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강단

2022.06.05. 주일예배<삿6:25-27. 기드온의 결단과 신앙고백>

by 설렘심목 2022. 6. 6.

2022.06.05. 주일예배<6:25-27. 기드온의 결단과 신앙고백>

모세가 가고 여호수아마저 떠나자 이스라엘은 중심을 잃고 우상숭배를 또 시작합니다. 우상숭배는 곧장 이스라엘민족의 불행으로 이어져 모압 에글론왕에 의해 18, 가나안왕 야빈과 군장 시스라에 의해 20년간을 시달립니다. 이어 바락과 여선지 드보라가 등장해 그 바른 신앙지도 아래 40년간을 태평하게 지내게 되자 백성들은 다시 느슨해져 우상숭배의 범죄에 들어갑니다. 식량과 가축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힘든 건 자식 앞에서 아비가 따귀를 맞고 남편 앞에서 아내가 수치를 보는가 하면 부모 앞에서 자식을 죽이거나 죽도록 잡아 패는 일이 우상숭배의 결과였습니다.

 

암몬의 몰록, 블레셋의 다곤, 가나안땅 만신전의 우두머리 엘, 전쟁의 신 아낫, 죽음의 신 못, 헷족속의 폭풍우 신-테슙, 시리아의 폭풍우 신 아닷과 가나안의 신인 엘의 아내이자 바알의 어미인 아세라 신 등 많은 우상이 판을 치게 되자 하나님께선 이스라엘을 미디안에게 붙이셔서 7년 간 고통과 압제를 방치하여 깨달음의 세월을 주십니다.

본서 6:1-3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파종할 때면 어김없이 공격해 고통이 심하게 된 건 그 원인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툭하면 쳐들어와 만행을 저지르고 모두 빼앗아가는 그들이 두려워 굴을 파고 숨고 산성을 높이 쌓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범죄하면 인생들은 세상이 두려워 스스로 굴을 파고 숨고 담장을 높이 올립니다. 가축이나 먹을 게 남아나지 않아 백성의 생활은 말이 아닙니다. 그제야 비로소 울부짖고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6:6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인해 여호와께 부르짖으니하나님이 들으시고 세운 사사가 오늘 우리가 말씀에서 만나는 소심하고 겁많은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은 그의 고백처럼 므낫세가문 중 영향력이 없는 작은 가문의 자손입니다.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입니다.”라고 합니다.(15) 그러나 하나님은 12절에서 기드온을 뭐라고 부르셨습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17절에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님이신 표증을달라고 하니 바위 위에 놓인 제물에 불이 붙었고 27절엔 그 성읍사람들이 두려워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했다고 합니다.

겸손인 양 움츠리는 우리를 크고 귀한 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번제와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어 쪼갭니다.

 

1. 명령에 따라 번제를 드립니다.

 

25절입니다. “네 아비의 숫소 곧 7년 된 둘째 숫소를 취하고아마도 두 번째 수소의 나이가 7년 된 것이므로 둘째 수소를 하나님께서 요구하셨을 것입니다. 그건 7년의 미디안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시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번제에 쓸 소도 친히 지명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기드온의 이 번제는 이스라엘을 구하시는 서막과도 같은 상징적 행사였습니다. 백성들의 죄악을 7년 된 수소에게 옮긴 뒤 그 수소를 제물로 드려 7년간의 미디안 압제로부터 해방을 이루는 기드온의 사역이 시작됩니다.

 

모든 사명 앞에 먼저 예배로 자신과 무리를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과 명쾌한 관계를 회복하는 게 순서입니다. 오늘도 이 예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과 인생에 확신이 넘치기 원합니다.

 

2.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어 쪼갭니다.

 

25절 말미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에 아세라상을 찍고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바알의 단을 섬긴 건 그만큼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부패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29절에선 사람들이 바알제단을 훼손한 기드온을 처형하려고 시위합니다. 이는 온 백성들이 바알을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 넘어갔는데 홀로 순결을 지켜 바른 길로 간다는 건 실로 위험하기도 하고 외롭고 고달픈 일입니다. 기드온은 그러나 주의 영이 함께 하셔서 16절에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고 한 말씀을 믿고 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숫자도 전투력과 전략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들은 기드온은 명령에 따라 먼저 우상 바알의 제단을 헐어버립니다.

 

기드온의 부친 요아스는 동네 어르신이었고 온 성읍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지였지만 모두 함께 우상숭배하는 악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야 했습니다. 환경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자손만대에 이르도록 예배당을 맴돌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복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아울러 저와 여러분. 우리 안에 반드시 헐어버려야 할 바알의 단이 있음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요, 영원한 찬송이신 것을 굳게 믿고 고백하면서도 우리들은 언제나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앞에서 종종 결정적인 방해자가 됩니다. 그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간절히 사모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보다 중히 여기는 그걸 위해 하나님은 단순히 도구가 되기 일쑤입니다. 거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게 주님 주신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맺어주신 부모형제입니다. 소중하게 간직한 추억과 친구들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훌륭한 직장과 그 상사들입니다. 남들이 늘 감탄하고 칭찬하는 나만의 재능과 괜찮은 인격이 바탕 된 좋은 관계입니다. 안타깝게도 방금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때때로 이것들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하나님이 전락한다는 겁니다. 심각한 영적문제입니다. 반드시 헐어야 할 바알의 단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풍요와 각양 선물과 생명은 모두 바른 신앙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힘있게 확장하고 교회운동 잘하라고 주신 겁니다. 그것을 즐기고 기뻐하다가 주신 하나님도 까맣게 잊고 교회도 부담된다면 앞뒤가 바뀐 겁니다. 주신 모든 게 거룩한 주님 나라의 귀한 소유물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주께서 맡으신 주님 소유는 더욱 잘 보존되고 발전하며 성장합니다. 믿기 바랍니다. 그렇게 내 모든 것 하나님의 소유로 올리고 나는 그 하나님만 신뢰하고 높여드리고 찬송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뭡니까? 25절 중반입니다.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 취해 하나님을 소홀하게 하는 바알의 단 옆에는 항상 그걸 부추기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그건 다름아닌 내 안에 교묘히 자리 잡고 떠나지 않는 죄성입니다. 박윤선박사는 저서에서 남이 잘될 때 우리가 좀 기뻐할 수 없을까?”라고 질문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이 잘되는 거 좋아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부모 외엔 아무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피를 나눈 형제들도 기대만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기심, 시기심, 질투심은 바알제단에 절하는 악이요, 아세라 상의 결과물들입니다.

 

기드온이 한밤중에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상을 찍은 건 그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결단과 충성심은 바알의 단과 아세라 상을 넉넉히 부수고 찍어 쪼개도록 합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악한 죄의 씨앗을 향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지 못하는 건 한마디로 하나님의 실존을 예민하게 실감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한편 하나님의 존재를 삶의 감각으로 실감하지 못해 늘 멀리 바라만 보는 우리의 연약이요, 부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린 구정이나 추석이나 한복 국악, 이런 민속문화를 싫어합니다. 민속은 백성사이에 전해져 오는 풍속입니다. 풍속은 민간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무속신앙이 가장 큰 중심이 되고 다른 민속은 무속 아래 놓이게 됩니다. 예컨대 민속 안에 있는 놀이문화나 예의범절이나 충효사상 등이 철저하게 우상을 중심으로 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마지막 결론이 됩니다. 이사를 가면 날짜를 택하고 팟죽을 쑤어 이웃과 나눠먹고 앞뒤 터에 뿌리고 정월 보름이면 달을 향해 짚단을 나이만큼 띠를 묶어 소원을 빌고 하는 것으로 시작해 모든 민속이 무속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집집마다 뒤뜰 안에 지푸라기고 터줏대감 솟대를 만들어 놓고 시시때때로 빌던 민족이 오늘날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시니 이야말로 예루살렘 성전이 한반도에 세워진 겁니다. 아니 저와 여러분 심령 안에 이미 터줏대감이 쪼개지고 무너지고 태워져 바알의 단을 무너뜨린 자마다 주님 앞에 큰 소리로 찬송하며 나아가게 됩니다. 여호와의 깃발이여. 기드온의 승리여..우리 안에 바알의 단이 무너진 것을 인하여 주를 찬송할지라.

기도로 마칩니다.

나약한 자를 부르셔서 크고 위대한 일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들 손에 믿음의 도끼를 쥐어 주셨나이다. 우리 안에 교묘히 자리잡고 끈적거리며 떠나지 않는 우상들, 그것을 찾아내어 찍어 쪼개고 태워 번제로 드리게 하소서. 우리 안에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아세라상을 쪼개기 원합니다. 우리의 연약은 그 일을 할 수 없으나 어린양 보혈이 근거가 되어 넉넉히 이룬다는 것을 믿고 간절이 기도하오니 주여 주이름 부를 때마다 도우소서. 무너진 바알의 터 위에 시온의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하나님의 풍요를, 하나님의 영생을, 하나님의 승리를 우렁차게 노래할 줄 믿습니다. 믿는 자에게 기드온의 승리가 자손만대 영원할지어다. 여호와의 깃발이 영원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