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강단

2013.07.14.주일예배(엡 2:13-14.화평케 하는 십자가)

by 설렘심목 2013. 7. 13.

2013.07.14.주일예배(엡 2:13-14.화평케 하는 십자가)

 

인간이 불행을 느끼거나 행복감을 만끽하는 것은 결코 환경이나 외적조건이 아님을 알고 인간내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약간의 지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인간의 원초적 출발에 대하여, 그리고 종착에 대하여 고뇌하는 자는 진정 깊은 지각이 열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근본에 대한 통찰력과 확실한 근거와 그에 대한 믿음을 주셔서 이젠 보다 선명하게 인생을 관찰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늘의 지각을 주신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와 찬송을 올립니다.

 

하나님이 알게 하셔서 깨닫게 된 성경은 오늘 날 우리가 허물과 죄로 인해 죽었던 사망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십자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음(5-6)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죄인은 그 값으로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데 그 죽음을 예수님이 대신 죽어주셔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해 값없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십자가는 우리가슴에 어떻게 새겨져야 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전파돼야 합니까? 본문 14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버린 십자가.

 

할례당과 무할례당의 담(11), 이스라엘 안과 밖이라는 담(12), 율법의 담(15), 이방인에 대한 구원의 담(12), 성전 안에 있는 이방인의 뜰과 이스라엘인의 뜰 사이의 담, 외인에 대한 언약의 담(12)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얼마나 높았는지 모릅니다. 율법에 묶여 종노릇하던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인한 참자유와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율법과 복음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담을 헐었습니다(14절). 선민사상에 젖어 영적우월감으로 이방인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던 율법의 담을 허물었습니다. “할례냐 무할례냐”를 헤아리던 헛된 논쟁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무너졌습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행위에서 난 구원이 아니라, 은혜를 따라 난 믿음으로 받은 구원(8절)의 역사가 십자가의 계시로 시작된 것입니다.

모든 막힌 담을 무너뜨린 십자가의 계시는 궁극적으로 가장 큰 담인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어버렸습니다. 롬5:8-10절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람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사망가운데 있던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했습니다.

 

2.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십자가.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는 인간으로 하여금 죽은 영(롬4:12)으로 살게 했습니다. 죽은 영은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제 소견, 곧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우리가 알듯이 죄를 품은 채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죄문제의 해결없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은“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히9:22절에서 증거합니다. 대제사장이 백성과 자신의 죄를 인하여 일년에 한번 들어가는 지성소에도 반드시 피를 갖고 들어갔습니다. 피흘림없는 죄인을 하나님은 만나주지 않는데 그건 피흘리기까지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피흘림의 죄용서로 주님은 인간들과 하나님사이의 화목을 십자가에서 성취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죄인은 십자가의 대속제물되신 예수그리스도와 그 어린 양의 보혈에 빚진 자임을 믿고 높여 기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본문 2:16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로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한몸으로 만드신 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이 막힌 담을 허물어 하나되게 하고 모든 깨어지고 부서진 것을 회복하며 무너진 것을 다시 일으켜 온전케 합니다. 십자가에서 어떻게 그런 능력이 나옵니까? 십자가는 지고지순의 사랑이며 최고의 희생과 섬김이고 십자가는 하나님의 끝없는 일방적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계시,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골1:20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3. 지체간 연결하여 성전을 세우는 십자가.

본문 2장19-22절은 성도가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모퉁이돌로 하여 서로 성전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도란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믿고 감사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십자가를 함께 바라보고 함께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은혜받은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건축되는 성전은,

 

1)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 성전입니다(20절).

주님이 모퉁이 돌이 되신 성전은 어떠한 성전보다 탁월하고 우수합니다. 다윗이 지은 성전이나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인간역사와 오랜 풍상에 씻겨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 주님이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 성전은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고백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신앙고백하는 개인의 심령가운데 주님의 성전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교회들이 모여 거룩의 무리를 이루면 그 무리 여호와의 총회 되어 땅끝까지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게 될 줄 믿습니다.

 

2) 성령안에서 지어져 가는 성전입니다(21~22절 becoming a holy temple for the lord).

교회의 건축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건축자료는 믿음의 백성과 그 고백입니다. 그러나 아직 다 청산되지 않은 우리들의 죄성이 건축자이신 주님을 얼마나 곤혹스럽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교회의 완성은 성령의 주장아래 놓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교회들은 늘 부족하여 잡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고전12:27-30절을 읽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나름대로 다른 모습으로 모여서 성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지체는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관계인 줄 우리가 압니다. 망치질 하다가 손을 찧었다고 손을 잘라낼 수 없듯이 우리는 서로 도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자기주장에 묶여 교회가 힘들게 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지어가시는 성전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요긴한 주춧돌과 기둥과 서까래, 그리고 아름다운 내장제가 될 줄 믿습니다.

 

3) 화목과 치유와 찬송이 있는 성전입니다.

십자가는 화목입니다. 십자가로 인하여 하나님과 죄인된 우리가 화목하게 됐다는 소식, 수없이 선포하지만 세상에 이보다 더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치유입니다. 이사야서 53장 6절에서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증거합니다. 십자가의 보혈대속이 우리를 심판과 죽음에서 구원했을 뿐 아니라 병든 몸과 마음이 치유된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치유되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본래 뜻대로 우리가 살게 됩니다. 예배로 그것은 찬양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성전은 그래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며 찬송하는 집입니다. 사43:21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비전개척동지 여러분. 성도의 길 뿐 아니라 모든 인생의 길을 갈 때 가장 정확한 답은 골고다 언덕의 예수십자가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먼저 화목하면 지체 간 화목합니다. 지체간 화목하면 성령안에서 성전으로 지어져갈 때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제자리로 회복돼가며 회복의 기쁨으로 찬송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거기 치유와 영원한 화목이 있습니다. 무너진 성전의 회복이 있습니다. 성전이 회복되면 가장 기뻐할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저는 평생 여기 개척동지를 위해 기도를 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주님이름으로 항상 축복합니다.

(특별히 기억하소서. 지어져 가는 어린 성전 승현, 은빈, 한내를 ... 은솔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