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강단

2012.09.02. 주일예배<출18:7-12. 모세에게 듣고 드린 이드로의 번제>

by 설렘심목 2012. 10. 5.

 

2012.09.02. 주일예배<출18:7-12. 모세에게 듣고 드린 이드로의 번제>

 

1923년 미국 시카고의 에지워터 비치호텔에서 당시 미국 8대 부자들이 한 탁자에 모인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매스컴은 이 모임을 성공과 출세의 상징이요, 신화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드라마의 한 과정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25년 후 그들을 신화로 추켜 보도했던 매스컴들은 네 명은 자살과 네 명은 파산과 국외추방과 사망, 또 징역 중 사망을 보도했습니다.

 

모세는 가족을 그리워 할 겨를도 없이 사역의 현장에서 매우 고단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출18장은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가족 셋을 데리고 모세를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모세가 처가를 떠나 애굽왕 바로에게 가서 백성들을 이끌고 시내광야에 이르기까지의 일은 모두가 장엄한 구원의 드라마로서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 사건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과 유월절에서 홍해를 건넌 일과 만나와 메추라기의 등장, 그리고 므리바 반석에서 물이 치솟아 오른 일, 아말렉과의 르비딤전투현장,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간섭없이는 해낼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이런 소식을 듣고 있었고 이제는 애굽을 떠난 사위에게 딸과 외손주들을 맡길만하다고 생각이 되어 사위 모세를 찾아 온 것입니다.

모세의 아내 이드로의 딸 십보라는 아들의 양피베는 일, 곧 할례에 대하여 매우 못마땅했습니다. 어린 아들의 귀두를 베어내어 고통스런 피를 흘리게하는 남편의 민족신앙에 너무 황당해했습니다. 미디안민족에겐 이스라엘의 할례가 마치 야만인들이 하는 짓으로 보였습니다. 십보라는 심하게 불만을 나타내고 그 즉시 친정으로 아들들을 데리고 돌아갔다가 이제 어느 정도 모세의 행보가 안전권내에 들어서자 마음도 가라앉아 친정아버지와 함께 돌아온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민족해방의 위대한 도구로 모세를 준비하신 후에 이방의 미디안제사장의 집에 들어가게 하셨는지를 염두에 두면서 오늘 말씀을 받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직 믿음으로 받는 구원의 보편성(누구든지)이 보일 것입니다. 이드로 : 탁월. 각하. 르우엘<드우엘(민1:14)> :하나님의 벗. 호밥(삿4:11).

 

이드로는 르우엘이란 이름의 미디안 제사장입니다. 사위의 여호와신앙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세를 사위로 받아들였고 그를 아끼는 장인어른입니다. 사위의 엄청난 사역이 야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성공적으로 이뤄져가자 이드로는 기쁨으로 딸과 손주를 데리고 달려 온 겁니다. 모세도 얼마나 기다렸겠습니까? 반갑게 맞아 그간의 모든 경위를 설명합니다. 그러자 이드로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미디안의 제사장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겁니다. 이드로가 알고 있고 찬양하는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높이는 하나님과는 다른 많은 신중에 이스라엘의 신인 하나님입니다. 그래도 우리 하나님은 이드로의 고백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9절에서 11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이드로가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사람의 손 아래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아멘. 이드로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모세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 듣고 믿는 자, 누구나 구원 받습니다.

 

이드로는 미디안족속의 제사장이었지만 사위 모세의 출애굽의 생생한 소식을 접하면서 분명히 살아계셔서 자기백성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활동을 알게 됩니다. 이드로는 어떤 질문도 없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앞에서 떡을 떼었습니다. 12절을 함께 읽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앞에서 떡을 먹으니라.” 하나님의 소식을 듣고 갈등없이 즉시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자는 가장 귀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확고히 믿어 드렸습니다. 믿음이 이렇게 들음으로 시작하듯이 멸망도 들음으로 시작됩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따르는가에 생명과 사망 그리고 영광과 수치가 갈립니다. 아담은 하와의 말을 들어 에덴에서 쫓겨났고 하와는 사단의 말을 들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자문을 듣지 않고 젊은 친구들의 말을 들어 망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고도 불평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모세에게 대든 불신이스라엘과는 매우 대조적인 이드로의 믿음입니다. 이는 들음에서 믿음이 난다는 롬17:10절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방인의 제사장에서 하나님을 믿게 된 이드로는 평생을 믿던 자신의 민족종교를 뒤로하고 기꺼이 하나님께 번제와 희생을 드리고 제사 후에 장로들과 떡을 먹습니다. 떡을 뗐다는 건 함께 예배 후에 교제함으로 이제 이드로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세의 말을 듣고 즉시 믿고 번제를 드린 이드로처럼 저와 여러분에게 선포되어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쾌하게 아멘하며 생명과 축복으로 받는 이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비전가족 여러분.

교회는 완전함의 상징이 아닙니다. 죄와 용서가 만나는 곳, 구원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완전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게 아닙니다. 세상 어디도 완전한 교회는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다 깨닫고 나아가는 게 아닙니다. 다만 애를 쓰는 것입니다. 깨닫기 위해서 먼저 믿음달라고 간절히 구하며 나아가는 게 교회의 모습입니다. 결코 의인의 모임이 아니라 죄인의 모임인 교회가 이렇게 이드로처럼 직접 경험한 것이 없어도 복음을 듣고 주님을 단순히 믿어 찬양할 때 구원은 이뤄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장면은 훗날 이뤄질 재림 후 천년왕국에 대한 전형으로도 무리가 없습니다. 미디안의 딸인 십보라와 모세의 신앙 갈등도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는 그날에 이방인이 듣고 구원받고 택한 선민 이스라엘 밖으로 번져 가는 복음의 불길은 불평하고 저항하던 자들까지도 감동케 할 것입니다.

신약시대 초대교회에도 교회의 모습은 구약시대나 오늘 날이나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님주변에는 항상 병든 자와 소외된 자와 한편, 정치적 야망에 찬 사람들로 들끓었습니다. 참으로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생각들로 모여들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도 별사람이 다 있었지만 뜻은 하나였습니다. 다윗을 중심으로 하나 되자는 것 그것 하나였습니다. 우리의 자격으로 말하자면 교회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하나님앞에서 장로들과 함께 떡을 떼는 미디안제사장 이드로에 대한 것입니다. 네 고백과 내 고백 그리고 가치관과 성향에서 모습까지 다르다는 것은 일치의 조건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너와 네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주님의 큰 그림을 그리기에 가장 적합한 다양성을 너와 내가 각각 달라 매우 유용하다는 걸 말합니다. 큰 모자이크 조각을 떼어보면 같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여서 제자리를 지키면 썩 훌륭한 작품이 됩니다. 언제나 주님이 있으라고 한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하여 아름다운 교회를 이뤄가시는 충성된 저와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