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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3.06.16. 주일낮예배<계 22:1-5.주의 날, 거기서는>

by 설렘심목 2013. 6. 15.

2013.06.16. 주일낮예배<계 22:1-5.주의 날, 거기서는>

 

주님이 주신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갖는 마지막 절정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장면일 겁니다. 오늘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의미에서 그간 우리가 마음속에 그려보는 성경의 어떠한 장면보다 화려한 것이며 전율할만한 최고의 결론을 아름답게 드러낼 것입니다. 그것은 66권의 결산이 이뤄지는 장면이기에 글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거고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주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입니다. 4절 앞부분은 “그의 얼굴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주의 영이 함께하시니 우리 모두에게 신령한 영의 눈을 주님께서 친히 열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보고 기록한 최상의 장면을 믿음으로 보며 그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사로잡히기 축복합니다.

언젠가 그날 거기서 다시 만나게 될 저와 여러분, 생각만 해도 너무나 기쁜 그날...주의 날. 거기서는 무슨 일이 있다고 했습니까?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늙은 요한에게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신 그 장면은 무엇이었는가? 본분 1~2절 서두를 함께 읽습니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니”

 

1. 어린 양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는 생명수 강입니다.

 

본문을 보면 우리는 에스겔서를 떠올리게 됩니다. 에스겔47장에서 에스겔이 본 환상 중에 성전에서 동편을 향하여 문지방으로부터 흘러가는 생명수 강물이 기억납니다. 한편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네 줄기 아름다운 강줄기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인류 모든 문명발상지가 한결같이 강가를 중심으로 시작된 건 생명은 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생명수이십니다. 길가운데 흐르는 생명수, 본문 1절 서두에 그것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라고 밝힙니다. 이어서 성경은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생명수 강”이라고 요한은 본대로 적고 있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물이 하늘보좌로부터 흘러내려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이십니다. 생명이시되 영원한 영생이십니다.

 

요4:14절에서 물 길러 한낮에 사람 눈을 피해 우물가에 나온 사마리아여인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아멘. 그렇습니다. 주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말씀, 그 생명수는 영생하도록 영원히 솟아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이 물을 마시면 음부권세로부터 자유하며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롬3:30)을 받아 살리심(합2:4)을 받습니다.

 

출3:7절입니다.“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보고 들으시고 알고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의 핍박으로부터 교회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교회보다 더 고통을 느끼신 것은 주님의 자비로움이었습니다. 당신의 교회들이 부르짖는 신음과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늙어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제자 요한에게 찾아오셔서 분명히 속히 될 일을 보이시고 위로하십니다. 오늘 본문이 속한 계시록 22장안에는 7절, 12절, 20절에 각각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동일한 말씀을 세 번이나 적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절빅하고 어려운 가운데 있어도 로마의 학정만큼 심하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고통은 주관적이라 나름대로 다 말 못할 아픔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주께서 매우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머잖아 갈 곳, 마지막으로 찾아갈 곳은 어딥니까?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길 가운데로 흘러가는데 그 발원점이 어린양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십니다. 길 한가운데 흐르는 생명수 강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은 예수님(요14:6)뿐이십니다. 어린 양 예수로부터 흘러나온 생명수가 길 되신 예수님 한 가운데로 흘러갑니다. 너무나 감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절 첫줄을 봅니다. 강 좌우에 무슨 나무입니까?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2. 생명수 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입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생명수강물(22:1)은 길이 되신 예수님 가운데로 흐르는데 본문 2절에서는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승리는 재림의 날 거기서 만국을 말씀과 생명으로 일으키는 결국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죄악이 범람하는 지상에서 전투한 교회마다 그 믿음의 분량에 따라 아름다운 천국의 실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본문 2절의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는”열두 가지 잎사귀들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롬11:25)와 온 이스라엘이 구원(롬11:26)을 얻기에 합당한 일을 위해 귀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이 험한 광야 길에 오직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께만 접목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요15:5절입니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할렐루야. 예수님께 붙어있는 열두 가지가 되어 많은 과실을 맺는 이 장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다시 저주가 없으며” “다시 밤이 없겠고” 3절과 5절 앞입니다.

 

3. 다시는 저주와 밤이 없습니다.

 

어린 양의 보좌 앞, 거기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 어린양의 얼굴을 마주보며 영원히 왕노릇하는 곳입니다. 5절에는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다.”고도 합니다.

그건 그리고 하나님이 저희를 비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하나님의 얼굴로 항상 환한 곳 거기가 우리의 본향입니다. 마지막 우리가 영원히 살 곳입니다. 잠시 지나는 여기서도 집장만하면 기쁜데 거긴 영원히 삽니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본문5절 말미는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고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날 거기서 받을 영광의 최고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세세토록 왕노릇을 하는 곳 거기가 주님이 마련하신 우리들의 영구한 처소입니다.

끝으로 요14:3절을 찾아 함께 읽겠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절에선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고 함으로 우리가 영원히 거할 거기,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는 아름다운 본향은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생명수가 흐르고 거할 곳이 넉넉한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거룩하신 이름과 말씀으로 여러분을 위로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새 영을 받으신 줄 믿습니다. 새 힘이 공급된 줄 믿습니다. 오늘 변화가 안 일어나도 낙심치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언약을 믿는 믿음을 붙잡고 말씀가운데 깊이 들어가 보셨습니까? 굳센 믿음으로 말씀을 먹는 자마다 새 영은 채워지고 채워진 영 가운데 새 생명이 호흡을 시작하는 줄 믿기 축복합니다.

말씀을 우리함께 깊이 묵상하며 봉독하는 가운데 주의 영이 마무리해주실 줄 확신합니다.

 

본문 계22:1-5절까지 천천히 음성과 영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