떠나는 게 두려운 사람은 어리석은 길손입니다. 우린 사막같은 인생길 잠시 지나는 과객입니다. 길을 가면서 정작 절실한 것은 바른 좌표입니다. 동으로 갈까 서로 갈까 아, 나는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맏형 유다가 요셉이 없어진 걸 알고 좌절하며 울부짖던 말입니다. 갈길 몰라 방황하는 게 세상사는 인생의 본질입니다. 옆 사람과 나누세요. 우린 헤어집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납니다. 아멘. 우린 모두 헤어져 무덤에 들거나 화장장에서 가루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누구든지 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그만 일어 나거라.” 살아생전 행한 일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얻던지 아니면 심판을 받던지 둘 중 하나를 받게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선한 믿음으로 영생부활의 기쁨으로 일어날 줄 믿습니다.
다음, 두 가지 부활 중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악한 길을 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선한 일과 악한 일, 즉 선한 인생과 악한 인생을 성경은 어떻게 갈라내고 있습니까?
창6장5절에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함을 보시고”라고 합니다. 시편14편 2절에는 하나님이 인생을 내려다보시니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절에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찾는 것이 선의 기초입니다. 열 개의 계명 중 앞쪽 네 개의 내용이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하나님 외 다른 것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창15:6절에서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말이 나옵니다. 자녀가 없어 포기하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가리키며 네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라는 말씀에 그 약속을 믿으니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어 그런 악을 피해 가장 의롭고 선한 길은 오직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굳게 믿는 것이라고 로마서는 거듭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예수의 거룩한 영, 성령이 우리가운데 함께 하셔서 악한 생각, 악한 영을 내쫓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길이 되시고 진리시고 영생이시며 찬송과 이정표 되신 예수께서 우리가운데 부활하신 것을 기뻐합니다.
2. 부활체는 신비입니다.
고전 15:35절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고 질문합니다. 몇 군데를 살펴보면 먼저, 부활한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과 아울러 부활체는 신비 그 자체인 것을 알게 됩니다. 몇 군데만 봅니다.
1) 요20:19~20절 : 제자들이 두려워 문들을 닫고 숨어있는데 닫힌 문을 통과해서 나타나십니다. 또 여드레가 지나 다시 문들이 닫혔는데 들어오셔서 의심하는 도마에게 “내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창자국과 못자국을 만져보게 하심으로 육신을 증거(눅24:39)하셨습니다.
2) 눅24:40~43절 : 제자들과 숯불에 구운 생선과 떡으로 조반을 드셨습니다.
3) 고전15:42절 :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사는 썩지 않는 부활체입니다. 썩는 것, 육체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신비한 부활체입니다.
4)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된 것으로(고전15:43), 육의 몸에서 신령한 몸으로(고전15:44) 다시 사는 부활체입니다.
그러나 악인을 위한 심판의 부활에 대하여 성경은 참혹하기 짝이 없는 광경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단12:2절에서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분명 부활 후에 끝없는 수치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2) 사66:24절에 그 (부활한) 시체에 죽지 않는 벌레가 있다고 했습니다.
3) 계20:10절에 불과 유황 못에 던져져 짐승과 거짓선지자들이 영원히 밤낮 괴로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4) 마25:46절에는 죄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거듭 증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들이 겹으로 닫혔는데 열지도 않고 들어오셔서 옆구리와 손발을 보여주시면서 놀라거나 두려말라고 하십니다. 나인 줄 알거든 무서워하지 마라. 시장하시다며 구운 생선을 드셨습니다. 우리가 미래에 변화할 모습입니다. 그런 몸으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영광을 따라가는 성도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세 가지를 확인 당부하며 부활절말씀을 정리합니다.
첫째, 주님이 동정녀를 통해 이 땅에 오신 것, 십자가에 달리셔서 심한 고통에 죽으신 것, 그리고 살아나셔서 하늘에 올라가신 것과 지금 우리 안에 오셨고 또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겁니다. 중요한 하나를 더한다면 이 놀라운 사실을 믿으면 그것이 선의 출발이고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그것이 악의 시작이라는 것, 기억하시기 예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신 것과 예수님 탄생에서 부활까지를 증거 할 의무를 지닌 동시에 천국시민권을 가진 놀라운 권한과 거룩한 의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끝으로 셋째는 주님의 부활은 우리가 받을 최고의 영광으로 믿는 자에게 영원한 삶의 표증이 됐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믿는 자는 죽음과 무관합니다. 죽는 건 다만 육체뿐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신비한 몸을 받아 영원히 삽니다. 이 기쁜 소식을 생명있는 한 전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복음을 못 들어 영원한 생명, 부활에 못 들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흑암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영생의 부활을 향해 가는 저와 여러분,
부활절 이 아침에 받은 말씀으로 남은 생애에 부활주님과 영생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결단이 여러분과 여러분 후대에 최고의 풍성과 기쁨이 되기를 부활예수 살아계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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