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2.주일예배<요1:29. 세상 죄를 지신 어린 양 예수>
구약시대에 제사에서 자범죄는 제사당사자가 짐승에게 안수하고 원죄는 제사장이 반드시 양에게만 안수했습니다. 자범죄에는 소, 양, 염소, 비둘기 등 능력에 알맞은 것으로 드렸습니다. 이때 성막에서 아직 안수하지 않은 동물은 짐승으로 남아있는 것이고 안수를 마친 동물은 짐승이 아니라 제물입니다. 제물은 제사에 쓰이는 聖物로 구별되어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게 됩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성막에서 짐승에게 안수하는 순간 죄가 짐승에게 넘겨져 제물이 된 짐승은 죄 값으로 피를 흘려 죽임을 당합니다. 제물이 죽는 순간 제사드리는 자의 죄도 제물과 함께 죽어 사라진 것입니다. 제단에 올려 진 짐승이 이제 죄를 품은 채 불에 태워지면 죄가 함께 불살라지고 하나님과 예배자사이에 화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짐승은 짐승으로 살다가 짐승으로 의미없이 죽지만 제물로 선택받은 짐승은 비록 죄를 품었으나 제물의 영광을 입고 생을 마칩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죄인의 성향을 지닌 채 태어납니다. 태어나고 보니 죄인다운 것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분, 예수님께서는 그 태어나심부터 죄 없는 성령님의 역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정결한 육체로 이 땅, 불신세상의 죄악을 모두 떠안으셨습니다.
세례는 죄를 씻어 정결케 되는 예식입니다.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세례 받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의 권고에도 아랑곳없이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4-15절 말씀을 봅니다.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는 죄를 씻는 세례가 아니라 믿음의 의를 이루는 세례의 안수(按手)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세상의 모든 죄를 주님의 몸에 떠 넘겨드리는 예식이었습니다. 무엇이 이를 증거합니까? 바로 오늘의 본문이 그것입니다. 함께 1장 29절 뒤를 읽겠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후 요한의 증거입니다.
주님은 세상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하여 세례를 통하여 죄의 옮김, 전가(轉嫁)를 이루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죄를 한 몸에 떠넘김 받으셨다는 선언적 행위입니다. 또한 이는 죄악의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를 실현하는 첫 시작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 인간에게는 이것이 믿음을 이루는 의의 출발점이 됩니다. 죄 없는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 갚기 위하여 죄인의 자리로 낮아진 이 요단강의 세례는 그야말로 죄인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숙연한 예식의 순간이었습니다. 본문 29절에 이어서 다시 36절에 또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세례요한은 세례를 받으신 주님이 훗날 담당할 십자가를 예언합니다.
어린양은 아무 죄도 없이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번제단에 올라가 피흘려 죽음으로서 가장 영광된 생애를 마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제물이란 뜻입니다. 이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어주신 주님은 지금 우리를 향해 어떤 일하시기 원하십니까?
1. 대신 짐을 지어 주기 원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여전히 주님은 우리의 힘든 인생길에 끊임없이 도움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온유와 겸손이라는 멍에를 메고 주님을 따르면 우리 마음에 안식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의 마음에 평화가 없고 늘 쫓기는 것은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피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겸손과 온유의 멍에는 결국 평화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겸손은 그러므로 온유와 함께 평화를 전하는 최상의 축복입니다. 겸손과 온유의 복을 담대함과 함께 받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주님은 당신이 세례받기를 원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2. 성령으로 세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온유와 겸손이라는 멍에를 질만한 능력은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가능한 겁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 곧 예수님의 영, 거룩하신 영이십니다. 성령의 세례는 허약한 우리들의 인격기반을 송두리째 새로 건축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침 일찍 눈을 뜨면 먼저 할렐루야 소리 내어 하나님을 찬송하시고 즉시 무릎 꿇어 집중하는 정성으로 기도하신다면 성령세례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공급되는 영적인 양식입니다. 말씀은 먹는 만큼 기도는 꿇는 만큼, 여러분의 믿음은 성장할 것입니다. 많이 꿇고 많이 받아 목안에 넘겨 먹어서 힘있는 신앙인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31절을 함께 읽습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요한의 예수님세례는 자신도 알지 못했던 주님을 온 이스라엘앞에 드러내기 위한 것처럼,
3. 우리가 주님의 증거자로 살기 원하십니다.
33-34절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세례하실 것이며 그것으로 우리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를 삼았다고 요한은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예수를 메시아라고 또 개인의 구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찬송하는 예배자의 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성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미 믿은 것이며 남은 일은 이제 자신들이 믿고 닮아가기 원하는 예수님을 이 땅 끝과 세상 끝 날까지 입술과 삶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무거운 인생 짐을 진자들이 이슬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수많은 길목에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저와 여러분, 최고의 복된 인생들입니다.
그 복이란 성령의 세례와 도우심으로 겸손과 온유의 멍에를 지면서 열리는 신기하고 놀라운 임마누엘의 복을 말합니다. 그 복을 가득 안고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과 그 영광을 증거하는 것, 그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말씀을 온 인격과 믿음으로 먹고 아멘한 자마다 동행의 복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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