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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2.09.16. 주일낮예배<눅19:28-31. 주께서 쓰시겠다는 어린 나귀>

by 설렘심목 2012. 10. 5.

 

2012.09.16. 주일낮예배<눅19:28-31. 주께서 쓰시겠다는 어린 나귀>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시려고 작은 나귀를 풀어오게 하시는 장면인데 매우 특별합니다. 새끼나귀의 임자와는 상관도 없이 대뜸 가서 끌러오라는 겁니다.우리 예수님은 온 인류의 메시야이십니다. 그분은 시공을 초월해서 오늘도 여전히 복음으로 우리를 깨우쳐 인도하고 계십니다. 주의 영원불변하는 소원은 믿고 구원받은 당신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당신의 영광입니다. 오늘본문도 분명히 우리에게 전하려는 귀한 생명의 소식이 가득 담겨져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끌고 오라는 나귀새끼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30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아낳은 나귀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1. 아무도 타보지 않은 매여 있는 새끼나귀입니다.

 

1) 등위에 사람을 태워본 일이 없는 나귀입니다.

이 어린 나귀는 아직 일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밥값도 못하는 어린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도 아직 어린 자녀들은 탈없이 자라며 배우는 게 일입니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은 다 큰 어른들이 하는 일입니다. 어린 나귀는 한번도 사람을 등에 태워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이런 어린 나귀를 찾으셨습니다. 어린 것은 아직 제 기능을 발휘치 못합니다. 등에 태우는 일에 대해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습니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은 누구나 두렵습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불안함과 위험한 호기심만 있을 뿐입니다. 

 

2) 아직 어린 새끼나귀입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미숙함은 물론 따라하며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때를 말합니다. 불순종해 제멋대로하면 곤란한 일을 만납니다. 자신을 온전히 어른이나 주인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전과 장래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강아지나 애기나 무릇 어린 것들을 자세히 보세요. 다 살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여움을 떨며 사랑받게 하며 매달리는지 모릅니다. 애교를 부리며 매어달리는 것은 다 살겠다는 겁니다. 강아지가 사람을 보고 죽어라하고 달아나고 무섭게 으르렁거리면 살아남겠습니까? 어린 애기가 예쁜 짓 안하고 늘 엄마품에서 달아나려고만 한다면 젖을 제대로 얻어먹겠습니까? 어린애기고 강아지고 자신에게 누가 맛진 것을 주고 편하게 해준다는 걸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마치 포도송이가 가지에 달라붙어 있듯이 바짝 달라붙어 있는 것이지요. 벧전 2:2절에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생명줄을 놓치면 어른이나 애기나 짐승이나 다 죽는 겁니다. 성도에게 생명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복음뿐 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매여 있는 어린 나귀입니다.

아직 지각과 자립능력이 없는 어린 나귀는 주인이 정해진 곳에 잘 묶여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속박이 아니라 보호입니다. 풀러놓으면 천방지축 아무데고 다니다가 필경은 위험한 곳에 이르러 불행을 당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주인이 누구냐는 겁니다. 어린 나귀뿐이겠습니까? 모든 인생이나 짐승이 임자 잘 만나야 합니다.

누구를 그리워하다가 누구를 만나느냐는 그 사람의 삶을 결정짓게 됩니다. 본문에는 어린 나귀의 주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나귀를 풀을 때 어찌하여 나귀를 푸느냐고 임자들이 묻고 이어 주께서 쓰시겠다하니 일체 다른 말이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곧 생명의 명령입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여러 속박도 주께서 우리안에 오시면 저항치 못하고 잠잠히 우리를 주께 내드릴 줄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뭘 원하시면 이유를 묻지 않기 바랍니다. 주앞에는 오직 아멘과 할렐루야와 찬송만이 우리의 몫인 줄 압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저와 여러분 과연 어디 누구의 무슨 줄에 매여 있습니까?

주인도 중요하지만 묶여 있는 줄이 무엇이냐는 것도 매우 중차대한 것입니다.

혹 주인이 갖고 있는 돈이란 줄로 매여 있을 수도 있으며 혹 주인의 명예나 권력의 줄에 매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최고의 줄은 무엇입니까? 사랑으로 고백되고 있는 믿음과 신뢰의 줄에 매이는 것입니다. 어떤 외적인 조건보다 그냥 그 사람 자체가 훌륭하여 매여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고도 차원높은 관계의 줄인지 모릅니다.

그 사람의 어떤 조건보다 그냥 그 사람이 좋아서 서로 매여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사랑의 줄로 많은 관계의 풍성함이 넘치기 그리스도 거룩하신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아멘으로 고백을 나눠 갖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께 매여서 죽고 사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비록 부족하여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끝까지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께만 매이기 원합니다. 우리가 서러워할 때 말없이 다가오셔서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의 노예가 되고 싶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우리 주님께 바짝 매여 살고 싶습니다. 주님이 풀어주지 않으면 아무 곳도 가지 못하는 영원한 절대노예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주인되시는 그리스도 외에 어떠한 것에도 묶이지 않고 자유할 것입니다. 환경과 외모에서 자유합니다. 명예와 물질에서 자유합니다. 권세와 체면에서 자유합니다. 특별히 유한한 육신의 80 평생 안에 갇히지 않습니다. 진정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제가 바이올린을 가끔 연습합니다. 그러나 늙어 배워서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어떤 바이올린을 만나든 그 바이올린은 주인을 잘못 만난 겁니다. 연주를 잘하는 사람 만났더라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릴텐데 제가 소유한 악기는 늘 시원치 않은 소리만을 낼 것이 아닙니까?

 

빨강머리 젊은 비발디는 기관지천식으로 늘 숨소리가 쌕쌕댔습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여기저기 귀족파티에 불려가서 그들이 원하는 곡을 연주해야 했습니다. 중년이 되어 훌륭한 연주가가 된 비발디는 어느날 큰 공연에서 감동의 연주를 합니다. 여기저기 찬탄의 브라보우가 터지는데 이런 말이 들립니다. “역시 악기는 비싸야 해.”비발디는 바이올린을 바닥에 내던지고 발로 밟아 부서 버립니다. 찬물을 끼얹은 듯한 객석을 향해 “이 악기는 연습용입니다. 악기보다 정신이며 열정과 사랑입니다. 저는 바이올린과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이웃을 탓하기 전에 이웃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내 사랑과 인격으로 담아내는 연주솜씨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남편을 탓하기 전에 역시 남편이라는 트럼펫을 연주하는 자신의 연주솜씨를 살피면 좋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소리 잘나는 남의 집 악기 탐낼 거 없습니다. 내 솜씨 바로 잡으면 됩니다. 솜씨 변변한 사람 있습니까? 저를 비롯해서 전 아직 기억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단 하나 주의 말씀이 가슴에 파고들때 드디어 사람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솜씨를 경험합니다. 사랑이라는 묘약이 신약과 구약을 품고 우리 내면에 퍼져가야 합니다.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기쁨인지 모릅니다.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내안에 오셔서 관계의 아름다운 연주를 일으켜 주소서.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무엇에 매여있든 주님은 상관치 않습니다. 그분이 쓰시겠다면 그거로 만족입니다. 본문 31절입니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2. 그리스도의 주권은 항변치 못합니다.

 

매였던 나귀를 풀어올 때 임자들이 어찌하여 나귀새끼를 푸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두사람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주께서 쓰시겠답니다.”34절 후 아무 말이 피차 없습니다. 그냥 예수께로 끌어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등위에 걸쳐놓고 길에 펴 놓았습니다. 본래 진리앞에는 질문이 없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입니다. 진리앞에는 그대로 따르는 것만이 바른 답이 됩니다. 바른 답을 자꾸 묻는다면 시간낭비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진리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고요하게 다가오십니다. 조용히 다가오실 때 속히 맞아드려야 합니다. 고집스럽게 외면하면 그분은 조금씩 소리를 들려주십니다. 작은 소리를 듣고 외면하면 점점 더욱 큰 소리로 다가오십니다. 큰 소리란 큰 일이 일어나야 들리는 소리입니다. 적어도 택한 자라면 이런 주의 음성은 반드시 들려올 줄 믿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국민들에게 한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유언이라고 하면서 하셨던 말이 어떤 말입니까? “자유하라고 자유주셨으니 다시는 종(유물무신론을 근거한 공산주의)의 멍에를 지지 말라.”는 갈5:1절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복음이신 주님은 진리십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냥 풀러오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새끼나귀는 예수님께 끌려 왔습니다. 아무 능력없이 어딘가에 묶여 있는지 그 주인이 누군지도 알지 못한 채 그냥 묶여서 주는 밥이나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가 어딥니까? 예수찬양하고 예배드리는 예배당 아닙니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의 구원이여. 우리의 노래시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우리가 예수믿은 거 우리의 노력도 아니요, 뜻도 아닙니다. 어느 날 보니 예수 믿고 있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에 우리의 공적이 없습니다. 하마터면 재랭이고개 단골손님 될뻔한 사람들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생각할수록 감사요, 생각할수록 죄송할 뿐입니다.

여러분. 해논 거 없이 받은 것은 다 빚입니다. 우리는 모두 복음에 빚진 자로서 살아갑니다. 복음에 빚진 자는 마땅히 전도자의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만나 그리스도께 매여서 평생 저와 여러분 아름다운 신앙인, 선포하는 진리의 나팔수로 사시기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