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3.주일예배(창14:14~16/12:1~4. 아브람의 군사 318명)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어떤 공로가 있었습니까? 그냥 믿은 겁니다. 이 믿음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엔 거저가 없다는데 우린 거저 살아갑니까? 아닙니다. 그런 염치없는 공짜인생으로 우릴 이끌지 않으시는 주님을 찬미합니다. 믿음에는 주님을 신뢰하기에 당해야 하는 모든 불편과 손실을 그 믿는 대상을 전폭적으로 신뢰함으로 이겨내야 하는 자기 의지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의 군사 318명이란 제목아래 무엇을 어찌해야 우리도 잠시 가는 이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온 삶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살피고 새해에 새 힘 얻기를 원합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가난해 졌는지 봅니다. 창11:12/14/16/18/20/22/24)
보통 30세를 전후해서 모두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습니다. 그런데 26절 봅니다.
데라는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청년이었던 때까진 제 나이에 결혼할 정도로 그럭저럭 살았지만 웬일인지 아버지 데라는 가난해서 늙어 간신히 결혼합니다. 롯을 낳은 숙부 나홀의 이름은 잘 살던 데라의 부친인 아브라함의 할아버지 이름입니다. 그리고 하란은 데라의 기억에 풍성했던 어린 시절의 하란을 그리워하며 아들에게 붙인 이름입니다. “나홀, 너는 장차 네 조부의 그 날들을 되찾거라. 하란, 넌 우리가 머문 이 땅에서 우리조상들이 누렸던 복을 다시 찾아야 한다.” 하나는 부친의 이름, 하나는 머문 동네이름에 조상들의 풍성했던 기억과 소원을 담아 지은 이름으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심경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가난을 대물림한 아브라함이 어떻게 318명의 개인군사를 거느릴 만큼 큰 부자가 됐을까?
창12:1~2절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먼저 찾아주신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사실, 거듭해서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아브라함이 의롭다거나 믿음이 출중했다거나는 내용이 이 말씀 전에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오셔서 복된 미래를 약속하신 겁니다. 그 복된 약속이 무엇으로 시작합니까? 고향 본토를 떠나라는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우리에겐 항상 주시는 복 앞에 들어야 할 명령이 있다는 것을 종종 잊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리질 않습니다. 그렇게 말씀에 순종하면 어떻게 하신다고 합니까? 3절 함께 읽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아브라함으로 복을 받고 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의 복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았다는 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으로 분명한 신앙고백의 vision을 품는 자마다 복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비젼은 모리아산을 관통해야 보이는 실질적 신앙환상이고 또한 현실인줄 믿습니다. 가장 아끼는 것을 제단 위에 놓고 칼을 들어야 합니다. 내리쳐야 합니다. 내리치기 직전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않았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노라.” 다 아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모르셨을까? 아니요, 아십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 단호히 행하는 것까지는 아브라함의 몫이었고 하나님은 그것까지를 받기 원하셨던 겁니다.
그런데 그 전에 중요한 아브라함의 복받을만한 행적을 봅니다. 4절 앞을 읽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2.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나선 것입니다.
나이 75세에 아브람과 사래가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나는데 무슨 대책이나 정보가 있는 건 아닙니다.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 믿고 낯선 땅을 향해 나선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오직 하나님 약속하나 믿고 나선 아브라함이 그 믿음하나로 결국 318명의 개인군대를 소유했는데 가족까지 당시로 어림잡아 3천명의 호구지책이 됐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거부가 아니라 318가정을 다스릴만한 덕과 존망까지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명실공히 큰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창26:13절에선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라는 말로 이삭이 받은 큰 복을 적고 있습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온 두 부자의 믿음이 마침내 땅에서 확실한 증거를 드러낸 겁니다.
사랑하는 몽돌인 여러분. 말씀을 따라 가세요. 영이 영생을 받았듯이 육이 이 땅에서 분명한 증거로 행복을 더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만 좋은 게 아니라 그 증거로 하나님이 증거 되기에 하늘에서도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봅니다. 우리가 받았고 받을 복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창12:2절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1) 복을 받거나 주겠단 표현대신 아브라함이 복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우리가 알 듯 주님이 복음이십니다. 주님이 복을 주거나 받거나 하는 것 이전에 이미 주님의 존재가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즉 아브라함이나 주님은 복을 전달하기 전 그 실존이 복과 복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는 그냥 아브라함을 만나면 복을 만난 것이고 아브라함의 소식을 들으면 복이 시작되는 것이고 아브라함과 연결된 모든 게 다 복이라는 것입니다. 막16:22~23절에 보면 거지 나사로가 죽어 지옥 불에 타며 목말라하는데 멀리 보니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행복한 거지 나사로를 보고 물 한 방울만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품, 거지 나사로가 영원한 복락 천국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사로가 안긴 나사로의 품은 인간 아브라함의 모습으로 보여 준 믿는 자의 본향 천국의 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몽돌인 여러분, 저는 우리 몽돌성도들을 만나는 모든 이들이 복을 알기 원합니다. 우릴 만나는 모든 이들이 복에 대한 소식을 듣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 믿음을 갖고 영원한 복락인 예수님 품에 안기기 원합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군사 318인이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로 인하여 주변의 가정이 생업을 얻고 떡을 떼는 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월요일은 여러분이 봉급을 주는 직원들과 직원예배로 한 주간을 시작하는 복이 있길 기도합니다.
성경에선 그들이 한 일을 창14:16절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아멘. “다 찾아왔더라.” 악한 영 마귀에게 빼앗겼던 삶과 생각을 모두 되찾아오는 올 한해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세 번째로 단을 쌓는 아브라함을 봅니다. 창12:7/8/ 13:4/18절에는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는 구절이 반복됩니다. 이후에 여타의 어떤 제사도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22:9절에서 외아들 이삭을 번제단에 올리는 장면으로 최고의 단을 쌓아 올리는 아브라함을 보게 됩니다.
3. 단을 쌓는 아브라함, 예배로 승리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제사가 삶의 한 부분이 된 아브라함입니다. 때마다 잊지 않고 단을 쌓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슨 일에나 먼저 하나님을 찾아뵙는 예배자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도 먼저 예배로 하나님을 찬미하고 모셔드리는 영적인 사람에게 현실적이고 늠름한 318명의 군사가정을 주실 줄 믿습니다.
유의해 볼 일은 318명의 군사로 그돌라오멜연합4국을 추격해 부수고 소돔과 고모라연합5개국을 도와주는 이 놀라운 장면 전에 네 번의 제사가 소개됩니다. 그리고 이 전쟁승리 뒤엔 제사가 나오지 않고 있다가 22장 9절에 가서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모리아산의 승리를 소개합니다. 그러면 318명군사의 승리 후에 제사가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이는 318명 대군을 개인이 거느린 것이 제사와 무관치 않았다는 걸 말하는 것이고 이런 예배승리자가 결국 외아들까지 바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고 그 산에서 바쳤던 외아들은 마침내 거부가 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귀있는 이들은 지금 듣습니다. 골고다에서 바친 하나님의 외아들, 그 분은 거기서 죽지 않고 한 마리 양이 되어 수많은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 다시 우리 믿는 자 가운데 영원히 살고 계십니다. 그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보통 만복의 근원 예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만복의 근원인 주님을 모신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거부가 아니겠습니까?
끝으로 우리가 왜 거부인가를 확인하며 말씀을 마칩니다. 복가운데 가장 큰 복은 믿어지는 복이며 그 믿음이 온전해지기 위해 먼저 깨닫는 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깨달아 믿은 다음에 아브람에게 내려주실 복은 큰 민족과 창대한 이름과 복의 근원이요, 복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아브람을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실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약속입니다. 인간이 땅에 살면서 받을 복은 거의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때 받은 언약은 택한 백성에게 세상 끝날까지 유효하게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아멘하십니까? 택한 아브라함의 자손은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시인하는 모든 자를 포함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자에게 예수님 재림까지 변함없는 약속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이미 아브람에게 하신 언약의 성취 중 일부에 불과한 것입니다. 언약은 아직 다 이뤄지지 않고 진행 중입니다. 만 개의 약속 중 한 개정도만 지금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래도 우린 이렇게 복된 예배를 드립니다. 이러니 우리가 거부 아니고 누가 거부입니까? 바람에 불려갈 것은 거부의 조건이 아닙니다. 잠시 우리 앞에 보였다 사라질 것은 참이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우리의 소망과 받아야 할 약속의 실제들은 참이요, 영원한 것들입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새해 2016년도입니다. 실질적이고 영원하고 참된 우리의 소망은 예수 안에서 굳건합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건 우리의 연약한 믿음입니다. 확고한 믿음으로 삶에서 318명의 개인군사를 경험하시기 축복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다 찾아오고 마침내 거부되기 기대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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