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22. 주일낮예배<창24:62-67.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
비교적 온유한 약속의 자녀 이삭은 신앙교육 잘 받으며 큰 무리없이 자라 유업을 이을만한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의 나이 37세에 그렇게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12년 전 남다른 신앙과 순종으로 모리아산에서 제물이 되었던 이삭, 결혼적령기가 넘어서 어머니마저 잃자 그는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약 3년간을 보내게 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서둘러 아들의 결혼을 주선했고 하나님께서는 모리아산의 순종이 온 몸에 생생한 이삭에게 순조로운 결혼의 과정과 언약된 모든 복을 허락하십니다. 오늘은 순종의 아들이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앞두고 하나님이 불러 맺어주시는 리브가와 만남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도 아울러 상고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다시한번 우리 신앙과 인생 사상의 못을 박기 원합니다. 정리해 봅니다.
모든 인생들은 복된 삶을 위해 복을 원합니다. 복중 최고의 복은? 만남의 복 즉 관계의 복입니다. 관계의 복중 제일의 복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피조물의 결국은 창조주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관계의 복에서 비롯된 으뜸의 복은? 깨닫는 복입니다. 그 깨달음의 복이 현실로 드러나는 복은? 행하는 복입니다. 그러려면 깨달을 때의 감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말씀 곧 주님을 만나 깨닫고 감동하는 일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복된 일들의 출발임을 믿기 축복합니다. 이제 아내될 자를 기다리는 이삭의 설레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 옮겨져 성령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될 줄 압니다. 본문 63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1. 묵상하며 기다렸습니다.
아시다시피 결혼이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만남의 사건이 됩니다. 이 만남이 불행하면 남은 모든 인생이 불행하며 이 만남이 복되면 남은 삶이 모두 복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중대한 만남을 위해 이삭은 어떻게 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까? 이삭은 어머니를 여의고 3년간이나 외로움에 지쳐 이젠 곧 만날 배필감에 대하여 내심 큰 기대와 설렘으로 하루하루 어찌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부풀게 됩니다. 이런 노총각의 그리움을 이삭은 들에 나가 묵상을 하는 습관으로 달래고 있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들에 나가는 것은 이삭에게 유일한 자기만의 시간이었고 그 시간은 곧 만날 배필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묵상과 설렘과 부푼 꿈을 꾸는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며 한편 곧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올 노종의 일행을 손꼽아 기다리며 한 방향을 종종 주시했던 것입니다.
당시 고대중동의 결혼관습에 의하면 신부감은 부모들이 결정하여 맺어지는데 결혼 전에는 신랑감이 신부의 얼굴을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좋고 싫음이 무관하고 만난 사람과 그냥 사는 겁니다. 이삭은 기도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신앙이 독실하고 온화한 청년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가문에 이미 내리신 굳센 언약의 실현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사실상 어머니를 잃은 후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삭이 일을 마치면 들에 나가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고 곧 만날 어떤 아가씨를 궁금한 가운데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은 우리들의 신앙과 꼭 같은 것입니다. 하루종일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만의 장소에 가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미래와 아픔을 토로하는 것, 그리고 주님이 하실 일들과 그 나라를 사모하는 것, 이것은 성도의 마땅한 기도생활입니다. 아울러 천국의 묵상, 그건 구원받은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최상의 설레임이며 기쁨입니다.
이삭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픈 마음, 그리고 곧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과의 기대로 부푼 마음이 서로 교차하며 들판의 시간을 묵상의 시간으로 채웁니다.
그래서 저녁시간은 이삭에게 있어서 종일토록 기다려지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그리움과 아픔과 설레임과 소망과 간절함으로 뒤섞인 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늘 기쁜 것만도 아니며 늘 슬픈 것만도 아닙니다. 늘 꿈에 부풀 수 없고 늘 절망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그 가운데 주님의 음성에 사로잡혀 꿈을 잃지 않고 절망에서 소망을 갖게 하는 능력입니다. 또한 죄와 사망의 음침한 길에서 빛이신 주님이 우리를 부를 때 그 손을 붙잡는 생명의 결단과 행위입니다. 우리역시 피곤한 인생길에서 한 주간 수고하다가 거룩한 날 주일을 맞으면 말씀을 찾아 맘이 설레어 그 앞에 내 맘과 한 주간을 번제단에서 불에 태워서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가 한 주간뿐 아니라 우리 삶에 있어 최고의 순간임인 것은 모든 것 다 태워 없애고 새로 시작하는 새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되고 아쉬운 그림을 모두 지우고 새로 그리는 그림, 소망 그 자체가 예배입니다. 예배는 다시한번 한주간을 손에 받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죄와 사망이 의와 영생의 자리로 찾아갑니다. 불신과 의혹이 신뢰와 평화의 자리로 찾아갑니다. 미움과 질투가 화해와 섬김의 자리로 찾아갑니다. 저주와 슬픔과 수치가 용서와 영광과 기쁨의 자리로 찾아갑니다.
진정, 주일이 기다려지는 여러분되시기 축복합니다. 믿는 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만복은 언약에 의한 필연적인 사건임을 굳게 믿을 때 의심이 없기를 바랍니다.
본문 66-67절을 함께 읽습니다.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2. 고통 끝에 찾아온 기쁨입니다.
이삭은 37세에 어머니 사라가 세상을 떠났고 40세에 결혼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3년간 이삭은 생각보다 큰 어머니의 빈자리를 통하여 인생의 무상과 어머니의 자리를 진지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자신이 결혼하여 얻게 될 아내의 몫입니다. 이삭이 보아왔던 어머니 사라의 역할과 권한은 상당히 큰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인 여러 가지 현안보다 더 큰 마음의 자리라는 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을 비롯해 식솔들에게 큰 기둥이 하나 사라진 허전함으로 이삭은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더욱 실감합니다.
그 큰 자리를 장차 자신의 아내로 채워야 한다는 것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가업의 중차대한 사건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이 택하신 가문에 안살림을 도맡는다는 것은 한 나라의 왕후와도 같은 것입니다. 예로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곳간의 열쇠꾸러미를 받는 것은 그 가문의 안살림의 모든 실권을 받았다는 걸 말합니다. 그 곳간열쇠를 받기 위해 수많은 세월 모진 시집살이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제 시어머니도 없이 충직한 노종에게 직접 곳간 열쇠를 받을 자입니다. 매우 중요하고도 복된 리브가의 시작이며 위치, 값도 없이 받는 우리의 구원열쇠 천국영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아브라함가문에 임한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는 채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삭에게 인도되어 온 겁니다. 그리고 이삭의 위로가 됩니다. 복된 인생이 열린 것입니다. 성경 어딜봐도 찾기 쉽지 않은 일부일처의 도덕적 귀감과 실현이 아브라함과 사라에 이어 이삭과 리브가 부부에게서 이뤄졌습니다. 이삭에게는 3년의 외로움 끝에 찾아온 큰 기쁨입니다. 외로움과 고난이 아무리 긴 것 같아도 반드시 끝이 있고 그 끝은 그간의 인고를 보상하고도 남는 기쁨과 화평임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보고 마음에 새겨둬야 할 첫째 아브라함의 믿음도 아니요, 이삭의 순종도 아니요, 리브가의 영민함과 받은 복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의 계시언약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계시언약은 궁극적으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으로 받은 천국영생의 구원입니다.
3.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1) 먼저 찾아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사이에 일어난 최초의 일은 창12:1절에 소개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그리고 큰 민족과 이름의 창대함과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어 드린 것은 나중이요,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우리를 만나시고 구하시기로 계획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요5:16절에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찬90장:"주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이렇게 주님의 주도면밀한 계획 속에서 진행되었음을 믿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그 한참 후에 15:6절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증거합니다.
2) 믿도록 증거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하나님을 굳게 믿은 것도, 이삭이 모리아산에서 머리를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칼날 앞에 내민 것도, 분명한 믿음의 사건들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물론이요, 이삭도 그 부모가 도저히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데서 자신을 잉태함이 전혀 하나님이 의도하신 언약과 약속의 실행임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어머니를 여의고 들판에 나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는 가운데 자신의 장래와 배필을 그려보았던 겁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사모한다는 것은 실로 믿음 안에서 가슴 뛰는 부푼 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이 말씀듣는 가운데 저와 여러분 안에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부푼 꿈이 한껏 가슴을 설레게 할 줄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삭은 묵상하며 기다렸습니다. 3년의 긴 기다림은 설레임과 외로움과 슬픈 인고의 세월이었지만 그 끝은 신부를 만나는 기쁨이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예쁜 아내와 이룬 가정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지켜지는 또 하나의 성전이란 증거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잠시 이 땅에 보내져서 보내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갑니다.
때론 힘들고 지쳐도 나름대로 주님주신 소망과 기쁨과 기다림이 있어서 믿음으로 이기게 하십니다. 그것은 바울사도가 본 삼층천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확신입니다. 믿음이 삶의 모든 능력이 되는 것은 언약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좋으신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알기 전에 우리를 구하시기로 작정, 계획하셨고 우리를 예수님의 몸으로 찾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하여 믿도록 길을 열어주십니다. 증거 중 증거요, 기적 중 기적은 예수그리스도와 우리들 자신입니다. 그리고 계시의 책 성경말씀입니다. 더욱이 핑계할 수 없는 삼라만상의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하나님을 증거하며 찬송하고 있습니까?
분명한 믿음으로 잘 기다리고 깊이 묵상함으로 더욱 많은 감동과 기쁨의 증거를 얻고 이웃에게 나눠주는 복의 통로가 되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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