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0. 주일예배<삼상22:1-2. 다윗에게 모여든 400명의 히브리인들>
[2018.12.01.토요. 사람은 보고 느낀 대로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움직여 자신의 삶을 가꿔 나가게 된다. 다만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하는 중요한 시각의 차이에서 저마다 다른 인생이 열린다. 인간마다 부족한 점과 뛰어난 점이 각각 다른데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지만 그것이 때론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적절한 열등감을 잘 사용하면 겸손의 시작이 되지만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면으로만 보면 우울증과 자살의 동기가 되듯이 우리는 우리 손에 들린 잘 드는 칼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 늘 고민하여 긍정의 출발을 열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악신이 들어간 사울왕은 기회만 있으면 아들 요나단의 절친한 친구이며 더없는 충신인 다윗을 죽이려고 온 힘을 기울입니다. 악한 영은 어둠의 권세를 잡은 자입니다.
맑은 영혼을 어둡게 해서 여러 가지 악한 생각에 붙잡히게 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의 총체적 인생의 길잡이입니다. 어두운 생각에 잡히면 어김없이 어두운 일들이 뒤따라 일어납니다. 어두움의 영은 모든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고 격려대신 비난, 판단하고 불행한 면을 더 밀착해서 집중하게 합니다. 그리고 늘 속는 기분이고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억울해서 못 참을 거 같고 늘 자신을 불행가운데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단체에서도 흠을 찾아내어 갈라서려고 합니다. 특별히 누구편도 아니지만 주로 반대하는 자의 입장을 두둔합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의 주장이 득세하면 즉시 또 다른 반대자를 옹호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반골체질로 분류되는 이런 성향은 다분히 악한 분리의 영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악한 어둠의 영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적하여 혼란스런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반면 밝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늘 밝은 일들이 주변에 일어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빛이신 주님께만 항상 붙잡혀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울은 세 번의 교만함으로 왕위를 폐하기로 이미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사무엘선지자에게 경고를 받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경고 후에 적극적으로 엎드려 회개하였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어물쩍 넘어간 사울왕은 결국 악신이 들어가 그 충성스런 아들의 친구 다윗을 끊임없이 추격합니다. 이때 도망 다니는 다윗에게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본문은 그들의 신분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2절 앞입니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오늘 설교제목은 -다윗에게 모여든 사백 명-입니다. 다윗에게 모여든 사백 인을 통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첫째 주제,
1. 쫓기는 인생입니다.
인생은 평생을 쫓기며 살아갑니다. 피곤한 몸 잠자리에 누워도 꿈에서조차 뭔가에 종종 쫓깁니다. 평강과 안식은 인생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동행과 임재여하를 말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막힌 담을 모두 허시고 인간의 허물과 죄를 사해주신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평강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는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에 계실 때 심한 파도에 거기서 태평하게 주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파도가 배를 덮을 정도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구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고 꾸짖으신 후 바다를 향해 잠잠할 것을 명령했고 바다는 잠잠해졌습니다. 이 광경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이 땅의 교회를 보여주는 의미깊은 장면입니다.
세상은 험하게 파도로 다가오고 주님은 항상 평강이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하면 항상 주변은 무서운 파도로 다가옵니다. 제자들에게 주님은 함께 계셨으나 믿음으로 주님께 속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파도는 죽음의 덫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분명 쫓기는 인생들입니다. 세월과 늙음에 쫓겨 나이를 먹고 주름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저기에 쫓기고 시간에 밀려 정신을 못 차립니다. 돈은 있으나 없으나 늘 우리 뒤를 바짝 추격하여 틈을 주지 않습니다. 들어왔나 보면 즉시 나갈 문이 열려 빠르게 달아납니다. 어느 삼성직원이 들려준 말인데 그들은 시간과 돈에 쫓긴다는 생각조차 할 틈 없이 실력있는 후배들에게 쫓겨서 숨이 막힌다고 했습니다. 잠시도 새로운 정보와 책을 놓으면 끝이라고 했습니다.
냉혹한 무한경쟁사회에서 어느 것 하나 잠시도 우리를 편하게 놔두질 않습니다. 그 가운데도 가장 힘든 추격자는 무엇입니까? 불치병처럼 평생 따라붙는 추격자, 기분 나쁜 추격자는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인류가 존재한 이후 한명도 예외 없이 데려간 사망입니다. 누구든지 피할 수 없는 사망은 양보없는 시간이라는 레일을 타고 전혀 뒷걸음질 없이 잠도 안자고 다가옵니다.
사울이 다윗을 바짝 추격하는데 3천명의 무장한 군사 앞에 다윗의 400명 오합지졸은 누가 봐도 상대가 안 되는 전투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훗날 성군이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 노래잘하는 자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사울보다 더한 사망이 뒤따라 붙었습니다. 그러나 사망을 이기신 우리주님의 말씀은 사망을 폐하신 권능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1:26-27. 사망의 공격에 방패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믿음으로 죄를 용서받은 성도에게 죽음은 끝과 멸망과 망각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요, 또 다른 희망의 출발입니다.
다윗이 억울하게 쫓기자 그의 온 집이 함께 도피 길에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겐 환난 중에 있고 빚진 모든 자들과 원통한 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4백 명이 됐습니다. 다윗주변에 모여든 사백 명의 쫓기는 자를 통해 받는 복음의 둘째 주제는,
2. 한이 많은 인생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환난 중에 있는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란 한마디로 어떤 이유로든 한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한 많은 인생은 맺힌 한으로 인해서 할 말도 많은 억울한 자들입니다. 풀어야 할 恨이 많아 할 말이 많은 것은 깊은 상처들이 아우성쳐 밖으로 호소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죄가 부딪쳐서 또 다른 죄를 잉태하면 죄의 맞은편에는 원통함을 간직한 피해자가 생깁니다. 세상은 그렇게 죄와 죄가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 부둥켜안기도 하고 부대껴 으깨지면서 죄의 나라를 이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와 죄의 나라가 끊임없이 다투는 현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윗에게 모여든 자들은 이렇듯 삶의 경쟁에서 밀려나 마이너리그에 소외된 자들 히브리인들이었습니다. 어딜 가서 호소해도 들어줄 이 없고 억울해도 속으로 삭혀야 하는 가여운 백성들, 그렇게 힘겹게 사는 하위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다윗의 주변엔 다윗처럼 쫓기는 히브리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히브리인의 우두머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다윗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다윗의 무리들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 모여든 히브리인들을 기억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환난 중에 있는 자와 빚진 자와 원통한 자의 우두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한을 풀어주셨습니다. 가난하고 천한 히브리인의 맺힌 한은 무엇입니까?
첫째, 대를 이은 가난입니다. 둘째, 한곳에 모여 씨를 뿌려 추수하며 살고 싶은 소원입니다.
가난했기에 그들은 늘 소외당하고 무시당하고 천박한 삶을 후대에게 물려주는 대물림이 멈추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여기저기 떠돌며 사는 게 아니라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곁방살이 떠돌이 삶을 마감하고 어딘가 머물러 씨를 뿌리면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히13:14”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처소는 없다고 히브리서기자는 밝혔습니다. 이 땅을 잠시 지나는 나그네 길이며 사라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성도의 본향인 줄 우리가 믿습니다. 우리가 평강가운데 눈물없이 영원히 머물 우리들의 본향은 예수그리스도의 품, 천국입니다. 거긴 여기와 달라 육체로 인한 죄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공평의 왕 하나님이 다스리시니 가난도 눈물도 억울함도 없습니다. 어디서 쉴까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힘들 때 이렇게 얼른 생각해야 합니다. 거긴 이런 거 다신 없겠지..아멘. 지금 이 땅에서 육체가 있어 일어난 고통들 거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들의 기쁨을 위해 마련한 풍성한 모든 것이 기쁨입니다. 한 많은 인생, 그 한은 육체를 버리는 순간 모두 사라지는 예수안의 풍성입니다.
성도여러분. 환난 중에 있는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중 우리 중 하나라도 해당 안 되는 자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1) 끝으로 환난과 빚진 것과 원통을 살핍니다. 먼저 무슨 환난입니까? 태어났다는 것이 환난입니다. 궁궐에서 태어났든 초막에서 태어났든 죄악 속에 태어났으니 환난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게 환난인 동시 그것은 생명을 거저주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진 빚입니다. 인생이 함정이고 거친 광야라도 생명 주셔서 태어났기에 결국 광야 길에서 만난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아 영생을 가게 됐습니다. 빚 중 최고의 빚은 하나님께 값없이 받은 생명과 구원입니다. 그리고 태어난 그것은 또 왜 마음에 원통한 것입니까? 타고난 죄성으로 세상과 죄와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원통함이 그것입니다.
2) 다음엔 살아가야 하는 것과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환난 중에 환난입니다. 그리고 그 삶과 죽음은 그대로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과 주변의 관계와 사랑가운데 끊임없는 빚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 빚은 빚을 다 갚지 못해 대신 갚으신 주님과 사람들을 통해 더 베풀고 배려하고 사랑하지 못해 원통한 마음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윗에게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나라는 그들을 기초로 단단한 국력을 갖춰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거기 누가 있느냐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이 누구를 바라보고 높이느냐에 기초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적이 죽으면 조문사절을 보내고 금식하며 울던 다윗의 덕은 진실로 그가 영혼과 생명을 사랑했다는 증거였고 그런 그를 하나님이 심히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을 해치려던 사울왕의 생명도 함부로 하지 않았던 다윗은 자신에게 모여든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를 잘 다스리고 가르치고 바로잡아 새사람을 만들어감으로 나라의 기초가 든든히 세워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세상에서 환난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을 부르셔서 거듭나게 하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가운데 구원이라는 더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평생 주의 소원을 이루는 거룩한 성도로서 애쓰게 하시니 더욱 감사할 뿐입니다.
다윗에게 온 히브리인들처럼 예수그리스도께서 불러주셔서 구원받은 우리들, 이제는 또 다른 환난 중에 그리고 빚진 중에서 마음에 한이 맺힌 실패자들을 찾아가 하나님의 복음이 생명인 것을 전해주는 최고의 복된 생명전달자가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주일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01.27.주일설교 <행5:33-42 가말리엘과 제자들> (0) | 2019.01.27 |
---|---|
2019.01.20. <주일예배<민26:1-4 / 62-65. 총수에 든 자> (0) | 2019.01.20 |
2019.01.06. 주일예배<민15:17-21)내가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0) | 2019.01.07 |
2018.12.31. 송구영신자정예배<고후 5:17.새해에는 새 비전> (0) | 2019.01.01 |
2018.12.30.주일설교<롬418-22.성도는 무엇으로 사는가?> (0) | 2019.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