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0. 주일낮예배<고후5:17-21. 화목하게 하는 직책>
오늘 말씀의 제목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입니다. 화목은 평강의 가장 절실한 조건입니다. 사이가 좋아야 편안합니다. 세상에서 편안한 곳을 보면 보통 힘의 안배가 잘 유지되고 있는 곳들입니다. 다른 말로 그것은 계산이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심하게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평화와 화목은 깨집니다. 이런 경우 필경 이익을 본 쪽은 관계를 유지하려하지만 손해를 당하면 거기 동의하지 않습니다. 설령 힘에 눌려 겉으론 웃어도 속으론 이를 갈며 앙갚음을 할 기회를 봅니다. 손해 볼 순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말하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화목은 그렇게 세상의 화평처럼 수지의 균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수지타산의 균형은 다분히 선악과를 따먹은 타락한 에덴의 계산방식입니다. 골고다에서 십자가로 회복된 참 평화의 에덴은 먼저 값없이 내어주는 헌신적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둘도 없는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으로 화목을 끌어내는 희생과 손실의 방법입니다.
타락한 에덴의 화목과 회복된 에덴의 화목은 이렇게 극과 극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세상진리와 하나님의 진리는 비슷한 용어를 사용해도 이렇듯 반대쪽에 있어서 항상 우리의 결단과 선택을 진지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피며 주의 음성을 따라 과연 진정한 평강은 무엇이며 우리는 화목의 직책을 받은 자로 어찌 평화와 믿음을 지켜가야 할 것인지를 함께 상고하기 원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해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성도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거듭난 인생들을 말합니다. 즉 성도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서 더욱 건강하고 성실한 천국시민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란 말처럼 그리스도와 하나 돼 생각과 가치관과 소망이 변하고 특별히 죄인의 신분으로는 알 수 없는 천국의 소식을 알아 기쁨으로 간직해가는 사람들, 천국인에게 세상이란 성화의 훈련장이요, 하나님을 알아가며 순간을 통해 영원한 삶의 질과 격을 지속적으로 보완, 수정해가는 매우 중요한 현장입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고전 15:41-42a절의 말씀은 세상의 한 순간순간이 모여서 우리가 갈 영원한 나라의 영광 그 번지수를 정하게 되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 유일한 희망은 우릴 용서하시되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도 하시겠다는 주님의 자비롭고 의로우신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이젠 새로운 생명,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극심한 좌절과 아픔이 있습니까? 스스로도 화가 나서 참기 어려운 어리석음과 실수와 후회가 있습니까? 지나간 것 붙잡고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흥분하고 분노하여 자신을 학대하는 감정발로의 첫 순서는 누구나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사람마다 크게 다릅니다. 우리는 인생만사에서 늘 하나의 선택을 요구받으며 살아갑니다. 신30:15절에서도 이스라엘백성 앞에 “생명과 복, 그리고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노라.”고 합니다. 바울의 고민 중 하나는 “자신 안에 있는 이 두 법의 싸움”이었습니다.
자신의 실수와 후회 앞에서 분노할 때 우린 즉시 두 법 중에 하나를 붙잡아야 합니다. 자신을 학대하고 증오하고 삶을 저주하여 실의와 절망가운데에 빠지게 하는 사망의 법이 급하게 혈기서린 자신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비록 세미하지만 자신을 위로하고 도리어 성숙을 바라보며 좌절을 딛고 우뚝 서라는 주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참담한 심경에서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만나 그 분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이 순간에 꼭 들어야 하는 주님의 음성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입니다. 새사람은 옛사람의 실수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새로운 vision과 설레는 미래가 과거의 아픔을 덮어 보이지 않고 기억나지 않게 합니다. 다만 그 과거의 미숙함은 결코 잊지 않아 교만이 찾아들지 않게 하는데 귀하게 사용돼야 합니다. 과거의 수치, 실패를 잊지는 않되 사로잡혀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가 세상에서 살되 세상과 구별됨으로 세상에 빠져 취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기 바랍니다. 그러나 잊지는 마십시오. 그 과거가 저와 여러분을 겸손의 문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 거듭난 사람은 과거의 아픔과 수치를 덮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자신의 죄에서 자유함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새로 태어난 기쁨이 곧 구원의 감격입니다. 불꽃같은 주의 눈동자 앞에서 추악한 것들이 밝히 드러나 영원한 저주와 형벌을 면할 수 없었던 우리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갚으신 죄 값으로 용서받고 살아났습니다. 살아났을 뿐 아니라 영원히 살길을 얻었고 영원히 살되 이젠 이 땅에서도 우리의 구원을 모든 인생에게 전할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았습니다.
2. 구원받은 새사람의 직책은 화목의 말씀입니다.
18절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먼저 본문은 화목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미 밝혔듯이 죄로 오염된 인간 안에는 결코 양보하거나 손해보거나 희생하려는 화목의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힘의 균형으로 평화가 간신히 유지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비가 내려 더러운 땅을 정화하듯이 의로운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악하고 추한 것은 사람 안에서 시작된 것을 인정하시고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할 근거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당신과 죄인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화목한 것과 더불어 모든 믿는 우리들에게 화목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물론 이 화목의 직책은 그리스도를 경험한 후 하나님과 화목한 기쁨을 맛본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화목의 기쁨을 맛보고 구원의 감동을 아는 이는 자신이 경험한 화목과 구원을 전할 의무를 지니게 됩니다. 이 거룩한 의무는 사실 구원받은 자가 스스로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복음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정상적인 신앙인의 경우 반드시 전파되고 확장돼가는 특성을 갖게 됩니다. 복음은 단순히 사람들의 입술을 타고 전달되는 소식이나 정보가 아닙니다. 복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담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반드시 확산돼 갑니다. 다만 하나님과 화목한 이들, 구원받은 사람들의 영혼과 그 입술의 고백을 타고 만국열방에 퍼져가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된 소식은 모든 복된 소식 가운데 견주할 아무 것도 없는 으뜸의 소식인줄 믿기 바랍니다. 이 이상의 복된 소식은 세상에 없는 줄 믿으시면 또 아멘입니다. 복음 앞에 아멘대로 복음의 능력으로 개인과 가문과 생업이 복을 받을지어다.
21절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3. 그리스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가 성도를 용서함으로 드러난 화목의 근거입니다.
도저히 화목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곳에서 용서를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에 근거합니다. 그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로 밝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가 돼 용서받지 못할 죄인들을 용서하시고자 죄 없는 귀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그리스도의 피는 곧 화목을 이루는 화목의 제물이 되었고 이는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의에서 출발한 선물임을 증거합니다.
즉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이유가 죄로 죽을 우리가 죄없는 그리스도로 인해 용서받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엔 20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주님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생애에 최고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 가장 최고로 아름답게 빛나고 삶이 기뻤고 자랑스러운 때는 언제고 또 그 영광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그렇게도 간절히 원하던 사람과 결혼에 성공해 식을 올리던 그 날입니까? 그렇게도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해 연수원을 향하던 그 날입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중환자실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하여 당신의 이름을 부르던 그 때였나요?
저는 오직 성경에서 그 답을 함께 구하고자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할렐루야. 내가 감히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메시아의 사절이 되다니 이같은 영광이 생애 다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세상의 모순과 내안의 죄성과 결핍 그리고 참으로 가증스럽고 추악한 것들이 높은 데서 소리쳐 한없이 분통터지고 아팠던 젊은 날들, 세상은 온통 신음 투성이라고 결론짓던 종에게 우리 주님 화목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그 때 내밀었던 화목의 손을 또 다른 영혼들을 향해 내밀라고 하십니다. 그가 구원을 받았건 못 받았건 우리는 주의 명령을 따라서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 화목의 기쁨을 먼저 더 크게 품어야 하는 그리스도의 대사관, 사령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해 하는 일인 만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떠나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우리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화목을 전파해야 할 거룩한 의무를 지닌 자로서의 마땅한 도리를 오늘 우리는 말씀으로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화해의 손을 내밀만한 넓은 포용력도, 아량도, 노력도 모두 힘겨운 싸움일 뿐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화목의 본래 개념은 하나님과 죄 속에 빠져있는 인간의 화해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잡고 다른 영혼들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면 먼저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0절 끝에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먼저 화목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와도 화목이 이뤄지지도 않고 화목하게 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시인하고 모셔 들이는 길 외에 다른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행4:12.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나님과 화목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 탁월하면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화목이 나타나게 되고 그 화목은 관계의 복을 열어주게 될 것이고 관계를 통해 삶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거듭 당부합니다. 성경에 선포하신 대로 하나님과 화목하기 바랍니다. 남다른 화목으로 주님이 주목하여 지켜보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추구하고 소원하는 모든 것보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 무엇보다 앞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분 말과 글과 행동에 항상 앞장선다면 이미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목이 이뤄진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과 화목하지 못할 어떤 존재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눈을 잠시 감고 마음을 정돈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하고자 합니다. 큰소리로 아멘 화답하여 복주시기 원하시는 주의 소원을 이뤄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시기 바랍니다. 그 화목은 그리스도를 잘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길 결단하는 자마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화목하는 그리스도의 말씀, 그 구원의 복음을 믿고 복음을 따라 살고자 애쓰면서 또 전하는 모든 주의 자녀들은 주변과 화목케 될 줄 믿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간절히 소원하는 분들은 지금 앉은 채로 오른 손을 높이 들거나 일어서기 바랍니다. 주님 감동으로 종이 축복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소원하는 영혼은 관계의 복을 받을지어다.
선한 이웃과 가정에서 하나님의 화목을 함께 소리쳐 선포하며 노래할지어다.
하나님과 화목을 노력하는 영혼은 이제로부터 생업의 문에 복음이 선파되리라.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결단하는 자, 육신과 영혼이 화목하여 악한 병이 떠날지어다. 환경과 물권마져 믿음따라 영혼이 잘됨같이 형통을 이룰지어다.
주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기 원하는 자, 심령 깊은 곳에 온갖 상처와 수치와 의심과 지혜롭지 못한 것이 멀리 떠날지어다. 아멘. 손을 내리시고 앉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설교를 마칩니다.
주님 그동안 주님바라보지 않고 세상 바라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영광은 모두 주님의 것이니 주께 올려드립니다. 육체에 남은 것은 흔적은 상처뿐입니다. 이제 말씀으로 생명과 답을 주시니 순종할 믿음과 능력과 결단도 주시옵소서. 모든 의가 오직 주께로부터 왔사오니 주여. 오늘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이제 후로는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에 전인격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하옵소서. 하나님과의 화목만이 최고의 덕이요, 복이요, 선인줄 우리가 알았나이다. 우리 안에 소원을 두시고 늘 도우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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