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전 생애에 걸쳐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는데, 작품의 특성 및 작곡 시기에 따라 크게 초중기 3개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피아노 소나타 23번] Op.57 ‘열정’은 1804년에서 1806년에 걸쳐 작곡된 곡으로서 중기 소나타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중기 소나타란 1802년부터 1806년에 걸쳐 작곡된 12곡의 소나타를 일컫는데, 이 중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과 더불어 ‘열정’ 소나타가 중기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불꽃같은 격정, 불굴의 기백이 돋보이는 피아노 소나타의 역작 |
베토벤의 중기 소나타들이 전기 소나타들과 구분되는 특징을 먼저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형식이 자유로워졌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전기 소나타는 하이든과 모차르트로부터 이어지는 전통적인 3악장 혹은 4악장의 소나타-알레그로 형식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중기로 넘어오면서 실험적으로 새로운 형식을 도입했다. 즉, 두 개의 악장으로만 구성된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한다든지, 형식상으로는 소나타 형식이지만 내용면으로는 음량의 폭을 극대화하고 색채감을 더해 고전시대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오케스트라적 음색’을 추구한다든지, 악장간 유기적인 주제를 사용함으로써 피아노 소나타의 형식을 발전시켜 베토벤 후기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원숙한 예술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이 가운데 [‘열정’ 소나타]는 중기 소나타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이 곡이 작곡될 무렵은 베토벤에게 있어 풍부한 창작의 시기였다. 그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를 완성했고 [교향곡 4번], [5번], [6번]과 라주모프스키로 불리는 세 개의 [현악 4중주 Op.59], [피아노 협주곡 4번],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작곡해 양식과 내용에 있어서 진취적이고 독창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곡은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인 프란츠 폰 브룬스비크(1771~1849) 백작에게 헌정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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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지배한 방황과 열정의 산물
브룬스비크 백작은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불멸의 연인’이라고 일컬어지는 테레제의 오빠이다.
베토벤은 1800년부터 백작의 집에서 테레제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적이 있다.
이 집에는 요제피네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베토벤은 요제피네의 관능적인 아름다움과
테레제의 정적인 아름다움 사이에서 많은 방황을 했다고 한다.
2악장에 테레제에 대한 인상을 반영시켰으며 격렬한 1, 3악장은 요제피네의 아름다움에 대한 반항으로
썼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프랑스의 대문호 로맹 롤랑은 이 곡을 듣고 ‘열정의 마음,
탄탄한 턱과 위쪽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 고뇌와 단련된 불굴의 기백이 그대로 다가오는 것처럼
여겨지는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작품의 부제인 ‘열정’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라 독일 함부르크의 출판업자 크란츠가 붙인 것이다.
이 곡이 얼마나 어렵게 느껴졌던지 크란츠는 1838년 이 곡을 출판하면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편곡’
버전을 함께 선보였을 정도다. 더군다나 대중들이 연주할 수 있기까지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열정’ 소나타]가 당시로서는 얼마나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었던가를 실감할 수 있다. | |
제1악장 - Allegro assai 12/8박자의 제1악장은 격렬한 단조의 폭풍을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듯한 긴장감이
곧 들어닥칠 거대한 폭풍을 예고한다. 1주제와 2주제, 이 두 개의 주제를 연결하는 경과구가 서로 어우러지며
단단한 통합력을 바탕으로 결속되어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2, 3악장까지도 같은 요소로 구성된 ‘음악적 동기’를
통해 3개의 악장을 통일시킨다. 이 악장의 주요 리듬은 [교향곡 5번] 제1악장의 ‘운명의 동기 리듬’ 패턴과 흡사.
제2악장 - Andante con moto - attacca 변주 형식을 따른 평범한 변주곡이다. 주요 주제가 3개의 변주 다음에 다시 제시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음악학자 찰스 로젠(Charles Rosen)은 이 주제가 3개의 변주가 진행되면서 차례대로 성취한 긴장감을 다시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언급했다. 변주가 진행되면서 한 옥타브씩 올라갔다가 클라이막스 이후 다시 처음의
낮은 음역의 주제로 되돌아오는 것이 이 변주 악장의 특색이다.
제3악장 - Allegro ma non troppo - Presto 소나타 형식 혹은 론도 형식으로 구성된 이 마지막 악장은 베토벤 특유의 강렬한 음향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불꽃같은 격정과 날카로운 눈빛, 불굴의 기백은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고도 남을 강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매우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끝맺음 부분은 연속적으로 휘몰아치는 아르페지오를 통해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파괴적인 에너지와 흥분을 토해낸다. | |
글 박제성 / 음악 컬럼니스트,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 역자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써 온 음악 컬럼니스트 공연, 방송, 저널활동, 음반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