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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5.11.22. 주일예배설교<요4:27-38. 예수님의 양식>

by 설렘심목 2015. 11. 22.

2015.11.22. 주일예배설교<4:27-38. 예수님의 양식>

 

유대인들이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마리아 땅에 주님이 들어가셨습니다. 우물가에 물을 길러 나온 여인과 대화를 하십니다. 사마리아에 들어갔다는 것은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거기다 낯선 여인과 대화한다는 건 더욱 파격입니다. 그런데 더욱 주목해야 할 일은 여인이 한낮에 물을 길러 나왔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중근동지방에는 한낮이 얼마나 뜨거운지 대부분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을 잡니다. 볕이 뜨거워 남들이 다 쉬는 적막한 그 시간을 틈타 얼른 물을 길러 나온 겁니다. 이 여인은 모든 사람의 눈을 피해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상처가 깊고 열등감이 많은 여인입니다. 아무도 사귀거나 만나지 않고 살아갑니다. 과거를 묻지 말라는 거예요.

제자들이 이러한 광경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감히 여쭤볼 용기도 없는 것은 예수님의 행동과 말은 언제나 진리,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주위사람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의 실존을 다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진리는 여전해서 변함없이 선하고 귀한 일들을 이루어 갑니다. 다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을 오해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하나님이건 사람이건 오해하면 불편하고 불행합니다.

 

주님과 몇 마디 대화하던 여인이 그만 놀라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내 인생을 꿰뚫어보는 이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가 아닌가?”외칩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이 싫어서 다른 사람이 다 쉬는 뜨거운 대낮에 우물에 나갔던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둔 채 동네 한 가운데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어 놀라운 소식을 전한 겁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모든 부끄럼을 내던지는 용기이며 불행과 슬픔이 떠나는 능력과 소망입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1:16-17)이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복음은 내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소식입니다. 그 어떤 소식보다 감동이어야 합니다. 다른 모든 불행한 사건들을 단번에 삭혀버리는 감동이요, 기쁨인 것입니다.

 

사마리아전도는 주님께 큰 기쁨이 됐습니다. 제자들이 잡수실 걸 가져왔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으신 채 말씀하기를 내겐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임박한 추수와 거기 따른 기쁨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예수님의 양식입니다.

 

양식이라는 것은 먹고 살아갈 힘을 얻는 음식물을 말합니다. 생명있는 존재들은 먹지 않고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육신의 삶을 위해 음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영,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곧 주님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 그것이 우리 몽돌비젼인도 먹어야 할 영적 양식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양식에 이어 이것이 곧 추수로 이어져 설명하십니다. 35절입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이 역시 제자들의 육안과 예수님의 영적해석이 엇갈리는 부분입니다. 제자들은 들판의 곡식을 보며 넉 달 후에 추수할 것을 말했지만 주님은 지금 보이는 사마리아 동네에 자신을 보고 모여든 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36~38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도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주님께선 추수 꾼을 두 부류로 나누어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일을 해도 같은 기쁨을 맛보는데 복음을 먼저 받은 이들은 그 복음의 감동과 영생에 대한 확신으로 복음전파에 따른 삯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주님은 당신의 양식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데 그 양식이 추수 꾼과 이어져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씨를 뿌리든 거두든 주님의 귀한 추수 꾼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바라시는 양식과 그 추수는 어떻게 상관하며 이뤄져 갑니까?

 

1. 주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개인의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은 이 영적양식에 대해 예민한 감각과 부담이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에는 예물, 제사에는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이 예물이 바로 주님의 바른 양식으로 채워져야 할 줄 믿습니다. 예물 중 가장 소중한 예물은 저와 여러분의 몸입니다. 몸엔 한 주간 어떻게 살았느냐가 마치 CCTV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다 속여도 살아계셔서 보고 계신 하나님과 자신의 몸은 속이지 못합니다. 진정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애쓴 흔적이 있는가 아니면 내 몸이 가는대로 부끄럼과 어리석음 속에 팽개쳐 놨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몸에 기록된 내 삶의 행적이 방종과 죄로 찍혀있든지 성실과 경건으로 찍혀있든지 주님은 환경과 건강으로 또 설교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잘 사귀어서 나무라는 음성이 아니라 칭찬하는 주님의 음성, 온유한 위로의 음성 듣고 기뻐하는 우리 모두이길 바랍니다. 이제 34절에서 주님 밝히시는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1) 뜻을 행한다는 건 삶 전체로 이뤄가는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뭘 해도 오직 하나님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주님향해 달려가기 축복합니다.

14:7-9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하심이라.” 아멘. 모든 행위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2)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룬다는 건 결과에 관한 한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을 쳐서 낮추고 최선을 다해도 그 열매에 관한 한 끝까지 보장할 능력이 우리 안에 없는 것 우리가 잘 압니다. 시편 127편에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우리 힘으로 온전히 이룰 수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에겐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은 곧 능력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과 사역에서 애쓴 전부를 하나님의 결론에 맡겨드리는 것이야말로 온전히 주의 뜻을 이루는 능력입니다. 맡기는 믿음, 참으로 우아하고 어여쁘고 복된 믿음, 성실하게 일한 뒤 확실하게 맡기는 믿음이길 축복합니다.

 

2. 양식은 삯을 받은 심는 자와 거두는 자에 의해서 이뤄집니다.

 

주님의 양식을 누가 거둬들입니까? 삯을 받은 자들이 심은 자들과 같이 거둬드리고 그것은 함께 기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로 나뉜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각기 서로 다른 일을 다른 곳에서 합니다. 그러나 같은 기쁨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추수 꾼을 둘로 나눠 이미 삯을 받은 이와 거두는 이, 두 부류의 특성을 살펴봅니다.

1) 이미 삯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먼저 받은 자들은 그 복음이 이미 훌륭한 품삯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복음은 생명보다 뛰어난 영생의 확정판결에 따른 소망과 기쁨입니다. 정녕코 생명보다 귀한 복음입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은 기꺼이 고통과 죽음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 구원의 감격으로 이제 다른 이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이미 받은 삯으로 빚진 자가 됐기 때문입니다. 빚지고 마음 편한 자가 있을까? 병원에 가야 합니다.

2) 거두는 이들입니다.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같은 기쁨에 든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한 사람이 조금도 변화가 없어서 속이 상했지만 몇 년 후 다른 교회에 잘 다니고 있다는 소식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전도가 실패한 건 아닙니다. 반면 누군가 많이 노력해서 거의 다 된 전도에 내가 툭 건드렸더니 기다렸다는 듯 쉽게 따라 출석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오른 쪽 주머니에서 왼 편 주머니로 옮기는 것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생명책에 올려 진 사람들은 언젠가 구원받습니다. 내게서 결론이 안 뵌다고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결론은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다만 노력하고 감사하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38절 말씀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할렐루야. 무슨 말씀입니까? 35절 아래를 읽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 다 익어 걷어 들이면 되는 것이 선교와 전도입니다.

 

그냥 노력없이 거저 얻은 곡식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 우리가 전도해서 거두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된 자를 찾아가서 데려오는 것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양식거리는 주님께서 친히 마련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은 어디 있습니까? 다만 말씀에 순종함으로 끊임없이 복음을 입술과 삶으로 전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그 복음전파로 우리 몸이 쓰임 받을 때 주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함께 동역자가 된다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복음전파와 영혼구원은 교회운동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교회생존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전도나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되 그 사용되는 도구가 바로 우리 성도들인데 그래서 너희가 노력하지 않은 것을 다만 거둬들이러 보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지나칠 수 없는 중대한 교리하나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모든 선한 일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하필이면 부족하고 악한 내가 사용되었다는 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 쓰시기에 결코 합당치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끝내 고쳐지고 바로 세워져 결국 하나님의 영광된 도구로 쓰이게 된다는 겁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훌륭한 이들 참 좋은 분들이 많은데 어쩌다 이 귀한 일에 나란 말인가?

 

저는 잠을 자다가 간혹 뒤척이며 순간 정신이 들 때 종종 구원의 감격을 즐기는 아주 독특한 버릇이 있습니다. 묵상 끝에 주님 주신 것이니까 여러분도 따라 해보시면 유익합니다. 뒤척이다 정신이 잠시라도 들면 즉시 아 참 내가 이 담에 지옥가는 게 아니라 천국 갈 사람이잖아.” “, 하나님 이렇게 따듯한 잠자리를 주시다니” “코고는 소리를 듣다니” “여기가 병원이 아니라니

 

다시한번 강조해 선포합니다. 모든 선하고 좋은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작품이요, 흔적입니다. 상처는 하나같이 모두 인간의 결과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안에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을 구별하는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좋은 것들은 다 주님에게로부터 온 것이고 잘못돼 불편한 건 다 나의 부족과 욕심이 낳은 것들입니다. 주님께로 온 것은 자꾸 키우고 장려해서 기념하고 내 것들은 지속적으로 죽여가야 합니다. 이걸 영적전투라고 하는 겁니다.

 

귀한 몽돌비전인 여러분, 주님 양식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부지런히 다니며 하나님의 곳간, 교회로 거둬들이고 거둬들인 자나 씨를 뿌린 자가 함께 기뻐하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라는 것 잊지 마세요.

우리는 이미 영생이라는 품삯을 받은 자들입니다. 살펴보면 넘치는 천국의 풍성이 언제나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3시에 온 자나 6시에 온 자가 꼭 같이 품삯을 받았습니다. 욕심이 가려서 안 보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도 어느새 다 지나고 있습니다. 곧 송구영신 자정예배가 또 다가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것이 우리 주님의 기뻐하시는 양식입니다. 그 기뻐하심은 하나님의 통치권확장운동입니다. 그리고 그 확장은 교회운동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성장하는 것의 기초는 성도개인의 믿음성숙과 직결됩니다. 신앙성숙은 예배에 충실한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배는 신앙을 신앙은 인생의 길잡이가 됩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친교는 불언 간 여러분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만져주시는 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행복한 일입니다. 세 개 전도팀의 출범은 특별한 만복의 출발입니다. 전도팀의 활동이 주님의 양식을 내안에서 먼저 잘 삭혀서 올려 드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나가서 익은 곡식 거둬드리고 주님께 풍성한 양식이 되어 예물로 드려지는 저와 여러분의 살아있는 예배가 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