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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3.08.04. 주일예배(창6:9-14. 안팎으로 역청칠을 한 방주)

by 설렘심목 2013. 8. 5.

2013.08.04. 주일예배(창6:9-14. 안팎으로 역청칠을 한 방주)

 

비전동시절 건축당시 방수공사가 잘못돼서 비만 오면 물통을 받쳐 놨던 게 기억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노아선조를 생각합니다. 완전방수공사의 원조 의인노아. 그래서 방수설비공사를 하는 분은 노아방수설비라고 이름하고 철저히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노아의 방수작업은 생명을 건 것입니다. 오늘 그 노아가족과 방주를 살피며 우리들의 허약한 믿음에 도전을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로 합니다.

 

지상낙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아담부부가 쫓겨난 후 그 아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은 아담이 타락한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첫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 인간의 죄악은 더욱 심화되고 교묘해져서 다양한 형태로 그럴싸하게 위장해 우리 주변을 가득 에워싸고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인간들의 죄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습니다. 원어로는 후회하고 마음에 새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마음에 깊이 기억된 인간의 부패로 말미암아 전혀 새로운 계획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큰 계획은 한 사람의 의로운 자를 준비시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의로웠던 것은 하나님께 계획가운데 은혜를 입었기 때문임을 창6:8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제나 지속되는 하나님의 나라 씨앗의 그루터기 계획입니다. 죄를 다 쓸어버리는 어느 시대 어떠한 현장에도 하나님께선 당신의 거룩한 나라를 보존할 의로운 한 사람이나 가정, 민족을 남겨두십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방주를 짓는 성도들”입니다.

당시 노아가 지었던 방주, 오늘도 여전히 교회와 성도들을 통하여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어야 할 것인가? 이 설교를 듣는 가운데 주의 성령이 역사하사 저와 여러분 안에 견고한 믿음의 방주를 짓게 되는 놀라운 일이 있을 줄 믿습니다.

 

22절입니다.“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1. 세상보기에 미련한 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룹니다.

 

노아의 방주제작은 분명 세상사람들 보기에는 비현실적이었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노아에게 방주제작은 생사의 문제였습니다. 남들이 다 비웃고 미쳤다 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결단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간이 가도 변함없습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방주의 제작기간은 무려 120 년간입니다. 악한 시대에 노아가족은 얼마나 비아냥댐과 손가락질을 받았을까? 노아와 그 가족이 변함없이 긴 세월을 일과를 마치면 늘 높은 산에 올라갑니다. 모두 방주 짓는 일에 매달려 120년을 보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긴 세월을 방주 만드는데 온힘을 쏟는 노아의 가족을 보고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들에게 회개의 긴 시간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인 줄 알 리가 없었습니다. 한 가문이 뭔가에 단체로 홀려 헛소리를 들은 것쯤으로 알았을 겁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자녀들에게 말했을 겁니다. “너희들은 저렇게 엉뚱한 것에 미쳐선 안 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믿는 것은 세상이 볼 때 한없이 미련한 일입니다. 엉뚱한 데에 미쳤다고 봅니다.

고전1:21절을 함께 찾아 읽기로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꾀나 생각과 추리나 과학으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만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사람들이 미련하게 여기는 단순한 전도라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볼 때 전도가 미련해 보이듯 노아의 방주제작이 당시에는 미련해 보이는 구원의 기회요, 회개의 기회 120년이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자신들 좋을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조롱하며 부패한 삶을 만끽하며 살았습니다.

 

참고삼아 말씀하자면 노아가족이 120년에 거쳐 제작한 방주의 규모는 길이가 137m, 너비 22.5m에 높이가 13.5m인데 전철 한대가 약 20m이니 7대 길이에 아파트(13.5÷ 2.6) 5층 높이이며 폭은 저 앞 1번국도 큰 다리정도로 초대형 유람선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생각보다 매우 큰 배입니다. 이렇게 큰 배가 3층으로 되어 있고 여러 개의 칸을 만들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방향을 조정하는 키나 돛대나 닻이 없이 윗쪽 옆으로 조그만 창 몇 개를 만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의 배처럼 유선형보다는 모양없는 사각에 가까운 물이 새지 않는 큰 통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배모양도 세상의 배와는 달리 무척 미련하게 생겼을 겁니다. 목적지가 없어 어딘가 빨리 가야할 일이 없으니 날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물결 따라 바람따라 하나님의 인도 외에 아무 주장이 없이 배 닿는 곳이 정착지가 되는 방주의 항로가 저와 여러분 믿음의 인생항로인줄 믿기 축복합니다.

 

14절을 함께 읽습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2. 역청으로 안팎을 칠합니다.

철저하게 방수를 위하여 역청칠을 안팎으로 성실하게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방주제작의 성실성여하는 홍수가 난 뒤에 죽느냐 사느냐에 직관되는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혹 빈틈이라도 생겨 물이 들어오면 방주는 물속에 가라앉아 모두 죽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역청을 안팎으로 칠했습니다. 여기 믿음의 영적 적용이 있습니다. 먼저 저와 여러분 우리 모든 교회는 불신의 세상 위를 떠가는 믿음의 방주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되 세상에 가라앉지 않는 방주여야 합니다. 조그만 틈이 생겨 세상물이 들어오면 방주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교회는 큰 방주요, 가정은 작은 방주입니다. 방주는 안팎으로 역청 칠을 합니다. 당시 역청은 최고의 방수재료였습니다. 이것을 방주의 안팎에 칠합니다. 안은 어디며 밖은 어딘가? 안은 내 안에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죄의 뿌리들입니다. 잘라도 잘라내도 끈질기게 올라오는 세상을 향한 미련, 돈만 있으면 뭣이든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사상(mammonism). 믿음보다는 고상하고 품격있는 내면을 추구하는 인격근본주의, 이러한 내면의 그릇된 사고방식과 죄성을 단단히 다스리는 오직예수, 오직성경의 강직한 믿음으로 방청방수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 밖에 칠해야 하는 역청입니다. 밖에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이 타락한 세상의 모든 환경이 성도와 교회를 늘 위협하고 조롱하고 유혹합니다. 그것이 내면의 죄성과 합하여 악한 작품을 신속하고도 그럴싸하게 만들어냅니다.

 

예배자 여러분. 세상이 본래 죄요, 부조리요, 불평등이요, 슬픔이어서 쉽게 식별 되지만 내안에 있는 작은 구멍에는 멀쩡한 사람들이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가장 두려운 적과 죄는 내안에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팎으로 칠한 역청의 방청방수작업,

특별히 노아가 방주를 짓는 일 가운데 역청 칠에는 심혈을 기울였을 겁니다. 그 큰 배도 작은 틈을 허용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일단 방주가 물위에 떠오르면 방수작업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인생길 80이 다 가기 전에 귀한 믿음을 완성시켜야 합니다. 배가 물에 뜨기 전에 모든 역청작업은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냥 안 되는 게 아니라 생명을 담보로 했기에 허용할 수 없는 일이고 결코 적당히 할 수 없는 방청방수작업입니다. 비전동에서 비만 오면 예배당 뒤쪽에서 심하게 물이 새는데 제가 감사한 것은 비만 오지 않으면 새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비가 안와도 새는 집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부에서 파이프가 터진 것은 일이 복잡해집니다. 만일 비와서 새고 비안와도 파이프 터져서 샌다면 물로 집은 골병이 들 겁니다. 이렇게 날림공사로 위에서 떨어지고 방에서 물이 올라오는 정도의 방수공사가 아니라 물위에서 생명을 싣고 버텨야 하는 방주로서는 어떠한 틈도 허용할 수 없는 철저한 역청 칠이어야 했습니다.

이제 끝으로 우리가 말씀따라 할 수 있는 일상생활의 방청방수작업은 무엇인가를 살피며 정리된 교훈으로 가슴에 새기는 시간을 갖습니다.

 

첫째,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경을 읽으세요.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입니다. 양식 없이는 생명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성경읽기는 반드시 기도와 함께 가야 합니다. 성령이 깨닫게 해주셔야 합니다.

세 번째, 읽은 성경내용이 나를 통해서 끝내 이뤄진다는 굳센 믿음으로 밝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얼마 전에 부정적인 사람과는 마주하지도 말라는 명언을 들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것은 기도하고 성경읽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정신자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게 믿음입니다. 믿어드리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기도하며 읽어야 합니다.

 

“너희는 나를 찾고 찾으라, 나를 만날만한 때에 만나라. 정녕코 내가 너를 도우리라.”

 

발 앞에 있는 돌이 부정적인 사람에겐 걸림돌이지만 긍정적인 사람에rps 디딤돌이 됩니다. 활공술이 뛰어난 새는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무리를 이끌고 먼 거리를 떠납니다. 바람에 방해받는 게 아니라 바람을 타는 겁니다. 큰 파도가 올 때 뒤집히지 않으려면 파도를 정면으로 맞아야 합니다. 피칭엔 힘겨워도 넘어가지 않지만 롤링에는 쉽게 뒤집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노아가 역청으로 안팎을 칠한 방주처럼 저와 여러분과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가 말씀의 역청을 성령의 불로 지져서 작은 틈새하나 없이 덮인다면 세상 죄와 무관하고 늠름하게 신앙생활 잘해서 하나님 앞에 기쁨이요, 칭찬이요, 세상에서도 명랑하고 유익을 끼치는 삶이되기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