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강단

2014.08.10. 주일낮예배<대하20:12-13.(1-30)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by 설렘심목 2014. 8. 13.

 

2014.08.10. 주일낮예배<대하20:12-13.(1-30)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사무엘서와 열왕기서가 다분히 정치적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 역대기서는 제사장적 관점과 영적인 관점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먹는 말씀 역대하 20장은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합하여 아람과 싸워 패전한 19장의 내용에 이어서 난세의 유다를 잘 치리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압연합군의 침공을 오직 믿음으로 해결하는 놀라운 신앙인, 여호사밧왕이 나오는데 오늘 우리가 집중하고자 하는 말씀의 초점은 위난 앞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여호사밧과 그 백성들의 신앙고백입니다.

먼저 8-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1. 부르짖으면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약속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 말씀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것을 지켜보시며 도우셔서 끝날까지 인도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우리하나님이 결정하신 일은 아무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분의 결정은 일방적이며 또 선포적이며 타협이 없습니다. 그 선포가 이스라엘을 구원키로 작정하셨습니다. 오늘 영적이스라엘 예수 안에 구원받은 모든 영에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하는 짓을 보면 도저히 용서하기 어려운 민족과 인생들, 그러나 타락한 가운데서도 우리 하나님께선 여호사밧이라는 신실한 왕을 보내주셔서 민족이 멸망할 위기 직전에 무릎 꿇도록 그의 마음을 주장하셨습니다.

 

렘33: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부르짖으라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신 하나님께서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여기 구원하실 분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신다고 하신 약속을 믿는다면 당연히 달라고 해야 하고 믿는다면 기다려야 합니다.

모압과 암몬과 마온사람들 몇이 연합하여 유다를 치러 큰 무리를 이끌고 쳐들어오려고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매우 긴박한 상황 앞에 놓인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즉시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금식을 명령합니다(3절).

 

세기의 모든 훌륭한 지도자는 위난시마다 먼저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중에 잘 아시는 에이브라함 링컨이 있습니다. 그는 남북전쟁 이전부터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전쟁중에도 그의 막사에는 종종 흰 손수건이 걸려 있었습니다. 부관은 그 손수건이 걸려 있는 한, 어떤 경우에도 기도하는 링컨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것은 없다는 링컨의 신앙고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12-13절을 함께 읽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2. 무능가운데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인생입니다.

 

“이 큰 무리를 우리가 상대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칼빈의 기독교 5대교리 가운데 전적타락이란 부분이 첫 번째 등장합니다. 인간은 에덴의 범죄 이후 타락을 했는데 이 때 가장 큰 손실은 영의 죽음입니다.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영과 교통하는 챤넬 즉 통로, 창을 이루는 곳입니다.

이 영이 범죄로 감각기능을 잃고 생각하는 것만 발달하여 꾀로 살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꾀는 더욱 발전하여 인간사회가 범죄의 과학화, 지능화하는데 기여할 뿐입니다. 영리하면 영리할수록 범죄는 교묘해지고 수사기법도 기술적으로 바뀔 뿐, 인간의 본성은 결코 선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사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격의 발전과 성숙은 조건 안에서 자신을 위장하는데 매우 탁월한 능력을 더해줍니다. 중요한 건 인격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선의 결국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어서 거기 하나님을 등진 패역과 배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덴의 범죄로 인한 타락은 전인격적인 타락으로 모든 인생 전반을 파괴하게 됐습니다. 분쟁과 전쟁과 굶주림과 질병과 온갖 수치가 가득한 인생이 됐습니다. 잠언서 말씀처럼 “헛되고, 헛되고 또 헛되나니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보통 인생을 고통의 바다를 헤쳐 가는 작은 한척의 일엽편주로 봅니다. 지난 주엔 멍에를 지고 짐을 끄는 숨찬 소로 비유했습니다.

 

전적인 타락, 이 완전타락은 완전 무능, 절대무능 속으로 인생을 끌고 가서 무력화했습니다. 이 무능은 따라서, 본래 타락 전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해결받지 못합니다. 타락전의 에덴은 오직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그 회복이 가능하게 됩니다. 한 개인의 회복과 치유, 가정의 회복과 치유, 나라의 회복과 치유가 그것들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아하셨던 하나님께 돌아가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예수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믿기를 축원합니다.

욜2:32절에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이름을 간절히 부르고 찾은 자는 먼저 믿었기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부르짖었다는 것은 간절하게 믿고 원하며 불렀다는 것이고 주의 이름을 믿고 부르면 반드시 구원을 받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모압연합국의 군사력은 유다를 치고도 남을 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도 눈으로 판단하여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으로 인하여 즉시 엎드렸습니다. 두려워 떤 것이 아니라 두려워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두려워하는 것까지는 감각입니다. 문제는 그 감각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신앙과 불신앙이 갈라집니다.

여호사밧왕은 두려움을 느끼자 즉시 엎드렸고 백성들에게 금식과 기도를 명했습니다.

 

13절을 함께 읽습니다.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온 백성이 다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Coram DEO, 라틴어로 하나님 앞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코람데오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앞에 서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간섭아래 살게 되며 하나님의 영향력은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능력이시기 때문입니다.

유다 모든 사람이 온 가족과 함께 여호와 앞에 섰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5절 끝부분을 제가 읽습니다.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여러분. 두렵고 큰 문제의 산 앞에서 떨고 있습니까? 하나님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대책은 오직 주님을 의뢰하는 것이오, 능력이란 주를 믿는 믿음뿐이오니 오직 주만 바라니이다.”그렇게 코람데오의 위치와 고백이 있다면 필경 “그것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대언자의 음성을 듣게 될 줄 믿습니다.

17절에서 22절을 보니 유다군대는 항오를 벌이고 암몬연합군에 마주서기만 하면 싸움은 여호와하나님이 하시기로 하고 유다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24절을 함께 읽습니다. “유다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 앞에 서 있는 자마다 주께서 이루시는 승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땅에 엎어진 악의 시체들을 싫도록 보게 될 것입니다. 쉬지 않고 밀려드는 파도처럼 주변을 에워싸는 위협과 고통이 끊임없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무능을 고백하고 그 이름을 부른다면 그 모든 문제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붙들고 근심에 쌓이는 우리가 아니라 주의 목전에서 반듯하게 서서 부르짖음으로 주님이 우릴 향해 소원하신 모든 일들을 아름답게 이뤄가시는 가정과 개인들이 다 되시기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