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강단

2013.09.22. 주일낮예배<행16:19-34. 한밤중에 올리는 찬미>

by 설렘심목 2013. 9. 21.

2013.09.22. 주일낮예배<행16:19-34. 한밤중에 올리는 찬미> 

 

의사출신인 누가는 누가복음에 이어 사도행전을 기록했는데 의학도답게 뛰어난 관찰력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살폈습니다. 본문은 점쟁이를 고용해 잘 먹고 살던 주인들에게 바울과 실라가 고발당하여 옥에 갇히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밤중에 지진이 나 옥터와 문이 흔들려 매인 사슬이 풀어져서 자유의 몸이 됩니다. 자결하려 했던 놀란 간수가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꿇고 그 가정이 구원받아 세례를 받는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바울과 실라로 하여금 밤중에 찬미하게 한 평강의 능력, 지진으로 옥터를 흔들고 매였던 결박을 푼 권능의 근원은 무엇인가?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11:37~38a)

 

1. 세상이 받지도 못하고 이기지도 못하는 복음입니다.

 

점쟁이집 주인들이 고발한 바울과 실라, 그리고 그들이 전한 복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20~21절을 함께 읽습니다.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그렇습니다. 복음은 죄악된 세상을 흔들어 깨우는 능력이고 세상을 흔들어 심히 요란하게 능력이요, 권세입니다.

반면, 죄에 물들어 죄가 죄인줄 모르며 죄가운데 죄를 토하며 토한 죄를 다시 먹으며 살아가는 죄의 세상은 그 죄를 죄라고 밝히는 등불을 싫어하며 피하려 합니다. 요1:9-11절을 읽겠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으나” 죄는 자신의 더러운 정체를 감춰주는 어두움을 좋아합니다. 죄는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는 빛을 미워하고 싫어합니다. 복음은 세상을 비추는 예수그리스도의 소식이며 예수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어느 동네든 교회가 건축을 하려하면 먼저 민원부터 넣고 봅니다. 반대할 특별한 이유도 없이 교회는 싫다는 겁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절이 들어오면 조용합니다. 스스로도 모른 채 어두움은 어두움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하는 복음을 로마인인 점쟁이 주인들이 알 리가 없을 뿐더러 주변의 모든 무리와 함께 일어나 고소하고 매를 쳐서 옥에 가두게 되는 이유입니다.

 

22~23절입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자신들을 깨워 죄를 알게 하고 빛으로 돌아오게 할 복음을 어찌하든지 가로막아서 죄의 상태를 유지하려 합니다. 죄의 활동, 악한 영의 활동, 복음을 훼방하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본문 증거처럼 악한 영들의 활동은 매우 적극적입니다. 빛을 피해 숨는 것을 넘어서 빛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을 가두고 복음을 방해합니다. 예수를 모르고 예수께 저항하는 영적인 무지는 그게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도 모르면서 많은 영혼을 병들어 아프게 하며 질식하게 합니다.

 

2. 매였던 종들을 자유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24절에 보니 바울과 실라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다.”고 했습니다. 25절을 함께 읽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사람들, 예수의 영이 충만한 자들은 고통의 깊은 가운데서도 여전히 예수그리스도를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감사합니다. 그 이름을 높여드리는 일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분의 약속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고난이 결코 그들의 믿음을 누를 수가 없습니다. 결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바울과 실라는 차꼬에 묶여서 밤중에 예수님을 찬미합니다. 시편 119:62에서 다윗은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찬미는 환경을 이기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발은 결박돼 있고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풍전등화의 생명이지만 그들은 주님을 노래했습니다.

 

1985년 미국 테네스주의 메이슨이란 마을에 탈옥수가 새벽 2시가 넘어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한 가정에 침입했습니다. “꼼짝마. 움직이면 쏜다.” 남편 나단은 덜덜 떨고 있는데 아내 루이즈는 탈옥수에게 친정식구를 만난 듯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했습니다. “무거운 총은 내려놓으시고 거기 좀 앉으시죠. 시장하실텐데 아침을 차릴테니 식사를 먼저 하십시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내가 맛진 요리를 만들어 드릴테니” “내가 무섭지 않아? 이 총은 장난감이 아니다.” 버럭 소리를 지르자 루이즈부인은 다시 태연하게 말을 받았습니다. “난 예수를 믿어요. 언제 죽어도 천국을 간답니다. 그래서 죽으면 영원히 사는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탈옥수는 부인이 들려주는 예수소식을 7시간이나 들었습니다. 모든 복음을 들은 뒤 오전 10가 되어 그는 제 발로 걸어서 교도소로 돌아가서 자수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비전인 여러분.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살아계신 예수의 영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인생의 밤, 역경과 고난과 슬픔이 찾아옵니다. 25~26절을 다시 함께 읽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과 실라의 자유를 통해 스스로를 증거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위로부터 주시는 평강의 마음이 바울과 실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미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위로하시며 거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 영광중에 옥터를 흔들고 문을 열고 모든 사람의 묶인 것을 풀어 주셨습니다.

사58:6절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알량한 자존심의 결박, 체면의 멍에, 열등감과 명예심의 결박, 시기심과 분노의 멍에, 상실감과 무서운 욕구의 멍에, 비교되는 행복수치의 압제, 뜻대로 되지 않는 경제의 압박감, 생업현장에서 피할 수 없는 눌림,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부터의 결박,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의 통증, 생노병사와 오욕칠정으로부터의 결박,.. 끝없는 육신의 멍에와 결박들...

우리의 몸을 이런저런 사슬로 묶어 꼼짝 못하게 하는 세상으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먼저 영혼의 자유자가 되시기 축복합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실존을 믿는 믿음은 그 모든 압제와 결박과 멍에로부터 온전한 자유자가 되는 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3.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입니다.

 

죄수를 지키던 간수가 자다 깨어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풀려있자 그만 놀라서 자결하려 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뭔가 알 수 없는 큰 위력에 눌린 간수는 바울과 실라에게 “선생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소?” 겸손하게 묻습니다. 31~32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구원의 대상은 늘 너와 네 가정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에게 임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시공을 뛰어넘어 언제나 스스로를 충분히 증거하고 계십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주변에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가는 복음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복음은 옥터를 흔들며 매였던 결박을 풀고 간수와 그 가정을 향해 확산되어 갑니다. 복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복음은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실존입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끊임이 없이 바람을 타고 번져가는 산불처럼 땅끝까지 번져가는 복음 그 자체십니다. 세계인류사 가운데 많은 민족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많은 이념과 사상과 종교가 일어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굶주린 사자 앞에 던져졌어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배당에 가두고 불태워도 하나님의 거룩한 집회와 백성들은 이렇게 영원합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재림의 그날까지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각각 맡겨진 대로 구원과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가정은 또 하나의 영원한 작은 교회입니다. 거기 찬송이 그치지 않고 말씀이 생명이며 감사와 기쁨과 간절한 기도가 늘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것입니다.

 

주께서 생명을 던져 사랑하신 저와 여러분.

죄악된 세상은 알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복음, 각종 죄악의 흉악한 결박과 압제와 멍에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복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구원의 복음이 이제는 우리 앞에 가슴 설레는 평생의 소망과 사명으로 서있습니다. 이 기쁜 소식 복음을 붙잡고 예수그리스도의 소식을 감동으로 전하는 모두가 되시기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