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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2.05.06. 히6:4-8. 옥토와 박토>

by 설렘심목 2012. 10. 5.

 

 

2012.05.06. 히6:4-8. 옥토와 박토>

 

본문은 배교자에 대한 경고와 권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장 원하는 여자의 모델은 클레오파트라나 양귀비가 아니라 춘향이라는 사실에 주지해야 합니다. 춘향이를 소개하는 작품은 춘향이 외모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바른 작가라면 춘향이의 매력분화구는 바로 절개라는 점을 잘 알 것입니다. 그래서 변학도를 가능한 한 유능한 탐관오리로 부각시킵니다. 좀 부족하고 못나서 종종 속을 태워도 “오직 당신만을 바란다.”는 한마디가 상대방을 사로잡습니다. 우리 하나님앞에 “오직예수”의 신앙고백으로 사랑받기를 축복합니다.

 

4절의 “한번 빛을 받고”라는 말과 4절과 5절의 “맛보고도”라는 말은 유의하여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4절의 한번 빛을 받았다는 것은 복음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함으로 구원에 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어 4절 하단과 5절에서 하늘의 은사와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즉 구원받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통치에 대한 말씀까지도 믿던 자가 타락하게 되면 다시 회개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알기로는 한번 받은 구원은 취소됨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부족하여 휘청거려도 고쳐가며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마 12:31절에서는 성령을 훼방한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또 요일 5:16에서는 죽음에 이르는 죄가 있다고 했는데 그걸 위해선 기도조차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때론 도덕과 윤리로 구원이 위협받기도 하지만 다만 우리 모두에게 친구와 적을, 마귀의 노예와 성령의 자녀를 잘 식별하는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한번 받은 구원의 지속적 유효라는 것은, 구원하신 영혼을 포기치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할 성령훼방 죄와 죽음에 이르는 죄라는 것은 우리 기독교가 용서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되는 극악한 적그리스도적인 큰 죄 앞에 매우 단호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중요한 요절은 7절과 8절입니다. 이 두개의 절은 옥토와 박토에 대한 비유설명입니다. 요약한다면 옥토는 하나님께 복을 받고 박토는 불살라 버린다는 것입니다. 4,5,6,8절의 배교자는 불에 태워버릴 박토에 해당하고 7절의 합당한 자는 옥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밝히는 간단한 옥토와 박토의 차이점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1. 박토는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버림을 당합니다.

 

한번 믿은 뒤 어떠한 이유로든 예수를 떠나는 자는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박토입니다. 박토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가슴으로 받지 않고 땅바닥에 쏟아버리는 사형에 해당하는 악한 인간들이 간혹은 있습니다. 멸망자들의 본보기로 세워진 자들이 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지적입니다. 여러분. 박토는 강단에서 여러분 마음밭에 심겨진 말씀이

여러분의 가정과 개인의 실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까지를 말합니다. 말씀따로 생활따로라면 그것이 박토입니다. 아무도 그를 존경하지 않고 따르지도 않고 매력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박토로 시작하여 옥토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박토가 옥토되려면 비료를 잘 써야 합니다. 화학비료보다는 인분이 토질개량에는 으뜸입니다. 무너져서 썩은 내가 나는 경험과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모함당해 속이 썩어 오랜세월 억울한 수치가운데 견디어야만 해도 결국 우리는 체질개선을 통해 옥토가 될 것입니다. 옥토가 되는 값을 기쁨으로 치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 박토는 저주함에 이르러 마지막에 가시, 엉겅퀴와 함께 불살라집니다.

 

예수그리스도와 그 가르침을 등지고 엉뚱한 데 온 맘을 빼앗긴 채 살면 어떻게 처리됩니까? 마지막에 불살라버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지막 때라고 했으니까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보인 자들은 아무리 한번 구원을 받았어도 반드시 버림받게 됨은 희망이 없습니다. 배신자, 배도자, 이적행위자는 적보다 더 나쁩니다. 총칼을 맞대고 싸우는 적은 자기나라와 가정과 사회를 지키기 위해 그러지만 이적행위와 배신자는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가까운 사람들 속이고 피해를 줍니다. 이는 사형에 해당된다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초대교회에선 교리적 이단이 들어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일이 많았습니다. 자신이 속한 나라와 가정과 직장과 단체와 교회를 밖에 나가서 모함하고 흉보고 험담하는 자들, 밖에서 자기소속을 흉보는 이는 종북좌파와 같은 마귀의 시녀들입니다. 외부의 적보다 못한 내부의 무서운 적, 감쪽같이 속이는 자, 배도자, 배신자는 마땅한 댓가를 주님 앞에서 반드시 치를 것입니다.

 

농부가 온갖 정성을 다해 좋은 씨를 뿌리고 가꾸었는데 결과가 만족치 않은 것은 밭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등진 자의 본때를 농부는 보일 것입니다.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그러한 박토들은 마지막에 불사를 것이라고 합니다.

 

천국에 황토방을 하나 지어야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런 천국황토방의 불쏘시개감이 될 인생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 불쏘시개감은 안상홍 증인회나 대순진리회나 통일교, 북한세습왕조일당들, 그리고 나꼼수처럼 거짓말로 선동하고 이간질해서 사이 갈라놓는 자들..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3. 옥토는 농부가 원하는 좋은 채소를 냅니다.

 

옥토란 농부가 원하는 채소를 내는 곳입니다. 농부가 바라는 채소는 우선 보기에 싱싱하고 맛도 좋아야 합니다. 채소가 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신앙을 말해줍니다.

 

1) 옥토는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되는 것입니다.

2) 힘센 팔뚝이 아니라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믿음입니다.

3) 힘든 중에도 늘 감사하는 긍정의 믿음입니다.

4) 혈기가 죽고 다시 태어난 선한 열정입니다.

5)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따듯한 가슴입니다.

6) 손해를 입어도 결코 거짓증언하지 않는 순결한 영혼과 신앙양심의 투명성입니다.

그러면 옥토는 어떠한 곳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비전장로교회같은 곳입니다. 비록 힘이 부쳐도 하나님앞에 바로서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할 때 주님께서 아름다운 결론으로 우리를 주장하시는 줄 믿기 바랍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끝으로 옥토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우리 비전장로교회, 왜 반드시 옥토여야 합니까?

 

4. 하나님의 복은 옥토를 통해 세상에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경작자가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 안에는 믿음과 거기 따르는 풍성한 모든 것, 곧 하늘의 신령한 것들과 땅의 기름진 모든 것을 포함하는 복이 들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들은 말씀대로 살아집니까?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세월이 환란가운데 짧지 않은 것입니다. 아직도 다 이루지 못한 서원과 순종을 차근차근 바로 세우고 갚아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만 신음 중에는 너무 길고 긴 시간들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세상불신자들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이땅을 바르고 확실하며 영원히 아름다운 것들로 풍성하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비전옥토가 다 되어 비전 밭에 심겨진 진리의 씨앗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이웃과 세상에 모두 나누시고 나눈 만큼 충분히 받으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