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6. 주일예배 <겔47:1-12.생수의 강물, 말씀이신 예수>
에스겔은 유다의 제사장으로서 유다가 바벨론포로가 되어 70년간 극심한 고난 중에 있을 때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는 골짜기에 쌓여있는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통하여 장차 회복될 이스라엘의 평강을 선포하고 특히 포로시기에 태어난 신세대들에게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이유를 밝힘으로 영적인 각성을 유도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신이 에스겔을 이끌고 성전 문에 이르러 거기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 회복과 소생의 예언은 당시의 포로된 유다뿐 아니라 오늘 날 죄와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과 거기 포로된 뭇 인생들에게도 여전히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성전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고 그 강물이 아라바를 지나 죽어있는 사해에까지 들어가 넘쳐, 죽은 땅이 비옥해지고 고기들이 살아나서 어부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먹을 만한 과실이 풍성해지는 이 에스겔의 환상이 오늘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예언으로, 삶의 능력으로 임하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께서 심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환상이 환상으로 그친다면 그 환상은 환상이 아니라 공상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해 유다백성에게 주신 구약의 환상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에 이르도록 듣고 깨달아 순종하는 자마다 새로운 생명으로 임하는 신묘한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줄 믿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받아 우리를 향한 교훈으로 삼을 몇 가지를 살핍니다.
1. 생수의 강이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옵니다.
1) 성전은 하나님의 몸입니다.
계21:22절에“성안에서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성전은 하나님의 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 2장에서 이 성전을 헐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신 그 성전도 예수님의 부활하실 몸을 말한 것입니다. 주님의 몸, 성전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의 몸도 성전이라고 고전 3:16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에는 주의 영이 계시고 거룩한 영이 계신 성전은 예배당이든 성도의 몸이든 동편을 향한 건축물이라는 것입니다.
2) 성전은 동쪽을 향하여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바라볼 때 동쪽에 있는 나라이지만 일본에서 볼 때엔 서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방향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표현됩니다. 그러나 성전이 동쪽을 향한 것은 어디서도 한가지여야 합니다. 아무데서 누가 봐도 동편은 해 뜨는 곳입니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입니다.
해가 뜨면 빛이 찾아와 어둠이 사라집니다. 성전은 빛이 비취고 빛을 향하여 나아가는 장소입니다. 성전엔 하나님과의 밝은 화목이 있고 기쁨의 찬미가 있고 어두운 죄악이 떠나가는 빛의 현장입니다.
3) 성전에서 생수의 강이 시작됩니다.
1-5절에는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깊은 생수의 강을 이루는 장면이 시작됩니다. 생명수 강은 성전에서 그 물의 근원이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계22: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아멘.
어린양 예수로부터 생명의 말씀이 공급되고 그 생명수가 죽은 많은 영혼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저와 여러분 이 말씀 듣고 아멘 할 때 놀라운 믿음이 주께로부터 채워져 모두 주의 성전 되시는 줄 믿습니까? 우리가 주의 성전이루면 우리 안에도 생명의 말씀이 능력으로 권세로 넘쳐 세상의 죽은 영혼들을 말씀으로 살려내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2. 생명수강가에 많은 나무가 자랍니다.
본문 7절에 보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고 했습니다. 나무가 매우 많은 것은 토양이 비옥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수 강가에 뿌리 내린 나무라면 강건하고 풍성한 열매의 삶으로 불신 세상에 분명한 도전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늘 시원치 않게 살고 있다면 그 뿌리가 아직 생명수 강가에 뻗어 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가 식어 있어 말씀의 공급이 선명하거나 지속적이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계22:2절입니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성도가 천국에서 주님 곁에 사는 모습은 이와 같이 두루두루 풍성하고 모두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생명공급의 삶입니다.
3. 강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생명이 살아납니다.
먼저 9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 각처 모든 생명이 번성하게 살아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생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입니다. 그리고 생명에게 신선한 힘을 주는 권세와 능력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이 물이 닿은 곳은 예외없이 선한 생명으로 살아나고 번성하게 됩니다. 복음에 접촉되면 죽은 모든 영이 살아납니다. 생명수 강물은 골고다에서 흘리신 보혈입니다. 그 보혈이 닿은 곳마다 새 생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숲에서는 새가 지저귈 것이며 풀에선 풀벌레가 뛰놀 것입니다.
2) 고기가 많아 어부가 일어납니다.
고기가 많으면 어부가 모입니다.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그물을 손질합니다. 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물밀듯이 개인의 영혼을 적시고 세상으로 퍼져나가 구해야 할 더 많은 영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구령의 열정이 일어납니다. 먼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모두 사람을 낚는 어부입니다. 성령의 시각이 되면 온통 세상은 구해야 할 영혼들로 가득 합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이후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어부 베드로가 들은 말씀입니다.
3) 맛있는 실과와 약재가 되는 잎사귀를 냅니다.(12절)
시편 1:2-3절에서 복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아멘.
성전에서 생명의 강물이 흘러가기 시작하면 나무들은 맛있는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병든 자를 살리는 약재가 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생명의 말씀은 죽은 영혼을 깨워 살려내십니다. 무미건조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갈 곳 모르던 방황의 발걸음이 목적지를 깨닫고 달려갑니다. 말씀을 만나기 전에는 꺼리는 자였으나 말씀이 들어간 뒤엔 변하여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 훈훈한 사람이 돼갑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절 말씀입니다. 말씀은 생명을 공급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말씀에 연합되어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헌신의 열매, 희생의 열매, 고난의 열매, 전도의 열매, 화목의 열매, 용서의 열매 등, 사랑의 많은 열매를 경험하게 됩니다. 특별히 사람을 치유하는 치유의 열매를 보게 됩니다. 말씀은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수에 뿌리를 내린 믿음의 나무들은 주변에 신음하는 많은 영혼들을 치료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양질의 믿음으로 인한 심령의 푸른 잎은 상처받은 영혼들을 고쳐주는 귀한 일들을 할 것입니다. 귀히 쓰임받는 잎사귀들은 함부로 다루거나 불쏘시개가 되지 않습니다. 잘 모아서 소중하게 사용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생명의 말씀줄기에 붙어있어서 지속적인 생명수의 공급이 그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믿음나무는 건강할 것입니다. 균형감 있는 영성과 지혜와 감각으로 주님은 우리를 꼭 필요한 곳에서 생명을 거듭나게 하는 귀한 일에 사용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약재가 되는 잎사귀, 저와 여러분인 줄 믿습니다.
4. 버림받는 진펄과 개펄이 있습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고여서 썩어갑니다. 썩는 내가 진동합니다. 진펄과 개펄의 고인 물은 말라붙어 소금구덩이로 변합니다. 여기 개펄이란 사해주변 언덕에 위치한 물웅덩이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기(雨期)에 바닷물이 넘치면 잔뜩 고였다가는 마르기 시작하여 결국 소금웅덩이가 되고 소금웅덩이엔 아무 생명이 살지 못합니다. 사망구덩이가 생수의 강물로 넘쳐 갖은 생명을 살리고 복지강산을 이루는데 한 구석엔 모인 바닷물이 빠져나가지 못하여 그대로 다시 작은 사해바다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성이라는 옹벽을 쌓고 끝내 밖에 나오지 않아 스스로 옥에 갇혀 있는 폐쇄적인 인생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에스겔이 하나님의 신에 이끌려서 이스라엘을 향해 이룰 일들을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오늘날 영적인 이스라엘로 부름받아 천국의 시민권을 받은 우리에게도 소금웅덩이는 얼마든지 현실로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사랑하는 몽돌비전인 여러분. 모두가 축제분위기에 들떠 왁자지껄할 때 나만 홀로 구석에 숨어서 외로움에 죽고 싶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세상이 다 즐거워 소리치며 노래하는데 혼자만 방문 걸어 잠갔던 경험이 있다면 생수의 강물이 넘치는 중에도 얼마든지 소금웅덩이는 생길 수 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가운데서도 악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악의 활동은 반드시 대상을 추적하여 찾아내고 맙니다. 유혹할만한 자를 찾고 넘어질 만한 대상을 찾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강물이 넘치는 가운데에서도 사해의 축소판인 소금웅덩이를 만들어 놓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소금은 성경에서 맛을 내며 썩지 않고 변함이 없는 신앙의 긍정적인 상징으로 빛과 함께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마5: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인 성도들은 썩어가는 세상에 몸을 던져 희생함으로 더 이상 썩지 않게 해야 하며 의미 없는 죄악 세상에 의미, 곧 맛을 내게 합니다. 아울러 소금 성도는 교회가 변질되지 않도록 말씀에 온전히 서 있음으로 곳곳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귀한 소금은 바닷물을 가둬둠으로 생산해내게 됩니다. 물론 바위덩이로 되어있기도 합니다. 바위소금도 역시 대량의 바닷물이 과거에 어딘가 갇혀 있다가 소금이 된 겁니다. 갇혀있는 바닷물이 말라버린 상태가 소금입니다. 소금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가 철저한 자기희생입니다. 자기성숙을 위해 고뇌하는 영혼이 타는 볕에 눈물조차 말라버린 가슴이 아니고서야 어찌 소금성도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에스겔 환상속의 소금웅덩이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구원받을 장차 이스라엘의 영광에서 일부가 불순종과 우상숭배로 제외되어 영벌에 들어감을 뜻하고 있습니다. 홀로 남겨진 웅덩이의 물들이 결국 소금으로 말라붙어 아무 혜택도 없이 생명과 관계없이 역설적으로 생명을 위한 쓰디쓴 연단의 도구로 남겨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소금은 여전히 소금이라는 사실에 깊은 고찰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불신자로 살면서 교회를 힘들게 하는 모든 무리들은 이렇게 구원의 대열에서 누락되어 남겨진 소금웅덩이들입니다. “가라지를 어찌할까요? 뽑아 버릴까요?”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되는구나. 둘 다 추수 때까지 자라게 두었다가 가라지는 먼저 거둬 불살라 버리리라.” 아멘. 양이 건강한 것은 들이받는 염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성전에서 말씀의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가지입니다. 믿음의 뿌리를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인 성경과 그와의 만남인 예배에 깊이 내리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가뭄이 닥쳐와도 뿌리깊은 믿음은 시들지 않으며 변함없이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생명과 기쁨에 날마다 동참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시기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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