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29. 주일낮예배<사6:1-8.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본문은 하나님께서 청년 이사야를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부르시는 소명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사를 거창하게 드리는 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줄 알고 이런 일에는 힘을 썼지만 정작 그들은 매우 부도덕했습니다. 가진 자가 없는 자를 학대하고, 과부나 약자의 송사는 듣지 않고, 뇌물을 주고받으며, 사치풍조가 극에 달했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부도덕을 꾸짖고 경고하며 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앗수르라는 회초리를 사용하신다고 예언합니다. 아울러 앗수르도 회초리의 본분을 망각하고 포학한 죄에 빠진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용서 안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특히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당신의 성소로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보호하신다고 역설했는데 그 예언은 끝까지 실현돼 이사야선지자는 예루살렘에 머물며 이스라엘을 위로와 책망으로 사랑합니다. 예레미야가 눈물을 흘리며 비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면 이사야는 경책과 아울러 장래 예루살렘의 회복과 메시아의 도래, 그리고 치유를 외치는 위로의 선지자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이름의 이사야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 장면, 본문을 살피며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 하나님이 사용하시기를 기뻐하는 사람의 이모저모를 말씀가운데 확인하며 함께 도전받고자 합니다. 누굴 사용하신다? 첫째,
1.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바람직한 신앙발전은 보통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렘29:13절에선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전심으로 찾는 방법을 우리는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생각합니다. 본문 사6:1절을 제가 혼자 읽겠습니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이사야는 유다왕 웃시야의 능력있는 정치로 살림살이가 제법 풍성해지자 늘 그러했듯이 왕과 백성들이 교만해져서 서서히 하나님의 징계가 다가옴을 영적으로 직감합니다. 이사야는 성전을 종종 찾아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렇게 성전에 엎드렸다가 하늘보좌를 보게 된 것입니다. 문맥상으로 이것이 환상인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이사야는 천상의 하나님이 그 보좌에 앉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도 예배당에 엎드리면 간혹은 하나님의 옷자락이라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날 그러한 신비현상이나 환상은 쉽게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판단과는 다른 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유익한 것은 모두 허락하십니다. 쉽게 허락지 않으시는 것은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인격적으로 만나는 하나님은 어떻게 만나는 것인가?
1)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만나는 인격적인 하나님은 신격에서 인격의 눈높이로 내려와 친 아버지처럼 만나주십니다. 거긴 인생이 가장 쉽게 이해하며 신뢰를 주고받는 곳입니다. 인격의 교류입니다. 인격의 교류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심한 충격에 두려워 떠는 게 아닙니다.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너무도 반갑고 기뻐서 안기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격 안에서 감동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영의 교류로 인하여 감격하며 하나님의 영과 만나는 비전교회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복된 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이사야서에서 이사야가 만난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이 지금 만나는 줄 믿기 바랍니다.
2) 예배 중에 만나는 하나님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 젊은 이사야는 풍요가운데 점점 부패해가는 나라를 안타까워합니다. 그는 종종 성전에 가서 타락의 길을 걷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엎드렸습니다. 기도 앞에 나타난 것은 기도제목인 유다민족이 아니라 유다민족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 이사야를 향한 음성이었습니다.
본문 1절을 봅니다. 함께 읽기로 합니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나라를 염려하며 기도하는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가득한 자신의 옷자락을 보여주셨습니다. 아울러 천사 스랍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노래하며 주위에 둘러 있어 그 소리로 터가 흔들리며 집에 연기가 가득했다고 2,3,4절에서 이사야는 본대로 증거합니다. 천사 스랍은 미가엘이나 가브리엘 등과는 구별이 되는 천사로서 인간의 죄를 성결케 하는 봉사를 합니다. 한편 스랍을 그룹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본문 1절에서 4절까지 이사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모습과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이 본 예수그리스도의 모습, 에스겔서의 하나님 모습, 모세와 이스라엘백성들이 성막을 통해 본 하나님의 구름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놀라운 광경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봅니다.
저와 여러분. 이사야처럼 예배당에서 기도 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 축복합니다. 찬송 부르다가 그 분의 영을 영접하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안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되어 늘 헤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아파해야 합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은 우리가 그 죄를 스스로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죄없는 자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러주신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겁니다. 행13:48절입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죄와 사망에서 받을 구원은 이미 하나님 손에서 결정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또한 구원은 믿음에서 나며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 설교말씀을 집중하여 듣고 믿음을 갖게 되면 죄와 멸망 길에서 구원받는다는 겁니다. 믿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어떤 길을 통해서든지 결국 예배하는 백성 안에 들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과정, 곧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흥미롭습니다. 아버지가 부르셨는데 뭘 타고 어떤 길로 오라고까지는 일러주시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세상에서 물든 여러 가지 관행과 악습에 의해 중환자실을 통해 하나님께 나옵니다. 형무소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어떤 이는 부도를 맞아 사람들에게 멱살을 잡힌 후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자녀의 불행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이사야처럼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축복합니다. 거듭하여 선언합니다. 설교듣는 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 바랍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도다.”이사야는 하나님을 보는 순간, 그간 보지 못한 자신의 부정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사용하시기를 기뻐하는 사람,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을 만나면,
2.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떠한 모습입니까?
1) 죄 중에 있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백성가운데 있는 사람이며 자신도 그렇게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고백합니다. 부정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뵈면 현장에서 죽는 게 하나님의 법인데 이제 그 큰 사망의 화가 닥쳤다고 놀라며 두려워 떠는 이사야를 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죄 중에 보면 반드시 죽습니다. 죄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있습니까? 죄와는 결코 상종하지 않는 하나님, 지금도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죄가 덮어지고 의의 옷, 거룩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면 내가 보이는데 그 때 보이는 나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구원받아야 할 죄인의 모습이며 택한 백성 중 귀한 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면 내가 누군지 알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란 말이 있듯이 내가 나를 바로 알면 적을 알게 되고 적을 알면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긴다는 겁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본 뒤 입술이 부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울부짖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자신을 발견한 자, 그 비참한 죄의 모습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죄인인 자신을 발견한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를 귀한 일에 사용하십니다. 본문 6~7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죄 중에 있는 자를 어떻게 하십니까?
2) 하나님이 회복시키십니다.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으로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뵈었으니 마땅히 죽을 것”이라며 한탄하는 이사야에게 하나님은 스랍을 보내어 이사야의 절망을 회복시켜주십니다. 단의 불붙은 숯으로 죄와 악을 태워 용서하시는 장면은 오늘도 예배의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치유의 현상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라며 자신의 부족과 불신앙을 정직하게 토로하는 자에게 즐겨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임을 여기서 우린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용기 중에 가장 위대한 용기는 자신의 잘못과 부족을 정직하게 시인하는 것입니다. 실수보다 더 큰 실수는 실수를 감추려하는 부정직입니다. 이사야는 나름대로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나라의 장래와 영적상태를 마음아파하는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여전히 죄악 속에서 부정한 입술의 소유자임을 두려움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용서받습니다.
이 시간 제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숯불 그 뜨거움이 성령의 역사를 따라 우리 심령과 입술을 태우고 지져서 온갖 악한 생각과 잘못 자리잡은 고정관념, 의심과 입술의 말과 표현습관, 표정이 변화받기를 축복합니다. 믿은 자에게 믿은 대로 될지어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하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1.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며 그 하나님은 1) 성경말씀 곧 설교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2) 성전, 곧 교회생활에서 만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2.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그 자신은 1) 죄중에 있는 모습이고 2) 하나님이 회복시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끝으로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 자신을 발견한 자의 특성은 사명을 깨달아 주의 음성에 즉각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8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제단 숯불로 회복된 이사야는 즉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죄가 씻겨진 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듣고는 뭐라 합니까?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세 번째 주님이 쓰시는 사람은
3. 자원하는 심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시 51:12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구원의 감격과 자원하는 심령을 누구에게 줍니까? 하나님을 만난 자요, 자신을 발견한 자요, 음성을 듣고 사명을 본 자입니다. 사명을 깨달아 자원하는 자 앞에 무지해 거부하는 무리들과 고난과 불행이 기다려도 사명자는 그 길을 멈출 수 없습니다.
주님이 여기 불러주신 저와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는 가장 효과적이며 힘찬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믿으시면 믿음대로 됩니다. 예배가운데 예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느끼시려고 간절히 원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나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생업과 관계에 하나님이 주시는 각종 풍성과 기쁨이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자랑하며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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