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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5.11.01.주일예배<민31:13-20. 모압의 처형>

by 설렘심목 2015. 11. 6.

2015.11.01.주일예배<31:13-20. 모압의 처형>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압을 쳐서 파하고 늠름하게 돌아와 모세와 제사장들과 족장들의 환영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들 천부장, 백부장들은 책망을 듣게 됩니다. 15-16절을 함께 읽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책망과 함께 다시 그들의 처형을 명령합니다. 본문을 살피며 은혜를 나누기 바랍니다. 17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 중에서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아는 여자도 다 죽이고

 

1.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를 경험한 여자도 다 죽이라는 명령입니다.

 

농사로 보면 남자는 씨앗이고 여자는 밭입니다. 여자는 밭으로서 씨를 품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모압의 남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없어서 다 처형대상입니다. 여자들은 그 남자와 동침한 경우 우상숭배와 불신앙의 씨를 받아들인 이유로 다 죽이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우상숭배에 오염된 씨가 몸을 통해 경험된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에서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사내아이는 다 죽이라고 함으로 악은 종자의 뿌리까지 뽑기를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 심령 밭에 다른 어떠한 가시엉겅퀴 같은 불순한 씨나 오염된 교훈이 씨를 뿌리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인 복음의 씨만 심겨져야 합니다. 요즘은 말 그대로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사이버시대입니다. PC를 켜면 그야말로 앉아서 실시간으로 세계를 한눈에 봅니다. 넘쳐나는 기가 막힌 정보와 소식 속에서 도리어 어지럽고 질립니다. 오늘 우린 모압여인들을 반드시 처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우리들의 심령 밭을 살피면서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내면과 신앙 속에 자칫 정보의 홍수 속을 가는 현대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시대적인 정신세계의 오류를 잘 정돈해가는 일입니다.

모압여인들처럼 발람의 꾀를 따라서 브올에게 절하게 하는 각종각양의 정신적 술책이 사단으로부터 맹공격중입니다. 대표적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예수그리스도와 무관한 그릇된 사상과 이념들입니다.

포스트모던이즘, 일루미나티로 세분된 시오니즘의 후리메이슨조직, 뉴에이지사상, 유물론공산주의, 범신론, 민족민속우월주의, 단학, 마술, 심령학, 최면술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제각각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저들은 우리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와 세를 과시하면서 계시록의 일곱 번째 용으로 합류해 가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리얼리즘에 반동적으로 생긴 모더니즘을 먼저 이해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모더니즘은 산업혁명, 실증주의, 유물론으로 이어지는 자연주의(리얼리즘)에 의한 지나친 객관존중에 저항하여 생긴 19세기후반의 인간존중사상이 그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1960년대 이후의 문화현상인데 기존의 객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전통과 인습으로부터 개인의 독창성에서 찾아 존중하는 추세로 가고 있습니다.

대중문화로는 스파이더맨이나 매트릭스가 이러한 문화의 현상이고 찢어진 청바지에서 단정한 차림에 대한 저항을 찾아 만족하는 것입니다. 종교적 측면에서는 해체주의 신학이라고 보아 무방한데 이들의 생각에 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허구적인 존재라고 보는 것입니다.

후리메이슨은 유대인으로 구성된 자유석공조합인데 그 세력이 가공하여 전 세계의 식량과 정보와 에너지를 점령해 유대의 세계정복을 꿈꾸며 형성된 집단으로 대단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계획가운데 기독교말살계획도 물론 들어가 있습니다.

뉴에이지범신론 또는 다신론사상입니다.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려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 그 자체가 나름대로 모두 신적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뉴에이지음악은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바로크에서 클래식, 근대음악, 현대음악, 전위음악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딱히 이름할 것이 없어서 붙여진 신세대음악이라는 이름인데 거기에 지나친 마이너존이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사단은 멜랑꼴리한 감성을 타고 들어와 궁극적으로 울적한 기분을 만들고 삶을 회의하고 죽음을 미화하고 동경하게 합니다.

단학은 단전호흡, 기공수련, 명상, 기체조 등은 육신과 정신이 잠재된 에너지를 계발해서 신의 도움없이 전혀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믿습니다.

민속은 결국 미풍양속가운데 살며시 파고 들어와서 조상의 풍습가운데 무속과 미신까지 끌어들여 우상을 섬기게 하는 굿, 푸닥거리, 점궤 등이 포함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이 하나 되자는 그럴싸한 구호아래 타민족은 철저히 배타하게 되는 민족우선주의입니다. 이 민족주의는 기독교신앙을 정면 거부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는 우리 민족의 결집동기를 단군에서 찾고자 하기 때문에 결국 신화 속의 민족 안에 갇혀서 전 세계 인류의 하나님, 만유의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심령학, 최면술, 마인드콘트롤, 마술 등은 인간의 영혼을 혼미케 하는 전형적 미신에 속하는 것입니다. 물론 초과학적이고 신비한 부분이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 스스로 삶의 행복을 추구하여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범죄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이는 모압의 여인들이 저지른 범죄가 살며시 이스라엘을 브올에게 절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현대 그릇된 사조(思潮)가 순결한 그리스도인들을 엉뚱한 곳으로 유인하여 얼마든지 타락하게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런 사악한 우상의 씨를 품은 모든 여인을 처형하라고 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이비기독교단체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복 받은 자 중에 다시 복을 받은 자인 줄 믿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교회는 정녕 복에 복을 받아서 신앙의 그 모습이 주앞에서 어찌나 아름다운지 우리 주님께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좀 개척이 되고 불이 붙었다하면 예외없이 머리아프게 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성도들을 유혹해서 이상한데 데려가고 이상한 것 가르쳐서 오염시키는 원수 마귀사단의 하수인이 됩니다. 오늘 시간상 이들의 예를 다 들 수는 없지만 몇 가지는 알고 가길 원합니다. 먼저 이단과 사이비는 비슷하지만 좀 다릅니다. 이단은 처음 시작이 정통 기독교로 시작한 것이고 사이비는 처음부터 잘못된 곳을 말합니다. 그리고 증산도 같은 곳은 엄격히 말하자면 사이비나 이단에 들지도 못하는 우상종교입니다. 또 몰몬교는 처음부터 잘못된 곳이어서 기독교와 비슷하지만 참 신앙이 아닙니다. 1:8절에서는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단은 통일교나 신앙촌의 전도관, 박태선장로가 이단입니다. 문선명이나 박태선이 처음엔 신비은사가 탁월한 기독교지도자였습니다. 제칠일안식교가 또 교리에 의한 이단입니다.

19781118일 남미 가이아나 정글 오지에서 917명의 신도를 집단자살하게 한 인민사원의 교주 짐존스가 기억납니다. 이단과 사이비와 우상종교에 대해서는 그 실례가 너무나 많아서 여기서 마칩니다. 19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칠일동안 진 밖에 주둔하라. 무릇 살인자나 죽임을 당한 사체를 만진 자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몸을 깨끗하게 하고 너희의 포로도 깨끗하게 할 것이며

 

2. 피를 묻힌 자는 진 밖에서 있다가 칠일 후에 들어와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전쟁에서 묻었던 개인의 일로 묻었던 손에 피를 묻힌 자는 부정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같이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도 성전건축은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밝히는 바, 진 밖에서 기다리는 칠일간의 정결기간은 무엇을 뜻하는가?

 

1) 부정한 손을 깨끗이 돌이키는 회개의 시간입니다.

칠일간의 정결기간은 생명을 다룬 인간의 손이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청산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피를 묻힌 손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그 명령을 준행한 것이라 하더라도 생명을 해한 손은 일단 거룩한 진에 들어오지 못하고 칠일간 피묻은 손을 깨끗이 하는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순결을 존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는 대목입니다. 악한 자를 쳐 없애도 그 쳐 없앤 손을 다시 거룩한 손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은 사라진 악한 자의 생명보다 그를 처단한 자의 손이 더욱 귀하게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칠일 후 다시 진영에 들어와 함께 하는 거룩한 손입니다.

칠일간이 지나면 피가 묻은 손은 온전히 회복되어서 이스라엘진영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칠일간은 그러므로 징계의 시간이 아니라 소망의 시간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잘 이루고 영광의 입성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종종 애매히 당하는 칠일 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유도 모른 채 하나님의 응답도 없이 기다려야 하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허락한 칠일간이 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위로하고 계십니다.

칠일은 칠일이지 영구한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벅찬 기대의 날입니다. 짧은 나그네길을 가는 동안 우리는 다 알 수 없는 많은 칠일 간을 만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결국 주님 앞에 이르러 시간도 없고 태양도 소용없는 맑고 밝은 천국에서 살 때엔 왜 이러한 칠일간의 시간들이 필요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여전히 주님께 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일이 다가와도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신 뜻을 조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통하여 이뤄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 오직 예수. 오직 주께 영광으로 복된 저와 여러분되시기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