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07. 구정주일설교 <요5:6~7(2-9a). 베데스다물가의 빚진 자들>
여러분의 영혼을 잘 돌보고 바로 계도하고 가르치라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목회자입니다. 때론 입에 담기 어려운 가짜목사가 있어 대다수의 선한 종들이 곤경에 처하고 전도를 막기도 하지만 여전히 성실한 주의 종들, 빛이 가려진 곳에서 소문도 없이 고행하듯 순교하듯 고생들을 많이 합니다.
설교자의 기쁨은 그래서 단순합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잘 받아 창호지에 물젖듯 적셔지고 가슴에 새겨 넣으면 신앙인격이 변하고 신앙인격 따라 삶이 변하면 사는 그대로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잘 받아 연휴에 주님이 여러분을 붙잡고 하시는 승리를 모두들 경험하시기 원합니다.
먼저 이번 우리가 연휴에 만나는 사람들 어떤 이들입니까?
1.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가여운 죽은 영, 불신영혼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혼자 은혜의 자리에 갈 수 없는 영적 소경들입니다. 누군가 도와줘야만 합니다.
스스로 물로 달려갈 수 없어서 언제나 다른 사람이 고쳐지는 일을 바라보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회복의 광경을 부러움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런 그를 관심있게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긴 병자들로 붐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내려간 사람만 병 고침을 받았으니 이 사람에겐 베데스다물의 치유란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평생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그 모습 그대로 불행한 저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의 전형을 우리는 지금 봅니다. 과거의 우리들 모습입니다. 38년이라면 이 환자는 평생을 누워서 병고에 시달린 사람입니다.
간혹 한번 물이 움직이는 베데스다물가에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이 평생 불치병환자는 그래도 가느다란 소망을 버리지 않고 거듭 나와서 병자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거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6절을 함께 읽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2.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곁에 예수의 영으로 찾아주십니다.
내 힘으론 어쩔 수 없고 주님께서 친히 하셔야 이룰 수 있는 것이 영혼구원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말할 것도 없이 간절히 원하고 또 그 구원을 입을 열어 증거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전했지만 도리어 조롱하며 피했고 심지어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베데스다못가의 병자는 나도 언젠가는 치유 받으리라는 소망을 결코 버리지 않고 기다렸지만 우리 주변 전도대상자들은 베데스다물가에 올 생각도 하질 않습니다. 저들에게는 거기서 구원받은 우리의 경험을 잘 말해줘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경이로움이 전달만 된다면 전도대상자, 불신영혼은 결국 그 구원에 관심을 갖게 될 줄 압니다. 먼저는 그리스도의 양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양의 무리와 다른 것을 극명하게 대조해서 일러줘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믿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믿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기대할 것은 전도대상자가 아니라 우리들의 영을 잡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의 영이 지금 전도대상자와 나를 동시에 붙잡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명절에 평소보다 더 많은 친지이웃과 가족들을 만나 즐겁고도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의 기억들을 갖고 헤어지면 다시 만날 때까지 그 모습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베데스다물가의 걷지 못하는 사람처럼 주님이 찾아주셔서 구원받은 빚진 자들입니다.
분명히 누군가 내손을 잡아야만 일어서는 베데스다물가의 환자가 구원받을 자격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 가지 거의 희망이 없어 뵈는 그 현장에 날마다 갔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저 기쁜 일이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확신하며 기대하며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 알수는 없어도 예배만은 인생최대 최고의 행사라고 해서 믿고 앉아 말씀 듣는 우리와도 같습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한 가지를 봅니다.
1) 지금도 진행 중인 베데스다물가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분명 베데스다의 물이야기를 믿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가지도 않았지만 주님은 우릴 찾아와 주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은 타락한 우리의 영혼을 원하셨지만 우리가 기다리고 간절히 구한 것은 영혼이 아니라 잘 먹고 잘사는 현실적인 육체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죄에서 풀어주셨고 사망의 사슬을 끊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묶어주셨습니다. 집 한 채만 달라고 했더니 빌딩주인이 찾아와 “내 어여쁜 사랑, 내 신부야 함께 가자”며 산데리아 휘황찬란한 별장으로 신혼여행을 예약했는데 거기는 해도 없이 밝고 시계도 없어 늙지도 않는 영원한 곳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냇물이 졸졸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아직도 베데스다물가의 구원은 저와 여러분에게 진행되고 있는 믿음의 사건인 것을 믿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과 앞으로도 작고 큰 베데스다물가의 구원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선한 경주를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이 시간 주님이름으로 촉구합니다.
더욱 간절히 주님 만나기를 구하고 주님의 명령을 사모하며 주님의 음성듣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네가 낫기를 그리도 원하는가?” 다정한 주님음성이 온몸을 휘감게 될 줄 믿습니다.
2) 소문조차 들어보지 못한 자들에게 꼭 전해야 할 예수그리스도 구원의 영생수 샘물입니다.
38년 그보다 더 기다려도 아무 고침을 받지 못한 성경이면의 수많은 사람들, 구원의 샘터가 어디 있는지 소문조차 들어보지 못한 무수한 영혼들이 세상에 널려있습니다. 72억 세계인구가운데 기독교인이 삼분의 일 정도입니다. 거저 받은 구원 앞에 이제 우리가 어찌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누군가를 통해서 우리도 구원의 복음을 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반드시 전해야 하는데 연휴에 만나는 가까운 이들에게 어찌 복음을 전할 것인가? 목사라는 자가 후처와 함께 어린 자녀를 때려 숨지게 하는 악한 세상에서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기도하시기 비립니다. 연휴를 기도로 시작하세요. 기도하지 않고 만나는 친지 앞에 무슨 일을 기대하겠습니까? 수시로 간절히 기도하면서 만나야 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베데스다물가에 빚진 자들”입니다. 어떤 빚입니까? 구원에 따른 끝없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왜 빚이라고 합니까? 구원받은 자 곧 전해야 할 자가 그 구원을 전하지 않는다면 우린 모두 빚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빚지고, 배필에게 빚지고 자녀들에게 빚지고 이름도 까맣게 잊은 누군가에게 빚지고 그조차 잊고 살아갑니다. 본문 8,9절을 함께 읽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3. 평생 걸어보지 못한 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몽돌성도여러분. 기쁜 일보다는 아프고 고달픈 일들이 많은 현장에서 얼마나 힘드십니까?
오늘 주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었고 이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행복과 평안과 부요를 끝없이 방해하는 평생 깔고 앉아 있는 근심의 방석, 불안의 돗자리, 열등감과 실망의 의자, 편하기만을 바라는 안일추구의 쇼파, 아집과 명예의 자리. 고정관념 등 많은 고급형 안락의자가 있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주님의 음성이 여러분과 여러분가정과 가문 위에 그리고 여러분 몸과 일터에 날마다 들리시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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