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5. 주일낮예배<민3:42-43. 백성의 숫자 안에 들어 온 자들>
민수기 2장은 우리가 읽어 올린 것처럼 각 족장 12인이 그 자손들 가운데 20세 이상으로 칼을 뽑을만한 장정들의 수를 파악한 것이며 3장은 이스라엘자손 중 모든 1개월 이상으로 처음 난 자를 파악한 숫자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 난 자는 남자를 말합니다. 즉 여자는 제외된 숫자입니다. 인구조사 따로 병적조사 따로 하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고 이는 언제나 전쟁을 염두에 둔 조사였습니다.
즉, 3장의 인구조사는 모든 집안의 장자들이 그 대상이고 2장의 병적조사는 20세 이상의 전투력있는 장정들을 조사한 것입니다.
일전설교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병력을 포함한 인구조사가 20세 이상에 치중하고 있음을 주의깊게 살펴보았습니다. 그 20세 이상이란 1) 영적분별력이요, 2) 무기를 들을만한 힘, 곧 영적전투력을 말함이요, 3) 절대복종의 군사정신으로서 순종의 능력을 갖춘 영적성년의 의미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백성의 개념이라는 측면에서 인구조사와 병적조사를 살피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 3:42-43절을 함께 읽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중 모든 처음난 자를 계수하니 1 개월 이상으로 계수함을 입은 처음 난 남자의 명수의 총계가 2만2,273명이었더라.”
1. 하늘의 시민권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1달만 지나면 백성의 총수에 포함되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과거엔 동서를 막론하고 영양상태, 모자건강이나 위생상태가 열악해서 애기들의 생존률이 매우 낮았습니다. 그래서 흔히 태어나 몇 달 혹은 두어 해 지나서 출생신고를 했습니다. 태어난 아기들이 많이 죽으니까 출생신고, 사망신고 번거러웠다는 겁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1개월 된 생명을 호구조사에 포함시켰다는 것은 대단한 하나님의 생명존중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개선된 호적법은 출생신고를 출생후 30일 이내에 해야 하며 어기면 10만원의 벌금과 사유서가 요구됩니다. 행정상의 효율과 질서를 위한 것입니다. 이 벌금 10만원이 갖는 의미가 흥미롭습니다. 우리국민에게는 벌금이지만 우리나라 국적이 평생소원인 중국교민이나 탈북민이라면 그것은 벌금이 아니라 벌금물 자격이 부럽고 그리운 영광의 상금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사람들이 복지국가에 이민을 가려 할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겁니다. 카나다, 미국, 호주,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 발리 같은 곳은 흔히들 가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좋은 복지후생국일수록 시민권을 얻기가 힘듭니다. 그 출생신고 벌금한번 내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빌2:20절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주소 그 주민등록이 하나님의 나라인 하늘나라, 곧 천국에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교민에겐 우리나라 국적이 우리가 호주시민권을 얻는 것만큼이나 대단한 기쁨과 영광이듯이 우리가 예수믿어 영혼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면 일생최대의 기쁜 일이며 제일 중차대한 사건입니다. 롬10:9-10절엔 구원이 어떻게 이뤄진다고 증거합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아멘.
우리가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어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아 영혼이 살아납니다. 하늘의 시민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아직 출생신고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급한 일들이 집엔 많습니다. 출생의 기쁜 소식을 집안에 알립니다. 축하의 방문객과 축복의 인사가 오고 갑니다. 준비한 기저귀와 깜찍한 아기옷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산모의 방엔 미역국냄새가 엄마의 젖내음과 함께 새생명의 기쁨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어 주가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이름을 생각합니다. 이미 좋은 몇가지 이름을 놓고 선택의 폭을 좁혀가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빠는 벌금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속히 동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아기이름이 올라가 새로 등재된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집으로 오는 길은 얼마나 가슴이 뿌듯합니까? 생명을 얻은 기쁨을 어디에 견주겠습니까? 가정은 태어난 아이로 인하여 잔칫집기분입니다. 온통 그 아이에 대한 화제로 법석이게 됩니다. 새신자가 탄생하면 온 교회가 기쁩니다. 그 가정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천국에선 큰 잔치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늘에서 땅으로 한 사람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이 복음의 사절단인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탄생한 새신자는 교회의 여러 가지 절차와 양육에 의하여 돌봄과 살핌을 받아 차츰 성장하게 됩니다. 1년 쯤되어 세례받으면 세례교인이 됩니다. 말하자면 하늘의 시민권이 나오는 것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것은 애기가 등록되기 전에도 이미 이 나라 국민이며 그 가정의 귀한 아들, 딸이듯이 등록은 다만 거룩의 예식을 의미하며 이 때에 성령의 축복하심과 인증하심이 감동으로 임하여서 한없는 신령한 복이 임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구원받은 자의 당연한 예식이며 표지가 됩니다. 저는 어릴 때 제법 그럴싸한 이유로 세례를 계속 피했습니다. 나같은 죄인이 어찌 감히 세례를 받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겸손한 생각인지 스스로 대견하다고 여기면서 감동스러워 했습니다. 나처럼 깊은 뜻없이 함부로 세례를 턱턱 받는 사람들이 뻔뻔하다고 생각했고 심지어는 영적으로나 양심적으로 매우 무지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영적으로 성경적으로 무지한 교만임을 훗날에 알게 되었습니다. 눅5:31-32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죄인이기 때문에 서둘러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고 구원받아 세례했다고 그 사람이 거듭난 자의 마땅한 도리와 인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애기에게 무슨 인격이나 의무사항을 기대합니까? 거의 본능적입니다.
이번엔 민1:4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의 그 종족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자가 이스라엘 중에서 다 계수함을 입었으니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60만 3,550명이었더라.”
2. 성인이 되면 들어야 할 복음의 짐과 기쁨입니다.
애기는 엄마가 등에 업고 아빠가 무등을 태우며 품에 안고 다닙니다. 그리고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습니다. 기저귀를 갈아줍니다. 먹여줍니다. 입혀줍니다. 재워줍니다. 공부시킵니다. 용돈을 줍니다. 야단치며 바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기가 커서 성인이 되면 집안을 돌보며 식구들을 보호하게 됩니다. 나라에는 국민으로서 3대의무인 병역, 납세, 교육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합니다. 전인격적으로 사회의 구성원이 해야 할 모든 것을 모범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정직하게 성실히 의무를 다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마땅히 누릴 행복권을 추구하며 주어진 복리후생의 수혜자가 되어 복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2006년도 가을 평택 역 옆 매춘 여성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것이 신문에 났습니다. “우리도 정당한 노동자로서의 임무를 다 하고 싶으니 세금을 제대로 거둬 달라.”세금을 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당한 소득의 정상적인 직업인으로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몸은 천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들의 사고방식은 매우 건강하다고 느꼈습니다. 성인, 어른이라면 자신의 의무를 피하지 않고 도리어 당연히 짊어지고 오히려 이웃까지 돌보는 배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도의 의무와 권리에 대하여 잠시 살피고 말씀을 정리하기로 합니다.
성도의 의무는 기본적으로 예배를 말합니다. 또한 예배는 권리입니다. 성도가 아닌 자들은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이름으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과 마주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자 특권임을 명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20세 이상을 ‘칼을 빼는 자,’ 혹은 ‘싸움에 나갈만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전투요원을 뜻합니다. 집이나 성을 지킬만한 자를 의미합니다. 우리가운데 교회를 지킬만한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영적으로 어른이 된 사람들입니다. 병적호구조사에서 숫자 안에 들어 온 자들입니다. 군사의 숫자 안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불구이거나 유아이면 숫자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성장한 장정이라면 싸움에 나갈 군사의 수에 들게 됩니다. 그것은 영광입니다. 기쁨입니다. 19세가 되면 국방부에서 장정신체검사를 합니다. 최고등급을 받으면 마지막에 벗은 등을 치면서 갑종합격이라고 판정관이 소리칩니다. 기분좋은 순간입니다. 대한민국남자라면 누구나 주민등록증에 만기전역이라고 기재된 게 자랑스럽습니다.
중동에는 1945년부터 1973년에 이르기까지 4차에 거친 중동전쟁이 있었습니다. 주로 이스라엘과 아랍연맹과의 종교분쟁으로 시작된 민족분규였는데 이때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 와 있던 유학생들에게 마음 아픈 일들이 생깁니다.
학우인 친구들끼리 전쟁이 터지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서 전쟁에 참가하는 일이 생깁니다. 유학온 학교에선 친구지만 돌아가 군복을 입으면 서로 적군이 되어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 죽여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 여러 가지 진기한 일들 중 하나가 학생들이 짐을 챙겨 앞다퉈 비행기에 오르는데 이스라엘 학생들은 본국에 전투하려고 표를 끊는데 다른 아랍계 학생들 일부는 제 3국으로 도망치려고 표를 끊는 것이 한때 기사화 됐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이스라엘백성으로서 자존감이요, 당연한 소속감입니다. 우리는 천국시민으로서의 소속감과 감동이 어떤 영적전투에서도 스스로 자원하는 전투병이 돼야 합니다. 짐을 챙겨 도망치는 어리석은 자는 필경 아군의 총에 맞아 죽을 겁니다. 예수께서 이미 이긴 싸움인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에 충성된 사람들은 영적인 전투력지원이 지속적으로 보강되고 있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주시는 영적 능력의 역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을 비록 느끼지 못해도 우리 안에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습니다. 예배충실이 곧 성령의 칼을 잘 갈아두는 것입니다. 영적인 무술을 잘 연마하는 것입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큰 일이 아니라면 예배를 굶지 마시기 바랍니다. 허약한 영적체질로 작은 일에도 휘청거립니다. 모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셔서 여러분 개인과 가정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교회의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됩니다. 예배 잘 드려서 모두들 교회의 요긴한 기둥되시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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