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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예수!!

배부르다보니 천국도 귀찮다. - 신상래칼럼

by 설렘심목 2011. 7. 27.

 

배부르다보니 천국도 귀찮다.

 신상래칼럼 2011-07-06 11:57:44

 

http://blog.Godpeople.com/looker/?B001-531

오래된 선사시대인 백악기과 쥐라기에는 인간이 아니라 공룡이 주인공이었다. 거대한 몸집과 더불어 다양한 종류로 그 시대를 풍미했다. 공룡이 멸종된 원인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새롭게 들이닥친 추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라는 게 주류를 이룬다. 그들보다 못한 동물들은 혹독한 빙하기가 시작되자 나름대로 생존의 비결을 찾아 고군분투했지만, 오랫동안 번영을 구가하던 공룡들은 적응할 필요가 없어서인지 그런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면서 생존의 위험이 닥치자 우왕좌왕하다 한꺼번에 삶의 무대를 내려가야만 했다. 자연사박물관에 가면 여전히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 당시 자신과 비교할 수 없었던 미미한 존재들조차 지금껏 번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들을 보면서,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바울의 경고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런 일들은 우리 교회에도 있어왔다. 초대교회 당시의 기독교는 유대교에서는 자신에게 맞서는 이단종파로, 정복자인 로마제국은 미개한 소수민족의 신흥종교로 얕보았다. 그래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위협당하며 재산을 잃고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자밥이 되거나 십자가에서 가혹한 처형을 당하고 참혹한 고문과 박해를 견뎌내야 했다. 그 시절에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고 혹독한 박해에도 불과하고 기독교는 번영을 구가하였으며, 마침내 그 당시 세계 최강인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이 되고 황제가 믿는 종교로 부상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고자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 부와 명예, 권력을 얻으려면 기독교인은 필수조건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고 종교의 자리에 오른 기독교는 그 순간부터 부패해져갔다. 세속적인 왕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권력을 즐겼고 결국은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했다. 굳이 먼 지방의 이야기를 꺼내들지 않고 우리나라의 예만 들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교회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번성하기 시작한 이유는 고단했던 우리네 조상들의 역사와 맞물려있다. 봉건주의의 압제에 시달리며 지독히 가난했던 조상들은 평등하게 대접받고 슬픔과 고통이 없는 기독교의 천국을 열렬히 환영하고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곧 박해와 불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한국동란이 일어나고 동족상잔의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피폐된 산업과 잃어버린 일터는 절망적이었고 남은 자들은 매일 먹고 사는 게 끝이 없는 전쟁 그 자체였다. 그 때에 그들의 가슴에 희망을 불을 지펴준 것이 기독교였다. 예수만 믿으면 배불리 먹고 자녀를 가르칠 수 있으며 내 집을 갖는다는 희망을 던져주었다. 슬픔과 눈물이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복음의 소식은 이 땅에서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이러한 간절한 소망은 순식간에 들불처럼 전국을 휩쓸었고 수많은 교회가 지어지고 엄청난 이들이 교회로 찾아들었다. 그렇지만 8,90년대를 거치며 경제가 부흥되면서 번듯한 아파트에 살며 자가용을 갖는 꿈이 이루어지자 교회에도 기름이 끼기 시작했고 교인들은 춥고 고단했던 시절을 잊어갔다.

 

지금은 장로가 대통령이 되고 사회지도층인사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다. 인구의 사분의 일인 천만명을 넘어섰다. 기독교는 소외계층의 힘없는 종교가 아니라 그 반대로 기득권을 대표하는 부유한 종교가 되었다. 거대한 대형교회의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그 위상을 말해준다. 성공적인 정치가가 되려면 서울의 대형교회 교인이 되는 게 필수조건이라고 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교회가 힘이 세지고 교인들이 부자가 되면서 하나님의 뜻이 귀찮은 교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에 나오는 이들 중 대다수는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축복을 얻기 위해서이다. 아무도 희생과 고난을 대표하는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이들이 없다. 목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목회는 명예를 드높이는 분야이며 목사는 부유하고 대접을 받는 높은 직책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교인들의 요구사항을 잘 아는 목사들은 설교단상에서 교인들이 싫어하는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부와 성공, 치유로 상징되는 축복만을 고장 난 레코드처럼 쏟아 부을 뿐이다. 이들도 좋은 직업(?)를 놓치고 싶지 않으며 자식에게 대를 물려가며 그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한다. 탐욕스런 목회자와 세속적인 교인들이 빚어낸 결과가 교회가 처한 현재의 모습이다.

 

앞으로 우리나가 교회는 계속 쇠락해 갈 것이고 교인은 줄어들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교회처럼 텅텅 비고 노인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게 될 것이다. 남은 이들도 겨우 형식적인 종교행위만 반복할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찾는 갈급함이 사라졌기에 교회가 쇠락하고 하나님이 떠나신 이유이다. 그 이유가 삶의 고단함이든 아님 영적인 건조함이든지,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이 계실 이유가 없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쉼 없는 기도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떤 고난이라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없는 이들에게 성령은 소멸하실 것이다. 그렇기에 차라리 초대교회처럼 생명이 위협받고 박해받는 환경이 영혼은 더욱 부유했으며, 6,70년대의 우리나라처럼 모두 다 가난했고 절망스러웠기에 견고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그 시절의 간절한 믿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가난을 멸시하며 부자를 쫒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천국은 언감생심이며, 쉬지 않는 기도로서 성령이 내주하시는 삶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아직도 멀었다. 성경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열정이 없다면 불에 던져질 쭉정이일 뿐이다. 지금 하나님을 향한 갈급한 마음이 없다면 당신의 영혼은 희망이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성령을 불러들이는 영적 습관을 몸에 배는 일이다. 전 재산을 버리고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해서라도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삶으로 채우는 길만이 생명문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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