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35-39절의 말씀
창세기12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
기근이 들어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보고 그 미모에
반하여 그로 아래를 삼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이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려서 그것을 막으셨습니다. 다니엘서의
말씀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느부갓네살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 불에 던져 졌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구하여 주셨습니다. 다니엘도 왕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께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던져 졌지만 하나님께서 그 천사를 보내어 구원하셨습니다. 다윗은 시편 118편 7절에서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 주셨기 때문에 가능 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다는 것은 우리의 편이 되어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 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Ⅲ.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본문 35절의 말씀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39절 하반절에서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육체적으로 받는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본문 35절의 말씀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라고 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위에 열거한 이런 고난들은 바울이 모두 경험한
것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육체적 고난을 받았습니다. 여기서는 간단히 기록
하였지만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의 말씀에 보면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
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라고 하였
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지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적으로 가문이나
학벌이나 사회적 종교적 지위를 고루 가추고 있었으며 가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서 3장 7-9절의
말씀에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지
않았으면 아주 평탄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이러한 육신적 고난을 격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모든 것 보다 “예수”가 더 귀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잘 못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이용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하지만 바울은 예수를 바로 믿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의 표현대로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안에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세상의 모든
권세와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예수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가 생명이요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바로 예수님은 바울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 엄청난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바울이 이러한
육체적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그 곳에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그것을 이길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기
때문에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크게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바울을 사랑하심
으로 그가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의 능력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모든 육체적인 고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본문 36절의 말씀을 보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에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러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는 예수를 믿기
위하여 세상적인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반대로 오늘날은 예수를 통하여 세상적인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믿음은 세속에 있지 않습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말로는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주님께 얼마나 많은 것을 바라고 있습니까?
주님을 통하여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세상 것을 모두 버릴 수 있는 믿음, 그
사랑이 진실한 믿음이요. 진실한 사랑입니다.
본분 37절의 말씀을 보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
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넉넉히 이긴다(ύπερνικϖμεν)”는 말씀은 “뛰어 넘는다(ύπερ)”는 말과
“승리한다(νικάω)”는 말의 합성어로서 이기고도 남는 초월적 승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고난을 이기는 힘은 성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성도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고난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고난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넉넉히 이깁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세상의 어떤 피조물도 성도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본문 38-39절의 말씀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위에 열거한 아홉 가지의 것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입니다. 생명과 죽음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천사들이나 마귀도 하나님의 지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들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들도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으신 것입니다. 모두가 사람을 위하여 지으신 것입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지으신 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보다 사람이
중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는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존재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확신 하노니 …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확신은 무엇입니까? 굳게 믿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너무나 단단해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구원하셔서 우리에게 자녀의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나라를 상속하게 하시고 그 나라로 인도하여 들이
십니다. 이렇게 창세전에서부터 이어온 사랑의 위대한 줄이 있습니다. 이 사랑의 줄은 그 누구도 어떤
피조물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줄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 삽겹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질 수 없는 이유기기도 합니다.
1)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사랑의 줄입니다.
요일 4장 9절의 말씀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보내신 생명의 줄입니다. 우리를 살리려고 보내신 생명줄입니다. 이 생명줄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2) 성령님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사랑의 줄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의 말씀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줄이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하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님을 믿도록 그 줄을 붙잡도록 하신분이
성령이십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사랑의 줄입니다.
요한일서 2장 5절의 말씀에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라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서 지키게 하시고 그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게 있음을 확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님을 믿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삼겹의 사랑의 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줄은 끊을 수 없는
삼 겹줄입니다. 전도서 4장 12절의 말씀에도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삽 겹줄은 어떤 피조물도 끊을
수 없는 삽겹줄입니다. 세상의 환란도 그 줄을 꾾지 못합니다. 어떠한 영적인 존재의 능력으로도 끊을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벌레 같은 존재를 왜 그렇게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원하여서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을 받은 우리는 세상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빛과 소금”의 역할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세상에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힘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희생 곧 사랑으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도 세상에 대하여 희생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빚과 소금의 역할을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받고 구원을 얻었는데 세상에서
무슨 빛의 역할을 하였습니까? 무슨 소금의 역할을 하였습니까? 이제부터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은 용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달리게 하심으로 용서 하셨습니다. 용서 없는 사랑은 거짓입니다. 용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 없는 믿음의 생활은 외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습니까? 우리는 드릴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그 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반드시 끊어질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절대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끊어지지 않는 그 사랑을 우리도
실천하고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