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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3.08.11.주일예배<딤전3:8-10. 집사의 표준>

by 설렘심목 2013. 8. 10.

2013.08.11.주일예배<딤전3:8-10. 집사의 표준>

 

돈은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돈은 버는 것 보다 더 힘든 게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격의 총체적 구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받을 때 그 생명을 위해 바친 공헌 없습니다. 어느 때 보니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받은 생명보다 그 생명 지키면서 인간답게 사는 게 힘듭니다. 예수믿어 세례받은 뒤 보통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받은 구원을 깊은 영으로 감동하며 잘 지켜가는 일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교회출석하고 봉사하고 십일조하면서 세월 좀 가면 집사직분 받습니다. 받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것도 직분을 지켜가는 일입니다.

 

존재조차 없던 우리에게 생명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생명이 우리 안에 가동되면서부터 이제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 앞에 늘 숙제처럼 서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우릴 구원하시고 교회로 부르셨을 때 여러 직분으로 충성하게 하십니다. 집사. 권사. 장로. 각부서장. 전도사. 목사. 간사. 여러 이름으로 우릴 부르셨습니다. 직분은 맡기보다 지켜가기가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직분을 잘 감당하는 이에겐 주님 뭐라고 하십니까? “잘했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했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막19:7

 

오늘 본문은 집사의 표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집사는 이미 집사교육을 통해 모두 알고 있듯이 교회의 재정을 담당하고 거기 따른 교회행정을 보조하기 위해 초대교회에서 만든 직분입니다. 물론 스테반 집사같은 경우는 생명을 건 순교의 설교도 마다하지 않는 충성과 헌신을 보였습니다. 그는 순교하기 직전에 분명한 환상을 통하여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보좌에서 일어나 자신을 향하여 서 계신 것을 보고 증거합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하늘의 증거는 죄로 얼룩진 땅이 가장 미워하는 소리입니다.

집사의 기준을 어디까지 보아야 할 것인가? 8절입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않고(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않고 더러운 이(利益)를 탐하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직분자의 귀감, 첫째

1. 정중합니다.

 

헬라어로 정중이란 말은 예의바르게 행함,.자기제어를 잘하는, 또는 규모있게 행한다는 원어적 의미가 있습니다. 즉 예의는 규모(規模), 곧 규범과 본보기이며 규모는 예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규모와 예의가 갖춰진 사람이 어찌 술에 인이 박히고 추한 돈을 탐냅니까? 우리교회 모든 집사님들 남녀구별없이 규모있는 정중한 삶으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영, 육간에 풍성을 이루기 축복합니다. 그래서 풍성케 하신 주님을 자랑하기 바랍니다. 9절입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직분자의 귀감 두 번째,

2.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은 본문에 의하면 깨끗한 양심을 바탕으로 가능한 비밀입니다. 오염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은 열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양심은 깨달은 것을 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하는 양심을 말합니다. 즉 양심과 믿음은 항상 묶여있어 행동하는 신앙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령의 임재는 필수적입니다. 성령은 양심을 가장 활발하게 살려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비밀을 살펴봅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비밀은 왜 태어납니까? 지켜지기 위해서 태어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오히려 비밀은 공개되기 위해 태어난다고 봅니다. 보세요. 비밀만큼 소리치고 싶어서 몸살이 나는 놈도 세상에 없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잘 아시는 얘기입니다.

 

신라 44대 경문왕 때 갑자기 왕의 귀가 길게 늘어져 당나귀 귀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한 사람 왕의 모자, 복두를 만드는 복두쟁이는 알았습니다. 생명을 건 비밀로 답답증이 오고 병이 나자 만약이 무효라 복두쟁이는 근처 도림사 대나무밭에 들어가 아무도 없는데서 땅을 파고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네.”몇번이고 소리를 치고 그 소리가 밖으로 새나오지 않게 흙으로 잘 덮어두고 와서 여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면 그 소리가 노래처럼 흘러나왔습니다. 대나무뿌리가 듣고 줄기에게 전하고 다시 이파리들이 듣고 바람결에 퍼뜨린 게 죽순따러 왔던 처녀들의 노래가 된 겁니다. 경주 온 서라벌에 이 노래가 유행했습니다. 임금님이 듣고 놀라서 대나무밭을 모두 파헤치고 거기 산수유를 심으라고 했습니다. 서라벌아가씨들이 이번에는 도림사에 산수유를 캐러 갔다가 다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네.” 바람결에 노래를 배워 와서 또 따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임금님은 산수유나무를 그냥 둡니다. 산수유를 캐어도 비밀은 계속 땅속에서 올라와 나무와 풀과 돌멩이를 통해서라도 소리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비밀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종종 공개된 비밀이란 말이 세상에 있는데 세상의 그 말엔 음모와 해학이 있습니다. 정치와 재벌, 경찰과 조폭 사이에는 이미 오래된 불문율, 게와 고동의 수칙이란 게 있습니다. 이걸 모르고 순진하게 교과서대로 입문하면 사업의 ABC를 배우는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게 됩니다. 이 악의 고리가 먹이사슬이 되어 공존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공개된 비밀이 그렇다면 하늘나라의 공개된 비밀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법을 맞은편에서 보면 하늘의 법과 답이 나옵니다. 엡3:9에서는 비밀을 이렇게 전합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 외에도 신약성경에서 비밀이란 단어는 꾸준히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을 위해 예비하신 복음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제 그 경륜의 깊으신 뜻을 따라서 하늘고 땅의 복된 소식 복음은 분명 공개돼 있습니다. 그러나 듣는 자와 못 듣는 자가 구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 하는도다.-행28:26” 그러나 성령의 인도로 영이 열린 자에게 복음은 실로 놀라운 비밀이요, 큰 감격과 환희이며 영원한 생명의 근거가 됩니다. 여기에 각양 영적 체험의 주관적인 비밀들도 있습니다. 본문이 다루는 비밀은 개인적인 비밀이 아니지만 주관적 영적체험은 구원의 감격을 부축하며 평생 조심스럽게 다뤄지게 됩니다. 자칫 한 인생이 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비밀이 끝내 성경적이기를 소원하고 또 성경에 의해 검증되길 원합니다. 공개된 구원의 감격과 공개하기 쉽지않은 개인적 영의 체험들이 육체를 마치는 날까지 주님의 영 성령께 반듯하게 잘 묶여 있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다시 집사라는 직분으로 가 봅니다.

 

교회에서 가장 흔한 이름 같아도 가장 귀한 직분-집사. 장로를 보조하는 헌신과 사역의 중산층, 집사직분은 이렇게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안에 전하지 못해 안타까운 기쁨의 비밀이 날마다 순간마다 샘솟아 몸부림을 치게 되기 축복합니다. 우린 대나무밭까지 가서 비밀구덩이를 파지 않아도 됩니다. 만천하에 마음놓고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살아계신 단 한분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마음껏 소리칠 때 안에 모든 울증(각종 질병들, 내안에 진상과 수치, 열등감, 가난)들이 다 떠나갈 줄 믿습니다.

 

직분자의 귀감 세 번째,

3. 스스로 책망합니다.

 

10절에는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라고 돼 있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흠과 티가 없는 존재는 예수님 한 분 외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을 따라 집사를 뽑지 않아야 옳은가? 아닙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1심 2심 3심이 있습니다. 지방법원에서 해결이 안되면 고등법원으로 상소합니다. 거기서도 안 되면 대법원으로 갑니다. 그러나 1심인 지방법원에서 해결되어 피고원고 이의 없이 해결되면 그걸로 끝입니다.

1심은 자기내면에서 벌어지는 재판이요, 2심은 제직회나 당회에서 열리는 심사이고 3심은 하나님 앞에서 받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책망없이 집사기준을 충족시키려면 남에게 책망 듣기 전에 먼저 내가 나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러한 자를 집사로 뽑으라는 겁니다. 내가 나를 책망한다는 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아파하며 회개한다는 뜻입니다. 세상고민 중에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자신임을 인정하시면 아멘 크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며 울부짖는 자에게 누가 돌을 들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청산하지 못한 것이 언제나 사람 앞에서 수치요, 지적(指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아들 일로 학교교무실에 불려간 아빠가 선생님 앞에서 자신의 아들을 무섭게 나무라며 뺨을 냅다 후려치는 것은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보호하는 것입니다. 피해자 부모와 담임선생님이 미안해서 안절부절할 때까지 야단치고 혼을 내는 건 이 애비가 처리할테니 여러분은 그만 쉬라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징계의 채찍을 부족한 아빠가 먼저 드니 내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면서“많이 아팠지?”아버지의 진심은 뭡니까? 스스로 책망함이 피차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1심에서 끝내면 선생님 마음도 편안해지지만 피해자 학생의 부모도 상처가 위로받는 것을 느낍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집사를 주께서 부르십니까? 아니요, 책망할 것이 많지만 날마다 순간마다 주 앞에 눈물로 고백하는 자를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늘 정중하고 반듯하려고 애쓰는 자, 필경 하나님의 풍성을 맛볼 것입니다. 아울러 믿음의 비밀로 가슴이 설레는 자, 그 비밀의 능력이주변과 그를 사로잡아 복음의 평안이 그를 보호할 것입니다. 끝으로 누가 말하기 전에 주 앞에 꿇어 엎드려 스스로를 책망하며 받은 구원 앞에 늘 염치가 없어 눈물 흘리는 자는 아무도 그를 책망치 않을 것입니다. 1심에서 끝난 겁니다.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안에 이러한 복음의 능력이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