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 27. 주일예배<민34:1-15.(1-5) 이스라엘자손의 기업>
본문 다섯 구절은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자손에게 주실 땅의 경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방향 순서인 남서북동의 순서를 따라 지경을 정해주십니다. 본문에 담긴 몇 가지를 살펴 은혜를 함께 받고자 합니다.
1-2절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이스라엘자손의 기업은 가나안 땅 어딜 봐도 막히지 않은 사방 전부라는 것입니다.
1. 가나안 사방의 땅을 주셨습니다.
1) 젖과 꿀이 흐르는 넓고 아름답고 땅입니다. 출3:8절에는 하나님이 애급에서 그들을 구해내신 후 인도해 들인 땅은 아름답고 광대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나무랄 데가 없는 좋은 땅, 훌륭한 기업이 되는 땅, 사방이 열려있는 땅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가장 공평하게 받는 선물이 하루 24시간이라는 생명과 넓은 활동공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사용할 권리는 공평이라는 잣대대신 능력별, 등급별이라는 잣대에 제한되는 것이 사회의 시작입니다. 체급별로 경기를 하듯이 자기에게 알맞은 활동공간이 실질적인 터전이 될 것이고 그게 공평의 실현입니다. 약속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의 눈에 뵈는 사방 모든 가나안 땅이 그들의 활동무대가 됐고 약속에 따른 정착지였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약속 따라 주어진 놀라운 것들을 이 시간 기억해내기 원합니다. 내가 내 능력으로 구한 것 같아도 실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허락하신 여러 가지 선물인 줄 믿습니다.
세상에선 노력해서 구했으나 말씀 안에서는 언약을 믿었더니 노력해서 구할 수 없는 믿음과 천국을 주셨고 하늘백성으로서 이 땅을 지나는 동안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채우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출6:8절입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2) 아브라함후손에게 기업으로 약속된 언약의 땅입니다. 약속의 땅이 갖는 각별한 의미는 그 땅의 안전과 행복을 하나님이 책임진다는 보장성, 그것입니다. 언젠가는 떠날 사람과의 약속이 아닙니다. 영원히 살아계시고 자애로우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영원불변한 약속입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3) 기업이 되는 토지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서 땅의 소유가 인간으로 돼 있다는 것 자체가 성경을 벗어난 인간이 죄 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류역사에서 땅의 주인은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왕가로 옮겼다가 다시 국가로 옮겨졌고 이젠 일부 국가와 단체와 개인에게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공평이 이뤄지진 않습니다. 땅이 가인의 죄로 아벨의 피를 받은 이후 흙으로 이뤄진 모든 터는 민족 간, 개인 간에 피를 흘리는 분쟁의 씨가 될 뿐입니다. 그럼에도 저와 여러분, 약속을 붙잡은 믿음의 백성에게는 분명한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땅, 하나님이 허락하신 활동공간이 보장된 줄 믿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보장된 활동공간은 그 활동공간에서 약속의 내용이 활발하게 선포될 때 비로소 큰 가치를 드러내게 됩니다. 무슨 약속입니까? 신5:40절입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화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명령을 순종하며 살아갈 때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우시고 온전케 하십니다. 그러나 이미 허락하신 많은 필요의 충족도 믿음의 연약으로 인해 다 받지 못하고 버거운 씨름을 면치 못하는 백성을 행해 주님은 오늘도 쉬지 않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 구하는 것이 과연 나를 위해 구하는가 아니면 너를 위해 구하는가? 육체만을 위해 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고 있는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지어다. 아멘. 세 번째는 지경내부를 살펴봅니다.
2. 지경 안에 험한 곳과 수치의 기억도 있습니다.
남쪽의 경계인 신(thin) 광야는 가나안 땅을 탐지한 곳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모두 믿음없는 정탐보고로 인해 하나님 앞에 책망받은 가데스바네아의 실패로 유명한 곳입니다. 한편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 또 실패한 므리바 물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5절입니다.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까지 이르니니라.” 5절이 밝히는 가나안의 경계선은 나름대로 국경이 갖는 의미가 있는데 거긴 사해바다, 광야, 바다 등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결코 그렇지 못한 것들도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을 눈에 보이는 푸른 초장으로 해석한다면 그건 아주 단순초보적 시각입니다. 젖과 꿀은 하나님의 동행을 떠올리면서 우리 삶에 적용이 돼야 그것이 약속의 땅이 됩니다. 약속의 자녀가 주의 약속을 믿고 말씀에 사로잡힌 채 사방 둘러보면 가나안 아닌 곳이 없어야 합니다. 왜 주님이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을까? 나 하나 온전치 못하면 완벽한 우주도 다 소용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땅치 않은 환경도 내가 변하여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면서 약속을 굳게 붙잡아 믿고 일어선다면 거기가 천국이 시작되는 하늘 문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가운데는 없어도 될 것도 간혹 보입니다. 정말 버리고 싶은 혈기, 급한 말투, 허둥대며 침착하지 못한 것, 필요도 없이 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버릇, 물어본 것 되묻고 누가 잘되면 초조해지는 시기심, 내가 날 알지하는 열등감, 사는 게 이런 거야?라는 우울증, 왜 이렇게 생겼나 맘에 들지 않는 외모나 신체의 특정부위 등 실로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외모나 가문이나 성품 등 영 마음에 안 들지만 분명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툴툴 털 수도 있었던 것을 굳이 내가 거머쥔 애물단지들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붙들고 있다고 달라질 건 없는데 잘라내질 못합니다. 보내질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님이 주신 것은 모두 소중한 것임을 이 시간 진심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를 알기 전 먼저 감사하고 기뻐하는 게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는 방법이요, 깊은 믿음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받은 약속의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곳 외에도 악조건의 토지와 사막과 바다가 있는 것은 도리어 그들에게 많은 것을 제공하게 됩니다. 그것들은 자칫 풍요로 교만해질 수 있는 백성들에게 과거 피눈물 나던 노예시절을 기억나게 할 것입니다. 신앙실패로 민족적으로 아픔을 겪었던 날들을 떠올리며 겸손하게 할 것입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우리가운데 있는 연약을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은 곧이어 주실 하나님의 풍성 앞에서도 그것들을 잃지 않도록 우리를 여전히 겸손하게 할 수 있는 귀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귀하고 깊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모든 여건과 환경을 불평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고전13:4절에 사랑은 오래참고로 시작하여 7절에서 다시 “모든 것을 참으며”로 강조합니다. 그리고 끝에 한번더 “모든 것을 견딘다.”로 마감합니다. 하나님은 진정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풍성하고 선한 모든 것들로 좋으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잘 아시는 애3:33절에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종종 고통 가운데 두시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복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복되다는 것은 주신 복을 낭비하지 않고 요긴하게 사용해서 복 주신 분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받은 복을 땅에 흘리고 다녀서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다면 그 복은 이미 복이 아닙니다. 도리어 화의 시작이 됩니다. 양떼 가운데 염소를 두는 것처럼 복 가운데 복을 견고하게 하는 불편과 부족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원합니다. 이 믿음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이렇듯 복을 견고히 하는 불편 이른 바 쐐기복은 육신과 성품과 관계 속에서 늘 지속적으로 자신을 괴롭힙니다. 이스라엘이 명실공히 전 세계의 중요한 것, 즉 식량, 에너지, 금융, 정보 등을 장악할 수 있었던 민족근성은 바로 이러한 불편한 환경덕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세계 각 곳에 흩어져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언제나 조국건설과 메시아대망을 연결시켜서 삶의 표상을 삼았습니다. 그들이 비록 그리스도예수를 영접하지 않아 안타깝지만 그들의 민족혼은 이미 광야에서 고난과 불편을 몸으로 뼈저리게 겪으면서 형성된 야무진 고품격의 민족성인 것을 세계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 미국은 제 2의 가나안이라고도 합니다.
Tip] 구약시대 가나안이 이스라엘민족의 인큐베이터였다면 현대 전세계의 으뜸인 미국, 미국의 40% 국력을 쥐고 있는 2%의 유대계 미국인은 미국을 인큐베이터로 지금 세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계 시오니즘 후리메이슨은 결국 돌아와야 할 남은 자들이라고 성경은 밝힙니다. 예수그리스도교회의 인큐베이터가 될 줄 믿습니다. 저들은 껍질 단단하고 영양 충실한 계란이요, 복음은 생명의 씨가 되어 북한주민의 독특한 국민성과 자원이 대한민국과 교회에 귀속되듯이 결국 마지막시대의 위대한 하나님나라건설에 사용될 줄 믿습니다. 믿는 자에겐 소망뿐입니다. 설렘뿐입니다. 그래서 그치지 않는 찬양이 있는 겁니다.
주님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끝까지 싸워야 할 영적전투입니다. 우리들의 힘으론 백전백패입니다. 그러나 우릴 만드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약속의 주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을 때 그 현장이 어디일지라도 백전백승입니다. 즉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안에도 천국과 지옥은 공존하고 우리 안에도 천사와 마귀가 함께 살면서 끊임없이 다툰다는 말씀을 거듭 전합니다. 인생은 결국 내가 누구 편에 서는가의 문제입니다.
깊은 영의 기도로 도우시는 주님 손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놀라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을 확신하며 주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미 주시기로 작정된 많은 것들로 하나님손이 가득합니다. 믿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주님하신 말씀을 심령과 육체의 비석에 끌로 파서 새기듯 새깁니다. 더욱 주님께 집념하고 심취하여 세상 이기는 승리자들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를 잘 섬기고 믿고 따르는 것만이 삶의 능력이고 승리이며 풍성이자 기쁨인 줄 믿습니다. 주님의 피를 통과하지 않는 물질과 건강, 눈에 뵈는 것들은 결국 멸망의 신속한 도구가 되는 것을 알았사오니 한평생 일년삼백육십다섯날 일분일초도 주님을 망각하는 어리석은 영혼 우리가운데 없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받은 복을 세상에 나눠주며 주신 복음 예수그리스도를 마음껏 증거하기에 부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하실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일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02.14. 주일예배<민35:1~15.(1-8)레위인의 거처와 도피성> (0) | 2016.02.14 |
---|---|
2016.02.07. 구정주일설교 <요5:6~7(2-9a). 베데스다물가의 빚진 자들> (0) | 2016.02.09 |
2016.01.24.주일설교<롬6:17~18.본래를 기억하는 사람> (0) | 2016.01.25 |
2016.01.17. 주일낮예배<욘2:1-4. 돌이키는 요나> (0) | 2016.01.16 |
2016.01.10. 주일예배<민33:50-56. 악은 다 부서 버리라.> (0) | 2016.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