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직예수!!

[스크랩]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다.(1)

by 설렘심목 2011. 7. 30.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다.(1)

                                                                                     로마서 9장 14-18절의 말씀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하면서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몇 가지 예를 들면서 그것을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많은 아들이 있었어도 오직 약속의 씨인 이삭, 그리고 이삭에게 쌍둥이 아들이 있었지만 야곱이 하나님이 선택을 받았음을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선악간의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이미 창세전에 그 선택을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일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말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여도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혹 불공평하다고 말을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제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의 말씀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선택과 버리심에 대하여 사람이 불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본문 15-16절의 말씀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5절의 말씀은 출애굽기 3319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보면 출애굽기 3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멸하시겠다고 하였으니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큰 은혜를 체험하였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는 큰 죄악을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애굽을 용서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백성을 용서하셨는가에 대하여 그 근거를 제시해 줄 것을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이 모세의 요구에 대답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말씀하신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택하시고 애굽은 유기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창세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를 하였어도 용서 받는 이유가 하나님이 저들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어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믿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의 말씀에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은,

   1. 원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16절의 말씀에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라고 하였습니다. “원한다(θέλω)”는 것은 무엇을 이루여고 열망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구원은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천국에 가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지옥 간다면 싫어합니다. 누구든지 다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란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 힘써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16절의 말씀에;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라고 하였습니다. "달음박질"은 빨리 달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힘쓰고 애쓴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힘을 써서, 노력하여 구원을 얻으려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아닌 많은 종교들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선행으로 기도로, 고행으로 득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니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본문 16절 하반절의 말씀에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결정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오직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결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구원하시는 결정의 요소를 하나님의 긍휼이라고 합니다. “긍휼(έλεέω)”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것을 에베소서 14절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을 선택하시는 기준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 사람을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앞선 말씀 로마서 913절의 말씀에서도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신 이유는 단 한 가지 야곱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17절에서 유기의 대표적 인물인 바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바로가 우연히 역사상의 인물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에는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하심으로 바로의 강퍅한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이스라엘에게 보임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믿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예정적 계획에 의하여 바로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18절의 말씀에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똑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애굽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목격을 하였습니다. 애굽에 내린 열 재앙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더욱 굳게 믿는 계기가 되었고 애굽의 바로는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도 그 마음이 강퍅하여져서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택한 자와 유기된 자의 차이점입니다. 출애굽기 144절의 말씀에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그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았지만 그들은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긍휼히 여기고 애굽 사람들은 강퍅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기를 원하셨고 애굽과 바로는 강퍅하게 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완악하여 예수님을 배척하고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믿지 않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는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전체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택함은 받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오늘날 구원을 받은 이방인들도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구원에 대하여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구원이 인간의 노력이나 원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인 택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죄와 사망의 영벌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이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35절의 말씀에 우리를 구원 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긍휼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도 때로는 불행하다고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잠간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도바울도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불행하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장차 주님이 주실 영광을 생각하였습니다. 로마서 818절의 고백에서 바울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받는 가장 큰 복은 돈이 아닙니다. 영예도 아닙니다. 권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영생의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는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우리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그 영생의 가장 귀한 복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힘써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이것을 은혜로 받았습니다. 여기에 모여 영생의 복을 받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임을 믿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려) 중부노회
글쓴이 : 엄규오 목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