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5. 주일설교<욥42:7-17(10). 고난 후 갑절의 복.>
[2020.03.12.목요. 정치로 나라를 가꾸고 바꿔가지만 근본 인간이 바뀌지 않으면 허사이다. 바른 세상을 위해 가깝게는 법치를 통한 강제로 선한 共和정치를 추구하나 멀리는 인간을 바꿔야 한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은 선하고 의로운 영원한 통치자 하나님을 모시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정치판에 들어가 고생하다가 인간을 바꾸는 평생사명을 찾아 신학교에 갔다. 목회를 하다 보니 이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고 결국 목회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에 두 손 들어 만세를 불렀다. 광화문 이승만광장의 만세소리보다 더 근원적인 만세고백이다. 예수만세 여호와 만만세.]
죄 없는 자의 애매한 고난과 의인의 고통하면 우리 성도들은 의례히 욥을 떠올리게 됩니다. 성경은 욥을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큰 부자였으며 온전하고 정직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 1:1절에 소개됩니다. 그는 자녀들 생일잔치 후에는 혹 부지중에 죄를 짓지 않았나해 자녀들의 수효대로 번제 드리는 것을 잊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 앞에 늘 경건한 삶을 살고자 애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욥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가운데 잿더미에 앉아 깨진 조각으로 온몸의 악창을 긁고 있을 때 그는 결코 어리석게 원망하는 말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욥의 세친구가 찾아옵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 세 친구는 위로차 왔으나 결국 고통 중 신음하는 욥을 책망합니다. 욥기서는 욥의 재앙, 세 친구의 인과응보라는 질책, 연소한 엘리후의 지적과 하나님찬양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38장에서 41절까지는 여호와하나님께서 욥에게 묻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으로서는 감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통해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절대무궁하신 주권과 선언에 스스로 죄가 없다고 했던 욥은 철저히 돌이킵니다. 욥의 회개 직후 하나님께서 다시 욥의 세 친구에게 책망과 더불어 제사를 명령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처럼 욥은 옳지 못한 세 친구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하나님주시는 말씀은 자신을 질타하여 고통 중에 더 힘들게 한 친구들을 위해 기도한 후 하나님이 욥에게 복을 내려주셨다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욥이 고난 후에 받은 복은 어떻게 시작되고 있습니까? 본문 10절입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1.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곤경을 멈추고 갑절의 소유를 주셨습니다.
욥의 세친구들은 위로하러 왔지만 몰라보게 무너진 욥의 몰골에서 과거의 인자하고 반듯하고 위풍당당한 부자, 귀품격인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자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4:7-9절을 함께 읽습니다. “생각하여 보라.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가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결코 위로하러 온 자의 말이라고 할 수 없는 가시 돋친 책망입니다. 야단맞을 일이 있어도 역시 야단맞는 일은 달갑지 않습니다. 더욱이 욥의 경우 이유를 알 수 없는 큰 불행가운데 엘리바스의 뼈아픈 질책은 용서받기 힘든 악담입니다.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그는 백성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단순히 나무라는 것을 넘어서 저주에 가까운 말입니다. 세 사람이 다 이처럼 조롱과 야유와 비아냥대며 학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는 모든 불행을 죄의 결과로 단정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욥은 영문도 모른 채 친구들로부터 정죄받고 책망당하고 심지어는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욥의 전화위복의 때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를 비난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 곤경이 멎고 갑절로 회복되는 욥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도하는 일은 자연스럽고 어렵지 않지만 자신을 학대하고 조롱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이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몸으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게 과연 원수를 위해 기도할만한 마음의 여유와 사랑이 있다고 보십니까?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조롱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욥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보시면 심히 기뻐하시고 원하는 것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주시는 분이신줄 믿습니다. 거듭 선포합니다. 우리 좋으신 하나님의 손에는 생명으로부터 시작하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언제나 주시려고 손에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못 받을까? 우리 안에 욥과 같은 하나님의 사랑, 곧 주님의 형상이 아직 보이질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인간이 영리해도 늘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이 그것들을 받쳐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공의 기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출발할 때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 전략,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 담대함과 겸손,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 분노,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 냉철은 하나님의 기쁘신 소원을 이뤄서 결국 세상이 무릎 꿇고 환경이 맥을 못 추게 됩니다. 기도역시 응답받는 능력의 기도가 되려면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자신과 사랑의 관계에 있는 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받으셔서 곤경이 멈추고 소유를 갑절이나 받기 원하신다면 우리를 핍박하고 조롱하고 괴롭히는 자들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기도합시다. 최소한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하시면 아멘입니다. 이번에는 6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둬들이고 티끌과 재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2. 회개할 때 우리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9절의 끝부분입니다.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의 회개와 세 친구들의 번제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돌이키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본래 착실한 맏아들보다 돌이켜 돌아온 탕자 작은 아들을 더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아버지 우리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십니다. 강대상에서는 안 보이는 사람만 보입니다. 결석해 예배를 굶는 이에게 마음이 꽂힙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지만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얻었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15:31-32)
돌아온 탕자 작은 아들이 더 눈에 띄고 반가운 것은 잃은 양을 찾는 목자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잃은 아들 죽었던 아들을 찾는 아버지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욥은 매우 신실하고 의로운 사람입니다. 주변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회개했고 그 회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습니다. 욥처럼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무슨 회개거리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욥이 회개했다면 우린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끊임없이 회개해야 하는가? 욥의 회개는 어떤 회개였기에 하나님이 그를 기쁘게 받으셨고 모든 재앙에서 갑절의 복을 허락하셨을까? 42:3절을 함께 읽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무엇을 회개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의 죄를 돌이켰습니다. 욥은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게 된 자신을 회개했습니다. 38-41장까지의 기나긴 하나님의 질문은 욥으로 하여금 입을 다물게 합니다. 자신의 이유모를 불행에 대하여 항변하던 욥은 하나님의 원대하신 섭리와 절대하신 주권과 판단과 능력 앞에서 인간의 한계와 자신의 작은 생각을 겸손히 내려놓게 됩니다. 즉 해명되지 않는 자신의 불행조차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판단과 뜻 안에서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일이 지금 어떤 목표로 진행 중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진행 중인 하나님의 계획을 알던 모르던, 믿던 못 믿던 하나님은 결코 원망의 대상도, 분석의 대상도, 논쟁의 대상도 아님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사랑으로 영존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이십니다. 인생은 언제나 그 사랑을 왜곡, 변질시켜 문제를 만듭니다. 욥은 자신이 무죄라고 했고 깨달은 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렸다고 돌이킵니다. 무지는 하나님을 몰랐다는 것이고 하나님에 관한 것은 감히 사람이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욥은 고통과 하나님의 말씀 중에 깨달았습니다. 욥의 실수는 첫째 죄에 대한 무지였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바로 이것이 에덴에서 시작한 영의 죽음이요,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에덴의 타락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이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38-41장까지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이자 인간으로서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창조의 비밀을 들추며 욥에게 던지는 질문들입니다. 욥은 한마디도 못하고 자신 즉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며 자신의 옹색했던 생각과 분노와 원망을 돌이키게 됩니다. 욥의 회개를 쉽게 이해하려면 우리는 좀 떨어져서 봐야 합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란 말이 있습니다. 언젠가 삶이란 파도라는 말로 wave를 설명했습니다. 한번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순서가 있고 한번 내려오면 필경 올라가는 널뛰기 같은 인생의 실타래를 보는 눈으로 욥의 재앙과 회개를 봐야 할 것입니다. 즉 욥의 회개는 하나님 앞에 너무 작은 한 부부만 봤다는 겁니다. 인생을 보는 눈이 가장 큰 망원경이라면 여러분은 그 망원경으로 뭘 보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몸을 버린 후 들어갈 영원한 세계로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눈물없는 기쁜 찬송의 삶을 사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짧은 눈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본다면 무엇이 보입니까? 그렇지요. 예배 후 집에 가면 무슨 일부터 하고 누구를 만나느냐 등에 관한 현실일 것입니다.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 멀리 보면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이지만 당장 눈에 들어오는 자신은 늘 아픔과 설음과 외로움과 열등감과 교만함을 피할 길이 없는 부조리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조리한 인생의 한 조각조각을 자세히 살펴보면 말할 수 없이 비통하기도 하고 분노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기쁘기도 하고 감동과 보람이기도 하고 아름답고 진실하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서로 다른 파편들이 모여서 퍼즐의 큰 그림을 그려가듯이 큰 인생의 맥을 이어갑니다. 욥의 회개는 무엇입니까? 이 퍼즐조각 하나에 목을 놓아 울고 낙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으로 크신 계획과 사랑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 즉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했다는 것을 회개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영안이 열려서 더 멀리 더 깊이 하나님의 나라, 그 안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소망과 기쁨을 바로 품어 저와 함께 가슴 뛰고 설레 지금 당한 현실적 계곡(溪谷)을 오직 주님 손을 붙잡고 넉넉히 이기시기 바랍니다. 이기는 사람은 자신을 조롱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욥 같은 의인입니다. 승리는 모든 것 구하기 전에 먼저 회개부터 철저히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갑절의 소유와 복을 받는데 자기 것은 모두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청지기의 신분을 자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핍박하고 조롱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 늘 돌이켜 아파하며 주를 소망함으로 주실 복을 갑절로 늘려 받는 저와 여러분이시기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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