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07.주일예배<창17:1~15.하나님의 약속과 할례명령>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고향친척 아버지를 떠나 당신이 가라는 곳으로 가라고 명령하실 때 아브람을 통해 이루실 큰 민족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때 아브람은 자녀가 없었고 아내의 몸은 늙었습니다. 두 번째 나타나셔서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시면서 복을 주는데 “주께서 내게 씨를 주시지 않았으니 내 상속자는 내 집에서 기른 종, 엘리에셀입니다.”라고 말하는 아브람에게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15:6절에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까지 하나님의 2번째 약속확인이며 오늘이 세 번째 약속을 확인하는 현장을 봅니다. 첫 번째 약속은 가난하고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고 두 번째 약속다짐은 종을 둘 정도로 형편이 숨을 돌릴만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였는데 오늘 우리가 듣는 세 번째 언약에 할례의 명령이 나옵니다.
세 번의 언약중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일방적 복을 약속하신 뒤 복에 합당한 몇가지를 요구하셨다는 겁니다. 즉 택한 자에게 당연한 순종의 삶과 성결의 삶이었습니다. 오늘 세 번째에 특별히 할례를 요구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살펴보고 우리가 믿음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앞에 마땅히 알고 갖춰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듣기로 합니다. 우선, 우리를 먼저 찾아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말씀을 듣습니다.
1. 이름을 주시고 이름에 합당한 길을 열어주십니다.
본문 1절 하단을 읽습니다.“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누구 앞입니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입니다. 그 앞에서 행하고 그 행함이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아브람이나 저와 여러분이나 모든 믿는 자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는 실현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서 잠시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은혜사이에 십자가의 도는 어떠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를 짚고 가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결국 옳은 것이고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에덴에서 범죄한 후 인간은 죄로 인해 율법 앞에 절대무능의 상태에 놓이게 됐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힘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죄에 관한 한 속수무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코 지킬 수 없는 율법과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사이에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 갈등은 이미 태초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결론과 함께 있었습니다. 결론이신 예수그리스도, 요1:2절엔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라고 증거합니다.
율법의 구약시대에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수없이 메시아의 등장을 예언하며 위로하셨습니다. 물론 이스라엘백성들은 절실하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 7:14절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만 더 봅니다. 미 5:2절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주전 약 칠백수십 년 전 일입니다. 이 외 많은 예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을 비롯한 모세, 지금 배우는 아브라함, 사무엘, 다윗 등 수많은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지도자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예시적으로 보여주시고 그 때마다 이스라엘을 환난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2~5절을 함께 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과 맺은 언약은 열국의 아비가 되는 것이며 그에 대한 증거로서 이름을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크신 아버지, 위대한 아버지라는 뜻이고 아브라함은 본문에서 밝히듯 열국의 아비, 곧 펼쳐놓으신 많은 나라들의 조상, 아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열국가운데는 장자권을 따라 택한 민족을 이어가는 나라도 있고 불순종해서 선민의 가시노릇을 하는 나라도 태어납니다.
중요한 건 이름을 바꾸신 하나님의 언약과 그 뜻입니다. 한 가문의 크고 존경받는 아비가 되는 것은 사내로 태어나서 최고의 영광입니다. 하물며 열국의 아비가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큰 영광이며 기쁨입니다.
12절입니다. “너희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구원의 보편성은 세상 만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본문은 바울사도가 오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선 선민 이스라엘 뿐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부르시는 모든 민족과 열방과 만인에게 그 택하심이 유효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주고 산 예수님의 노예들입니다. 그런데 은혜로 노예가 자녀로 입적되었습니다. 롬 8:15절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도여러분.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사람 안에 있습니다. 이름은 멋진데 이름처럼 살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정해질 때 그렇게 살라는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말해 이름은 축복메시지의 축약된 호칭입니다. 사형수들 이름을 보세요. 대한민국의 위대한 이름은 거기 다 있습니다. 인간이 정한 이름을 누가 보장합니까?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면 불러주심이 그대로 권세와 능력과 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이미 복된 소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 거기에 소원이 변하여 현실이 되는 하나님의 뜻만 있으면 됩니다. 부모가 주신 이름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불러주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 그렇게 부르시고 살아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
2.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8절입니다.“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여기서 가장 핵심이 되는 말씀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과 우리후손의 하나님이 되신다면 사실 더 이상의 소원이 없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더 이상의 소원과 기도는 우리들이 부족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바로 지키지 못하는데서 시작되는 안타까운 것 곧 거룩한 몸부림일 것입니다. 본문의 어순을 잘 살펴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심과 동시 거기서 아브람 후손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겁니다. 영육 간 도우시는 주님이신 줄 믿기 바랍니다. 지금 아브람의 형편을 보면 남의 집에 셋방살이신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 집과 집터와 전답 토지를 모두 주신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집에서 네 후손이 예배하며 찬송하며 하나님앞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 놀라운 비전은 첫째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것이요, 다음은 이를 믿어드린 아브람의 의를 기뻐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신실하심에 근거한 것입니다.
3. 할례를 받아 영원한 언약을 증거삼아야 합니다.
할례는 난지 팔일 만에 해야 합니다. 13절입니다.“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할례를 받지 않으면 어찌 된다고 하셨습니까?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돼 있습니다.
1) 할례는 모든 아브람문중에 내려진 명령입니다. 복음의 대상은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뿐 아니라 땅 끝까지인 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2) 교회와 성도의 살(삶)에 있는 영원한 언약입니다. 입술의 고백, 믿음으로 받은 구원과 언약의 놀라운 영광은 입술에서 온 몸으로 그 실천과 열매의 증거로 번져가게 됩니다.
아직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난 지 8일 만에 남자아이 생식기 꺼풀을 잘라냄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몸에 평생 지니게 하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이는 우리가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영적 유아때 복음으로 찾아주신 복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할례와 세례는 같은 의미입니다. 이른 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인증예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교회의 3대표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교회가 교회임을 만방에 드러내는 세가지 표시가 있는데 첫째 하나님의 말씀선포요, 둘째 성례, 곧 세례와 성찬이요, 셋째 권징실행입니다. 권징실행이라 함은 좋은 일에 칭찬하고 죄지으면 엄히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할례의 의미를 조금만 더 살피기로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을 유한한 우리 인간의 몸에 새기기엔 너무 황송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한하신 하나님의 조인문서를 유한한 인간육체에 새기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씨에 새겨 넣는 것입니다. 씨에 새겨 넣으면 그것은 씨가 번식을 멈추지 않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아이의 생식기 끝에 표시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식기끝에 표를 하신 건 가장 소중한 생명의 번성이 말씀과 계약을 앞세운 일이라는 거룩한 의미를 담습니다. 다음 그것을 매일 몇 번이라도 확인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할례는 말 그대로 잘라냄으로 언약하신 하나님앞에 예를 갖추는 의식입니다. 왜 싸인만 하시지 잘라 내버리고 피를 흘려 예를 갖추라고 하셨는가? 죄중에 태어난 인생은 사실 끊어내야 할 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걸 말합니다. 그러므로 할례라는 예식은 많은 것을 자신안에서 끊어내야 할 때 거룩하신 하나님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 피흘리는 희생과 포기가 있습니다.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해 냉정하게 끊어내야 합니다. 난지 8일 만에 갓난 아기 그 끝을 끊어내는 부모의 심경으로 끊어내는 것입니다. 아이가 가여워서 끊어내지 못하면 아이가 백성 중에 끊어집니다. 진정 자신의 영혼과 삶을 사랑하는 자라면 매섭게 옛 자아의 근성들을 끊어내는 결단이 있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을 정리합니다. 12장에선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시며 큰 민족을 약속하셨습니다.15장에선 하나님이 친히 아브람의 상급이 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몸에서 자녀가 나와 후사를 잇는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이를 아브람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7장에선 드디어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이는 동시에 이름에 합당한 길을 보장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확연한 역사의 증거앞에 말씀을 따라서 우리의 믿음을 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처음과 끝이 동일하고 변질되거나 식언치 않습니다. 다만 주실 복을 더욱 자세히 언급하시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진리는 언제나 그 위치에서 흔들리지 않고 그 자체로 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집사, 권사, 장로, 부장, 전도사, 간사, 남전도회장, 목사, 이름에 합당한 열매맺는 삶이 될 줄 믿습니다. 꼭 기억해야는 것은 이름대로 노력하면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줄 믿습니다.
끝으로 이 언약의 실현을 위해서 언약을 훼방하는 것들 곧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나의 탐욕을 가차없이 끊어내시기 축복합니다. 먼저 하나님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아멘.
영육간 자녀의 복이 넘칠지어다. 예수이름으로 밟는 모든 땅들이 저들에게 순종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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