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09.주일예배<출22:21-31.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시리즈3/4>
우리가 오래 전 구약시대의 율법을 자세히 보아야 하는 이유는 거기 하나님의 선하신 사랑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기준과 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을 공부하다보면 오늘날에도 우리가 어떠한 모습과 자세로 하나님앞에 서 있고 나아가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는 공정하신 하나님, 생명에 관한 한 민감하신 하나님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로 완성된 율법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지막 율법의 완성과 마침이 된 신약의 새계명에 대한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기억을 한번 더듬어 봅니다.
오늘 날 구원받은 백성이 그리스도의 새 계명을 온전히 지키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민,형사상의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새 계명을 함께 읽으며 오늘 주시는 말씀을 시작합니다. 막12:29-31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기억할 때 오늘의 본문 출애굽기 22장 21-31절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21~27절까지는 이방의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와 빚진 자 가난한 자와 옷을 전당잡힌 자에 대한 조치를 말씀합니다.
1) 낯선 땅에 온, 나그네의 하나님이십니다. 당시의 이방 나그네는 참으로 볼 것 없는 비참한 길손들이었습니다. 정처없이 떠돌다가 본토민이 혹시 허락하면 잠시 더부살이하다가 다시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가는 안정감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고달픔과 외로움과 서름과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때문에 잘 사는 사람들인 줄 믿기 바랍니다. 정녕 가난이 무엇인지 외로움이 무엇인지 배신이 무엇인지를 경험한 분들은 지금 얼마나 우리가 복되게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5-60년대의 보릿고개시절, 너무 배가 고파 잠을 못 이루던 기억이 있는 분들은 지금 너무 잘살고 호강에 겨워 사치스런 말을 많이 한다고 지적합니다. 본문에서는 나그네를 대접해야 할 이유를 “너희도 과거에 애굽땅에서 나그네였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나그네란 숙명적 이름을 지닌 민족입니다. 히브리인들, 늘 서럽고 배고프고 외로워서 달을 보며 시름을 달래고 노래하고 춤추고 또 날이 새면 푸른 들판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알고보면 인생이 모두 나그네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잠시 왔다가 가는 곳이 우리 여기 세상입니다. 제가 미니홈 표지화면에 이렇게 올려놓았습니다. “잠시 다니러 왔지...이 험한 길을...”그래요. 나그네는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딘가 가고 있습니다. 외롭고 괴롭더라도 갈 곳이 분명한 나그네는 결코 지치거나 서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복을 누리며 살 존재들입니다. 여긴 잠시 스쳐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도 잠시 빌려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것입니다. 우린 청지기입니다. 관리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내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내 것이 아니니 잘 관리하며 쓰다가 후손에게 물려주면 그 후손들도 잘 사용하다가 다시 후대에 물려줘야 합니다.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고 압제하지 말라는 히브리인의 하나님, 그 하나님의 마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친 나그네의 발을 씻어주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오늘 날 이 말씀은 교회밖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은 구원의 복된 말씀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영육간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몇 번 선포되는 말씀이지만 예수님 잘 믿으면 잘 살게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미 부요한 삶을 받았다고 성경이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았다와 풍성함을 받았다는 말은 같은 말이며 예수 안에서 잘 산다는 것은 의롭게 사는 걸 말합니다. 그 때에 교회는 불신세계에서 예수를 모르고 가난하게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위해 무엇인가 희생을 결단해야 합니다. 평강과 만복을 받은 자들의 마땅한 값을 우리는 무엇으로 치를 것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불신이웃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2) 과부와 고아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떠한 경우든 과부와 고아는 하나님의 특혜가운데 들어가 있습니다. 한쪽이 채워지지 않아 늘 공급이 필요한 가정, 오늘날로 말한다면 결손가정입니다. 형편은 달라도 문제가정 안에서 고통 중에 있다면 이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과부와 고아를 불쌍히 여겨 보호하시는지는 23~2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칼로 그 해롭게 한자를 죽여 그 처자로 하여금 과부와 고아가 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맹렬한 사랑입니다.
3) 가난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가난하여 돈을 빌리면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자는 결코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의 금융질서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그것은 산업사회가 구조적으로 필요하여 만든 사회경제법입니다. 그 경제시스템의 자산가는 누구이며 수혜자는 누구입니까? 경제원론이 드러나야 하는 논제이기는 하지만 성경은 무이자를 원칙으로 합니다. 그러나 자산으로 혜택을 누리는 계층, 곧 자본으로 인한 수혜자는 마땅히 그 혜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마땅한데 이것이 현대경제구조에서 이자지급이라는 것으로 등장한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장사할 노동력은 있는데 가게와 물건 살 돈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공급해주는 사람에게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 것이 자산에 대한 이자의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본문에서 제시한 이자는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도움을 주며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것을 금하라는 것입니다. 순수한 자선을 권하고 있는데 자선의 대상자가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이라는 데에 주지해야 합니다.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이란 여호와의 백성을 말하며 여호와의 백성이란 하나님의 율례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힘쓰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26절 27절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함께 읽습니다.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이는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아멘. 자비하심이 절절이 배겨있는 구절입니다. 이 자비하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인도하신 줄 믿기 바랍니다. 다음, “하나님은 무질서(disorder)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14:33절 말씀입니다.
2.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28절에서는 재판장과 백성의 지도자를 욕하거나 저주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디도서 3:2절에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잡은 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2:13절에는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총독에게 하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으심으로 질서있고 단정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재판장과 지도자에게 복종하라함은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재판장과 지도자되는 사람들이 다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도 인간인데 어찌 완벽하겠습니까? 오판도 있을 수 있고 밝혀지지 않는 뇌물거래로 판결이 바르지 않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욕하거나 저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잘못된 공무집행은 법절차에 의해 대항해야 합니다. 그래서 데모 최루탄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판결의 과정과 결과보다는 순종하는 자가 그 순종으로 인하여 받을 복을 중시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장자와 처음 난 짐승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뭘 요구하실 때 그 뜻을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끝내 이기적이며 끝내 자기본위적인 사고방식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결론부터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뭘 달라고 하신다면 그것은 뭔가 대단한 것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뭐가 필요하십니까? 밥 세끼를 잡숴야 합니까? 돈이 필요하십니까?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부요 그 자체이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 믿는 자에게 종종 이것저것을 요구하십니까? 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달라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장자와 처음 난 짐승을 달라고 하십니까? 그 아까운 물질, 십일조를 달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일들을 우리가 어찌 다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다만 그 앞에 순종하며 거룩하기를 애써야 할 것입니다. 31절에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의 고기를 먹지 말고 그것을 개에게 던질지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영혼이 더럽혀진 소득은 탐내지도 말고 아예 더러운 것들끼리 나눠먹도록 팽개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큰 소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결과 거리가 먼 것은 과감히 포기할 때 우리 주님께서는 놀라운 것들로 우리들의 장자를 복된 길로, 우리들의 모든 소유들을 기름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한없는 자비로우심으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분이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 앞에 우리모두 순종하고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 주실 것들 다 받으시기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주일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12.23. 주일설교(눅7:31~32. 빚진 자의 반응, 증거) (0) | 2012.12.24 |
---|---|
2012.12.16. 주일예배<출23:1-13. 의로운 율례-시리즈4/4> (0) | 2012.12.24 |
2012.12.03.주일예배<출21:15-27. 의로운 율례.시리즈2/4.> (0) | 2012.12.01 |
2012.11.25.주일예배<출 21:7-14. 의로운 율례-시리즈1/4.> (0) | 2012.11.26 |
2012.11.18.주일예배(눅10:17~20절. 믿는 자의 진정한 기쁨, 예수그리스도) (0) | 2012.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