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강단

2012.05.20.주일예배<출6:29-7:7. 낮아진 자의 하나님>

by 설렘심목 2012. 10. 5.

 

 

2012.05.20.주일예배<출6:29-7:7. 낮아진 자의 하나님>

 

모세는 첫 번 바로 왕을 방문하여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가야 합니다. 굳이 안가겠다고 고집하는 모세의 겸손은 좀 심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렇게도 뒤로 빼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셨기에 한사코 중차대한 사명을 맡기시려는 것입니까? 본문30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1. 능력이 아니라 겸손입니다.

 

모세의 겸손은 예의를 갖추는 정도의 사양이 아닙니다. 그는 진정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이젠 아무 것도 없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만과 겸손과 비굴은 한 선에 나란히 놓여있습니다. 겸손을 가장한 비굴함과 교만이 왼편 끝에서 하나님을 힘들게 하고 자신을 망가지게 합니다. 심한 겸손은 비겁함과 교만과 아주 흡사하여 혼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교만과 비굴함과 겸손을 구별하는 일은 매우 간단합니다.

 

겸손은 그냥 힘이 못 미처 못 하겠다는 거고 비겁함과 교만은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 앞에 불안해서 못한다고 하는 겁니다. 뒤에서 말한 교만은 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하려고 들지 않는 겁니다. 믿지 못하는 불안함으로 안하는 것과 힘이 부쳐서 못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비굴은 뭡니까? 낮아지되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이 무너져 모든 자신감이 사라진 자세입니다. 그럴 땐 마귀가 와서 야단쳐도 쩔쩔맵니다.

 

모세는 한사코 바로에게 가기를 사양합니다. 이유는 첫 시도를 실패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바로가 이스라엘백성을 놔주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고달픈 노역을 명령해 백성들의 반발이 거세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시 가라고 하시니 이젠 정말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40년간의 처가살이로 모세는 모든 포부와 꿈을 접은 지 오래입니다. 이제 모세는 삭을 대로 삭고 물러질 대로 물러져서 다른 사람이 돼 있습니다. 겸손정도가 아니라 그냥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모세의 심정입니다. 바로 이런 모세에게 우리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맡기시기로 하신 겁니다. 지금 모세는 자신을 절대무능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무능이란 절대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나를 포기할 때 하나님은 나를 들어 귀한 일을 시작하십니다. “아, 이젠 정말 내 인생 끝인가 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잖아.” 하나님은 그때까지 모세를 기다려주신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구하는 것이 있습니까? 빠른 응답을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사람의 시간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구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 듣는 가운데 답을 구하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무슨 조치를 취하십니까? 7: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2. 사명주실 때 감당할 능력도 주십니다.

 

6장 12절과 30절은 중복된 같은 장면입니다. 출정명령 앞에 모세는 다시 자신의 입이 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자손도 내말을 듣지 않는데 바로가 듣겠냐고 반문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로 하여금 바로왕 앞에서 신이 되게 할 것이고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너는 아론에게 내 명령을 말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바로왕은 애굽 백성위에 신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러한 막강권세자 앞에는 같은 신의 권위로 서지 않으면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와 같은 신격의 권위를 부여하신 겁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바로왕 마음에 교만한 생각이 들어 “이런 버릇없는 히브리인을 봤나?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와서 입을 놀려?”그랬다면 모세와 아론은 아마도 그 자리에서 처형당했을 것입니다. 당시는 그러고도 남을 바로왕의 위세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로 감히 하늘같은 바로왕과 마주서서 협상을 시작하게 됩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믿음과 비전은 하나님이 열어주시고 하나님께서 완성해 가십니다. 여기에 인간의 의지와 노력과 헌신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뜻앞에 도구되는 인생은 하나님 친히 사용하기에 알맞게 고치시고 만지셔서 끝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왜 시원치 못합니까?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입니다. 왜 하나님의 의도가 쉽게 파악되지 않습니까? 그분과 가깝지 못해서 마음을 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가까워집니까? 모세를 보면 답이 있습니다. “이사람 모세는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 세 번째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소명에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7:5절입니다.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3. 백성들이 깨달아 돌아오길 바라십니다.

 

3절과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 바로가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본문에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는 애굽백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구원의 하나님을 눈으로 보아 깨달을 수 있도록 여러 차례 애굽을 치시겠다는 것입니다. 재앙을 내리시려고 바로왕의 마음을 완강하게 만들어 놓겠다고 까지 예고하십니다.

 

바로왕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는 것은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표징과 이적을 애굽 사람의 눈과 이스라엘 백성과 그 후손들에게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본 절 말씀을 뒤집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재앙을 통하여 애굽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면 거기서 구원받은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감격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이 당신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바로 깨닫고 오래 기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속히 바른 예배의 민족으로 든든히 서가기를 바라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능력보다 겸손입니다. 뼈를 깍듯한 의지와 결단도 좋지만 먼저 낮아지고 온유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맥없이 늘어진 가운데 찾아주시는 히브리인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능력이 되어주시고 권세가 되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많은 주의 백성들을 구해야 할 위대한 사명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아무쪼록 자신을 쳐서 낮추고 또 낮춰서 누가 봐도 흐물흐물 물러지기 바랍니다. 단단한 대추씨가 생명을 열 때엔 물렁물렁 썩어 터집니다. 순이 솟아오르도록 야무진 껍질이 무너지는 겁니다. 겉사람 속사람이 주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시기 바랍니다. 모든 눈물 안으로 삭아내려, 그래서 영적으로 성숙된 온유한 저와 여러분이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게 날마다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의 아름답고도 복된 구원사역에 귀히 쓰임받는 하나님의 기쁨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