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김정일 대화록 밑줄 치며 읽기
趙甲濟(조갑제) 기자가 국가정보원이 2013년 6월24일 공개한 4시간여 분량의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全文(전문)’을 분석, 해설해 책으로 냈다.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全文과 해설》(154쪽, 1만 원, 조갑제닷컴)에서 조갑제 기자는 대화록에 대해 “2007년 10월3일 평양엔 대한민국 대통령이 없었다. 반역자와 부하가 있었을 뿐”이라고 평했다.
저자는 이 회담의 목적이 김정일은 ‘NLL 무력화 합의’에, 노무현은 차기 정부가 ‘뒷걸음치지 않게 쐐기를 박아’ 從北(종북) 좌경화의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굳혀나가는 것’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오전 회담과 노무현이 더 이야기하자고 매달려 계속된 오후 회담에서, 김정일은 노무현 측이 원하는 해주항의 개방 요청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한국이 설정한 NLL과 북한이 NLL 남쪽에 그은 유령선을 다 같이 포기하자고 제안한다. 노무현은 김정일의 날강도 식 제안을 평화협력 지대 구상과 연결시켜 수용한다.
趙기자는 NLL 허물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노무현의 北核(북핵) 비호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퇴임을 넉 달 앞둔 대통령이 평양으로 김정일을 찾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시키기 위한 목적이어야 했는데 노무현은 김정일 앞에서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 주문이 많죠. 근데 그것은 되도록 가서 판 깨고…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 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왔습니다”라고 말한다.
김정일이 회담 도중 불러들인 북한의 6자회담 대표 김계관의 “내용적으로 볼 때 신고에서는 우리가 핵계획, 핵물질, 핵시설 다 신고합니다. 그러나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합니다. 왜? 미국하고 우리하고는 교전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갚라는 발언에 노무현은 “수고하셨습니다. 현명하게 하셨고, 잘 하셨구요”라고 격려하는 태도를 보인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 쐐기를 박아 놓자”
저자는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에서 맨 정신으로 읽기 힘든 대목으로 마嗤 부분을 꼽았다. 민족반역자-테러지령범-전쟁범죄자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 할 수 있게 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 뒷걸음치지 않게 쐐기를 좀 박아 놓자”, “다음 여행권까지 따 놨으니까…”, “내가 받은 보고서인데 위원장께서 심심할 때 보시도록 드리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김정일에게 이산가족 고향방문을 허락해달라고 호소하는데, 놀랍게도 이를 막는 이는 노무현이다. 노무현은 “다음에 합시다. 오늘은 보따리가 넘쳐서 안 돼요”라고 말하고 모두가 웃었다고 한다. 그 보따리가 누구를 위한 선물이었는가? 이 책을 읽으면 해답이 있다.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全文과 해설》에는 이 밖에 김정일이 안부를 물은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정체와, 김정일-노무현의 10·4선언 계승에 집착하는 문재인에 대한 의문점도 다루고 있다.
| 책 속으로 | 김정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평화체제 구축 의제를 역이용, 아주 파격적인(또는 후안무치한) 제안을 한다. “내 생각은 이번에 모처럼 마련된 수뇌회담에서 조금 희망을 주고, 적대 관계를 완전히 종식시킬 데 대한 공동의 의지가 있다, 보인다 하는 것을 하나 보여주자 하니까 서해 군사경계선 문제, 이 문제를 하나 던져놓을 수 있지 않는 가 난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화록을 읽어보면, 김정일은 노무현을 평양으로 오게 하여,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무력화에 합의하도록 하는 것을 회담의 제1 목적으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노무현이 美北(미북)관계 개선 필요성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강조하니 ‘그렇다면 서해의 군사적 긴장 문제를 같이 해결하여 적대 관계 종식의 의지를 보여주자’고 걸고 나온 것이다. -22페이지 김정일의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갚라는 제안은 날강도 식이고 후안무치하다. 김정일이 말한 바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이란, 1999년 북한정권이 일방적으로 NLL 남쪽에 그은 선이다.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의 우리 쪽 섬들이 그 선 안으로 들어가 북의 허가를 받아야 출입할 수 있게 만든, 실효성도 없는 환상의 경계선이다. 북이 멋대로 휴전선 남쪽 수원 부근에 痢 군사경계선’이란 것을 긋고, 그 선과 휴전선 사이, 즉 수도권을 남북이 평화지대로 공동관리하자고 나온 꼴이다. 더 쉽게 표현하면 강도가 부잣집 안방을 ‘내 것’이라고 선포한 다음 부자에게 선심을 베푸듯 이렇게 제안하는 것과 비슷하다. “서로 싸우는 모습 보이지 맙시다. 안방에서 현관을 지나 정문까지는 나와 귀하의 공동관리 지역으로 설정, 평화롭게 관리합시다.”
-24~25페이지 노무현은 국군 장병이 피로써 지켜낸, 수도권 방어의 생명선인 NLL을 괴물에 비유하여 비하한 다음 서해평화지대 안을 내어놓는다. 북한정권이 수시로 도발하는 서해안과 NLL 수역 위에다가 평화지대를 설정한다는 것은, 읔에다가 신도시를 만들자는 것만큼 거의 공상에 가까운데 이를 열심히 설명한다. 김정일은 그 제안에 넘어가는 척하면서 NLL 남쪽에 공동어로수역을 만들자는 자신의 제안을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33페이지 나중에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NLL을 기준으로 남북한 등면적의 공동어로수역 설정을 제안하는데, 북한측은 김정일-노무현 사이의 합의와 맞지 않는다고 거절한다. … 남북한 합의의 기준이 되는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엔 ‘등면적’이나 ‘등거리’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게 중요하다. NLL을 기준으로 한 남북 등면적 공동어로수역도 결국은 NLL 무력화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線(선)을 지키기도 어려운데 面(면)을 만들어 놓으면 반드시 분쟁이 늘어난다. 특히 공동어로수역에서 군대를 빼고 경찰을 넣어 관리하자는 주장은 북한군을 이롭게 하려는 반역적 주장이다. 북한군이 경찰로 위장하여 들어오는 걸 어떻게 막는가? NLL에서 해군을 물리고 경찰이 막도록 하겠다는 발상, 그것이 NLL 포기이다.
-45페이지 김계관은 ‘全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용어를 갖고서, 북한의 비핵화뿐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 및 남한의 비핵화까지 요구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한반도의 비핵화 속에 남한의 비핵화를 집어넣고는, 한국의 원자력 시설을 사찰하고 미군기지를 들여다보고 그래도 믿을 수 없다면서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려 할 것이다. 이런 전략에 대해서도 노무현은 “예, 잘 알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고 지지를 표명한다. 그 자리에 대한민국 대통령은 없었다. 김정일과 반역자, 또는 부하가 있었을 뿐이다.
-56페이지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에서 맨 정신으로 읽기가 힘든 대목은 마지막 부분이다. … 민족반역자-테러지령범-전쟁범죄자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 할 수 있게 좀…”, “다음 여행권까지 다 놨으니까…”, “내가 받은 보고서인데 위원장께서 심심할 때 보시도록 드리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64페이지 김정일에게 노무현이 한 말은, NLL 포기, 북핵 비호, 한미동맹 비방, 차기정부에 쐐기박기, 그리고 굴욕적인 아부성 발언들이다. 하지 않은 말은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요구, 북핵 폐기 요구, 북한인권 개선 요구, 개혁개방 요구이다. 敵(적)에게 영토와 국익을 상납하고 받아낸 것은 없다.
-65페이지 |
| 머리글\대한민국의 가슴에 박은 두 개의 대못 | | 1장_국정원 작성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全文전문·해설 | 역사상 最惡(최악)의 국가반역 혐의가 드러나다! | | 2장_讀後感: 많은 사람들이 놓친 대화록의 본질적 문제들 | 許和平(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 | 3장_김정일이 안부를 물은 임동원의 正體정체 | NLL 포기·北核 비호·쐐기박기·反美발언 | | 4장_문재인에 대한 근원적 의문점들 | 왜 그토록 10·4선언에 집착하나? |
| 趙甲濟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월간조선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전 13권) 등을 출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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