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강탈하려는 김지태 유족의 진실
박정희는 김지태의 재산을 강탈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김지태의 유족들이 자신들의 헌납액은 15.9퍼센트에 불과한 정수장학회를 통째로 강탈하려고 기도하고 있다.
김지태는 1908년생이며 1982년 사망
그의 부인인 송혜영은 1932년생으로 추정(후처로 판단됨. 왜냐하면 장남의 나이가 74세이며 송혜영은 현재 80세임)
김지태의 자녀는 6남3녀로서 다음과 같음
1남 영구 74세
2남 영우 70세
3남 영주 67세
4남 영진 미상
5남 영철 61세
6남 영찬 미상
1녀 영희
2녀 영옥
3녀 영미
김지태 자녀의 혼맥이 노출된 것은 없으나 코오롱 창업자 이원만의 세째 동생 이원천이 맏딸을 김지태의 아들과 결혼시켰으나 어느 아들인지는 불분명함
5.16 후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을 헌납한 후에도 김지태의 재산은 상당했다. 그의 유족들은 마치 김지태의 전 재산을 헌납한 것처럼 오도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김지태의 창업
1946년 조선견직한국생사
1952년 삼화(三和)고무
1973년 대한판지
이후 조선견직한국생사를 조선견직과 한국생사로 분리했다.
1979년에는 조선견직, 한국생사, 삼화고무, 대한판지와 삼화플라스틱, 자명해외건설회사 등을 통합해 삼화그룹을 형성하고 회장에 취임했다.
그가 자녀들에게 물려준 회사는 다음과 같다.
1남 영구 조선견직(견직회사)
2남 영우 한국생사(견직회사)
3남 영주 삼화(신발회사)
4남 영진 미상
5남 영철 대한판지
6남 영찬 미상
특히 김지태는 78년 세 아들에게 위 회사들을 위임했으나 부실한 운영으로 도산위기에 처하자 79년 150억원의 구제금융을 요청해 일선에 컴백하면서 삼화그룹을 만들었다.
이 사실은 그가 박정희 정부에서 결코 핍박받지 않았음을 함축한다.
김지태는 오히려 1964년 제3대민의원선거에서도 자유당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는 정치규제대상자에도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특히 김지태는 박정희 사후 1981년 10월에 출판된 회고록에서 “5.16의 군사정부가 한반도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고 극찬했다. 1966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춘천에 있는 김지태의 동방제사와 뽕나무밭을 시찰하고 격려한 것을 그는 잊을 수 없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1974년에는 춘천에서 양장시범대회가 열렸는데 이때는 육영수 여사가 참석했다.
그의 2남 김영우는 1979년에 실시된 10대 총선을 위해 여당 후보로 준비작업을 하기도 했으나 공천은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을 볼 때 김지태가 박정희 정부에서 탄압과 핍박을 받았는가?
오히려 그는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의 주식을 헌납하고 면죄부를 받아 박정희 정부 하에서 정부의 지원과 특혜를 입었다.
김지태는 헌납 후 석방되어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의 감사를 맡았는데 이 때가 1961년 8월 16일이다. 박정희는 처벌을 했지만 김지태를 살려준 것이다.
그렇다면 김지태의 자손들은 기업 경영을 잘 했는가?
첫째, 김지태 사후 김영주 외 12명은 상속세 146억원을 체납했다.(1984년 5월 29일 동아일보)
둘째, 한국생사는 1984년 2월에 부도 처리됐으며
셋째, 당시로서는 최대의 신발공장이었던 삼화는 1992년 10월에 부도처리됐다.
조선견직은 미확인.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5남 김영철은 2002년 바로 위의 형 김영진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소송을 낸다.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두고 형제간에 싸움을 벌인 것이다. 그 땅은 김지태가 영진,영철,영찬에게 1/3씩 물려준 것이었다. 이 사건의 번호는 다음과 같다.
서울동부지방법원2001가합5423 원고 패소
서울고법 2002나50394 판결 원고 승소
대법원 2003다40651 상고 기각
간단한 결론
김지태는 재산을 전부 다 빼앗기지는 않았다. 알짜 회사는 모두 챙겼다.
오히려 김지태는 면죄부를 받아 박정희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김지태의 자손들이 회사를 부실하게 경영했고 결국은 망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부친이 헌납한 재산을 돌려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지금 그들의 재산 상태가 어떤지는 확인된 것이 없다.
이것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김지태 유족의 정수장학회 강탈 음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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