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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과기대 김진경총장, 그가 전하는 북한이야기
평양과학기술대학 김진경 공동운영총장
중국의 연변과학기술대학 총장을 맡고 있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인 북한의 한복판 평양에 대학을 설립․운영하고 있는 김진경 총장, 북한에서의 그의 공식 직함은 <평양과학기술대학 공동운영총장>이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로, 한국, 중국, 북한의 명예시민권을 갖고 4개국을 넘나들며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다. 1935년생이라 하니 77세의 고령임에도 열정이 넘친다. 가발업체의 사업가에서 종교철학 박사 학위 취득에 이은 교육사업 투신 등 그의 이력과 활동의 특이함으로 인해 여러 측면의 관심을 받는 만큼이나 그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3월 26일 있었던 한국안보문제연구소(KINSA) 아카데미에서의 김진경 총장의 특강에 대한 청중의 기대와 호기심이 높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체제와 환경이 다른 북한에서의 대학운영의 경험과 교육철학은 물론, 평양과기대가 남한과 북한사이의 긴장완화나 협력의 증진, 남북한 평화통일의 여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남북을 넘나든 그에게서 오랫동안 관찰한 북한의 속사정을 듣고 싶은 기대도 크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가 풀어낸 이야기는 대학 건립과정에서 김정일 정권의 신뢰와 지원을 얻어내기까지의 자신의 활약상과, 피폐한 북한동포의 삶의 개선을 위해 남한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강조만 두드러졌다. 간간히 들려준 북한 내부사정 역시 이미 국제사회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평이한 내용들이었다.
오히려 여러 사안에 대해 공지된 사실이나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지나치게 북한측 입장을 고려한 듯 우리와 엇갈린 상황 설명이나 해석을 내놓아 청중이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았다. 물론 현재 평양에서 교육사업을 하고 있고, 또 해 나가야 할 그의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그를 북한전문가로 여기고 북한의 다양한 속살을 알고 싶어했던 청중의 기대에는 크게 부응하지 못했다.
평양과기대의 운영 현황
김진경 총장이 펼쳐나가고 있는 사업은 세 가지이다. 중국 연변에 있는 연변과기대의 총장과 평양과기대의 공동운영총장을 겸직하면서 북한 어린이 돕기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평양과기대는 연변과기대의 설립 및 운영의 성과를 지켜 본 북한 당국의 요청에 따라 설립되었다. 2001년 5월 2일 북한당국으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은 이후 부지 선정, 학교 시설 건립을 거쳐 2009년 9월 16일 준공식과 함께 그는 공동운영총장에 취임한다.
김 총장은 1998년 한때 북한당국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기도 한다. 미국 시민권자이자 한국의 서울시 명예시민권을 가진 그가 연변과기대에서 펼친 탈북자 관련 행적이 간첩활동으로 오인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김 총장의 교육사업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을 보면서 그에 대해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지원하게 된다.
게다가 때마침 출범한 김대중 정부와 연이은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의 우호적 분위기에 힘입어 개교의 결실을 맺게 된다. 평양과기대에는 김대중 정부 시절 통일부의 통일협력기금에서 지원한 10억원과 정부의 성원 아래 기독교계의 모금 440억원 등 총 450여억원이 투자되었다. 이후 정부 및 민간 차원의 다양한 행·재정적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의 경색과 함께 우호적 지원이 중단되었다.
평양과기대를 세계적인 전문기술교육의 요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김 총장의 의지와 열정은 남다른 듯하다. 국내외의 많은 교회 및 단체, 개인들을 설득하여 재원 후원을 이끌어 낸 그의 특출한 사업가적 역량이 아니었다면 평양과기대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 같다. 평양과기대는 현재 학생규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큰 규모인 100만㎡(약 33만평)의 부지에 10여개의 학사동, 종합동, 기숙사 등 다양한 시설을 구비하고 있다. 특히 대학부지 내에 지식산업복합단지(R&D Center)까지 조성한 것은 단계적인 대학의 확장 및 산학 협동의 단지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평양과학기술대학 전경도
평양과기대는 우선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북한 명문대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원 과정을 교육하고 있는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농업식품공학·정보통신·산업경영 등 3개 분야에 약 400여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앞으로 보건의료학부와 건설공학부를 개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을 제외한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네덜란드, 중국 등 세계 주요 7~8개국 교수 약 70명이 수업을 맡고 있으며, 수업은 모두 영어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4년간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학비, 식비, 기숙사비 등 일체의 교육비용이 무료이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이 외국인 교수의 수업을 받고 있는 장면
김진경 공동총장이 특히 자랑하는 것은 이런 기초적 지원체계 보다 북한 내 다른 대학들의 질시를 받을 만큼 북한당국의 기대와 신뢰에 따른 특혜가 많이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작년 6월부터 김일성대학을 포함한 전국의 모든 대학교가 휴교하고 대학생들이 각종 건설 및 노동 현장에 동원되고 있으나, 평양과기대만은 예외라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예는 더 있다. 대학 건립의 계약 형식이 사단법인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사장 곽선희 소망교회 원로목사)과 북측의 교육성이 직접 당사자인 만큼, 북한 아태위원회와 현대아산이 계약한 금강산 관광사업과 달리 법적 유효성이 더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한 보도에 의하면, 평양과기대 학생들에게 서구사회의 신용카드를 경험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매달 1인당 미화 10달러 상당의 교내사용 현금카드를 지급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북한 주민의 월급이 1~2달러대인 북한 돈 2,500원~3,000원선인 점을 감안하면 평양과기대 학생들이 지급받는 10달러짜리 현금카드는 적지 않은 금액”이라는 점에서 과도한 특혜가 아니냐는 미국의 인권단체의 지적도 있었다.
어쨌든 김진경 총장이 자부심을 갖고 설립,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평양과기대에 대한 국내외의 전반적인 시선이 마냥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홍보 동영상이나 안내 책자에는 평양과기대가 과학기술인력 양성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표방하고 있지만,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평양과기대 운영의 겉과 속
김 총장의 강연 내용 중에 언뜻 언뜻 비치는 내용을 참조하면서 그동안 국내외에서 제기된 평양과기대의 운영에 대한 몇 가지 비판과 의문사항을 냉정하게 정리해 보자. 첫째, 평양과기대가 체제유지와 특권층의 교육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국내외의 막대한 국가 및 민간 재원이 북한의 극소수 엘리트 집단의 교육에 쓰여진다는 점에서 일반주민에 대한 교육지원 차원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평양과기대의 운영이 노동당 특권층 2세에 대한 교육적 배려를 통해 북한 체제의 유지와 결속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특권층 자녀의 해외 유학을 차단하여 자유세계와의 정보의 소통을 막고, 내부에서 당성(黨性)과 재능을 직접 관리하며 충성을 담보하려는 계산이 내재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둘째, 군사적 차원에서의 전문인력 양성 채널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그동안 선군정치의 유지를 위해 김책공업대학, 평성리과대학 등 유명과학기술대학에 인민군의 ‘무력성 위탁생’을 배치하여 전문과학기술을 익히게 한 후 군에 복귀시켜 무기 개발 등에 투입해 왔다. 이런 체계 속에서 인민군이 새로 설립된 평양과기대를 더욱 고급화된 세계적 과학기술을 획득하는 채널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핵무기, 미사일, IT전문인력의 양성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항간에서는 남한에 대한 사이버테러 인력의 양성과 투입의 진원지의 하나로 평양과기대를 지목하기도 한다. 2001년 최초의 건립 기본계약서를 보면 ‘정보과학기술 일군 양성’을 목적으로 표방하고 있고, 대학의 명칭도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이었다. 이후 언제부터인가 ‘평양과학기술대학’으로 변경해서 사용하고 있는 점도 이런 의혹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온다.
셋째, 종교적 차원의 대학 설립 목적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후원하는 국내 및 해외교포 기독교계에서는 평양과기대 운영 목적의 하나로 ‘북한 선교’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김일성 세습가계에 대한 충성이 유일신앙이 된 상황에서, 이와 상충되는 보편적 인간 평등과 사랑, 구원을 추구하는 일체의 신앙의 자유가 결코 허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북한 선교’의 표방 자체가 허위적이란 지적이다.
특히 평양과기대 내의 예배를 허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외국 초빙 교수 및 가족 등에 한정된 것일 뿐, 북한 대학생 및 교직원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게 교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따라서 북한 선교를 목표로 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 내 지하교회와 성도를 지원하기 위한 전도지, 복음 라디오 보내기 등의 개별 사업을 전개하는 게 오히려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선교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넷째, 공동운영의 취지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북한당국이 대학 재산처분 및 운영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측의 민간재단과 북한 교육성과의 계약을 통해 50년간 공동 운영한다고 명시했고 재산권도 남측에 있다고 하지만, 금강산 내 남한재산을 동결, 압류하듯이 북한이 정치적 상황의 변동에 따라 대학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설립과 동시에 재산권을 북한에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한다는 게 북한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특히 평양과기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형적인 2명의 <공동운영총장>이 운영하는 체제다. <김진경 공동운영총장>은 대외적인 권한만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평양과기대가 외국인과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창구라는 점에서, 북측이 선임한 공동운영총장의 경우, 체제관리적 차원에서라도 북한 3대 지배권력체 중의 하나인 국가안전보위부와 긴밀히 연관된 인사일 가능성이 높다.
즉 김 총장은 대학 운영자금의 확보를 위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중국, 한국 등의 후원자들과의 원활한 협력, 외국교수의 발굴․초빙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북측 선임 총장은 입학생의 선발 및 관리, 교과 과정의 편성과 운영, 졸업생의 배치 및 활용, 학교 시설의 관리와 운영을 맡는 역할 분담이 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무늬는 민간이 투자하고 북한정권이 운영에 협력하는 민관합작의 형태이지만, 대학운영의 실권은 북한정권이 쥐고 있다고 보는 게 현실적인 분석이다. 김진경 공동총장에게 위임되었다는 교수의 초빙 및 인사권도 실제 계약서상에는 <교육성과의 합의>를 단서조항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쪽 권한에 불과하다. 북한 측으로서는 북한 학생들과 접촉하게 될 외국 교수들의 사상검증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매년 대학 운영재원을 후원하는 남측의 상시적 학교운영 참여가 제한받는 상황에서, 북한측 주도 하에 대학운영의 초점이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유인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울러 국내의 설립기금 모금결과의 투명한 공개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교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특히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고 학문의 자율성을 담보해야 할 커리큘럼의 경우, 북한의 사회주의의 정체성과 김씨왕조체제 유지의 정당성과 충돌하는 내용의 사전검열이 수반될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미 커리큘럼 설정과정에서 MBA과정을 자본주의 교과라는 이유로 개설을 거부했었다.
결국 평양과기대를 통해 정보통신, 생명과학 분야의 외국의 선진 기술을 획득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와 자본주의의 가치가 담긴 교육은 거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평양과기대가 북한에 대외 개혁․개방과 시장경제의 훈풍을 불어넣는 통로가 되길 바랐던 남측의 의도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다섯째, 평양과기대가 이미 정치적 선전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교하자마자, 모든 교실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렸고, 학생들은 북한 주체사상 수업에 당연히 참여해야 했다. 게다가 2010년 중반에 평양과기대 교내에 과학교육시설이 아닌 <김일성 영생탑>과 <주체사상연구센터>를 건립한 것이 드러나, 우리 국회에서 그동안 평양과기대를 지원해 온 통일부에 대한 질책도 있었다.
김일성 영생탑과 주체사상 연구센터 모습
항공사진으로 본 김일성 영생탑과 주체사상 연구센터
이는 당초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았던 사항으로 대학 공동설립의 취지에도 명백히 위배되는 일이다. 결국 북한은 남북협력에 의한 대학 설립이라는 명분으로 대외 개방적 이미지를 선취했지만, 실상 대내적으론 북한의 최고 엘리트 집단에 대한 김일성 주체사상의 공고화를 함께 의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명색이 국제대학이라는 평양과기대를 ‘제2의 김일성대학’으로 전환해도 남측 공동운영 총장이 제지할 아무런 힘이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 선전장이 되어버린 평양과기대에 대한 남측의 지원 명분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진다.
북한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한계
김진경 총장의 북한의 실정에 대한 다양한 설명은 우리 국민의 보편적 인식과의 간극이 너무 커서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첫째, 여러 사안에 대한 그의 주장을 관통하는 요지는 한마디로 ‘북한 주민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남한 사회가 조건 없이 북한을 지원해야 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납득시키지는 못했다. 북한 주민의 생활이 왜 그렇게 피폐해졌는지, 그런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북한당국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과연 북한내부의 자력 구제 역량이 한계에 이른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다.
특히 김 총장은 강도를 당해 쓰러진 유대인을 적대관계였던 사마리아인이 구해 준 성경의 일을 예로 들며, 남한 국민이 곤경에 처한 북한 주민을 돕는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기아와 절대빈곤에 대한 원인과 책임의 소재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불쌍하니 도와주자’는 식의 막연한 감상적인 주장을 반복하니 호소력이 떨어진다.
특히 그의 인식에는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에 대한 구분이 없는 듯하다. 김 총장은 우리 정부나 국민이 햇볕정책의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을 모르는 듯하다. 우리 국민이나 정부는 북한주민을 돕는 인도적인 일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주민을 억압하는 북한정권을 연명시키는 데 기여하는 일을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 김 총장이 호소하는 대북지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그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대북지원을 했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이 결과적으로 북한정권을 연명시키고, 핵개발 등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국민적 비판과 각성이 정권교체를 낳았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고위층과의 접촉이 가능한 그가 정녕 남북화해와 협력의 메신저가 되고자 한다면, 우회적으로라도 북한이 선군정치와 핵 개발 및 대남 도발 행위를 중단하고 대외개방과 남북협력의 물꼬를 만들도록 조언해야 하지 않았을까?
둘째, 탈북자에 대한 모순된 시각이다. 그는 남한으로 입국한 탈북자에 대한 우리 정부의 처우가 매우 미흡하다는 점을 질책한다. ‘새터민’이란 용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노출했다. 이런 지적은 충분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 북한에 대한 지원 및 탈북자에 대한 지원이 미흡하여 탈북자가 줄고 있다는 얘기는 논리적 연관성이 희박하다. 현재 탈북자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북한, 중국, 남한 어디서든 탈북자에 대한 공식 통계를 만들 수가 없다. 이에 따라 북한을 탈출한 후 중국이나 제3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주민의 입국자 숫자로 탈북자의 숫자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림 1> 탈북주민 입국자 현황
자료: 통일부(2012).
탈북주민의 입국자 수는 2009년 2,900여명으로 최고 수치를 기록하다 2011년에는 10% 정도 감소된 2,700여명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과거 14년간의 전체 추세를 보면, 북한 주민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탈북자의 절대숫자가 적었다.
오히려 대북 지원이 중단된 이명박 정부 시기에 탈북자가 훨씬 많아진 것도 나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다만 2010년, 2011년 들어서 다소 감소한 것은 북한이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 등으로 대남 도발과 내부 결속을 강화하면서 체제 이탈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고, 중국 또한 북한의 요구에 부응하여 국경 경비와 중국내 탈북자 색출을 강화한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결국 김 총장의 탈북자에 대한 시각은 다중적이어서 진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대북 지원을 강화해서 탈북자가 발생치 않도록 도와주라는 것인지, 남한 내 탈북자에 대한 처우를 강화해서 북한 주민에게 탈북의 유인을 많이 만들어달라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내심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에 대한 처우도 강화하고, 잠재적 탈북자가 될 수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편하겠다. 모순된 얘기지만 북한 주민에 대한 그의 사랑만은 확실한 것에 기초해서 말이다.
셋째, 대북지원 쌀이 설사 군에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대북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김 총장은 남한의 쌀이 군에 전달될 경우, 오히려 국군에 대한 인민군의 적개심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황당한 논리다. 그동안 대북지원 식량의 주민 전달과정의 불투명성에 대한 국제사회와 우리 정부의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원식량이 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군량미로 쓰여진다는 의혹을 북한이 불식시키지 않는 한, 식량지원 재개가 사실상 어렵다는 우리 국민정서를 그는 엉뚱한 논리로 돌려보려 애쓴다.
넷째, 그의 통일관도 특이하다. 그는 통일에 대비할 것을 강조하며, 국회에서 통일헌법을 준비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통일 후 남북이 융화되기 위해서는, ① 북한 가정의 남한 이주 금지, ② 북한주민의 한국기업 취업 금지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북한 주민이 남한의 자유시장경제 체제와 직접 접촉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달리 말해 남한과 북한의 상이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래서는 남북한의 동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결국 그가 생각하는 통일 후의 모습은 1980년 김일성 주석이 주창한 ‘고려연방제 (高麗聯邦制)’의 맥락과 그대로 닿아있다. 고려연방제는 한 국가 아래 두 개의 정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는 북한정권의 현 체제를 존속시킨 채, 연방정부에서의 대표권 획득을 통해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북한의 속셈에서 나온 방안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흡수통합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의 반영이다.
하지만 고려연방제로의 통일은 사실상 통일이라고 할 수 없다. 어떻게 이념과 체제가 상충하는 두 정부가 단일의 연방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고려연방제는 화해와 협력 -> 남북연합단계 -> 통일국가 완성단계로 나아가자는 우리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거리가 멀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북한은 99.9%의 투표율과 100% 찬성율을 보여주는 통제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는 데 반해, 우리는 종북세력의 견인에 의해 좌클릭이 심화되고 있는 정치지형 아래서 남북연방 선거가 실시되면, 노동당이 제1당이 되고, 북한의 주석이 연방 대통령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현실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허울 아래 피 흘리지 않고 공산화 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섯째, 여러 사안에서 보이는 그의 인식과 주장에서 대북 경계심을 완화시키려 애쓰는 의도가 느껴졌다. 무조건적인 금강산 관광 재개를 주장하며 무고한 우리 국민의 희생을 가벼이 여기는 태도도 그러했고, 김정일 사망 직후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에게 대규모 방북조문단을 보내라고 조언했었다고 밝힌 점도 그랬다. 아울러 북한의 지하자원의 개발권이 대량으로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노력하는 듯했다.
이미 북한 최대의 철광인 무산철광의 50년 채굴권, 혜산 구리광산의 25년 채굴권이 중국에 넘어간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북한 지하자원의 절반가량을 중국이 선점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희토류 개발까지 중국이 욕심을 내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막연히 민족의 자산을 쉽게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김 총장의 감상적 발언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지하자원 개발과 관련한 사실관계에 대해 무지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북한의 상황과 관련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최소한의 정보와 국민정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인식의 간극이 크다.
평양과기대를 설립하고 공동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김진경 총장은 북한정권에 확실한 귀인(貴人)임에 틀림없다. 평양과기대는 북한의 뒤떨어진 기초과학, 첨단정보통신, 생명과학 기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폭압과 극빈의 생활에 시달리는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남북관계의 호전 및 평화통일에 긍정적 영향만을 미친다고 보기도 어렵다. 선군정치를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노선을 취하지 않는 한, 주민의 굶주림과 민생의 파탄을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대학으로서의 평양과기대가 북한체제의 공고화가 아닌, 자유의 훈풍으로 기능하게 할 때, 비로소 국민적 관심과 성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김 총장이 최근 국내에서 '평양 숭실' 재건을 명분으로 평양내 또다른 대학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거북함에도 청중의 예의를 잘 지켰지만, 김진경 총장의 강연 내용이 대부분의 청중을 당혹하게 했으리라고 본다면 필자만의 지나친 억측일까? 준비된 원고가 없던 강연인지라 단속적(斷續的)이고 좌충우돌하는 측면이 많아 행간을 읽기도 힘들었다. 그는 때로 책상을 손으로 치면서 열변을 토했지만, 평양과기대의 공과(功過)에 대한 엇갈린 평가, 남북을 넘나드는 그에 대한 기대감과 경계심 또한 적지 않아 수강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지루함에 그가 배부한 또다른 영한 강연문에 자꾸 눈길이 갔다. ‘평화는 값을 지불해야 온다’(Peace comes with a Price)고 그가 붙인 제목이, 마치 강의 내내 무조건적인 대북 지원을 강조한 맥락과 이어져, ‘돈을 주고라도 평화를 사라’는 말로 은유하려 한 것처럼 느껴졌다.
정작 평화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Price)는 ‘돈’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보위하고자 ‘희생’을 감내하는 굳건한 의지가 아닐까? 오히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sic vis pacem para bellum)는 로마의 격언이 갑자기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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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의 악몽, 문제는 안보다. - 미래한국 김범수편집인 (0) | 2012.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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