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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2.09.23. 주일낮예배<마19:3-8. 본래로 돌아가는 사람

by 설렘심목 2012. 10. 5.

 

2012.09.23. 주일낮예배<마19:3-8. 본래로 돌아가는 사람>

지난 주 설교내용은 주께서 쓰시겠다는 어린 나귀새끼를 살피며 우리들의 신앙행보를 돌아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 바리새인들이 찾아와 묘한 논리로 이혼의 적법성에 대해 묻는 장면입니다.

 

3절을 함께 읽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율법주의란 율법을 최우선시하고 그 율법에 위배되는 것은 무조건 모두 죄악시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오늘 저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답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 주님의 깊은 데로 들어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령이 함께하셔서 깊은 믿음의 도에 이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함께 5절부터 8절까지 읽겠습니다.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간추려 봅니다.

<하나님께서 둘을 하나로 짝지어 주셨으니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 그 런데 왜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고 헤어질 수 있다고 했는가? - 본래는 나뉘지 못하는데 인간이 악하여 헤어지는 경우가 생겼다.>는 대화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답변이 모세의 율법에 앞서 본래 하나님이 의도했던 부부의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듣고 품어야 하는 주님의 음성은..

 

1. 주님의 시각은 본래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본래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었지만 인간이 죄악에 젖어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이혼증서를 주고 헤어질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주님의 답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치유하시고 복음을 전하시는 모든 것은 한마디로 본래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병든 자는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그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 죄악가운데 불행한 삶을 사는 자는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에덴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십자가의 사건으로 해결되었습니다.

2. 현실은 창조의 뜻 본래와 크게 벌어져 있습니다.

 

지금의 여러분과 여러분 주변을 살펴보시면 과거와 매우 큰 격차를 보이고 있음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본래 여러분과 지금 여러분 어디가 어떻게 다릅니까?

본래 해맑던 모습, 본래 수줍던 마음, 곱던 음성과 피부, 본래 잘 웃던 얼굴이었습니까? 그 반대입니까?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본래 하나였고 나뉠 수 없었는데 사람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이혼증서가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창조때 모습은 속이나 겉이나 지금 이러한 모습의 우리가 아닌 매우 신선하고 죄없는 우리들 즉 이혼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본래의 모습은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본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미 선포된 우리교회 말씀가운데 샬롬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본래로 돌아가기 운동입니다. 이것은 전인적 회복운동입니다.

 

1)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진정한 본래의 나를 만납니다.

본래는 하나님곁에서 살던 인생이었습니다. 죄가 들어온 후로는 하나님을 피해 나무사이에 숨은 것이 모든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본래로 회복되려면 하나님곁으로 꾸준히 다가서야 합니다. 그분은 사랑이시요, 꺼지지 않는 불이십니다. 그분 가까이 가면 우리들의 더러운 죄가 타 없어집니다. 죄중에 가장 대표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불신은 증거를 요구하고 수집, 정리하고 확인하느라 믿지 못합니다. 믿음은 증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관계는 더 이상 확인하기를 멈추게 됩니다. 믿기 때문에 묻지 않습니다.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이것은 본래의 나를 찾아 만나는 최초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향하여 날마다 발길을 재촉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먼 곳에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시려고 기다리신다고 (히11:6)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어디서 가까이 뵙고 만납니까? 예배입니다. 예배로서 하나님만나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병원이나 법원에서 만나지 않고 예배에서 말씀에서 하나님만나는 큰 복이 저와 여러분 가정에 늘 넘치기 바랍니다.

 

2) 예수님께 돌아가면 진정한 본래의 나를 만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성삼위일체 한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번엔 예수님께 돌아가길 원합니다.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온 몸에 피를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힘겹게 오르던 골고다 언덕은 진정 본래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왜 그분이 거기서 그렇게 비참하게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큰 소리로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이 아멘 소리, 우리들의 자자손손 대대로 그치지 않을지어다.

 

골고다란 히브리어로 해골(라틴:칼바리아)이란 뜻입니다. 해골은 사람의 뼈를 말하는데 주로 머리뼈로 상징됩니다. 골고다위에 십자가가 우뚝 섰을 때 드디어 인류구원의 나팔이 울려 퍼졌습니다. 죄로 죽었던 우리의 마른 뼈 骸骨위에 십자가가 깊이 꽂혀서 어린양의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져 흘러내려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보혈로 적셔진 해골마다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나면 하나님을 깨닫고 느끼게 됩니다. 마른 해골의 언덕에서 예수님을 만나 초췌한 모습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에스겔골짜기의 자신모습을 보면 하나님주신 죄로부터의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본래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나를 만나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소유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 거듭난 삶은 육체를 이긴 영원한 영혼의 영생입니다. 갈라서서 배신의 멍에를 피차 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구레네 시몬처럼 골고다 언덕을 향해 나아갑시다. “내가 지겠지만 난 죄는 없소. 그리고 이 사람 더 이상 때리면 난 십자가를 지지 않겠소.”구레네 시몬은 비록 죄를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고통을 아파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구원받아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죄와 사망을 해결하신 예수그리스도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통증이 우리 가슴에 와야 합니다. 그 십자가의 통증이 오지 않으면 차라리 구레네 시몬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3) 성경으로 돌아가면 진정한 본래의 나를 만납니다.

 

지금 세계는 온갖 범죄와 공해덩어리로 몸살을 합니다. 기후도 타격을 입어서 이대로라면 우리들의 후손들은 필경 태양의 가시광선과 오염된 물과 공기, 그리고 온난화와 냉극화 현상으로 서서히 죽어갈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미래학자들은 매우 극심한 위기설을 스스럼없이 말합니다. 서서히 죽어가는 지구라는 말은 이제 생소하지 않습니다. 기억합니까? 해일태풍 쯔나미는 이러한 것을 입증하고 있는 지구의 몸살입니다.

 

아인슈타인박사는 자신이 정리한 핵 이론이 그렇게도 신속하게 핵폭탄이 되어 인류의 가공할 무기로 등장하리라곤 상상치 못했습니다. 핵무기를 막을 방법이 없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딱 하나 사랑만이 그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은 묘하기는 하지만 짓궂지는 않은 존재”라며 신의 실존을 인정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에덴의 회복은 전생애에 거쳐 기쁨의 회복입니다. 그것은 내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회복되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본래를 회복하려면 하나님께 돌아가는 예배에 헌신이 돼야 하고 예수님께 들어가는 골고다언덕을 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끝없이 타락해갈 때에 교회만이라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거기서 진정한 본래의 자신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본래의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의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그 본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면 우리가 속해있는 지구, 공해로 몸살하는 이 지구도 큰 교회 거룩한 찬송의 나라로 바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안에서 하나님 만나고 예수님만나고 거듭난 자신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축복합니다.

“주여, 본래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다시는 갈라섬이 없는 본래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주께서 창조하신 그날 그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주님 뜻 안에서 온전히 회복되게 하옵소서. 회복된 자들이 밟는 모든 땅마다 기쁜 찬송이 가득할 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