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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9.0331. 주일예배<삼하 7:1-12. 견고한 다윗의 나라>

by 설렘심목 2019. 4. 3.

2019.0331. 주일예배<삼하 7:1-12. 견고한 다윗의 나라>

[세계 제 2차 대전에서 못된 대표전범국은 독일과 일본이다. 독일은 아우슈비츠 가스 처형실을 그대로 보존해 후대에 자신들의 과오가 다시는 거듭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일본은 같은 전쟁의 잔재인 히로시마의 원폭 돔을 보존해 후손들이 그 앞에서 묵념하게 하고 전쟁 수괴들을 모신 神祠에 국가수뇌와 백성들이 절을 한다. 목적은 독일과 상반돼 다시는 패배로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양심의 커다란 격차를 본다. 나라가 든든해 국방력과 외교기반이 좋아도 근본 민족정신을 일본처럼 이끌어가는 정치인이 정권을 잡고 있는 한 일본은 후진국이다. 반면 독일은 일본을 따르지 못하는 국방, 경제 등에도 불구하고 그 민족양심으로 세계는 독일을 선진국이라고 부른다.]

본문엔 하나님과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는 다윗의 대화가 선지자 나단의 중재로 이어집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가운데 있도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내가 거할 집을 짓겠느냐? 내가 그동안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언제 백향목집을 짓지 않았냐고 질책한 적이 있더냐?”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은 다윗의 갸륵한 중심을 받으시고 백성의 주권자로 삼고 존귀한 자로 만드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거할 처소는 백향목 궁전이 아니라 다윗의 신실한 믿음 그 가운데 계셔서 존귀와 주권자로 함께 하시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우리아의 범죄로 처절하게 그 대가를 치른 후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한 몸으로 드러내면서 평생을 복되게 살아가게 됩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구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하나님이 기뻐하신 다윗의 갸륵한 마음을 살피며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1.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 하는 다윗의 갸륵한 마음입니다.

 

삼하 6장에 보면 하나님의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다고 돼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백성들의 신앙정서에 따라 법궤의 거취에 의해 많은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전쟁에서도 법궤가 앞서 감으로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와 위로를 삼게 하셨습니다. 호화별궁에서 불현듯 하나님의 궤가 초라한 곳에 있다는 송구스런 마음이 든 다윗.

 841-2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4절에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10절에서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함으로 어찌하든 하나님가까이를 간절히 구하는 시편기자의 고백을 봅니다. 이는 건축물이나 위치의 개념보다는 찾으실 때 늘 거기 계신, 존재에 대한 사모함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전은 먼저 자신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기억할 때 가장 기초적인 처소로서의 자신의 심령 밭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결코 그러한 영적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건축물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는 정한 장소요, 법궤를 모셔두는 장소로서 제사가 드려지는 곳을 말합니다. 예배당입니다. 다윗이 다윗궁을 짓기 전 예배당을 생각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드린 이 마음은 당시로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갸륵한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에 모든 왕이 다 화려한 궁에 살았어도 하나님의 궤가 있는 휘장 안을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의 이 마음을 우리 함께 품어 복된 성도되기 바랍니다.

본문 4절에서 7절까지는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약하면지금까지 난 회막에 거했어도 너희에게 좋은 집을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네가 날 위해 백향목집을 짓겠다니 갸륵하도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염려한 다윗에게 주께서 어찌 하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8-9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2.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 주님과 함께하는 복을 받습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첫째, 주님과 함께 하는 동행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짓겠다는 다윗의 선한 마음에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동행을 약속해주십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도 함께 하시는 영생의 주님이 저와 여러분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을 확고히 믿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실히 그분을 믿어 신뢰할 때 즉시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인생길 나그네 길은 언제나 외롭습니다. 동행해도 대신 아프거나 대신 죽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미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죽음과 저주를 면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파하는 그 어느 현장에서도 주님은 함께 아파하시며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둘째, 동행은 동행자의 권세와 능력이 함께 합니다. 따라서 능력의 주님이 함께 하시면 인생의 모든 방해거리를 사라져 환하게 길이 열리게 됩니다. 즉 형통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밝게 통하는 길로 누군가 함께 간다면 한평생 참으로 더 바랄 게 없을 것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동행자는 그런데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함께 가다가 누군가 먼저 떠날 수 있습니다. 배신을 하든지 죽어서 떠나든지 사람의 동행은 불완전한 동행입니다. 안 보이지만 우리주님 죽음이 없으신 영원한 분이십니다. 이 사실이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시면서 배신도 하지 않습니다. 즉 영원히 배신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처럼 뭘 요구하시지도 않습니다.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은 모두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요구하는 것들입니다.

본절에서 말하는 대적은 원수라는 것인데 우리가 평생 살면서 만나는 원수는 수없이 많고 여러 가지입니다.

제일 큰 원수는 다름아닌 내 안에 있는 성화받지 못한 옛자아란 존재입니다.

다 이길 수 있어도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백번 싸워 백번 집니다. 외부에 있는 환경과 사회악적인 요소들은 사실 내가 나를 이기면 그리 어려운 상대가 못 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끊임없이 내 안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 하나만 봅니다. , 하나님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만난 사람대로, 만나지 못한 사람은 만나지 못한 사람대로 내면에서 쉬지 않고 하나님과 자신을 갈라놓고 방해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옛 자아의 간악한 활동을 막상 자신은 종종 깨닫지 못한다는 겁니다.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힘을 보태 하나님을 더욱 멀리 떠나려고 한다는 겁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향해 계속 깨어 있으라고 한 건 엉뚱한 것에 속지 않도록 깨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손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어 있음으로 주와 함께 동행하면 어떤 마귀도 물리칠 힘을 갖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방패 없이 홀로 서있는 사람에게 크고 단단한 철 방패를 가진 사람이 달려와 그를 총알로부터 가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동행하는 분의 힘과 권세가 내 것이 됩니다.

 

군복무기간 작은 봉급을 모아 아버지께 바친 아들의 절약정신에 감동한 아버지가 아들도 모르고 있던 땅문서를 모두 넘긴 일은 신뢰의 결과였습니다. 큰 재산을 맡길 만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전을 짓겠다고 마음을 먹은 다윗에게 도리어 하나님은 내가 너와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집을 짓는 것과 동행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윗이 짓겠다는 집은 무너지는 건축물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동행의 약속은 영원불변하는 보전이요, 통치요, 공급입니다. 그러므로 성전건물과 동행이라는 것은 비교조차 할 수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동행의 실존이 영원하시고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9절입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3. 주와 함께하는 자, 그 이름을 존귀하고 위대하게 하십니다.

 

세상에 존귀한 이름은 단 하나,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창조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주변에 좀 괜찮은 사람 있습니까? 심한 바람, 극한 상황에서 비참한 처지로 몰리면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얼마나 초라한지요. 얼마나 부끄러운지요. 주님이 함께 하실 동안, 주님이 붙들어 주시는 동안에 우리는 퍽 의젓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권능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비로소 존귀한 자의 이름을 주신다고 합니다. 본문에 위대한 자의 이름같이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성경에 존귀한 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멜기세덱,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바울, 그들은 한결같이 주님과 동행한 자들이었습니다. 10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주의 전을 짓고자 한 다윗에게 이제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하여 백성들이 한 곳에 모여 살되 악한 것들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4. 주와 함께 하는 자, 평강의 집에 거하게 됩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법궤는 여기저기 유리하는 이스라엘과 함께 한 곳에 있지 못하고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갸륵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그 후대 곧 이스라엘이 영원히 유리방황하지 않고 한 평화로운 곳에서 복되게 살도록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인생이 하나님의 전이 되고자 사모할 때 하나님은 당신의 처소인 인생들을 보장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본문에서 밝히신 것처럼 장막을 놓고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거기 모인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 심령가운데 당신이 거할 처소를 두고는 늘 율법과 계명과 언약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 그것은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관심은 당신이 거하는 인생들의 가슴속, 깊은 심령, 순결한 처소, 믿음의 좌소요, 순종된 삶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감동시키시고 움직이게 하심으로서 위대하고 거룩한 당신의 나라와 그 일들을 빈틈없이 이뤄가십니다. 말씀을 요약합니다.

 

<1> 다윗에게 하나님의 전을 짓고자 하는 갸륵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2>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어성전건축을 계획한 다윗에게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신다는 동행의 복을 열어주셨습니다. 내면의 성전건축을 축원 축복합니다.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그렇게도 힘든 원수. 툭하면 올라오는 부끄러운 옛 자아도 겁날 것 없습니다.

<3> 주와 함께 하는 자, 그 이름을 존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존귀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동안에만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4> 주와 함께 하는 자, 대를 이어 평강의 집에 거하게 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우리 심령 속에 성전건축을 계획하고 사모하소서. 우리 심령, 내면 지성소에 지어지는 성전은 주님 거하는 인생들의 가슴속, 깊은 심령, 순결한 처소, 믿음의 좌소요, 언약의 실행되는 우리들의 몸과 영혼이오니 게으르거나 지치지 말고 오직 기도와 전도와 몸을 드리는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성전을 내안에서부터 건축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애를 쓸 때 주께서 우리와 우리자손들이 영원히 거할 기름지고 풍성한 땅의 기업과 하늘의 영구한 도성, 예수그리스도 생명수 강가에 평강의 집을 짓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사모하는 자마다 세상이길 믿음으로 이생과 내세에 영생의 복을 받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